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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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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시인의 언어로 쓴, 삶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9년 03월 | 256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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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지음/더숲/2019년 03월/256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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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집


■ 책 소개

 

시인의 언어로 쓴, 삶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는 인생에 다 나쁜 것은 없다는 작가의 경험과 깨달음을 담고 있다. ‘시인’을 ‘신’으로 알아들은 사람들 때문에 신앙 공동체에서 쫓겨난 일화, 화장실 없는 셋방에 살면서 매일 근처 대학병원 화장실로 달려가며 깨달은 매장과 파종의 차이, ‘나는 오늘 행복하다’를 수없이 소리내어 반복해야 했던 힌디어 수업, ‘왜 이것밖에 주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것만이 너를 저것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어떤 목소리, 신은 각자의 길을 적어 주셨으며 그 표식을 따라가면 길을 잃지 않는다는 것, 가장 힘든 계절의 모습으로 나무를 판단해서는 안 되며 꽃이 피면 알게 되리라는 진리.

 

어떤 이야기는 재미있고, 어떤 이야기는 마음에 남고, 어떤 것은 반전이 있고, 또 어떤 것은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이다. 시인은 단 한 줄의 문장으로도 가슴을 연다. 글들을 읽다 보면 저자가 ‘이야기 전달자’를 넘어 ‘이야기 치료사’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는다. ‘삶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알아 가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 저자 류시화

충북 옥천 출생이다. 경희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었다. 1980년부터 1982년까지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했으나 1983년부터 1990년에는 창작 활동을 중단하고 구도의 길을 떠났다. 이 무렵부터 명상서적 번역 작업을 시작해 명상과 인간의식 진화에 대한 주요 서적 80여 권을 번역했다.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오쇼 라즈니쉬, 라마나 마하리시, 스리 오로빈드, 푼자 바바 명상센터 등을 방문하고, '성자가 된 청소부'의 저자 바바 하리 다스, U. G. 크리슈나무르티와 만났다. 대표적인 영적 지도자로 알려진 달라이 라마와 틱낫한의 가르침을 소개했다. 1988년부터 열다섯 차례에 걸쳐 해마다 인도, 네팔, 티벳 등지를 여행했으며, 가타 명상센터, 제주도 서귀포 등에서 지냈다. 지금은 서울 대학로에 작업실이 있다.

 

■ 차례

1

비를 맞는 바보

새는 날아서 어디로 가게 될지 몰라도

그것을 큰일로 만들지 말라

인생 만트라

축복을 셀 때 상처를 빼고 세지 말라

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

살아 있는 것은 아프다

 

2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왜 이것밖에

마법을 일으키는 비결

나의 힌디어 수업

미워할 수 없는 나의 제자

융의 돌집

불완전한 사람도 완벽한 장미를 선물할 수 있다

 

3

매장과 파종

나는 너와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좋아

아무도 보지 않을 때의 나

내면 아이

나의 품사

내 영혼, 안녕한가

다시 만난 기적

 

4

어떤 길을 가든 그 길과 하나가 되라

순우리말

원숭이를 생각하지 말 것

어서 와, 감정

렌착

사과 이야기

직박구리새의 죽음

 

5

누구도 우연히 오지 않는다

꽃이 피면 알게 될 것이다

60억 개의 세상

연민 피로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나는 왜 너가 아닌가

나예요

 

6

진실한 한 문장

낙하산 접는 사람

진짜인 나, 가짜인 너

자신을 태우지 않고 빛나는 별은 없다

우리가 찾는 것이 우리를 찾고 있다

*에필로그_하늘 호수로부터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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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지음/더숲/2019년 03월/256쪽/15,000원

  

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

한 수도승이 제자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날이 어두워져 머물 곳을 찾던 그들은 경사진 들판 한가운데에서 오두막 한 채를 발견했다. 헛간 같은 집에 누더기 옷을 입은 부부와 세 아이가 살고 있었다. 집 주위에는 곡식도 나무도 자라지 않았다. 여윈 암소 한 마리만 근처에 묶여 있었다.

 

수도승과 제자가 하룻밤 잠자리를 청하자, 그 집 가장이 친절하게 안으로 맞아들여 신선한 우유로 만든 간단한 음식과 치즈를 대접했다. 가난하지만 너그러운 그들의 마음씨에 두 사람은 감동받았다.

 

식사를 마친 수도승이 그 가족에게 도시와 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진 척박한 곳에서 어떻게 생계를 꾸리는지 물었다. 주변에 그들이 일구는 변변한 논밭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삶에 지친 얼굴을 한 아내가 쳐다보자 남편이 체념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늙은 암소 한 마리만 있을 뿐입니다. 우유를 짜서 마시거나 치즈를 만들어 먹고, 남으면 마을에 가져가 다른 식량과 바꿉니다. 그렇게 겨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튿날 아침 수도승과 제자는 부부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길을 떠났다. 산모퉁이에 이르자 수도승이 제자에게 말했다. “다시 돌아가서 암소를 절벽 아래로 밀어뜨려라.”

 

제자는 귀를 의심했다. “저 가족은 암소에 의지해 겨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암소가 없으면 굶어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수도승은 재차 지시했다. “얼른 가서 내 말대로 하라.”

 

젊은 제자는 무거운 가슴을 안고 몰래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그 가족의 미래가 걱정되었으나, 지혜로운 스승의 명령을 무조건 따르기로 서약했기 때문에 암소를 절벽으로 데려가 밀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몇 년 후, 제자 혼자 그 길을 여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에 묵었던 그 오두막 부근을 지나게 되었다. 과거에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한 후회의 감정이 다시금 밀려오면서, 늦었지만 그 가족을 찾아가 용서를 빌기로 마음먹었다.

 

산모퉁이를 돌아 예전의 장소로 들어선 제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때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이 있던 자리에 아름다운 집이 세워져 있었고, 정성 들여 가꾼 밭과 화단이 집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풍요와 행복이 넘쳤다.

 

제자가 문을 두드리자 소박하지만 품위 있는 차림의 남자가 나왔다. 제자가 물었다. “전에 이곳에 살던 가족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들이 굶어 죽게 되어 당신에게 이곳을 팔았나요?”

 

남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자기 가족은 그곳에서 줄곧 살아왔다고 말했다. 제자는 여러 해 전 스승과 함께 그곳의 쓰러져가는 오두막에서 하룻밤 묵은 이야기를 하며 다시 물었다. “이곳에 살던 가족에게 그 후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남자는 제자를 하룻밤 묵고 가라며 집 안으로 초대해 음식을 대접했다. 식사를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그는 자기 가족의 운명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설명했다. “우리에게는 여윈 암소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 암소에 의지해 겨우 굶지 않을 만큼 살아가고 있었죠. 그것말고는 다른 생계 수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암소가 집 뒤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만 했고, 새로운 기술들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버려진 밭에 약초를 심고 모묙들도 키웠습니다. 다른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 사건은 우리에게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훨씬 의미 있게 살게 되었습니다.”

 

남자의 얘기를 듣고 제자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스승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구차하게 의존하는 것, 시도와 모험을 가로막는 것을 제거해야만 낡은 삶을 뒤엎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전하게 살아가려고 마음먹는 순간 삶은 우리를 절벽으로 밀어뜨린다. 파도가 후려친다면, 그것은 새로운 삶을 살 때가 되었다는 메시지이다. 어떤 상실과 잃음도 괜히 온 게 아니다. ‘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는 지금 절벽으로 밀어뜨려야 할 어떤 암소를 가지고 있는가? 그 암소의 이름은 무엇인가? 내 삶이 의존하고 있는 안락하고 익숙한 것, 그래서 더 나아가지 못하게 나를 붙잡는 것은? 질문은 그 자체로 삶의 기술이 될 수 있다. 스스로 그 암소와 작별해야 한다. 삶이 더 넓어지고 더 자유로울 수 있도록.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장차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중에 친구가 모 언론사의 입사 지원서를 구해 왔다. 그는 함께 지원하자며 내게도 한 장 내밀었다. 잘하면 외국 특파원으로 나갈 수도 있다는 친구의 말이 결정적이었다. 우리는 운이 좋으면 히말라야로 취재를 떠나 성자나 외계인과 인터뷰하는 특종을 터뜨릴 수 있을지 모른다고 농담을 하며 열심히 지원서를 작성했다. 그런 우스갯소리를 한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잊기 위한 나름대로의 전략이었다.

 

필기시험은 열흘 뒤였다. 지금도 서울 북악터널 부근에 잇는 국민대학교 앞을 지나갈 때면 그때의 일이 떠오른다. 시험장이 그곳이었다. 어떤 과목이든 자신 있다고 큰소리치며 곰팡내 나는 월세방에서 밤새워 예상문제집을 풀었다. 드디어 시험날인 일요일, 설레는 가슴을 안고 아침 일찍 시험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학교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시험 장소를 가리키는 화살표 방향을 따라 강의실로 가니 텅 비어 있었다.

 

정문으로 다시 가서 물었더니 수위 아저씨가 이상한 눈으로 존 레논처럼 생긴 장발의 청년을 쳐다보며, 시험은 “오늘이 아니라 어제.”였다고 했다. 날짜를 착각한 것이다! 망연자실 서 있다가 수위 아저씨의 눈초리가 하도 강렬해 학교 앞 골짜기에 있는 국밥집으로 가서 아침부터 혼자 술을 마셨다. 사회에 편입될 수 없는 천형을 받은 자신을 한탄하며.

 

인생이 첫 구간부터 막혔다는 불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날 정릉에서 종로까지 비틀거리며 걸어와 조계사 법당에서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게 긴 머리로 가리고서 부처님께 절하는 척 엎드려 잠이 들며 나는 생각했다. 이것은 다른 인생을 살라는 하나의 계시라고. 세상 속에서 살되 세상에 소속되지는 말자고. 그렇게 시험 날짜를 착각해 외계인과의 인터뷰는 물거품이 되었지만 훗날 히말라야 여행은 농담처럼 현실이 되었다.

 

만약 우리가 전체 그림을 볼 수 있다면, 전체 이야기를 안다면, 지금의 막힌 길이 언젠가는 선물이 되어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게 될까? 그것이 삶의 비밀이라는 것을.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 지나간 길이 아니라 지금 다가오는 길이다.

 

한 남자가 큰 회사의 사환(office boy)으로 지원했다. 면접관이 그에게 사무실 바닥을 청소해 보라고 했다. 그의 청소하는 태도를 만족스럽게 지켜본 면접관이 말했다. “당신을 채용하겠소. 고용계약서와 근무 조건 등 세부 사항을 보내 줄 테니 당신의 이메일 주소를 주시오.”

 

남자가 말했다. “저는 컴퓨터도 없고 이메일도 없습니다.”

 

그러자 면접관이 말했다. “이메일이 없다면 당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요. 미안하지만 우리 회사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고용할 순 없소.”

 

남자는 희망을 잃고 그곳을 떠났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주머니에는 단돈 10달러가 전부였다. 고민하던 그는 과일 도매상에 가서 10달러짜리 토마토 한 상자를 샀다. 그리고 집집마다 다니며 그 토마토를 팔았다. 두 시간도 안 돼 그는 전 재산을 두 배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같은 날 그 일을 세 차례 반복한 결과 80달러를 주머니에 넣고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남자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날마다 토마토를 팔았다. 매일 그의 재산은 두 배 혹은 세 배 늘었다. 얼마 후에는 수레를 사고, 또 얼마 후에는 트럭을 샀다. 곧이어 여러 대의 배달 트럭을 구입했다. 5년 후에 남자는 매우 큰 규모의 식품 도매업체 사장이 되었다.

 

성공한 남자는 가족의 미래를 위해 보험을 들기로 결정했다. 상담을 마칠 무렵 보험사 직원이 그의 이메일 주소를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대답했다. “나는 이메일이 없소.” 보험사 직원이 놀라며 말했다. “이메일도 없는데 이렇게까지 성공하셨군요. 만약 이메일이 있었다면 지금쯤 무엇이 되어 있을지 상상이나 하시겠습니까?”

 

남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아마도 사환으로 일하고 있겠지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삶의 여정에서 막힌 길은 하나의 계시이다. 길이 막히는 것은 내면에서 그 길을 진정으로 원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존재는 그런 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곤 한다. 삶이 때로 우리의 계획과는 다른 길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길이 우리 가슴이 원하는 길이다. 파도는 그냥 치지 않는다. 어떤 파도는 축복이다. 머리로는 이 방식을 이해할 수 없으나 가슴은 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의 나

‘나는 누구인가’를 가장 잘 말해 주는 것은 나의 주의나 주장이 아니라 내가 은연중에 하는 행동, 혹은 혼자 있을 때 하는 행동이다. 영혼과 의식의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나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행하는 작고 사소한 행동들이 내 몸의 리듬을 결정하고, 마음의 세계를 드러내 보이며, 의식을 특정한 차원과 연결시킨다.

 

출판사에 새로 온 편집자가 인사차 찾아왔는데, 마침 내가 외부에 일이 있어서 조금 늦게 돌아왔더니 내 작업실의 강아지 궁금이와 어느새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무슨 마술을 걸었는지 그토록 예민한 궁금이가 벌렁 누운 채 그 편집자의 손길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내가 와도 꼬리를 흔드는 둥 마는 둥, 그동안 애정결핍이었나 싶을 정도였다.

 

독자가 출판사로 보내온 우편물을 전해 주러 두 번째로 방문했을 때는 내가 원고를 탈고 중이어서 잠시 기다려야 했는데, 그 편집자는 마당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이제 막 봄을 뚫고 솟아오르는 수선화 싹들을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궁금이도 그 옆에서 턱을 괴고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내 작업실 마당에 있는 모든 나무와 풀들에 진심 어린 관심을 보였다.

 

동물과 식물에 대한 그녀의 놀라운 친화력은 그녀가 누구인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해, 새로운 편집자와 일하는 것을 주저하는 내 마음까지 스스럼없이 열게 했다. 그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가 출간하는 거의 모든 책의 편집을 출판사와 상관없이 그녀가 담당해 오고 있다. 그사이 궁금이는 세상을 떠나고 새 식구 천둥이가 그녀의 다리를 껴안고 두 발로 서서 따라다닌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녀는 또 내가 후원하는 인도 아이들의 장부를 정리하는 것을 돕고 있는데, 해마다 큰 축제 때가 되면 나 몰래 아이들에게 옷이며 학용품 등의 선물을 보내 주었다. 영어를 모르는 아이들을 배려해 기초 힌디어를 배워서 작은 카드에 힌디어로 아이들의 이름을 적고 안부 인사까지 적어 보냈다. 상형문자 같은 힌디어를 혼자 익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로지 아이들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한 마음에서 우러난 행위였다. 나중에 내가 인도에 갔을 때 아이들은 앵무새 같은 눈으로 그녀의 안부를 묻느라 나는 뒷전이었다.

 

어떤 사람을 만날 때 마음이 열리는 순간이 있다. 나의 감각과 느낌, 혹은 삶에서 경험하는 기쁨이나 두려움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과는 나눌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자발적인 열림이 폭풍에 길 잃은 새 같던 우리를 연결시켜 주며, 그때 세상과의 거리도 가까워진다. 삶이라는 여행의 한 구간을 그런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행운이다.  

 

직박구리새의 죽음

흐린 겨울날, 누가 대문을 두드려서 나가 보니 건너편 집에 사는 아이가 서 있었다.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아이였다.

 

나를 보자 아이는 불쑥 손을 내밀었다. 작은 손에 직박구리새가 쥐어져 있었다. 한눈에 봐도 죽은 새였다. 어디서 발견했느냐고 물을 틈도 없이 아이는 약간 더듬거리는 말투로 그 새를 내 작업실 마당에 묻어 달라고 부탁했다. 자기 집에는 마당이 없어서 묻어 줄 곳이 없다며.

 

그렇게 새를 건네주고 아이는 돌아갔다. 갑자기 손에 들린 죽은 새를 내려다보며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참새, 박새와 함께 내 작업실 마당에 곧잘 날아와 봄이면 자목련 꽃술을 따먹는 새가 직박구리이다. 직박구리는 늘 암수가 함께 다닌다. 혼자 왔다 싶어 두리번거리면 살구나무에 짝이 앉아 있다.

 

호미를 가져다 살구나무 아래를 파기 시작했다. 큰 새가 아니라서 작은 구덩이로 충분했다. 그러나 꽁꽁 언 땅을 파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무딘 호미 날이 돌에 부딪쳐 연신 불꽃이 튀었다. 그때 또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나가 보니 아이가 다시 서 있었다. 옆에 초인종이 있는데도 주먹으로 나무 대문을 두들기는 편을 좋아하는 듯했다.

 

호미를 들고 있는 내게 아이는 자신의 낡은 신발 한 짝을 내밀었다. 그리고 내가 묻기도 전에 말했다. “추우니까 새를 이 신발 안에 넣어서 묻어 주세요.” 그러고는 나머지 신발 하나만 신은 채로 약간 절뚝거리며 돌아갔다. 이 추운 날에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로.

 

나무 밑으로 돌아와 마저 구덩이를 파는데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호미 날이 언 땅에 부딪치는 쇳소리가 멎고, 운동화 속에 안장된 직박구리를 내려놓자 흙을 덮기도 전에 눈송이들이 먼저 새의 무덤을 덮었다. 눈은 계속 내려서 마당을 덮고, 작업실 지붕을 덮고, 그 다운증후군 아이의 집과 온 세상을 덮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신성한 상태로 끌어올리는가? 인간은 불완전하지만 아름다운 존재이다. 그 후 아이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지만, 살구나무 아래를 지날 때마다 그 겨울 그 아이가 가져다준 새와 신발과 아이의 맨발이 생각난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가슴 안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가슴을 연 채로 살면 상처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슴을 닫은 채로 사는 것만큼 많이 상처받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곳에 무엇을 배우러 왔을까? 사랑이었을까? 우리의 문제는 단 한 가지일 것이다. ‘나’의 범위를 ‘나’에게로 한정 짓는 것. 그래서 ‘나’ 이외에는 모두 타인이며 타자라고 믿는 것. 반면에 공감과 연민은 우리를 더 큰 ‘나’로 만든다. 

 

진실한 한 문장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스물두 살 때부터 몇 해 동안 파리에서 생활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죽음을 앞두고 그 시절의 기억을 글로 썼다. 그 글들은 사후에 『날마다 날짜가 바뀌는 축제』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소설가로 명성을 얻기 전의 가난함, 빈털터리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불안감, 첫번째 아내와의 소소한 이야기, 절친으로 지낸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와의 일화 등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돈이 없어 책을 빌려다 읽으며 우정을 쌓은, 파리 시내의 셰익스피어앤컴퍼니 서점 주인 실비아 비치에 대한 아린 추억, 이른 아침 마고 카페에서 종업원들이 청소를 하는 동안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글을 쓰던 일, 생존 작가 중 그가 유일하게 경의를 표한 『더블린 사람들』의 제임스 조이스, 당대의 이미지즘 시인 에즈라 파운드와의 만남도 그려져 있다.

 

식사 초대를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점심 한 끼 값을 아끼기 위해 저녁때까지 공원에 가서 앉아 있거나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음식 냄새의 유혹을 피하려고 식당이 없는 골목길로 멀리 돌아간 적도 많았다. 신문 잡지에 글 쓰는 일을 포기했기에 수입이 없었고, 단편소설을 팔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러나 빈민가에 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을 가난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부자들을 거만하게 쳐다보고, 당당하게 경멸했으며, 나 자신이 위대하다고 믿었다.”

 

스물두 살의 나에게 많은 위안과 힘을 준 책이 헤밍웨이의 이 산문집이다. 대학 2학년이던 그 시절, 나는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난해한 시를 쓰는 가난한 문학도에 불과했다. 그 무렵, ‘우울한 도시의 축제’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그 책을 읽으며 곰팡이 핀 자취방과 노숙 생활을 견뎠다. 어떤 책은 밑줄을 그을 필요가 없다. 저자와 내가 하나가 되어 함께 고뇌하고, 함께 공원 의자에 앉아 있고, 함께 꿈꿀 때는.

 

책에서 헤밍웨이는 쓰고 있다. “뒷면이 파란 노트 한 권, 연필 두 자루, 연필깎이(주머니칼로 깎으면 너무 낭비다), 이른 아침의 냄새, 그리고 행운, 내게 필요한 것은 그것들이 전부였다. 행운을 위해 마로니에 열매 하나와 토끼발을 오른쪽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토끼발의 털은 오래전에 다 빠졌고 뼈와 힘줄은 닳아서 광이 났다. 발톱은 주머니 안감에 박혀 행운이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알려 주었다.”

 

켈트족 미신에서 출발한 토끼발 장신구는 유럽과 남미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행운의 부적이다. 하지만 마로니에 열매도 토끼발도 없던 나는 학교 캠퍼스에서 우연히 주은 옷핀을 검정 바바리코트 안쪽에 꽂고 다녔다. 옷핀 숫자가 점점 늘어나 안 그래도 낡은 안감이 너덜거렸다. 더 힘들고 더 행운이 절실할 때는 몽당연필이나 길에서 발견한 파란색 구슬, 단추 등 아무것이나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러나 내 가슴 안감에 행운의 부적으로 새겨진 것은 다음의 문장이었다. 얼마나 많이 중얼거렸는지 지금도 외워진다. 글이 써지지 않거나 미래가 불안할 때마다 헤밍웨이는 옥탑방 창가에 서서 파리의 지붕들을 내려다보며 자신에게 말하곤 했다.

 

“걱정하지 마, 넌 지금까지도 늘 글을 써 왔고 앞으로도 쓸 거야. 네가 할 일은 오직 진실한 문장을 딱 한 줄만 쓰는 거야. 네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한 문장을 써 봐.”

 

진실한 문장 하나를 쓰면 거기서부터 시작해 계속 써 나갈 수 있었다. 그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거나 어디선가 읽었거나 누군가에게 들은 ‘진실한 문장’ 하나쯤은 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을 쓰다가 미사여구에 치중하기 시작하면 자신이 맨 처음 써 놓은 그 진실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했다.

 

진실한 한 문장! 나는 심장이 뛰었다. 그것은 헤밍웨이가 내게 준 부적 같은 선물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글을 쓸 때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오늘 나의 진실한 한 문장은 무엇인가?’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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