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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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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은 책임진다. 국제안전보건알앤디센터협동조합

- 안전관리전문기관 지정 - 중대재해처벌법 이행점검 및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

안전은 책임진다. 국제안전보건알앤디센터협동조합

국제안전보건알앤디센터협동조합 로고 국제안전보건알앤디센터협동조합(이하 협동조합)은 2023년 12월 12일에 산업안전보건법 제21조 및 동법 시행규칙 제16조제3항에 따른 지정요건을 충족하여 안전관리전문기관 지정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2023년 10월에 설립 신고된 국제안전보건알앤디센터협동조합은 대외적으로는 안전관리전문기관으로서 산업재해예방, 안전문화 확산 및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사업과 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한 ESG사업을 수행하고, 대내적으로는 조합원의 복지 증진 및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 등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안전보건 분야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은 구성원은 안전보건 분야 전문가들로 현장 실무 경험이 풍부하여 이론과 실무를 겸비하여 안전분야의 최고의 컨설팅을 제공하여 고객들이 만족하고 현장에 바로 적용 가능한 우수한 컨설팅을 제공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조합원 대부분이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컨설팅, 중대재해처벌법 이행점검 및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 수행 경험을 보유하고 있어,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을 앞두고 중처법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게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우상선 이사장은 ”우수한 강사진을 보유한 협동조합은 향후 ISO 심사원 교육기관 뿐만 아니라 안전보건 교육기관 및 ESG 교육으로 확대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 기업 인증도 준비하여 2024년에는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여 삶의 질을 높이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기업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컨설팅 문의는 srndorkr@kakao.com으로 하면 된다.

부산의 탄생

대한민국의 최전선에서 거센 물살을 마중한 도시 유승훈 | 생각의힘 | 2020년 11월

부산의 탄생

■ 책 소개역경의 파도를 넘어, 웅숭깊은 역사를 품은 도시 ‘부산’의 탄생 한반도 동남쪽 끝에 위치한 부산은 어떻게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제1의 무역항이 되었을까? 부산의 위상은 어느 날 갑자기, 운 좋게, 어쩌다 보니 높아진 것이 아니다. 부산의 지리적 특성과 퇴적된 시간, 그리고 그 공간을 살아낸 사람들의 역사가 모여 지금의 부산이 만들어졌다.부산(釜山)은 안으로는 누룽지를 끓이고 밖으로는 방을 덥힌 가마솥처럼 역사의 중대한 순간마다 외부의 뜨거운 변화와 아픔을 끌어안고 더운 숨을 뱉었던 것이다.부산을 현대, 근대, 조선의 세 시기로 나누어 그 역사를 흥미롭게 풀어낸 이 책에는 부산이 겪어온 파란만장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부산에 대한 애틋하고 짠하면서도 사무치는 감정들을 소환할 뿐만 아니라, 부산의 정치, 경제, 문화를 종횡무진하는 다채로운 이야기와 실감나는 사진들이 더해져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었던 ‘진짜’ 부산을 만날 수 있다.■ 저자 유승훈향토문화연구가이자 문화재연구가이다. ‘옛 우물에서 맑고 새로운 물을 긷는다(舊井新水)’라는 신념으로 우리 문화와 부산 역사를 알리는 글을 쓰고 있다.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후 민속학을 전공하여 한국학대학원에서 석사를,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6년 전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박물관에서 낡은 유물을 살피거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2012년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을 펴내 제53회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부산 문화에 대하여 쓴 『부산은 넓다』는 부산의 10대 히트상품에 선정되었다. 지은 책으로는 『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부산』, 『조선 궁궐 저주 사건』, 『문화유산 일번지』, 『부산은 넓다』,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 『우리나라 제염업과 소금민속』,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우리 놀이의 문화사』, 『다산과 연암, 노름에 빠지다』, 『현장속의 문화재 정책』 등 다수가 있다.■ 차례서문1부 현대의 부산: 뜨거운 용광로의 탄생1장 대한민국의 막다른 최전선, 피란수도 부산1 「굳세어라 금순아」와 「경상도 아가씨」2 대한민국의 심장부가 된 부산3 아, 힘들고 거친 피란살이 3년이여4 그래도, 피란지에서 희망을 찾다5 이승만 반공정권의 탄생6 「이별의 부산정거장」, 피란수도 부산은 무엇을 남겼나2장 뜨겁게 달궈진 ‘수출과 정치 용광로’의 탄생1 수출산업의 최전선, 부산2 민주주의 최전선과 대통령의 잉태2부 근대의 부산: 회색빛 관문도시의 탄생3장 외세 열기로 가득한 개항의 도가니1 근대 관문도시 부산2 조선을 삼킨 근대3 ‘부산항 그림지도’의 거류지4 ‘포산항견취도’에 나타난 변화상5 해관과 감리서6 푸른 눈의 이방인이 본 ‘Fusan’4장 근대 조선을 축소한 도시, 부산1 부산에 열린 근대의 관문2 달라진 부산, 근대의 시공간3 관광지로 전락한 동래4 일제에 맞서는 부산 사람3부 조선의 부산: 들끓는 가마솥의 탄생5장 조선의 가마솥이 된 부산1 조선시대 가마솥의 탄생2 『해동제국기』의 富山3 해두보海頭堡로 전락하다4 관방關防과 충렬의 최전선6장 가마솥 문화의 탄생1 흰 모래밭에서 탄생한 수영 문화2 춤추고 술 익는 고장, 동래3 조일 문화의 접경지대, 초량왜관주석 유승훈 | 생각의힘 | 2020년 11월 부산의 탄생 가마솥부터 용광로까지 대한민국 최전선 ‘부산’의 탄생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도시, 부산에는 항상 활기가 넘친다. 인구 약 340만의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은 그 탄생부터 현재까지 잠시도 쉰 적이 없다. 작은 한반도 끝에 자리한 항구도시 부산에 많은 사람이 몰려들자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개항기의 부산은 삼포를 개항하고 왜관을 설치하여 근대 문물의 거센 파도를 맞이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과 가까운 위치 탓에 부산에 터를 내린 일본인들 틈에서 설움을 견뎌냈다. 6·25 전쟁이 발발하고, 톱질하듯 밀고 당기는 전쟁통에 밥그릇만 겨우 챙겨 떠밀려 내려온 피란민들을 받아들이고 피란수도로 기능한 장소도 부산이었다. 부산(釜山)은 그 이름처럼 우리 대한민국의 가마솥이 되어 주었다. 가마솥은 예로부터 우리 민족에게 아주 특별한 도구였다. 뜨거운 장작불에 달궈진 가마솥은 그 안으로는 누룽지를 끓이고 밖으로는 방을 덥혔듯이, 부산 또한 역사의 중대한 순간마다 외부의 뜨거운 변화와 아픔을 끌어안고 더운 숨을 뱉었다. “굳세어라 부산아”, 부산은 대한민국을 비추는 거울 한반도 동남쪽 끝에 위치한 부산은 어떻게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제1의 무역항이 되었을까? 부산의 위상은 어느 날 갑자기, 운 좋게, 어쩌다 보니 높아진 것이 아니다. 부산의 지리적 특성과 퇴적된 시간, 그리고 그 공간을 살아낸 사람들의 역사가 모여 지금의 부산이 만들어졌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던 6·25 전쟁이 터지자 이승만 정부는 빗속을 뚫고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내려와 부산을 임시수도로 공포했다. 부산이 도합 3년 가까이 대한민국의 임시수도였는데도 이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몇 없다. 연구자들은 ‘임시수도’ 대신 ‘피란수도’라는 용어를 쓸 것을 제안했는데, ‘임시’라는 말에는 수도는 당연히 서울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도 보았기 때문이었다. “한국전쟁 시절 부산은 대한민국이 절벽으로 추락하기 직전의 ‘막다른 최전선’이었다. 비록 군사적 전선은 아니었지만 정치, 행정, 문화, 교육의 최전선이 부산에서 형성되었다. 부산에서 땀과 피를 흘린 결과로 전쟁은 종결되고, 서울로 환도할 수 있었다. 피란수도가 부산에 남기고 간 숙제는 너무 많았다. 작은 체구로 힘겹게 수십만의 피란민을 업은 채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부산의 심정은 여러모로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중앙정부 부처 일부를 세종시로 분산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분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서울 공화국이다. 웅숭깊고 무구한 역사를 듬뿍 품은 부산을 비롯한 지방의 역사를 단지 ‘일부의 역사’로 치부하며 뒷방 신세로 미뤄둬서는 안 될 일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서울뿐 아니라 치열했던 지방사의 조각들이 모여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세상으로 난 문을 활짝 열었던 부산! 이곳에 가 보면 지금도 구석구석에서 그때 그 시절의 상처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부산은 매 순간 기죽지 않고 다시 우뚝 일어섰기에, 깊이 패인 옛 상흔을 어루만지면서 미소를 머금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마! 부산 아이가!” “복병산 기슭에 임시 거처를 마련한 피란민들은 사십계단을 힘들게 오르내려야 했다. 일제가 산을 절개하는 토목공사를 벌인 탓에 급경사가 생겨났고, 이리로 지나다니는 사람을 위해서 사십계단이 조성되었다. 아, 피란민의 삶도 이 가파른 사십계단과 같았다. 어깨에 짐을 진 채로 아슬아슬하게 사십계단을 오르다 보면 저 멀리 부산항 바다에서 뱃고동 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 층에 도착할 즈음에는 아무리 삼수갑산을 넘나들던 무쇠다리 함경도 사나이라 한들, 오금이 저리고 맥이 풀리기 일쑤였다. 층층계단에 앉아 먼바다를 보자니 이북 고향 생각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그때 어디선가 이웃에 사는 경상도 아가씨가 다가와 애처로이 묻는다. ‘보이소, 와 그라요, 고향 생각나서 그런가 본데 힘을 내이소'”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시작 “경부고속도로는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에서 부산시 금정구 구서동에 이르는 고속도로다. 1968년 2월 1일 착공하여 1970년 7월 7일 전 구간이 왕복 4차선 도로로 준공되었다.115 서울의 수도권과 부산의 영남권을 잇는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은 물류와 교통의 혁신을 가져왔다. 경부고속도로는 국가 경제의 대동맥이자 일일생활권을 상징하는 교통로가 되었다. ‘마이카 시대’, 즉 ‘자동차의 대중화 시대’를 부른 것도 경부고속도로였다. 이후 정부의 도로 정책은 대동맥과 혈관들이 이어지듯이 경부고속도로를 중심에 두고 이뤄졌다. 경부고속도로를 통해서도 부산은 서울을 잇는 제2도시로서 전국적인 위상을 확립할 수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집권 후 서울-부산을 연결하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착수했다. 이미 경부선이 깔려 있었고 국도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경부고속도로는 우리나라 물류 산업의 대동맥이 되어 주었다. 경부 성장축을 통해 바다와 맞닿은 부산은 ‘수출과 무역의 최전선’으로 입지를 다졌다. 부산에 대규모 공업단지가 조성되었고, 신발과 섬유산업으로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에 앞장섰다. 여기까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얘기다. 하지만 그 뒤안길에는 치열하고 숨 가빴던 이야기들이 있다. 우리는 빼곡하게 들어앉은 신발공장 안 여성 노동자들의 사진을 통해 24시간 쉴새없이 가동되던 공장의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2교대로 근무했던 노동자들을 기억한다. 가파른 성장과 화려한 영광 이면에는 고된 노동과 이름 모를 희생이 있었다. “1978년 컨테이너 수출입항으로 본격적 채비를 갖춘 부산항은 우리나라 수출입의 최전선에서 싸웠다. 1979년 전국적으로 컨테이너 수출물량 비중이 34.6퍼센트까지 올라갔다. 부산항이 컨테이너 수출 수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8.6퍼센트였다. 컨테이너 수입 수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93.8퍼센트였다.131 컨테이너를 이용한 수출입은 거의 부산항을 통해서 이뤄진다고 볼 수 있는 수치다. 경부고속도로와 부산항을 잇는 부산 도시고속도로는 컨테이너를 전국에서 부산으로, 다시 부산에서 전국으로 원활하게 이동시키는 물류체계로 작동하였다. 부산은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깝고 미국과의 교역도 매우 유리한 위치였다. 당시 미국과 일본에 편중되었던 무역구조는 부산항의 지위를 ‘굴지의 무역항’으로 상승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1960년대 수영강 하구에 고려제강과 태창목재 등 공장이 입주했지만 1970년대까지는 한적한 어촌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중골산을 허물어 삼익비치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고 1980년대 민락 공원 일대를 메우면서, 관광과 상업의 중심지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수영이 인기 높은 주거 단지로 탈바꿈했다. 이제 수영강 하구의 전통 마을이었던 보리전과 널구지 자리에는 회색 아파트 단지만 무성할 뿐이다. 찰스 버스턴의 사진을 보거나 광안리 모래밭에서 과거의 수영 문화를 어슴푸레 회상해야 한다. 넓은 모래톱이 조성되었던 수영강 하구, 수심이 얕아서 무릎까지 바지를 걷은 채로 조개를 잡던 그 시절을.” 부산의 바다에서, 나를 건져올린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부산은 가마솥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역사의 최전선에 선 부산이 뜨거운 열을 은근한 온기로 전도시키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는 쏟아지는 외적들의 총탄을 피할 수 없었으리라. 부산이 가마솥이 된 이유는 우리나라 해안가를 괴롭히는 왜구들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골칫거리인 왜구들은 역사의 ‘뜨거운 불’이었다. 이 뜨거운 불을 견뎌야 할 공간으로 낙점된 곳이 삼포(현재의 창원, 부산, 울산)였다. 조선 정부는 날뛰는 왜구들을 안정시키고자 삼포를 열어줬다.” “부관연락선의 등장으로 조선은 본격적인 근대를 맞이하였다. 부산이 근대 조선의 관문이 된 것도 부관연락선 때문이었다. 부관연락선은 근대의 문화를 싣고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건너왔다. 부관연락선에서 내려 첫발을 딛는 곳이 부산항이었으므로 일본인은 물론이요, 서양인들도 부산을 통해 조선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래저래 부관연락선이 취항함으로써 부산은 식민지화의 아픈 길을 걷게 된 동시에 국제적인 관문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이렇게 근대는 제국과 식민의 등에 업혀 조선으로 왔으니 참으로 역설적이다.” 오늘날 부산을 떠올리면 여름 피서객으로 가득한 해운대와 광안리 해수욕장, 시끌벅적하고 분주한 국제시장, 그리고 종일 큰 선박이 바쁘게 오가는 부산항의 이미지가 늘 함께 한다.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곳엔 예외 없이 평범한 사람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힘 있고 거친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 뒤로는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가 보이는 듯하다. 삶은 늘 복잡다단하며 하나로 정의되기 어렵다. 세기를 거슬러 조선시대에도 삼포개항 이후 물밀 듯 들어온 왜인과 조선인 간에 이 평화가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긴장도 있었지만, 형제, 이웃처럼 지냈던 모습이 공존하였고, 근대로 무장한 일본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어야 했던 전근대의 조선 한켠에는 이웃 나라와 사이좋게 지내고자 했던 의지가 드러나는 ‘초량왜관’이 있었다. “근대의 교통수단은 시공간을 축소시켜 멀고도 먼 일본을 가깝게 만들었다. 조선에 오는 일본인뿐만 아니라 부관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도항하고자 하는 조선인들도 크게 늘었다. 부관연락선은 염상섭이 쓴 근대소설 『만세전』에도 등장한다. 부관연락선을 타고 부산에 도착한 주인공 이인화는 ‘부산을 조선의 축소판’이라 말하였다. 덧붙여, ‘부산의 팔자가 조선의 팔자요, 조선의 팔자가 곧 부산의 팔자’라고 하였다. 그렇다. ‘부산의 운명은 곧 조선의 운명’을 상징할 정도로 부산은 그야말로 조선을 집약시킨 축소판이었다.” “부산 거류지의 일본인은 마치 지배자처럼 행동하였다. 정작 주인이 되어야 할 조선인은 피지배자처럼 착취를 당하였다. 경제적 종속관계가 조선인을 노예와 같은 신분으로 추락시킨 것이다. 막대한 현금을 보유한 일본인은 거류지 외에 주변 토지를 마구 사들였다. 조선인은 일본인에게 가옥과 토지를 저당잡힌 채 고리대금으로 돈을 빌렸다. 그러나 종국에는 비싼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여 집도 절도 없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큰 흐름의 역사는 물살 한 번에 작은 것들을 휩쓸고 지나가버리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남아 있는 건축물과 유물들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일제 치하에서 부산은 근대 도시로 거듭났지만 가난한 조선인들은 소외되고 쫓겨났다. 그러나 산비탈과 변방에서 근근이 살아가면서도 거대한 억압 앞에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들불처럼 번졌던 독립만세의 함성은 현대로 이어져 어둡고 암울했던 유신체제 아래 민주주의를 외치는 함성으로 메아리쳐 돌아왔다. “부산의 6월 항쟁은 일찍이 꾸려진 강고한 지도부를 기반으로 전국의 민주화운동을 모범적으로 선도했던 투쟁이었다. 그 지도부의 일원으로 활약한 노무현, 문재인 변호사는 6월 항쟁을 거치면서 민주화 투쟁의 역량을 쌓았다. 그뿐만 아니라 인적·조직적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투쟁의 최전선에서 기폭제가 되었던 부산의 6월 항쟁은 부산 시민의 민주주의 정신을 고양한 학교이자 우리나라 대통령까지 잉태한 역사의 자궁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이러한 지난 역사에서 오늘의 아픔을 본다. 그리고 과거의 이들이 어떻게 역경의 파도를 넘어왔는지 그들의 눈빛과 목소리를 마주하며 오늘을 사는 우리는 용기와 희망을 건져 올린다. “옛 우물에서 새로운 물을 긷는다(舊井新水)”는 말처럼, 단연코 부산은 우리의 시야를 넓히고 굳건한 힘을 선사해준다.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세상에 의문을 던지는 53가지 철학 이야기 이충녕 | 도마뱀출판사 | 2023년 06월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 책 소개 철학자들의 생각과 철학의 가치,우리의 삶을 지혜롭게 가꿔주는 철학이라는 언어!철학이라는 말, 참 어렵다. 우리는 흔히 철학을 골치 아프고, 현실과 동떨어지고, 알쏭달쏭해서 알아듣기 어려운 그 무엇으로 생각한다. 철학을 몰라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고, 딱히 알고 싶다는 생각도 잘 들지 않는다. 그러나 철학은 멀리 있지 않다.우리는 모두 철학자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게 모르게 자기만의 철학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마다 삶을 대하는 자세가 있고, 세상을 바라보는 나름의 가치와 기준이 있다. 우리가 살면서 하는 고민과 선택의 바탕에는 철학이 깔려 있다. 철학이 없이는 인간도 없고, 철학이 없으면 인간다운 삶도 없다.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철학은 계속 이어지며, 인간과 삶과 세계의 의미와 가치를 탐구해 왔다. 그것은 철학자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다. 내 삶의 의미, 행복, 인간관계, 성공, 사랑 등등을 고민할 때 우리는 철학을 하고 있다.■ 저자 이충녕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존재의 의미를 찾겠다는 포부로 철학과에 진학했으나, 의미는 정답처럼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철학자의 이론은 어디까지나 재료일 뿐, 이를 소화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개인의 역할을 중시한다. 주된 관심사는 실존주의, 심리철학, 인지과학 등이지만, 동서양의 다양한 철학 분야를 두루 익히기를 추구하며 공부하고 있다. 저서로 『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가 있으며, 유튜브 채널 〈충코의 철학〉을 운영 중이다. 다양한 글쓰기와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차례들어가며물처럼 산다는 것 - 노자철학의 원리 1 : 절대주의를 의심하기 - 소크라테스철학의 원리 2: 상대주의를 경계하기 - 소크라테스세상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원리 - 데모크리토스예술을 국가로부터 추방하려 했던 철학자 - 플라톤행복은 절제에 달려 있다 - 아리스토텔레스도덕의 근본은 이성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 - 맹자와 셸러고양이에게도 예술작품은 아름다울까 - 엠피리쿠스원효대사 해골물의 진짜 의미 - 원효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데카르트데카르트의 숨겨진 뒷이야기 - 데카르트가장 잘 당하는 사람이 가장 힘 있는 사람이다 - 스피노자원인이란 과연 무엇일까 - 흄칸트의 윤리학: 나비효과로 살인을 저질렀다면 - 칸트칸트의 미학: 예술은 놀이다 - 칸트정언명령 쉽게 이해하기 - 칸트공포가 선사하는 즐거움 - 버크예술을 배워야 하는 철학적 이유 - 실러3이라는 수를 사랑했던 철학자 - 헤겔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래 - 밀신은 죽었다의 진짜 의미 - 니체규칙을 파괴하는 자, 초인 - 니체해리포터는 존재할까 - 마이농잠시 멈추고 태도를 바꾸면 새롭게 보이는 것들 - 후설철학의 천재가 뒤집은 존재에 대한 생각 - 하이데거엄마는 나의 존재를 이루고 있다 - 하이데거존재는 시간이다 - 하이데거악마에 대하여 - 힐데브란트똑똑함이 무서움으로 변할 때 - 호르크하이머코로나 위기로 또다시 떠오르는 전체주의 - 포퍼과학과 철학의 만남, 과학철학 - 헴펠감정의 마법적인 힘 - 사르트르배경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 - 메를로퐁티당신의 판단을 결정하는 배후의 이론들 - 콰인매체는 인간을 어떻게 바꾸는가 - 맥루한자유로운 사형수 - 카뮈나라는 주체는 주변의 힘에 의해 구성된다 - 푸코중국어 방 논증, AI는 생각할 수 있을까 - 존 썰대학교 2학년 때 MIT 대학원에서 강의했던 천재 철학자 - 크립키알파고는 바둑에서 상대방을 이기고 싶어 할까 - 호글랜드나도 모르게 저지르는 도덕적 잘못 - 싱어인간 정신은 사물까지 연장되어 있다 - 클라크모든 나라가 서로를 돕는다면 어떻게 될까 - 자오팅양국가라는 틀을 뛰어넘어서 생각하기 - 세이거내로남불에 대한 철학자의 남다른 생각 - 도버환경보호 활동가가 매연을 배출하면 비난받아야 할까 - 벡충코의 철학적 단상 - 논리학이란 무엇인가충코의 철학적 단상 - 수학을 배우는 이유, 신의 언어 수학충코의 철학적 단상 - 확실한 지식은 존재하는가충코의 철학적 단상 -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우분투 철학충코의 철학적 단상 - 올림픽이 감추는 진실충코의 철학적 단상 - 죽음에 관한 인류의 생각충코의 철학적 단상 - 꼭 지켜야 할 삶의 원칙, 자비의 원리 이충녕 | 도마뱀출판사 | 2023년 06월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물처럼 산다는 것 - 노자 동양과 서양의 철학이 시작될 때, 양쪽에서 모두 물을 주목했다는 것은 완전한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서양에서는 철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주장했다. 그 이전까지는 신화적인 믿음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이 일차적으로 설명되었다. 그런데 탈레스는 세상의 근본 원리를 물이라는 하나의 물질에서 찾았다. 이런 원리적 사고가 미세입자의 운동을 통해 세계를 설명하는 과학적 사고의 발판이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철학이 태동하던 시기에 동아시아에서도 똑같이 물이라는 대상에 주목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노자이다. 탈레스가 세상 만물이 생성되고 운동하는 과학적인 원리를 물을 통해 설명하려 했다면, 노자는 물의 움직임 안에서 천하를 얻는 정치적인 원리를 찾아내려고 했다. 노자는 그 생애가 직접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전설적인 인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주나라의 도서관장을 지내다가 나라의 명이 다한 것을 알고 소 한 마리에 올라타 유유히 관문 밖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관문을 나서기 전, 그는 관문을 지키는 관리가 가르침을 달라고 요청하자 5천 자의 글을 써주었는데, 그것이 『도덕경』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이런 신비로운 이미지 때문에 노자의 철학은 속세를 떠나서 사는 사람들을 위한 자연 친화적인 말, 또는 치열하고 답답한 경쟁을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말 정도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노자의 철학은 어떻게 하면 이 사회에서 최선의 결과를 산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치학적 이론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노자의 철학은 현대의 게임이론과 맥을 같이하는 측면이 있다. 노자가 물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물처럼 행동하는 것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물에 관한 노자의 말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상선약수(上善若水), 즉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구절이다. 여기서 선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남을 위하고 착한 일을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선은 사회 안에서 탁월함을 발휘하며 최고에 오르고, 그것을 필요한 만큼 오래 유지하며 사람들과 화합을 이루어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노자는 이러한 어려운 일을 이루기 위한 전략으로서 물처럼 행동할 것을 주문한다. 그렇다면 물은 어떤 특성을 가졌길래 물을 본받아 행동하면 최고의 선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일까? 먼저, 물은 다른 것들이 가기 싫어하는 곳으로 흘러간다. 보통 다른 사물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위로 뻗어나가려 한다. 나무는 햇볕이 있는 위로 자라나야 좋은 나무이며, 건물은 안전한 높이의 기반 위에 서 있는 것이 좋은 건물이다. 사람 역시 양지바르고 공기가 맑은 곳으로 가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반면, 물은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밑을 향해서 흐른다.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장 어두운 곳으로 흘러간다. 그곳은 어두침침하고 냄새가 나는 하수구일 수도 있으며, 깊숙한 진흙탕일 수도 있다. 물은 그런 곳을 피하지 않는다. 그저 길을 따라서, 깊이, 더 깊이 흘러간다. 이런 물의 특성을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꺼리는 곳에 가는 것을 서슴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이 피하는 일을 도맡아 할 것이다. 처음에 보기에 이런 사람은 눈에 띄지도 않고 하찮게만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밑으로 어두운 곳으로 흘러 들어가 남들이 쳐다보지 않은 분야에서 자신의 입지를 가져온 사람이 나중에 가서는 최고의 성과를 올리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도 가지 않는 곳에 가기를 스스로 자처함으로써 전체 시스템의 가장 밑을 떠받치는 곳에 숨어 들어가 그곳에 대한 장악력을 키운다. 그럼으로써 나중에는 시스템 전체를 장악하게 된다. 물론 처음부터 양지바른 곳에서 잘 닦여진 길만을 걸어간 사람들도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지금 이 사회가 비교적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그들이 이 시스템 속에서 많은 도움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사회에 큰 혼란이 생기고 시스템이 붕괴하여 지금 운 좋게 누리고 있던 안정적인 체계가 무너진다면, 물처럼 밑으로 흐르지 않고 나무처럼 햇빛을 쫓아 위쪽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없다. 가장 낮은 곳에 가기를 스스로 자처할 수 있어야 위기와 혼란이 가득한 환경 속에서도 가장 위대해질 수 있다는 것이 노자의 생각이다. 노자는 물에 관해 이야기하며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라는 동양 문화권에서는 익숙하게 듣는 그 말을 남겼다. 물은 가장 약하고 가장 부드럽지만, 가장 강하고 굳센 것들을 압도하는 힘을 품고 있다. 이는 진부한 말이지만, 실생활에서 실천하기는 어렵다. 잘하려다 보면 자꾸 힘이 들어가고 뻣뻣해진다. 그럴 때면 항상 물의 부드러운 움직임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철학의 원리 1 : 절대주의를 의심하기 - 소크라테스 나훈아의 테스형!이 큰 인기를 끌었다. 소크라테스에게 인생의 의미를 질문하는 노래이다. 왜 나훈아는 그 많은 사람 중에서 하필 소크라테스에게 질문을 던졌을까? 아마 가장 유명한 철학자가 소크라테스이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소크라테스라는 이름은 대개 안다. 그렇다면 왜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은 그토록 독점적인 유명세를 차지할 만한 정당성을 갖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의미에서 철학을 시작한 사람이며, 그 뒤로 펼쳐진 모든 철학, 모든 학문, 나아가 인간의 모든 지식의 전개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차지하는 사고방식의 시초가 된 사람이다. 나는 그 사고방식을 상대주의와 절대주의 사이의 중도라고 표현하고 싶다. 시각에 따라 소크라테스는 상대주의자일 수도 있고 절대주의자일 수도 있다. 그는 기존에 확고한 지식이라고 받아들여지던 앎의 체계를 깨부수려고 했던 사람이며, 특정 지식의 절대화에 격렬히 저항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한편 소크라테스는 지식이 단지 사람에 따라,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 누구보다도 격렬하게 반대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이런 두 가지 상반된 자세를 동시에 취하는 것은 얼핏 보기에 자기모순인 듯하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철학의 조상으로 대우받는 것은 바로 이 상반된 견해를 매우 획기적으로 통합했으며, 그럼으로써 앎이라는 것 전반에 걸쳐 우리가 취해야 할 모범적인 기준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안다. 내 생일이 언제인지, 친구 이름이 무엇인지, 미국 대통령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이런 것들에 대한 앎은 굉장히 확실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많은 경우 앎은 그다지 확실하지 않다. 이문세의 붉은 노을을 안다고 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무엇을 알고 있다는 걸까? ‘붉은 노을’이라는 제목? 노래의 멜로디? 가사? 어렴풋한 느낌? 여기서 붉은 노을에 관한 앎이 과연 무엇인지 엄밀하게 설명하라고 해본다면, 그럴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다른 사례로, 우리는 인천을 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런데 인천은 무엇일까? 인천의 부지? 인천 시민들의 집합? 인천의 행정체제? 아마 우리가 인천을 안다고 말할 때는 보통 이 여러 가지 요소가 아주 불분명하게 섞여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냥 인천을 안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말하는 데 별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인천을 안다고 말하면서도 인천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제시할 수 없다면 과연 인천을 안다고 말하는 게 적절한 것일까? ‘앎’은 이토록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지만, 그 정체는 신비에 싸여 있다. 소크라테스는 앎이라는 게 과연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질문한 사람이다. 소크라테스 이전까지는 앎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인천을 안다고 말할 때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이 비로소 처음으로 “앎이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정말로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제대로 아는가?” 하는 질문을 본격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 전환은 매우 획기적인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사람은 미움을 받는다. 그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소크라테스는 말꼬리를 잡음으로써 많은 사람의 미움을 받았다. 그런데 그 말꼬리 잡기가 서구의 지식 역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진보의 시작이었다. 말꼬리를 잡지 않는다는 것은 주어진 지식을 별다른 비판 없이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럴 때 그 지식은 고정된 지식, 절대화된 지식이 된다. 그렇게 되면 지식은 더 이상의 발전을 멈추고 정체된다. 계속해서 말꼬리를 잡고 늘어져야만, 끊임없이 비판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려 노력해야만 지식은 더욱더 좋은 모습을 갖춰나간다. 칸트의 윤리학: 나비효과로 살인을 저질렀다면 - 칸트 선과 악은 자주 말해지는 주제이다. 영화에는 선한 주인공 무리가 있고, 악한 반동인물 무리가 있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선하고 충실하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악에 가득 차 나쁜 짓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익숙한 선과 악이라는 현상과 관련해 우리가 가끔 묻곤 하지만, 결코 결론이 나지 않은 채로 지나치게 되는 질문이 하나 있다. 과연 무엇이 선한 걸까? 무엇이 선한 것인지에 대해 완벽한 답변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지금쯤 세상이 조금은 덜 복잡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무엇이 선한지에 대해 철학자들은 나름의 좋은 설명을 내놓으려 오랫동안 노력해 왔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조금 독특한 생각을 했던 철학자가 있다. 바로 그 유명한 칸트이다. 선에 대한 칸트의 생각은 정말 독특하지만 묘한 설득력이 있어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지지와 사랑을 받는다. 칸트의 생각이 독특한 점은 우연히 선한 것과 우연하지 않게 선한 것을 강하게 구별했다는 것이다. 자, 지금도 이 세상에서는 당연히 수많은 사람이 선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자신의 의지로 선한 일을 하지만, 누군가는 그저 우연히 선한 일을 하게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한 사업가가 그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풍력발전소 건설에 투자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이 투자하여 건설한 풍력발전소 덕분에 우리나라의 미세먼지가 크게 줄었다고 해보자. 이때 그 사업가는 분명히 선한 일을 한 것이지만, 그 선한 일은 그저 우연히 일어난 것이다. 그저 돈 때문에 투자했을 뿐인데 선한 결과가 뒤에 따라붙은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 청년이 강가를 지나가다가 강에 빠진 어린아이를 보고 마음속에 선한 의지가 끌어올라 얼른 물에 뛰어들어 아이의 목숨을 구했다고 해 보자. 이때 이 청년은 전혀 우연에 의존하지 않고 선한 일을 한 것으로 보인다. 관점에 따라서 선한 행동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냐 그렇지 않느냐는 그리 중요한 사안이 아닐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선한 행동을 한 것이 중요하지, 그 과정은 어떠해도 상관없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사실 행동의 결과만 놓고 보면 사업가의 선한 파급력이 훨씬 더 클 수도 있다. 그가 풍력발전소에 투자한 덕분에 공기의 질이 개선되면 미세먼지 관련 질환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수만 명의 사람이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청년은 그저 한 아이의 목숨을 구했을 뿐이다. 결과를 중시하는 관점에서 보면 청년보다 사업가가 더욱 선한 일을 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어쩐지 받아들이기에 거부감이 든다. 아무리 결과적으로 선한 행동을 했다고 해도 그 선한 결과가 그저 우연에 의한 것이라면, 처음부터 선한 의지로 한 행동에 비해 더 선하다고 볼 수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칸트는 바로 이 부분에 집중했다. 우리가 하는 행동은 언제나 우연적 요소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내가 의도한 대로 모든 게 이뤄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현실에서의 행동은 많은 경우 의도한 그대로의 결과로 이어지 않으며, 때로는 의도한 것과 정반대의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저 주차하려던 것뿐인데 옆 차를 긁기도 하고, 흔들리는 버스에서 내가 넘어지지 않으려고 다리에 힘을 꽉 줬을 뿐인데 넘어지려는 옆 사람을 지탱해주기도 한다. 한마디로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통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행동의 결과를 바탕으로 선과 악을 따지는 것이 정당할까? 누구나 자기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완전히 알 수 없다. 완전히 선한 의지로 행동했는데 세상에 파멸을 가져올 수도 있고, 완전히 악한 의지로 행동했는데 세상에 구원을 가져올 수도 있다. 내가 오늘 버스터미널에서 다리가 불편하신 할머니를 부축해드려 고속버스를 놓치지 않도록 도와드렸는데 그 할머니가 고속버스 운행 중에 버스 기사와 말다툼하는 바람에 고속도로에 10중 추돌사고가 발생해 수십 명의 무고한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할머니를 도왔던 나의 선행은 순식간에 수십 명을 죽음으로 이끈 참혹한 결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내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결코 완벽히 예측할 수 없다. 과장을 보태자면 결과는 무작위다. 그렇다면 결과가 아닌 다른 데서 선와 악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맥락에서 칸트는 오직 선의지만이 그 자체로 선하다고 말한다. 칸트의 주장은 어떤 결과가 발생하든지 그것과 상관없이 선한 의지만큼은 그 자체로 선하다는 것이다. 만약 결과를 기준으로 선과 악을 따진다면, 선이 되는지 악이 되는지는 일종의 도박에 달려 있게 될 것이다. 내 행동이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켜 기상천외한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결과보다는 오히려 의지에서 선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결과로 이어지건, 애초에 선하고자 하는 의지만큼은 누구도 나무랄 수 없는 순수한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멈추고 태도를 바꾸면 새롭게 보이는 것들 - 후설 독일의 철학자 에드문크 후설은 지식과 태도의 밀접한 관계에 주목한 바 있다. 후설은 특정한 종류의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태도를 바꾸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평소 우리는 별 의식 없이 특정한 태도를 취한다. 수학을 공부할 때 ‘나 이제부터 수학을 공부하기 위한 태도를 취해야지!’라고 수학적 태도를 취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보통은 수학을 공부하는 상황이 되면 자동으로 수학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자동으로 태도가 바뀌지 않는 경우이다. 어떤 학생들은 수학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려도 수학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그런 학생들은 아무리 훌륭한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간단한 함수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만다. 후설은 이런 일이 지식인들의 세계에서도 자주 벌어진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속한 지식의 전통에 익숙한 사람은 이미 특정한 태도를 오랫동안 무의식적으로 취해 온 상태이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이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태도를 바꿔서 다른 분야의 지식도 이해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후설은 직접적이고 투박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것은 바로 ‘판단중지’이다. 판단중지란 평소에 세사을 바라보던 판단의 방식을 잠시 멈추고 순수하게 그 순간에 보이고 느껴지는 것들에 집중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평소에 자신이 회사원의 시각에서만 회사를 바라봤다면, 학생의 시각에서만 학교를 바라봤다면, 국민의 관점에서만 국가를 바라봤다면, 한번 지금까지 당연하게 내렸던 판단을 중지하고 순전히 그때 떠오르는 느낌대로 그 대상을 고찰해보자. 그러면 그간 자신의 유연하지 않은 태도 때문에 막혀 있었던 이해의 통로가 뚫릴 수도 있다. 이런 판단중지는 철학자나 여타 학자에게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지식을 얻으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이다. 존재는 시간이다 - 하이데거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우리는 “시간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들으면 체험하는 시간보다는 추상적인 시간을 곧장 떠올린다는 것이다. “시간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듣고 ‘퇴근하고 딸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까지의 과정’ 혹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지금까지 지나왔고, 앞으로 취직의 문이 기다리고 있는 길’처럼 자신이 체험하고 있는 시간을 떠올리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그보다는 대개 ‘1초, 2초 흘러가는 것’이라는 양적이고 추상적인 시간을 떠올릴 것이다. 하이데거는 바로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이러한 이해 방식이 진정한 시간을 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고 생가했다. 하이데거가 생각하기에 가장 근원적인 시간은 우리가 미래를 예감하고 과거를 떠올리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그런 시간이다. 여름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면 여름까지의 시간이 앞에 펼쳐진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했던 여행을 추억하면 과거로 시간이 쭉 뻗어나간다. 만약 이렇게 우리가 그 안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대상과 사건이 없다면, 즉 우리가 기대하고, 두려워하고, 바라고, 후회하고, 추억하는 그런 고유의 의미들이 있는 지점이 없다면 시간은 그저 동일하게 쭉 펼쳐진 사막 혹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우주공간같이 느껴질 것이다. 하이데거의 생각에 따르면 엄마가 오시길 기다리는 마음이나 어제의 즐거웠던 데이트처럼 의미가 있는 지점들이 있어야만 비로소 시간을 ‘셀 수 있다.’ 엄마를 기다리면서 하나, 둘, 셋 하며 시간을 세어보는 경험이 있어야만 시간이 흘러간다는 게 뭔지, 시간을 더하면 더 긴 시간이 된다는 게 뭔지, 긴 시간과 짧은 시간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이해에 이를 수 있다. 기대했던 것보다 엄마가 빨리 오시면 그 시간은 ‘짧은’ 것이고, 기대했던 것보다 엄마가 늦게 오시면 그 시간은 ‘긴’ 것이다. 만약 이러한 시간의 짧고 긺에 대한 체험적인 이해가 없다면, 5분과 1시간 사이의 차이를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온통 하얀색뿐인 벌판 안에서는 한 걸을 가든 만 보를 가든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듯이, 체험적인 의미가 있는 지점들이 없다면 5분이나 한 시간이나 아무런 차이도 없을 것이다. 자유로운 사형수 - 카뮈 사형수는 모든 희망을 빼앗긴 사람이다. 그는 부자가 될 수도 없고, 가족을 이룰 수도 없고, 명예를 얻을 수도 없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그는 희망을 찾을 수 없다. 그렇게 모든 희망을 버림으로써 그는 오히려 가장 절대적인 자유를 얻게 된다.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으므로 아무런 불안도, 집착도 없다. 그는 미래의 희망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게 아니라, 그저 현재의 순간을 살게 된다. 그렇게 그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감옥 안의 환경이 허락하는 한 그는 무엇이라도 다 할 수 있다. 무언가를 꼭 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꼭 안 해야 할 이유도 없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일지도 모른다. 카뮈의 사형수 이야기는 진짜 사형수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미다. 우리는 모두 어떤 의미에서 사형수다. 죽을 운명으로 정해져 있지 않은가. 물론 우리에게는 희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여러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사형수와 달리 우리에게는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많은 일을 이룰 가능성이 열려 있다. 아이를 갖는다든지, 아름다운 집이나 안정적인 노후를 보낸다든지 하는 일들은 상상만 해도 아주 큰 행복을 가져다줄 것 같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에 대한 희망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희망이 때로 족쇄로 다가올 때 카뮈의 사형수를 생각해보는 것은 좋은 기분 전환이 될 수 있다. 우리도 결국 모두 사형수의 신세이므로, 본질적으로는 어떤 희망에도 집착해야 할 필요가 없다. 어쩌면 희망을 버림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역설적으로, 그렇게 해서 희망이 없는 진정한 자유를 얻은 사람은 다시 희망을 품어도 상관없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패션, 색을 입다

10가지 색, 100가지 패션, 1000가지 세계사 캐롤라인 영 | 명선혜 번역 | 리드리드출판 | 2023년 05월

패션, 색을 입다

■ 책 소개 컬러, 패션, 인간을 파고드는 지적 여행!10가지 컬러와 패션이 들려주는 화려한 이야기의 향연우리는 다채로운 컬러의 시대에 살고 있다. 다양한 색채는 인류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 왔다. 문화에 따라 태어날 때부터 남자와 여자는 다른 색의 옷을 입고, 죽음을 맞이할 때도 정해진 색의 수의가 입혀진다. 이렇게 컬러는 국가별, 시대별로 다른 의미가 있다.빨간 드레스 효과를 아는가? 최신 연구에 따르면 빨간 옷은 특히 여성이 입었을 때 욕망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다른 색상의 옷을 입었을 때보다 더 많은 남성의 관심을 끈다. 로체스터 대학교의 색상 심리 실험에 따르면 빨간색 옷을 입거나 붉은 색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여성은 남성들로부터 더 매력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외에도 저자는 칵테일 파티에서 녹색 드레스를 입으면 어떤 의미가 있고, 여성 정치인이 흰색 바지 수트를 입으면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등 10가지 컬러에 담긴 숨겨진 상징성과 컬러에 따른 패션의 역사를 치밀하게 탐구한다. 시대와 세계를 넘나들며 컬러에 얽힌 역사적 사건과 각 컬러가 가진 상징이 변화해 온 과정을 저자와 함께 여행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과 장소, 상황에 어울리면서도 자신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컬러를 찾게 되고, 패션 센스를 갖추게 될 것이다.■ 저자 캐롤라인 영글래스고 대학교에서 영어와 영화 및 TV 연구를 공부한 후 호주 브리즈번에서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받았다. 또한 헤럴드 스코틀랜드(Herald Scotland)에서 패션 작가 및 보조 디지털 편집자로 일하면서 스코틀랜드 패션 산업과 패션의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얻었다.1990년 토론토에 본사를 둔 그래픽 디자인 회사 햄블리와 울리(Hambly & Woolley)를 창업했다. 그 이전부터 오랜 기간 《뉴욕타임스》, 《타임》, 《선데이 매거진》 등 많은 매체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북미 전역에서 수많은 수강생에게 디자인과 관련된 강의를 하면서 초빙대상 1순위의 실력 있는 강사로 인정받았다.지금은 컬러 스터디(https://www.colourstudies.com/)라는웹사이트를 운영하며 사진, 미술, 저술 분야에도 집중하고 있다. 컬러는 그의 모든 활동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할리우드의 황금기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며, 이번 책을 위해 로스앤젤레스의 기록보관소에서 영화사 및 의상에 관한 조사 활동을 광범위하게 펼쳤다.패션과 영화사 전문 작가로 꾸준히 글을 써 오고 있으며, 《타르탄(Tartan)》, 《트위드(Tweed)》, 《스타일 트라이브스(Style Tribes)》, 《클래식 할리우드 스타일(Classic Hollywood Style)》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 또한 인사이트 에디션(Insight Editions)의 《히치콕의 여주인공들(Hitchcock.s Heroines)》과 더히스토리 프레스(The History Press)에서 출간한 《로만 홀리데이(Roman Holiday)》의 저자이기도 하다.■ 역자 명선혜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통역번역학을 전공했다. 한영국제회의통역사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수의 클래식 음악 분야 통번역 경력을 통해 거의 준전문가 수준의 전공 지식이 있으며 현재는 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브랜드 경험의 본질》, 《쓰레기의 정치학》, 《더 스타트》, 《성공하는 여자의 자격》 등이 있다.■ 차례IntroductionBLACKPURPLEBLUEGREENYELLOWORANGEBROWNREDPINKWHITE참고문헌 캐롤라인 영 | 명선혜 번역 | 리드리드출판 | 2023년 05월 BLACK 패션에서 블랙은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는 하나의 캔버스다. 1950년대 급진적인 보헤미안이라 불린 사람들은 하나같이 검은색 폴로 목티를 입고 미국의 반체제 문화의 성역인 그리니치 빌리지의 허름한 술집에 모여 비트를 즐겼다. 1990년대 이후 블랙은 누구나 쉽게 입을 수 있는 주요 패션 아이템이 됐다. 이러한 차림의 패션은 평범함을 추구한다는 뜻에서 ‘놈코어’라 불렸다. 시대를 초월하여 세련된 멋을 내는 블랙은 상복으로 입으면 슬픔과 상실을 나타낸다. 무솔리니의 블랙 셔츠는 파시스트적 위협을 나타내고, 미국의 흑인 무장 조직인 흑표당의 블랙 베레모는 흑인 인권을 옹호하는 강력한 표상이 되었다. 블랙은 표현의 부재, 즉 표현의 자제를 상징하며 결과적으로 더 많은 것을 표현하기도 한다. 펑크 음악의 대부 말콤 맥라렌은 “블랙은 불필요한 장식에 대한 공개적 비난입니다. 허무주의, 지루함, 공허함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블랙이죠.” 색상으로서의 블랙 블랙은 물체가 가시적 파장을 삼켜 색 스펙트럼의 모든 빛을 흡수하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 눈에 보인다. 그러므로 엄격하게 말하면 검은색은 존재하지 않는 색이다. 블랙을 색상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지만 적어도 블랙이 가장 오래된 색소 중 하나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중세 초기 기독교는 엄격한 도덕규범을 내세워 지나치게 화려한 옷차림을 죄악으로 간주하며 소박한 검정 옷을 입는 사람을 의로운 사람으로 여겼다. 1346년 흑사병이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전멸시키자 예술은 해골과 귀신같은 으스스한 공포 이미지로 당대의 희생과 고통을 표현했다. 스칼렛 실크 컬러가 15세기 이탈리아 초상화의 특징이라면,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부와 고상함을 나타내는 검은색이 주를 이뤘다. 르세상스 시대의 패션을 연구한 폴라 호티 에리히센이 1550년과 1650년 사이 베네치아, 피렌체, 시에나 지역에서 나온 유물을 조사한 결과 공예 장인의 의복 중 40% 이상이 블랙이었다. 루카스 데 헤레의 초상화에 담긴 메리는 금색 치마 위에 검은색 가운을 걸치고 왕좌에 앉아 있다. 펠리페는 검은색 더블릿(14~17세기에 남성들이 입던 짧고 꼭 끼는 상의)과 금색 반바지를 입고 그녀 옆에 서 있다. 그들의 의상은 웅장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검은색을 통해 도덕적 경건함과 종교적인 상징성을 표현했다. 팜므파탈 검은 옷을 입은 여성은 주로 과부를 상징하지만 빅토리아 시대에 들어 블랙은 이브닝드레스의 컬러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팜므파탈적 묘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블랙 드레스의 관능적인 힘은 필연적으로그 옷을 입은 여성의 몰락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레오 톨스토이의 원작 소설 영화 안나 카레니나 속 안나는 검은 옷을 입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무도회에 참석한다. 그녀의 아름다움과 자신감을 드러낼 색은 검은색밖에 없었다. 단순하고, 소박하고, 자연스럽고, 우아하면서도 쾌활하고 열정적인 그녀에게 블랙은 자유를 주고 도전을 불러일으킨다. 안나처럼 도덕적으로 타락한 여성과 블랙 컬러를 연관 짓는 것은 다른 영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할리우드는 악한 이미지의 캐릭터를 담기 위해 초창기부터 블랙을 사용했다. 영화 신의 여주인공인 테다 바라는 검은 옷을 입은 뱀파이어에 영감을 얻어 긴 검은 머리와 끈이 없는 블랙 드레스를 선택하였다. 블랙 새틴을 입은 팜므파탈은 제2차 세계대전 말 누아르 장르에서 한때는 천사였으나 몰락한 존재로 등장한다. 영화 블랙 스완은 악한 유혹의 이미지를 검은색으로 제대로 살렸다. 영화 의상 디자이너인 에이미 워스트콧은 주인공 니나의 발레 의상에서 위축된 소녀스러움은 핑크와 화이트로, 마음이 뒤틀리고 괴로워하는 모습은 블랙과 그레이 컬러를 적용해 심경의 변화를 드러냈다. 검은 백조가 입은 검은 깃털과 검은 발레 스커트는 니나의 어두운 면을 온전히 감싸 안아, 그녀의 마지막 여정을 향해 가면서 정점에 다다른다. YELLOW 노란색은 꽃잎을 활짝 피고 햇볕을 정면으로 받는 해바라기나 1990년대 광란의 포스터 또는 티셔츠에 인쇄된 형광노랑빛 스마일 페이스와 같이 여름날과 낙관주의를 연상케 한다. 연한 미색의 목련, 버터, 레몬에서부터 해바라기, 사프란, 겨자, 형광에 이르기까지 노란색은 감정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다고 여기는 심리학적인 원색이다. 노란색은 자극적이면서도 낙관적인 감정을 북돋울 수 있지만, 압도적이기도 하며 부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긴 파장을 가진 노란색은 우리 눈에 가장 먼저 보이기 때문에 도로나 건설 현장에 배치되어 확실한 주목 효과를 내며, 매우 실용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많은 문화권에서 노란색은 태양과 황금을 상징하는 색이었으며, 생명을 주는 힘과 부를 상징하는 화려함을 의미하기도 했다. 로마인들에게 노란색은 꿀과 벌, 그리고 잘 익은 곡식의 색을 의미했다. 수확과 풍요의 여신인 세레스는 종종 노란 드레스를 입고 금발에 밀 왕관을 쓴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 가시성 때문에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고 혐오스러운 상징물에도 사용되었다. 바로 유대인의 노란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는 독일과 점령 지역의 유대인에게 노란색 다윗의 별을 옷에 착용하도록 강제했다. 이는 유대인을 게토로 옮긴 후 최종적으로는 강제 수용소로 보내기 위한 서곡으로서, 신분 확인과 분리 작업의 수단으로 활용됐다. 노란색이 두려움과 박해를 상징하는 순간이었다. 괴테는 노란색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노란색은 밝고 부드럽고 유쾌한 색이지만 빛이 약하면 금세 불쾌해지며 조금만 많아지면 더럽고 추하고 재미없어진다.” 노란 비단과 국화 고대 중국에서 노란색은 철학, 의학 및 풍수에 사용된 오행론의 오색 중 하나였다. 지구를 상징하기도 하는 만큼 가장 귀한 존재로 여겼던 노란색은 금과 부, 태양의 빛, 장수와 건강을 상징하는 국화꽃의 색이기도 하다. 청 왕조와 같은 특정 시대에는 황제와 황후만이 입을 수 있는 귀한 색으로 대접받았다. 중국을 중앙집권 국가로 만든 5명의 전설적 황제 중 첫 번째 황제 ‘Gongsun Xuanyyuan'은 중국 문화의 중요한 측면을 확립했다. 그의 황후 Lei-Tzu는 차를 마시던 중 찻잔에 떨어진 고치 뭉치를 꺼내다 우연히 비단실을 발견한다. 이 비단실로 짠 실크는 고대 중국의 귀한 상품이었기에 짜는 방법은 철저히 기밀로 유지되었다. 누에고치에서 비단을 수확하는 ‘양잠’ 또한 매우 비밀스러운 기술로 다른 문명에서 비법을 알아내려 애를 쓰기도 했다. 상 왕조(기원전 1600-1046) 시대에 이르러 비단은 종교의식과 제사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고, 황후는 궁궐 내 누에 농장을 직접 감독하기까지 했다. 노란색의 부정적 의미 중세 시대의 노란색은 온통 부정적인 이미지였다. 노란색은 질병, 질환 및 황달을 암시했으며, 4대 체액 중 하나인 황담즙과도 관련이 있다. 노란색 직물을 만들 수 있는 수많은 천연 물질이 있었지만 노랑은 오래 지속되는 빨강과 파랑에 비해 색이 빠르게 퇴색되었고, 이러한 특성들 대문에 불신의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이다. 유럽 사회에서는 기형이나 질병이 있는 사람 또는 범죄자와 같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을 노란색 스카프, 모자 또는 배지로 구분하였다. 중세 미술에서 사형 집행인은 일반적으로 노란색 옷을 입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노랑은 또한 반역자를 묘사하기도 했으며, 파산한 사람들의 집을 표시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은 노란색을 통해 유다의 이중성을 표현하기도 했다. 조토 디 본도네의 파도바 성당 프레스코 벽화에는 예수를 껴안은 유다가 노란색 망토를 입고 있다. 유다의 노란색 옷은 그를 반역자임을 뜻할 뿐 아니라 그가 유대인임을 의미했다. 반짝이는 모든 것 중세 시대 노란색이 지닌 부정적인 의미를 감안하면 유일하게 수용 가능한 노란색은 금이었다. 금은 영적으로 신성하게 여겨졌고 실크로드 무역에서도 수요가 높았다. 7천여 년 전에 처음 채굴되어 보석과 장식품으로 사용된 금은 그 희소성과 비용 덕분에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중국에서 페르시아와 지중해로 거래되던 실크는 로마인들이 매우 귀중하게 여겼다. 당시는 티리안 보라 실크가 가장 고급스러운 색상으로 알려졌으나, 압제적 황제였던 코모두스는 밝은 노란색 실크에 줄무늬가 있는 예복을 입었다. 그 옷은 매우 아름답고 밝게 빛나 마치 금사로 짜인 천은 화려하고 호화로운 빛을 발했다. 골드는 과도하게 착용하면 촌스러우면서도 ‘독재자 같은 딱딱하고 고압적인 분위기’를 내지만, 레드카펫에서만큼은 인기다. 매거진 엘르는 골드 드레스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금빛 드레스는 리틀 블랙 드레스의 섹시한 여동생과도 같은 존재다. 활기차고 최면에 걸릴 정도로 황홀하며,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완전한 매력을 선사한다.” 패스트푸드 패션과 Z세대 옐로 노란색은 “샌프란시스코에 오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라는 구호와 함께 1960년대 반문화적 시대의 조화를 상징했다. 비틀즈의 옐로 서브마린 앨범과 영화는 사랑과 평화를 이야기했고, 도노반의 노래 맬로우 옐로는 ‘쿨하고 느긋한’ 내용으로 제임스 조이스의 저서 율리시스에서 파생된 표현을 사용했다. 1960년대 희망을 상징했던 노란색은 1988년 사랑의 여름날을 상징하는 색으로 재등장한다. 애시드-옐로 컬러의 스마일 페이스는 광란의 파티와 엑스터시의 힘을 빌려 황홀한 기분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젊은 세대의 쾌락주의를 대변했다. 스마일 페이스는 1963년 미국의 광고 전문가 하비 볼이 보험 회사 직원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디자인되었으나, 이후 사이키델릭 운동의 축제 스티커로 사용되었다. 1988년 오리지널 런던 애시드 하우스 클럽 나이트 ‘Shoom’의 상징으로 채택된 후 앨범 커버, 배지 및 전단지, 패션 디자인 등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었다. 어린이의 기분 좋은 감정에 호소하여 부모의 구매를 유도하는 노란색은 패스트푸드 업계의 대표적인 컬러다. 맥도날드의 빨강과 노란 배색은 세계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색상이다. 편안함과 행복을 선사하는 노랑과 설렘과 배고픔을 느끼게 하는 빨강의 자극적인 조합으로 구성되어 시선을 잡아끈다. 노란색 포장지와 로고가 자주 사용되는 패스트푸드의 키치 미학은 현대 소비자에게 어필했으며, 노란색은 재미있고 순간적인 색상으로 받아들여지며 즉각적인 만족감을 선사했다. 팬톤은 2018년에 ‘Z세대 옐로’를 소개했다. 작가 헤일리 나만이 2017년 인스타그램 피드를 장식했던 밀레니얼 핑크가 노란색에 점점 밀리는 것을 보고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이는 미래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고, 처지와 환경의 우려 속에서 사람들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에너제틱한 색상으로 꼽힌다. RED 빨간색은 사이렌, 교통 정지신호, 영화 이유 없는 반항의 제임스 딘이 입은 바람막이처럼 경고의 신호를 나타낸다. 빨간 옷을 입은 여성은 어딜 가나 눈에 띄게 마련이다. 누가 로져 래빗을 모함했나의 제시카 래빗이나 사랑의 행로의 미셸 파이퍼 역시 레드 의상을 입고 관객의 시선과 관심을 사로잡는다. 미셸 파이퍼의 빨간 옷은 그녀가 자신의 관능미를 온전히 컨트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빨간색은 시선을 사로잡는 색이기에 올 화이트 복장의 무도회에 등장한 빨간 드레스처럼 종종 부적절하거나 촌스러운 선택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영화 붉은 옷의 신부에서 조안 크로포드는 목조 건물 리조트에서 귀족인 척하는 카바레 가수 애니를 연기한다. 그녀는 항상 빨간 드레스를 꿈꾸었는데, 이는 더 나은 삶을 살려는 욕망의 표현이다. 상류 사회의 관습을 모르는 애니에게 청소부는 레드 드레스를 입지 말라고 강력히 권고하지만 끝내 빨간색을 선택한다. 결국 애니는 이 레드 드레스가 너무 요란하고 싸구려이며 잘못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빨간색의 힘 빨간색은 불타는 태양, 붉은 머리 짐승, 전쟁과 혼돈, 폭력과 파괴를 상징한다. 또한 피, 힘, 생명을 의미한다. 종종 붉은 거들을 착용하는 다산의 여신 이시스의 핏방울을 상징하는 붉은 벽옥, 카넬리안 또는 붉은 유리로 만들어진 티예트 부적을 지닌 사람은 이시스의 보호를 받는다고 여겼다. ‘이시스의 매듭’이라 알려진 이 부적은 생리혈을 흡수하는 천과 비슷해 여성들에게 생명을 주는 힘을 연상케 한다. 구석기 시대에도 빨간색은 보호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부적, 목걸이, 팔찌를 만들기 위해 뼈와 치아를 빨갛게 칠한 조각들이 매장지에서 발견되었다. 로마 시대에는 붉은 천과 보석이 무덤에 놓였는데, 그중에서도 루비가 가장 귀했다. 루비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성욕을 불러일으키며, 마음을 자극하고 독이 있는 생물을 멀리 쫓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빨간색이 나타내는 불과 피는 삶과 죽음을 관장한다. 초기 기독교는 붉은색을 지옥의 파괴적인 불꽃, 악마, 악령과 연결했지만, 12세기와 13세기에 이르러서는 그리스도 피의 상징으로 여겨 로마 추기경들도 붉은색 망토와 모자를 쓰기 시작했다. 또한 판사와 법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정의를 대표하기 위해 빨간색을 착용했다. 르네상스의 빨간색 1495년 파리에서 처음 인쇄된 문장학의 색깔에 대한 익명의 안내서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미덕 중에서 빨간색은 고귀한 출생, 명예, 용기, 관대함, 대담함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리는 공의와 관용의 색이다. 빨간색은 다른 색들을 고귀하게 만든다. 빨간 옷 한 벌을 입은 사람에게 큰 용기를 준다. 녹색과 짝을 이룬 빨간색은 아름다움과 젊음, 그리고 기쁨을 의미한다. 푸른색과 함께 사용되면 지혜와 충실함을, 노란색과 함께 사용되면 탐욕과 욕망을 나타낸다. 빨간색은 검은색과 어울리지 않지만 회색과 함께 사용되면 큰 희망을 나타낸다. 또한 아름다운 흰색과 함께 사용되면 매우 높은 경지의 고귀함을 엿볼 수 있다.” 중세 시대, 빨간색은 전쟁이나 사냥에 나가는 남성에게 힘과 영광을, 여성에게는 아름다움과 사랑을 선사했다. 붉은 드레스는 매력적이고 매혹적으로 디자인되었다. 중세 마상대회에서 여성이 기사에게 사랑의 표시로 붉은색 소매를 주었는데, 이를 기사의 창에 묶으면 행운이 온다고 믿었다. 중세 영국은 양모 생산의 강국이었다. 15세기부터 서아프리카의 강국이었던 베냉왕국과 무역을 시작한 유럽에서 주홍색털실은 매우 귀중한 무역품 중 하나였다. 선명한 붉은색과 주홍색을 만드는 비용과 상징성으로 붉은색은 유럽 전역에서 가장 높은 계급의 시민들만 사용하도록 엄격히 규제되었다. 그리고 붉은색 천의 수입을 제한함으로써 국내 경제도 보호하고, 신분의 계급 차이를 드러낼 목적으로 1337년에 사치금지법이 도입되었다. 높은 염색 비용 때문에 베네치안 스칼렛이라 불렸던 연지벌레 염색 천은 고위층들의 전유물이었다. 염색 품질이 섞이지 않도록 꼭두서니와 연지벌레 기반의 염색 시설도 별도로 운영되었다. 꼭두서니 혹은 브라질우드로 염색된 레드는 종종 매춘부, 나환자, 죄수들에게 사용되었다. 이는 그들이 사회에서 버림받은 존재들임을 상징했다. WHITE 작은 얼룩도 즉시 눈에 띄는 화이트진은 부와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나타낸다. 지중해에서 값비싼 요트 파티의 복장이나 클럽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은 주로 화이트진을 즐겨 입는다.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흰옷은 육체노동을 하지 않아 옷이 더러워질 일이 없는 사람들, 즉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이 입었고, 19세기 이후부터는 여가를 즐기는 계층들이 시원한 흰색 린넨 정장과 드레스를 즐겨 입었다. 세계의 문화적 전통에서 흰색은 순수함과 처녀성을 나타낸다. 고대 로마에서는 불과 부엌의 여신인 베스타의 여사제들이 순결의 상징으로 흰색 린넨 로브를 입었다. 값비싼 비단은 천국에서만 입는다고 알려진 이슬람 문화권에서 순백색 면 옷은 헌신을 뜻한다. 흰색은 갓 내린 눈, 우유,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색으로 단순함과 순수함을 의미한다. 백색광은 스펙트럼의 모든 색을 반사하기에 백색 물체는 다른 모든 색을 표현할 수 있는 빈 캔버스가 된다. 오스틴 시대의 흰색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흰 드레스는 1790년부터 1820년까지 영국 섭정 시대의 신고전주의 패션을 반영했다. 소설 노생거 수도원에서 앨런 여사는 캐서린 몰랜드에게 엘리너 틸니가 항상 흰옷을 입으니 그녀를 만날 때는 흰옷을 입으라고 권한다. 오스틴은 캐서린 몰랜드와 헨리 틸니 사이의 관계 발전을 표현하기 위해 하얀색 모슬린을 사용했다. 흰색은 미덕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계몽주의 낭만에 어울리게 우아하고 섬세하다. 영국은 프랑스와 전쟁 중이었고, 혁명의 바람과 함께 여성복의 흐르는 듯한 실루엣은 고대 그리스 예술과 민주주의, 그리고 계몽정신을 담아냈다. 버드나무처럼 섬세한 실루엣은 고전적인 조각상 같았고, 하얀 모슬린, 케임브릭 또는 면이나 아마사 직물의 바슬거리는 순수함은 산업혁명 시대의 청결감을 강조했다. 그리하여 평평한 슬리퍼와 함께 편안함과 자유를 제공하는 옷차림이 되었다. 섬세한 흰색 직물의 아름다움에는 식민주의, 노예제도, 섬유산업의 노동자 착취라는 진정한 공포가 비밀리에 숨어 있다. 메그나 강둑에서만 자라는 목화로 제작되는 다카 모슬린은 16단계의 비밀 공정을 거쳐 정교한 수작업으로 만들어진다. 노예들은 화이트 패션에 쓰일 면화 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영국에서 수입된 거친 모직물이자 ‘흑인의 옷감’으로 알려진 화이트 웨일스 직물만 입을 수 있었다. 많은 노예가 이 거친 흰옷의 노예화와 그 상징성을 거부하고 자유인으로 보이도록 그들만의 미학을 창조했다. 흰옷을 인디고 식물로 염색하거나 호두나무 껍질에서 갈색 염료를, 삼나무 이끼에서 노란색 염료를 추출하는 등 식물학적 지식을 활용해 그들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었다. 낡은 옷을 수선하기 위해 패치를 달거나 일요일에 입을 예쁜 드레스를 위해 다양한 컬러의 실을 직물에 짜 넣기도 했다. 하얀 결혼식 하얀 옷을 생각하면 결혼식에서 신부가 순결과 순수함을 알리기 위해 입는 정교한 프릴과 레이스가 달린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떠올린다. 현대 사회에서 순백의 웨딩드레스는 순결의 상징에서 점점 멀어지는 개념이긴 하나, 눈처럼 새하얗고 섬세한 실크, 새틴 및 레이스 달린 웨딩드레스는 그 자체로 의미가 남다르다. 18세기 패션 삽화에서 선명한 빨간색이나 다른 밝은 색상의 웨딩드레스가 있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샬럿 공주와 같은 왕실 신부들은 금사로 장식된 천을 선호했다. 그러나 1840년 빅토리아 여왕은 결혼식에서 상아색 새틴 웨딩드레스를 입음으로써 흰색 웨딩드레스 관습에 새로운 시도를 가져왔다. 영국 여왕들의 삶을 책으로 쓴 영국 작가 아그네스 스트릭랜드는 “그녀는 화려한 옷차림을 한 여왕이기보다 순수한 처녀처럼 티끌 하나 없는 흰색 옷을 입고 신랑을 맞아했다.”라고 기록했다. 그리고 처녀성을 강조하려는 목적이 아닌 데본 지역의 호니톤 레이스를 특별 주문하여 완성된 빅토리아 여왕의 웨딩드레스는 침체된 레이스 산업을 활성화시켰을 뿐 아니라 흰색 드레스의 붐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흰 드레스는 일반 여성에게 실용적이지도 않고 가격도 저렴하지 않았다. 흰 천은 깨끗하게 유지하는 비용뿐 아니라 한 번만 입고 말 드레스를 구입할 만큼 여유가 없었다. 여러 행사에서 입을 수 있는 드레스가 필요했기에 19세기 흰색 웨딩드레스는 누구나 갖고 싶어 하지만 쉽게 가질 수 없는 사치품으로 여겨졌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이코노믹 허스토리

왜 경제학의 절반은 사라졌는가? 이디스 카이퍼 | 조민호 번역 | 서울경제신문 | 서경B&B | 2023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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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지금껏 우리가 배운 경제학은 반쪽에 불과하다!”기록되지 않은 여성들의 목소리와 경제적 성과에 대한 재평가경제학(economics)은 18세기 후반 서유럽과 경제 패권을 쥐었던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 중심의 경제학자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패권을 가로챈 미국의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 중심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적 연구(historical research)가 그러하듯 경제사상사 또한 무수히 많은 경제학자 중에서도 백인 남성(man)의 관점에서 채택된 이론이 뼈대를 이룬다. 하지만 경제사상사에 기록되지 않은, 오랫동안 외면받고 소외된 여성 경제 저술가와 경제학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경제라는 사회적 구성물의 각 분야에서 연구 및 저술을 통해 학문적으로 기여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경제에 관한 토론과 이론 전개의 장은 물론, 경제사상사에 온전히 편입되지 못했다.오이코노미아에서 페미니즘 경제학까지“경제학이란 무엇이고, 누가 경제학을 연구하는가”경제학에서의 여성의 위치와 평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강조하는 이디스 카이퍼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이어진 여성과 젠더 평등에 관해 언급한 저술가들과 경제학자들의 흔적을 추적한다. 더불어 18~19세기 영국과 프랑스, 19~20세기 미국의 여성, 식민지 여성, 유색인종 여성의 경제적 활동을 묘사하면서 그들의 경제 문제, 투쟁의 역사, 경제적 관점 등을 다룬 저작들을 소개한다. 또 재산, 권력, 교육, 생산, 분배, 소비, 정부 정책 등의 분야에서 활동한 여성 경제 저술가 및 경제학자들의 발자취를 연대기 순으로 만나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카이퍼 교수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경제학자라는 개념에서 여성 경제 저술가와 경제학자가 빠지게 된 역사적 배경에 주목한다.■ 저자 이디스 카이퍼페미니스트 경제학자, 경제학 철학자, 역사가. 암스테르담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뉴욕주립대학교 경제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제페미니스트경제학협회 회장으로도 활동했다. 1993년 암스테르담에서 ‘아웃오브더마진: 경제 이론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관점(Out of the Margins: feminist perspectives on economic theory)’이라는 콘퍼런스를 조직했고, 이를 계기로 네덜란드의 페미니스트 경제학 네트워크인 FENN(Feminist Economics Network in the Netherlands)의 설립을 이끌었다.■ 역자 조민호안타레스 대표.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뒤 단행본 출판편집자로 일하면서 인문 및 경제경영 분야 150여 종의 책을 기획·편집했고 저작권 에이전트와 번역가로도 활동했다. 옮긴 책으로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 《리더십의 심리학》, 《나에게는 지독한 인내가 필요해》, 《15분 만에 읽는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있다.■ 차례이 책의 주요 여성 경제 저술가들감사의 말서장. 경제학에서 사라진 여성들경제학의 역사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경제라는 사회적 구성물에서 여성은 어디에 있는가오이코노미아에서 페미니즘 경제학까지제1장. 정치경제학의 등장오이코노미아, 가계관리에 관한 탐구중산층의 도덕제2장. 권력과 주체성 그리고 재산권경제적 추론의 권력경제 행위 주체로서의 여성재산권: 경제 제도로서의 결혼재산권: 노예 및 식민지 여성제3장. 교육문화와 사회를 향한 관문으로서의 여성 교육교육을 받아라! 학교를 시작하라!쉬운 언어로: 정치경제학 및 경제학 교육제4장. 부와 여성의 관계: 자본, 돈, 금융여성의 자본 통제력 상실여성에게 강요된 돈을 대하는 태도경제의 금융화제5장. 생산화폐화·시장화한 생산에서의 여성 참여산업에서의 젠더 분리자신들의 일을 지켜온 여성제6장. 분배분배의 이동 패턴경제 기사도와 임금 노동제동일노동 동일임금 논쟁젠더와 인종별 임금 격차 설명제7장. 소비소비를 이론화한 여성 경제학자들소비와 환경 문제제8장. 정부 정책정부의 역할지역 및 전 세계 공공재로서의 돌봄 서비스산업 폐기물 통제와 자연 환경 보전국제 경제 정책제9장. 앞으로의 경제학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경제사상사에 기록되지 않은 12가지 키워드페미니즘 관점에서 본 경제학반쪽짜리 경제학의 좁은 터널을 어떻게 통과할 것인가주참고문헌찾아보기 이디스 카이퍼 | 조민호 번역 | 서울경제신문 | 서경B&B | 2023년 05월 정치경제학의 등장 오이코노미아, 가계관리에 관한 탐구 경제와 관련한 여성들의 초기 저작 대부분은 역사의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고대 그리스의 정치철학자 아스파시아(Aspasia, 기원전 470~기원전 400)가 쓴 구절만 남아 있을 뿐이다. 다만 크세노폰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기원전 322)가 여성과 젠더에 관해 상당히 광범위한 글을 남겼다. 기원전 362년경 크세노폰이 쓴 ‘오이코노미코스(Oikonomikos)’에서 여성은 “집안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묘사되며 스승인 소크라테스와의 대화에서 자주 언급된다. 소크라테스는 남성이 가정을 꾸리고, 아내와 일을 분담하고, 젊은 아내를 현명한 주부가 되도록 훈련하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집안에 좋은 주부가 있는 것이 가계의 부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과 끊임없이 다투던 강한 아내(Xanthippe)와의 결혼 생활에 대해 설명한다. 그의 지적이 날카롭고 유머러스하다. ‘오이코노미코스’는 읽어볼 만한 작품이다. 그러나 크세노폰의 이 저작을 다루고 있는 경제사상사 교과서 중 대부분에서는 노동 분업만 강조할 뿐 본래의 분업, 즉 남성과 여성 그리고 남편과 아내 사이의 젠더 분업은 언급하지 않는다. 후대의 경제적 사고에 큰 영향을 미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에 대해 부정적 관점을 갖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여성은 단지 불완전한 남성이었으며, 그의 이분법적 논리에 따르면 뜨겁고 적극적인 남성과 달리 여성은 차갑고 수동적인 존재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제를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하나는 먹을 음식과 입을 옷, 쉴 집을 제공해 가족 구성원의 생계를 유지할 목적의 재산 관리다. 그는 이를 ‘자연 경제’ 또는 ‘오이코노미아’라고 불렀다. 다른 하나는 이자가 발생하는 대출을 비롯해 가계 밖에서 이뤄지는 거래나 교역이다. 그는 이를 ‘비자연 경제’ 또는 ‘크레마티스티케(chrematistike)’로 간주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처럼 자연스럽지 않은 경제는 억제돼야 마땅하지만 유지되고 있는, 결국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필요악이었다. 중세 시대에도 학식 있는 많은 여성이 수도원에 기거하며 철학적·종교적 문헌을 남겼다. 예를 들면 베네치아의 크리스틴 드 피장(Christine de Pisan, 1364~1430)은 다양한 장르로 많은 글을 썼고 서유럽에서 여성 문제를 모국어로 표현한 최초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모든 여성이 교육을 받아야 하며, 여러 분야와 여러 직업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미덕과 관심,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개신교와 신흥 상인 및 중개인 계층이 부상하자 가정에 있는 여성은 이념적으로 더 길들여졌고 주부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야 하는 ‘남성의 성(城)’으로 인식됐다. 16세기에서 17세기까지 유럽의 귀족 여성들은 정치 문제에 발언할 권리를 어느 정도 갖고 있었으나, 특히 18세기 영국에서는 귀족 여성들조차 공적 영역에서 제외됐다. 가정 경제의 중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정치와 교역, 산업적 노력은 전적으로 남성의 영역이 됐으며, 가정은 여성의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이전까지는 가계부 관리를 주로 맡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여성이 가계 운영 지식을 발전시키고 축적해 가계부를 작성하고 보관했다. 서유럽에서 가계관리가 점점 더 여성의 독점적인 역할로 변화함에 따라 공적 및 사적 영역에서의 젠더 구분 또한 정치철학의 논지로 떠올랐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초기 사상가들의 전통적 견해를 따라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같은 근대 철학자조차 ‘남성’에 초점을 맞췄으며 시민은 전적으로 남성이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루소의 생각은 이후 애덤 스미스의 정치경제학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애덤 스미스는 자신의 책 ‘국부론’에 생활의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에 대한 젠더 역할을 적용했다. 애덤 스미스는 자신의 저작에서 조용하면서도 결정적인 변화를 보였다. 그는 관점을 180도 바꿔 가계에서 등을 돌리고 자율적인 남성 개인을 무대 중심에 세웠다. 그는 그저 자신이 쓴 저작에서 가계와 여성을 배제함으로써 묵묵히 경제 역사를 바꿨다. 애덤 스미스는 그때까지 ‘가정경제’ 또는 ‘가계관리’라는 의미로 부른 ‘오이코노미’라는 용어를 따로 사용해 공적 영역의 생산성과 부를 다루는 ‘이코노미’와 분리했다. 그가 살아생전 출간한 두 권의 책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에서 시장 법칙 맥락으로 가계를 대표하는 개인은 다름 아닌 ‘남성’이다. 다시 말해 그가 지칭하는 경제 행위 주체로서의 개인은 모두 ‘남성’을 일컫는다. 가정과 여성이 정치경제에서 배제되자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가계관리에 관한 문헌 대부분을 여성들이 쓰게 됐다. 가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의 전통적 초점이 유지되면서 이 경제 연구 분야는 경제학계 외부로 이끌렸다. 19세기 말까지 이 연구 중 일부는 ‘가정경제학(home economics)’으로 불리게 된 경제학 하위 분야로서 여성 학자들이 수행했다. 가정경제학은 미국에서 여성 학자가 경제학부 내에서 자리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분야였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더 많은 여성이 경제학을 포함해 다양한 학문 분야에 진출하자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본격적으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측정과 개념화 작업을 통해 ‘가사 노동’, ‘가계 생산’, ‘무임금 노동’, ‘돌봄 노동’의 가치와 역할을 이론화했다. 그들은 무임금 가계 생산에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무임금 가계 생산의 역할과 젠더화한 특성 및 자본주의에서의 기능에 관한 가사 노동 노쟁을 초래하게 된 카를 마르크스의 이론을 비판했다. 낸시 폴브레는 경제 모델, 특히 순환 흐름 모델에 가정에서의 무급 돌봄 노동을 포함하지 않은 신고전주의 주류 경제학 이론을 비판했다. 그녀는 가정이 생산 및 소비의 엄연한 주체인데도 가계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경제학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상태로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낸시 폴브레에 따르면 가정은 재화와 서비스 생산에 더해 노동자를 생산하지만, 이 생산에는 금액이 책정되지 않을뿐더러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 미래의 노동자인 자녀를 양육하는 것 외에도 노동자 생산은 긍정적 ‘외부 효과(externality)’를 생성한다. 그렇기에 오랫동안 경제학자들의 관심사에서 밀려났던 가정경제가 다시 중심 무대로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권력과 주체성 그리고 재산권 고대의 크세노폰이 전문화를 가능케 한 첫 번째 분업으로서 남편과 아내 사이의 역할 분배를 자세히 논의했다면 체사레 베카리아와 안-로베르-자크 튀르고, 애덤 스미스는 부의 생산자인 남성의 경험에서 출발했다. 이 초기 정치경제학자들은 여성이 없는 학문적 환경 안에서 경제 개념과 이론 및 원칙을 수립하고 심화했다. 여성의 부재는 그저 우연이 아니라 경제학이라는 학문 기관 설계의 근본적 부분이었다. 유럽 전역의 대학들은 로마 가톨릭 수도원의 폐허 위에 세워졌다. 케임브리지대학교와 옥스퍼드대학교는 주로 남성들이 성직자가 되도록 교육했다. 케임브리지대학교의 경우 학생들이 캠퍼스 내에 거주하려면 독신 상태를 유지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떠나야 했다. 옥스퍼스대학교는 20세기까지 여성의 교내 접근을 금지했다. 프랑스의 살롱 문화와 유사하고 프랑스와 영국의 오래된 학술 모임을 모델로 한 경제 토론에 관심 있는 남성들은 스위스에서 ‘레이코노미스트(les économists, 경제학자들)’나 프랑스에서 ‘레필로조프(les philosophes, 철학자들)’ 같은 학회를 만들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도 ‘클럽(club)’이라는 이름을 단 모임들이 생겼다. 글래스고와 에든버러의 작고 붐비는 거주 구역 외부에 들어선 사교 공간에는 남성들로 가득했다. 이런 모임은 종류도 다양했고 회원이 지켜야 할 규칙도 엄격했다.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클럽들도 있었는데, ‘뒤죽박죽클럽(Hodge Podge Club)’, ‘돌발클럽(Accidental Club)’, ‘비프스테이크클럽(Beefsteak Club)’같은 곳들이었다. 하지만 남성들의 사교 모임이기에 “여성은 허용하지 않습니다.”가 규칙 중 하나였다. 에든버러와 글래스고에서 살았던 애덤 스미스는 여성 참여를 불허한 ‘포커클럽(Poker Club)’같은 모임의 회원이었고 설립에도 관여했다. 입법가들, 학자들, 상인들 사이의 그 어떤 정치경제적 논의에도 여성들은 없었다. 여성의 경제 행위나 경제적 이해관계는 애초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그것이 경제 분야에 한계를 가져온다는 생각 또한 누구도 하지 않았다. 재산권: 경제 제도로서의 결혼 1700년대에 재산권이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남성의 독점적 권리로 규정되면서 여성 및 식민지 원주민은 자본이나 토지 같은 자산의 통제권을 상실했다. 이 과정에서 영국의 결혼법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 이 법은 인구 문제와 직접 관련돼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은 대부분 여성의 삶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계약이었으며, 자산과 소득 같은 경제적 안정성을 결정했다. 다른 유럽 국가와 비교할 때 잉글랜드는 산업화가 진행되는 동안 과거에는 인정됐던 기혼 여성의 재산권이 가장 극단적으로 상실된 곳이었다. 혼인 서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여성은 거의 모든 법적 권리를 잃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결혼은 마음의 문제일 수 있지만, 당시 귀족과 부유한 가문 사람들에게 결혼은 언제나 재산을 대가로 가족이 되는 교환의 문제였다. 대부분 가문에게 자녀의 결혼은 사회적·정치적 인맥의 확대 및 강화이자 전쟁을 방지하는 현명한 대안이었다. 이 시대 여성 경제 저술가들은 결혼법과 그것의 경제적·물리적 영향 등 결혼이 여성의 자유를 제한하는 방식에 주목했다. 이는 결혼을 그저 사적인 영역으로 간주한 남성 경제학자들과 극명히 대조된다. 더욱이 남성 경제학자들은 결혼이 가계에서 남편과 아내 사이, 자녀 사이, 세대 사이의 자원 분배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도 결혼을 경제적 제도보다는 사회적 제도로 여겼다. 결혼은 당사자 가운데 한 사람의 법적 주체성을 포기하기로 합의한다는 점에서 애초부터 일반적인 계약과는 다른 법적 계약이었다. 따라서 이 계약은 법률적으로도 문제가 있었다. 잉글랜드 철학자 해리엇 테일러 밀(Harriet Taylor Mill, 1807~1858)은 1851년 논문 ‘여성의 참정권’에서 결혼의 법률적 근거를 제기했다. 이 논문은 처음에 그녀의 남편 존 스튜어트 밀 이름으로 발표됐으나 이후 해리엇 테일러 밀 자신이 쓴 것으로 기록됐다. 해리엇 테일러 밀이 1850년 10월 23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우스터에서 열린 최초의 ‘여성권리대회’ 연설을 토대로 쓴 ‘여성의 참정권’은 존 스튜어트 밀이 내용을 보강해 그녀 사후 11년 뒤인 1869년 ‘여성의 종속(The Subjection of Women)’이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이 책은 한 성별이 다른 성별에 종속된다는 법률적 원칙 자체가 잘못이며 인류 발전을 저해하는 주범임을 역설하고 있다. 해리엇 테일러 밀과 존 스튜어트 밀은 이 종속 원칙을 완전한 평등 원칙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73년 펴낸 ‘자서전’에서 존 스튜어트 밀은 ‘여성의 종속’뿐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정치경제학 분야 교과서로 널리 읽힌 ‘정치경제의 원리(1848)를 비롯해 자신이 쓴 저서 대다수가 아내 해리엇 테일러 밀과의 대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19세기 후반에 이르자 영국에서는 기혼 여성의 권리가 다소 향상됐다. 바버라 리 스미스 보디촌(Barbara Leigh Smith Bodichon, 1827~1891)과 ‘랭엄플레이스그룹(Langham Place Group)’이 1857년 기혼 여성의 재산권 확보 법안을 제출하고자 투쟁했고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1870년까지 의회를 통과하지는 못했다. 이 법안은 기혼 여성이 남편의 승인 없이도 “자신의 의지 또는 기타 적법한 방식으로 재산을 취득하고 보유하고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담고 있었다. 결혼법과 기혼 여성 재산권에 대한 이 같은 변화는 기술 발전과 더불어 여성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열어줬다. 그렇지만 20세기가 될 때까지 기혼 여성에게는 여전히 독립적으로 계약을 체결할 권리가 없었다. 남편의 공동 서명이 있어야 대출을 받을 수 있었고, 계약 책임이 전적으로 여성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간주하지도 않았다. 1953년 독일 1957년 네덜란드, 1958년 벨기에, 1965년 프랑스에서 여성의 법적·계약적 지위를 제한하는 법률이 개정되는 동안에도 미국은 2006년까지 의회에서 ‘기혼자의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미 미국 대다수 주 정부가 기혼 여성이 서명한 계약을 인정하고 있었다. 반면 가정은 여전히 법률적으로 사적 영역이었고, 정부의 손이 닿지 않는 결혼 생활 속에서의 폭력과 강간은 20세기까지 사적인 문제로 여겨졌다. 한편으로 경제학에서는 남성을 가장으로 하는 소득 가구 개념이 확고히 자리 잡았으며, 1960년대 초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 증가는 놀랍고 이례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부와 여성의 관계: 자본, 돈, 금융 여성에게 강요된 돈을 대하는 태도 1700년대와 1800년대 여성들은 자본 통제력을 상실했으며, 새로운 부르주아 도덕의 개념에서는 하층 여성들만 물건을 사고 파는 일을 하기 때문에 중상류층 여성이 돈을 다루는 것을 ‘여성답지 않고’ 저속한 행위로 치부했다. 가계 생계를 위한 가내 수공업이 산업화 과정에서 대규모 작업장과 공장으로 이동함에 따라 자산의 금전적 가치가 점점 더 중요해졌고, 중산층 여성들은 자산과 재정에 대해 이중적 관점, 즉 돈은 중요한 것이지만 여성이 다룰 대상은 아니라는 생각을 유지하도록 세뇌당했다. 마리아 에지워스와 아버지 리처드 로벨 에지워스가 함께 쓴 ‘현실적 교육’의 한 장인 ‘검약과 경제(Prudence and Economy)’는 가정에서의 경제적 행동을 다루고 있다. 두 사람은 독자인 부모들에게 다양한 이유를 들어 아들보다 딸을 더 주의 깊게 가르쳐야 한다고 독려했다. 이들이 보기에 “경제는 여성에게 더 본질적인 가정의 미덕”이었다. 에지워스 부녀에 따르면 가정의 맥락에서 경제는 검약, 경험, 재화와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기술, 낭비 최소화 같은 요소로 구성된 것이었다. 자녀에게 돈의 소중함을 가르치려는 부모의 노력은 아이들 스스로 하는 용돈 관리로 이어졌다. 그리고 “젊은 여성들은 가계부를 관리하는 데 익숙해야 하며 모든 필수품과 사치품의 가격을 알아야”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물가에 대한 명확한 인식’, ‘정확한 자산 현황 파악’, ‘내 것에 대한 집착보다 우선하는 타인의 재산권 존중’ 같은 태도 강요는 젊은 여성이 부모의 집을 떠나 다른 남성의 아내가 됐을 때 똑같은 태도를 취하도록 만들었다. 돈을 대하는 이중적 잣대는 여성은 타인의 자산을 관리하는 존재일 뿐, 스스로 자본을 운용하거나 소득을 끌어내는 존재는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동시에 결국은 자기 것이 아닌 돈을 아껴 쓰는 것이 여성과 소녀들의 가장 중요한 미덕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여성을 돈에서 떨어뜨리고 노동력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도록 사상적으로 지원하는 일련의 규범과 가치는 19세기 후반까지 일반적인 개념이었다. 사실상 오늘날에도 대다수 젊은 이성애자 여성들의 경우 배우자가 될지 모를 남성과 일, 시간, 수입 분리 등을 논의하는 일은 연인 사이의 로맨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이는 여성의 삶을 통틀어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 부분을 미리 논의해 합의를 이뤄놓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다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를 거부하는 남성과는 장기적 관계를 맺지 않는 게 좋다. 자본과 돈의 통제권을 경시하고 낭만적으로만 접근하는 결혼 생활은 여성에게 대부분 불리하게 작용하며 크나큰 상처를 입힌다. 분배 젠더와 인종별 임금 격차 설명 20세기 마지막 수십 년 동안 서구, 특히 미국은 소득 불평등 심화를 혹독히 경험했다. 젠더별 임금 격차는 감소했으나 백인 위주였다. 유색 인종은 여전히 인종별 임금 격차가 30~50퍼센트 수준을 유지했고 흑인의 경우 그 차이가 더 두드러졌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에게 노동은 재화와 서비스 생산에 사용하는 상품으로 정의됐다. 이는 모든 노동이 본질에서 같으며 노동이라는 상품이 포함하는 인적 자본 수준, 즉 교육이나 기술이나 경험에서만 차이가 있음을 의미했다. 과거 정치경제학자들의 추론대로 노동자에게 생계 기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생각은 완전히 밀려났고, 이 새로운 사고의 틀에서는 노동자가 한계생산성에 따라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인식됐다. 기나긴 역사적·경제적 억압과 배제에 근거를 둔 노동 임금의 젠더별·인종별 격차에 대한 분석은 이제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이해됐으며, 이들의 임금 격차는 생산성과 노동 수요 사이의 차이로 축소됐다. 낮은 임금은 낮은 생산성 또는 제공되는 재화 및 서비스의 낮은 가치를 의미한다는 스미스 웹과 프랜시스 Y. 에지워스의 관점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 인과관계가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는 여성 경제저술가들의 견해는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의 분석은 정확히 이 지점을 지적했다. 여성과 유색인종이 장기간에 걸쳐 고임금 일자리에서 배제됐고, 임금·무임금 농업과 가사 노동, 그리고 육아, 청소, 간호(간병), 교육 등 노동을 화폐화·시장화한 분야에서 여성의 대표성이 과도하게 부각했다는 사실은, 합리화된 모성 숭배나 직업 훈련 기회 부족 같은 다른 차별 요인과 더불어 젠더별·인종별 임금 격차의 주된 원인으로 드러났다. 젠더별 임금 격차에 대한 설명은 이제 노동자의 ‘인적 자본’에 집중했다. 노동자의 인적 자본은 주로 교육을 통해 향상했다. 그래서 교육은 훗날 더 높은 소득이 보상해줄 투자로 여겨졌다. 나아가 경제학자들은 교육 및 훈련에 따른 기술과 노동 기간에 따른 경험 즉, 숙련도 수준을 기반으로 한 인적 자본 개념을 대입해 여성과 남성 사이 그리고 인종·민족 사이의 임금 격차를 설명했다. 신고전주의 경제 이론의 틀 안에서 활동하는 경제학자들은 자녀 수와 직접 육아 여부 등의 변수를 끌어들여 젠더별 임금 격차에 대한 설명을 보완하는 데 관심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7~12퍼센트의 젠더별 임금 격차는 ‘차별’이라는 꼬리표 아래 사회학 연구로 밀려나 그 자세한 연구가 사회학자들에게 맡겨졌다. 최근에는 젠더별·인종별 임금 격차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기업의 구별 짓기 문화, 차별적 정책, 여성 노동 지원 부족, 이중 노동 시장 등 정책적·제도적 요인도 고려해야 한다는 인식이 대두하고 있다. 일터를 둘러싼 규범과 규정을 접한 많은 여성 경제 저술가와 경제학자 및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 특히 유색인종 경제학자들은 젠더별·인종별·계급별 임금이 권력 메커니즘, 착취, 차별, 직업 분리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결정된다고 지적했다. 앞으로의 경제학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여성 경제 저술가들과 경제학자들은 현실이라는 무대 한복판에서 소녀와 여성, 활동가와 대중을 위해 글을 썼다. 반면 정치경제학자들은 주로 입법자, 정부, 기업가, 그리고 다른 경제학자들을 위해 썼다. 이는 여성과 남성 경제학자 모두의 언어, 개념, 관점에 영향을 미쳤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서 전부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국가 권력자들은 남성 중심적 시각의 한계에서 비롯된 경제학의 일방성을 문제 삼지 않았다. 여성의 관점을 취하면 경제 발전의 다른 역사, 남성 중심 경제적 사고방식의 문제점, 경제학에서 간과한 여러 측면을 파악할 수 있다. 여성이 경제에서 배제된 역사는 수 세기는 아니더라도 계속해서 이어졌기 때문에, 여성의 삶을 크게 좌우하고 정치경제학과 이후 경제학에서 여성을 배제하게 된 요인으로 여성 경제 저술가들이 젠더 문제를 지적한 것은 정당했다고 할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여성들이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제도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남성과 여성이 다루는 주제 역시 그 차이가 크게 줄었으나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다. 반쪽짜리 경제학의 좁은 터널을 어떻게 통과할 것인가 최근 유색인종 여성 경제학자들이 경제학자라는 직업을 선택할 때 직면하는 어려움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급진적 페미니스트 정치경제학자 그룹은 국제페미니스트경제학협회와 전미경제학회 회원들에게 여전히 현장에서 자행되는 젠더차별과 인종차별을 인지하고 이에 대응하는 정책을 촉구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다양성이 객관성을 더 높이고 ‘터널 시야(tunnel vision)’가 객관적 지식 생산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수용하려면 경제학자들의 더 강한 의지가 필요할 것이다. 기득권 사회의 경제적 이익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주류 경제학의 뿌리 깊은 지배력은 그 자체로 더 광범위한 이론적 변화를 막는 보루를 형성해왔다. 경제학계 변화에 별 관심이 없거나 엮이기 싫은 경제학자들은 뉴이코노믹씽킹(New Economic Thinking)이나 리씽킹이코노믹스(Rethinking Economics)와 같은 연구 기관을 학계 외부에 조직했다. 지구 온난화, 전염병, 권위주의 경향, 대규모 이민 등 현재의 위기 앞에 경제학은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는 경제 시스템의 신속하고 근본적인 변화, 즉 주류 경제학이 다루기에 준비가 부족한 변화를 예상하고 해결할 필요성이 있음을 뜻한다. 물론 주류 경제학은 지금껏 그래왔듯이 광범위한 주제에 적용하고 관련 연구를 흡수하면서 덩치를 계속 키우는 ‘다원적 경제학 접근법(pluralist approach to economics)’을 확대하면서 기존 경로를 유지하려 들 것이다. 그렇더라도 나쁘지 않다. 여성과 유색인종 문제와 관련해 젠더 및 가족 경제학 분야에서 하는 것처럼 임금 격차, 실업, 차별 등의 문제를 신고적주의적 연구로 끌어오면 된다. 그래도 더 혁신적인 접근 방식은 젠더, 인종, 계급, 지위 및 자연과의 관계가 경제와 경제사상 발전에 공헌한 역사를 명확히 직시하고 경제와 지속 가능한 개발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장려할 때 이를 포함하는 것이다. 모든 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자원의 공급, 구성, 효율적 사용을 다루는 방식을 설명할 때 이와 같은 경제 개념, 이론, 내용, 역할로는 우리의 관점을 제한할 수 없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이 순간에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신들의 분야는 물론 그 이상을 발판으로 경제 분야 연구와 토론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특히 젠더차별, 계급차별, 인종차별, 성 소수자 문제, 글로벌 불평등, 지속 가능 개발 등 세계를 구성하는 것과 관련 있는 모든 사회운동과 지식의 흐름 및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듯 지치지 않는 열정과 의지가 케케묵은 문제와 전례가 없던 문제에 대한 더 나은 해답을 찾고 이를 사실과 과학적 분석, 그리고 건전한 토론의 장으로 이끄는 힘이 될 것이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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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물들과 생명들이 겪는 좌충우돌 이야기 송진 | 2022년07월 | 168쪽 | 9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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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물들과 생명들이 겪는 좌충우돌 이야기를 시로 녹이다 때로는 종일 놀고 싶지만 시간이 없거나 돈이 없고 힘내라, 힘! 그래서 힘내고 싶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만 봐야하는 무기력함에 죄책감마저 느낀다. 먹고 살기 위해 고된 일상을 겨우 마무리하고 어깨 축 늘어뜨리고 반지하 원룸으로 돌아가는 지구에 사는 호흡자들, 그래도 우리는 날마다 낭만을 꿈꾼다.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태양과 초록풀과 연둣빛 동박새와 주인에게 귀엽게 뛰어가는 개와 고양이가 있는 지구는 킹콩처럼 무섭기도 하지만 새벽이슬처럼 촉촉하고 아름다운 영원한 피난처일지도 모른다고 은근히 말해주고 있다. ■ 저자 송진 송진 시인은 1999년 이승훈 등 심사로 『다층』 제1회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는 『지옥에 다녀오다』 『나만 몰랐나봐』 『시체 분류법』 『미장센』 『복숭앗빛 복숭아』 『방금 육체를 마친 얼굴처럼』 이 있다. ■ 차례 1부 이상한 피카츄 이상한 피카츄 드뎌 왕콘치 고고 꼬부기 플로깅plogging 쁌쁌 레쿠쟈 버베나 하스타타 초승달 춘분春分 종일 놀아 종일 놀아 2 힘 문학의 집 서울 3월 31일 미망 찔레꽃 초파리 셋째 날 공空 2부 4월이란 발 혹은 별 3월 호흡 호흡 2 20220403 - 제주 4.3 민주항쟁 4월 3일 쌀 쌀봄 청명淸明 한식寒食 벚꽃과 된장찌개 꽃잎취격 창틀에 꽃잎 4월이란 발 혹은 별 체리 블러썸 cherry blossom 이가시다시이가시 - 자개농 안에서? 이가시다시이가시 - 자개농 안에서⑥ 3부 미영 소정 마을 미영 곡우穀雨 - 20220420 파우징 수업 닿다 태양은 모든 걸 보고 있다 파랑 스푼 파랑 스푼 2 영주 봄비 폭우 손가락 이팝나무 버스에서 내려서 걷다 입하春分 - 20220505 나는 재기 발랄해 4부 날씨의 잇몸 날씨의 잇몸 보리밥 쌈밥집 새라 파닥! - 하안거 크림애플파이 보리 게스트하우스 이가시다시이가시 - 자개농 안에서① 이가시다시이가시 - 자개농 안에서② 이가시다시이가시 - 자개농 안에서③ 이가시다시이가시 - 자개농 안에서④ 줄 버찌 등불 실거베라 6월의 바람 녹야 송진 | 2022년07월 | 168쪽 | 9900원 플로깅(plogging) 1부. 이상한 피카츄 이상한 피카츄 푸른 바다 위 용맹스럽게 날아가는 피카츄 창과 방패는 구름과 달 카레라이스 저녁 같은 밤이 오면 비벼 먹고 싶은 가족들이 자율 생성된다 배고픈 이상한 피카츄 배부른 이상한 피카츄 이상한 꽃나무 이상한 피카츄 산수유꽃 불꽃처럼 터지네 플로깅* plogging *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운동 쓰레기를 주우면서 걸어 걸으면서 쓰레기를 산책해 발끝마다 발광 순백으로 빛나는 지구 맑은 눈동자 윙크! 잉크이크윙크워커워킹하이킹사이클링 놀자 놀자 걸으면서 쓰레기야 나랑 산책해 목련 햇살은 빛나고 지구는 토닥토닥 위로 받는다 2부 4월이란 발 혹은 별 한식 寒食 찬밥을 먹는다 추운 바깥을 돌아다닌다 따듯한 무덤가에서 잠들다 엄마 - 엄마 - 아빠도 죽었는데 늘 엄마만 부른다 4월이란 발 혹은 별 강아지들이 꽃눈 맞고 있다 발이 네 개다 꼬리가 한 개다 멍멍 짖기도 하고 짖지 않기로 하기도 한다 그들의 혀는 연한 분홍빛 그들의 귀안은 진한 분홍빛 그들의 피는 붉다 3부 미영 미영 알아요 오늘 알아요 내일 곪은 몸은 알아요 곪은 정신은 몰라요 몸 따라 봄 가고 있어요 알아요 어제의 알약 알아요 손사래치는 미영 이제 그만.. 그만요 이제 봄은 제 몸을 알아요 앓고 난 뒤에 환해진 하늘 앓고 난 뒤에 환해진 빈자리 꽃산딸나무 황칠나무 다 우리 동네에 살아요 환하고 예뻐요 35 사랑하는 나날 사랑하는 나날이 흘러간다 이팝은 꽃을 피워 한밤중에 불쑥 선물한다 이봐 이팝! 고맙다구! 눈물겹게 고마우면 어떻게 해야 하지 포옹이라도 해야 하나 39번 시내버스 안에 나밖에 없는데 안내방송이 크게 나온다 브라보 주유소를 지난다 브라보! 휴먼시아를 지난다 휴먼! 버스 파업이 가까스로 새벽 4시에 해결되다 사실 이 이야기는 4월 25일 쓰여질 이야기들이다 4부 날씨의 잇몸 줄 107.7mhz 주파수를 맞추고 창을 열었는데 장산 줄기 오봉산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다 까치 두 마리 날고 오묘한 등불 같은 연분홍빛 버찌 우뚝 서 있다 벚나무 무성한 잎 사이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저절로 빛나는 것이다 저절로 보이는 것이다 저절로 알려지는 것이다 자신의 할 일을 잘하고 있으면 누가 봐도 봐주는 것이다 등불 연분홍빛 버찌가 사라졌다 연둣빛 새가 다녀간 뒤에 방충망은 알아차렸다 버찌도 새도 방충망도 등불이라는 것을 해는 질주한다 고요한 죽음처럼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청사포에 해녀가 산다

해운대 도심 속 어촌 마을 청사포 이야기 배은희 외 지음|최봉기 외 사진|빨간집|2017년 10월|221쪽|15,000원

청사포에 해녀가 산다

북집 bookzip ■ 책 소개 에코에코협동조합이 2016년 5월부터 약 4개월간 만나고 기록한 청사포 해녀들 이야기 제주출신이 아닌 자생적 육지해녀인 청사포 해녀들의 물질하는 이야기와 살아온 이야기를 채록하고 그들의 일상을 관찰하며 청사포 해녀만이 가진 이야기와 속성을 담아내고 있다. 청사포 해녀의 주요 물질 장소인 다릿돌의 이름을 하나하나 언급한 자료는 이 책이 거의 유일하다. 해녀들이 알려준 다릿돌의 이름을 표기하며 청사포 해녀와의 관계를 담았으며, 청사포 해녀도감에는 뒤에 이어질 해녀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한 물질 도구 명칭과 특징들을 일러스트로 담았다, 이 책에는 8명의 해녀와 해녀들을 배로 나르는 선장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겨 있다. 바다와 평생을 함께 살아온 해녀들이 어떻게 물질을 하게 되었으며, 해녀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과 내부의 시선은 어떤지, 물질 방식과 바다 속은 풍경 등에 대한 해녀들의 일상 이야기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삶과 속내까지 솔직하게 풀어내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청사포 해녀의 기원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 저자 배은희 외 배은희는 이것저것 기록하는 사람이다. 사람, 문화, 예술, 장소, 지역을 기록하고 출판하는 기획팀인 ‘빨간집’의 대표이며, 잡지를 만들었던 경험을 기반으로 이것저것을 기록하고 있다. 최봉기는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인 목사이다. 어릴 때부터 청사포 바닷가에서 놀았으며 지금은 청사포 고개 너머에 살고 있다. 주민들과의 친화력이 강해 해녀들의 이야기를 잘 이끌어 내는 능력을 발휘했다. ■ 차례 〈청사포 마을 가는 길〉 바다를 건너는 징검다리, 다릿돌 청사포 해녀도감 〈청사포에 해녀가 산다〉 달달달달 떨리고 심장이 톨돌돌돌 - 김수자 만족해놓고 생각을 해야지 - 김숙자 내 가고 싶으면 가고 놀고 싶으면 놀고 - 김업이 아이고 머할라고 숨 안 쉬고 벌이는 돈을 - 김화자 우리 세대에 몇 년 안 하면 물이 끝날 거야 - 김형숙 좀 허탈하지 그때는 저기까지 갔는데 - 이신자 이거 가지고 묵고살다가 죽어야 되겠다 - 정양순 야 우리는 돈 안주고 해수욕장 가고 - 정영자 해녀들이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이 - 한성호 〈물에 하러 가다〉 〈열길 물속 이야기〉 숟가락과 채, 마음에 꼭 드는 갈코리와 줄, 해녀의 능력 정영자 해녀 실종사건 정양순 해녀 공친 날 열 길 물속을 들어 가 보기나 했나 배은희 외 지음/최봉기 외 사진/빨간집/2017년 10월/221쪽/15,000원 바다를 건너는 징검다리, 다릿돌 청사포 바다와 송정 바다는 서로 이어져 있어서 자리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릿돌’은 그 경계에 자리한 다툼의 중심이었다. 이 다릿돌의 돌미역 채취권을 놓고 1930년에 청사포와 송정이 법정 소송까지 갔다. 그때 승소해서 다릿돌은 청사포의 영역이 되었다. 청사포 바다 가운데에는 작은 등대가 있는데, 이 등대를 받치고 있는 바위가 ‘석우돌’이다. 그 옆의 바위를 ‘상좌’라고 부른다. ‘석우돌’과 ‘상좌’ 쪽은 물살이 세기 때문에 힘이 있는 젊은 해녀나 갈 수 있다. 또 그 너머는 물이 깊어서 숨이 길지 않으면 들어가기도 쉽지 않다. 조금 떨어져서 ‘넙덕돌’이라 부르는 바위가 있다. 해녀들이 물질하다가 힘들면 올라가서 쉴만한 바위다. 그 밑으로 ‘거뭇섬(거뭇돌)’과 ‘안돌’이 있다. 다릿돌은 전복, 소라, 성게 등이 서식하는 바위섬이라 청사포 해녀들의 주요 물질 장소이며 물질의 첫시작점이기에 다릿돌을 빼놓고 청사포 해녀를 얘기할 수 없다. 1950년생 김수자 “달달달달 떨리고 심장이 톨돌돌돌 내 정신이 아이라 그 공포증이 안즉 있어” 동생인 김업이 해녀와 해안가에서 물질을 한다. 친정어머니와 세 자매가 모두 한마을에 산다. 젊었을 때는 깊은 바다로 나가 물질했지만, 어느 날 파도에 놀란 이후 한동안 물질을 할 수 없었다. 지금은 얕은 앞바다에 나가 물질한다. 처음 만난 날 “내 나(나이)가 여든 셋이다. 늙어 보이제?” 하고 농담을 던지셨다. 얼굴 가꾸어 볼 새 없이 살아온 삶을 별 일 아닌 듯 넘겨보려는 어머니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 어머니의 어머니도 해녀 하셨어요? 친정엄마도 했다. 젊었을 때 했으니까 몇십 년 안 했겠나. 내 처이 때도 했거든. 깍줌바리하고, 도박하고, 우뭇가사리 하고 그래 했다. 해녀 망아리 있제? 저래 안 작다. 코도 크고. 항그시 해놓고 다 못 가져오니까 바닷가 올라와 가지고 거서 망아리 밑을 풀어서 한 다라이 담아서 놓고, 또 나머지는 짜매서 지고 오고 그래했다. 망아리를 끌고 와 가지고 도로에 널어놓고, 또 한 망아리 지러 가는 기라. 비 오면 덮고, 비 안 오면 말리고 그래했다. 그때가 더 힘들었지. 그런 걸 하니까네. - 물질하기 전에 다른 일 해보신 적 있으세요? 아가씨 때 저 수영에 삼도물산 보세공장 한 삼 년 다녔다. 언니 결혼 할 때 나왔지. 엄마하고 집에 일을 하려면 내가 있어야 된다 아이가. 막내는 아직 어리고, 학교 다니고 하니. 그래서 엄마하고 내하고 농사짓고. 옛날에 하유~ 우리 언니도 있을 때 언니하고 내하고 일을 마이 했다. 산에서 나무해 가지고 집에 빼까리(더미) 이런 거 세 개 씩 딱 재가이고 해놓고. 우리 고생 마이 했다. 오빠도 없제, 남동생도 없제, 아무도 없으니까 엄마하고 우리들만, 여자들만 해야 되는 거라. - 본격적으로 물질하기 시작한 건 결혼하고 난 이후인가요? 결혼하기 전에 처녀 때도 했지. 나는 멀미를 그래 많이 한다. 다른 사람들은 약도 안 먹고 가는데 나는 바다만 가면 멀미약을 먹어야 돼. 물약을 한 병을 무야 해. 두 번째 가는 날은 반병, 고다음에는 이틀 삼일 달아 하면은 한 병 가지고 세 번을 노나 묵는 기라. 약 먹어도 바다 가면 멀미가 나와. 정신도 하나도 없고 머리도 띵~하이 미식미식하고. 데기 심하면 ‘내가 이 거 해 가지고 뭐 하겠노. 아이고야, 내 이거 안 할란다, 집에 갈란다. 내 죽어뿌면 뭐 하노,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 하다가도 쪼끔 괜찮으면 ‘아이고 내가 이걸 해야지, 이걸 해야 산다.’ 이래 하고 쪼끔 저기 하면 ‘아이고 내 이거 해가 머 하겠노, 내 죽는다 내 죽는다.’ 이라고. 그래그래 산다. (웃음) 내만 그렇다 내만. 멀미가 너무 심하다. - 처음 물질할 때부터 그러셨어요? 처음은 안 그랬어. 내가 옛날에는, 삼십 년 다 됐나, 다른 해녀들이 저 섬에 안 가더나, 배 타고. 내가 거기 다녔거든, 같이. 우찌 한번 파도에 놀랬는가 그거를 모르겠어. 우리는 석우돌에 빠져 가지고 물에 질하면서 상좌로 오는데, 상좌에 파도가 데기 치더라고. ‘와, 저 속에 드가면 안 되겠다, 죽겠다.’ 이래 싶어. 물발이, 조리(조류)가 세면 마음대로 안 가져. 아무리해도 떠내려가는 기라. 그 돌 위에 올라가면 죽는 기라, 그 파도에는. 그러다 한번 숨비(잠수) 턱~ 내려가 본 게, 거기에 깜짝 놀랬는 모양인 기라. 파도보고 겁을 먹어뿟는 거라. 물 밑에 해녀들이 삼발이, 닻 놓는 거 안 있드나? 그걸 못 빼겠드라고. 마 달달달달 떨리고, 심장이 톨돌돌돌 내 정신이 아이라. 안정이 안 되는 거라. 형숙이, 원철이 엄마라고 있다. “원철아, 원철아, 내 죽겠다. 내 닻 좀 빼라. 내 저 돌 우에 좀 올리주가.” 그라이께네 지 망 아리 놔놓고 왔대. 그래가 내 닻 빼 가지고 돌 위에 올리주드라꼬. 내가 거기 있으이까네 배는 안 오지, 혼자서 바다 보이 죽겠고, 마음이 안정이 안 돼. 나중에 배가 오는데 다른 사람들은 안 타고 내만 탔잖아. 그렇게 왔어. 그 길로 섬에서 물에를 얼추 한 삼십 년 가까이 못했지. 저기 진역 가면 정신신경과가 있다. 약을 무이 괜찮은 기라. 그래 그 약을 구 년 뭇다. 배운 게 해녀질 뿐이 더 있나. 섬에는 못가고, 여기 가에는 함 가보자 이래가. 인자 내가 깊은 데를 못 가는 거라. 그 공포증이 안즉 있어. - 살면서 어떤 재미가 있을까요? 돈 버는 재미지. 날 좋으면 바다 나가서 돈 벌제, 파도 치가 바다 못 가면 여 모여 놀제. 이게 제일 좋은 거지 뭐. 다른 게 뭐 있나. - 어릴 때 크면 뭐 해야지, 이런 거 없으셨어요? 아이고, 촌에 옛날에 그런 게 어디 있노. 처이 때도 ‘나는 물에 해묵고 산다.’ 이런 생각은 없었지. 딴 마을에 시집가뿌면 물에질이 어데 있노. 근데 그런 생각하고 딴 데 시집가면 가는 거고. 부모들이 보내주면 간다 이랬지 다른 건 없었다. - 어머니 집에 옛날 사진, 처녀 때 사진 있으세요? 내 처녀 때 사진 보면 탄복을 할 건데. (웃음) 내 처녀 때 사진이 없다. 옛날에 작은 집에 살 때 태풍이 와 가지고 집이 그때 파도에 한 번 쓸렸거든. 애들 학교 앨범하며 싹 다 떠내려 가뿠잖아. - 태풍이 바닷가에서는 참 큰일이네요. 옛날에는 진짜 걱정했다. 이제는 집이 안쪽에 있으니까, 태풍 오면 배만 신경 쓰면 된다. - 살면서 별일, 큰일이 없으신 거네요. 연애 해가 눈맞아 가지고 시집갔고, 그거밖에 없다. (웃음) 안 좋고 그런 것도 없고, 남보고 부럽다, 이런 것도 없고. 내 몸만 안 아프면 그기 제일 행복하다. 이 나이에는 그거 삐 없다. 부럽다해서 남의 돈 이 내 돈이 되나 안 되잖아, 그쟈? 1054년생 정영자 “야 우리는 돈 안주고 해수욕장 가고 얼마나 좋노?” 남편은 청사포 어촌계장이고, 아들 내외는 장어구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청사포 해녀 중 가장 젊은 해녀이며, 그만큼 수확량이 많다. 해녀 ‘세이’들 속에서 막내 노릇을 톡톡히 하다가도 적극적인 성격으로 청사포 해녀들의 물건들을 모아 판매하는 역할도 한다. 남편과의 연애담과 젊은 시절 이야기에서 당찬 바닷가 처이의 모습이 선연히 보였다. - 젊었을 때 이야기해주세요. 나는 여기 스물세 살에 시집을 왔거든. 원래는 기장 공수마을에 살았어요. 해녀는 안 했어요. 어릴 때 여름에는 더우니까 목 감으면서 불가사리 이런 것도 잡고, 천초 이런 것도 뜯고, 쪼끔은 해봤는데 많이는 안 했어예. 직장을 갔는데 열일곱 살, 여덟 살쯤에 갔나? 여기 ‘삼양라면’이라고 라면 공장이 있었거든. 언니가 그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나도 거기 들어가게 됐는데, 라면 회사에 일반인들이 견학 오고 학교에서도 오니까 그쪽에는 이쁜 아가씨들만. 내가 그런 데에 들어갔지예. (웃음) 나는 에이(A)반이고 언니는 비(B)반이라. - 남편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우리 친구가 쌍둥이인데 그 집이 우리 아저씨 이모 집인 거라. 우리 아저씨가 할 일 없이 왔다 갔다 했어. 배도 탈라고. 잠수 있지 잠수, 머구리. 우리 시가집이 대대로 머구리 집안이라. 우리 시아버지도 머구리질을 하고 있었고, 우리 시숙들도 하고 했었고. 우리 아저씨도 자기 아버지 배 따라다니면서 배운 거라. 총각 때는 무기 만들고, 지도 그리는 병기창인가 그런 데에 다녔는가 봐요. 다니다가 군대를 가서 월남 갔다 와 가지고 별로 할 일이 없으니까, 이모집 왔다 갔다 하 면서 여기 친구들이랑 머구리 일을 배웠는가 봐. 그래 가지고 저 아가씨가 괜찮네, 어짜네 저짜네 이래 가지고 눈이 맞아 가지고. (웃음). - 물질을 처음 할 때부터 잘한다는 소리 들으셨어요? 아니, 그때는 꼴찌 했지. 저녁 되면 앙장구를 해녀들이 갖고 온다. 나는 오백 그람, 삼백 그람, 일 키로도 못해 가지고 달아주고, 집에 누워있으면 잘하는 사람들이 밤에 저거끼리 한 번 더 확인한다고 “나는 오늘 사 키로데이”, “삼 키로데이”. 그렇게 가면 나는 방에서 뭐 되겠노. 삼백 그람, 오백 그람 해다 놓고 말도 못하고, 우리 신랑이 다 듣고 있는데. 그래 ‘내일이면 가서 악착같이 해야 되겠다.’ 이 생각만 있는 거라. 그래도 내가 가 가지고 할라 하고, 숨이 길고 이렇다고 빨리 되는 게 아니라 요령을 알아야 돼. 요런 자리는 전복이 붙는다, 요런 자리는 가면 물건이 있겠다, 없겠다. 이런 걸 생각을 하고 찾아가야지, 그냥 아무 데나 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 내 혼자 터득했지. - 해녀일 하면서 기억나는 일이 있나요? 배 스크류에 줄이 걸리면 해녀들이 들어가서 풀어줬거든. 우리가 물질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여기 있을 때 요청을 하는데 어느 날 정양순 할머니하고 둘이서 줄 풀러 간 거라. 저기 앞에 끄는 배 있지예. 뒤에 딸리가는 배가 있고, 그거를 ‘난찌’라고 하거든, 바지선. 그 난찌 배가 줄이 감겼는거라. 그 배가 등대 섬 옆에 붙은 거라 그래가 대표로 내랑 민지 할매, 정양순 씨하고 뽑혀 갔는 기라. - 정양순 어머니도 잘하시는 축에 속하셨네요? 잘했지, 엄청 잘했지. 내 에스오에스 청한 사람이 그 사람밖에 없다. “세이야, 내 닻 못 빼겠다.” 이라면 내려가 자기가 빼주고 이랬다. 지금은 디스크 수술해서 못하지. 제일 깊은데 들어가고, 제일 간이 크다니까. 최고 여기서 (엄지를 들며) 이기라니까. 싸움도 잘하고. (웃음) 지금도 고함지르면 벌벌 떤다. 그래 끌러 갔는데 같이 잠수하는 데 나는 도저히 무서워 가지고 ‘배 밑에 들어가면 스크류가 돌아가면 어떻게 하노.’ 배 밑으로 들어가야 되는 거라. 그러니 얼마나 무섭노. 나는 약간 공포증 이런 게 있거든, 폐쇄공포. 어둡고 좁고 그런데는 그래 무섭대. 자기는 막 잠수해 가지고 내려가가 막 이거 빼고 칼로 비는데 나는 무서워 가지고 같이 하는 척했지. 그래가 지금도 “드르븐 년, 니 년하고 같이 가서, 지는 기어올라 가뿌고 내 혼자 마 베낀다.”고 하믄서. (웃음) 그런 우스갯소리도 있고. - 해녀 하면서 이런 건 너무 좋다 하는 게 있어요? 여름에 너무 덥잖아요. 바다 가면 엄청 시원하거든요. 야, 우리는 돈 안 주고 해수욕장 가고 얼마나 좋노. 다른 사람들은 피서가면 돈 드는데 우리는 돈도 안 들고 얼마나 좋노. 추워서 떨리는데. 이라면서 웃고 하지. ** 정영자 해녀 실종사건 한번은 넙덕돌에서 하다가 내 혼자서 등대 있는 데까지 간 거라. 그 때는 철도 없었지. 남보다 못하면 안 되겠다 싶어 가지고 내 혼자 막 따고 있었는데, 사공이 태우러 왔는데 사람이 한 명 없어졌는 거라. 등대섬 너머에 있으니까 내가 안 보인 거라. 나는 정신없이 따고 있는 데 저거는 내를 못 찾아 가지고 돌아간 거라. “희영이 엄마가 없어졌다.” “바가치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그때 우리 신랑은 우리 아아들 델고 마산에 산낙지 먹으러 갔어. 소식도 모르고, 전화도 없으니까, 그때 삐삐는 있었을라나. 우리 시가 집은 발칵 뒤집힌 거라. 그래가 우리 시숙은 배 타고 나오고 우리 시 어마이는 내 죽었다고 수건 가지고 울고 댕기며 죽어도 육지로 흘러 나오라고 내를 부르면서. 그때 나는 한참 물질을 해 샀는데 배가 딱 온 거라. 그래서 나는 우리 태우러 온 밴가 싶어 가지고. (웃음) 그래 그 배인 줄 알고 탔는데, 우리 시숙이 딱 타고 있는 거라. “여서 뭐 하고 있는교! 동네가 지금 난리가 났구만.” 제일 나이 많은 해녀 할머니(김화자 해녀) 있지예? 그 할머니 아저씨가 우리를 싣고 갔는 거라. 내를 죽이 삤으니까 우리 살림 다 날라갔다고 그 할매도 울고 난리가 났는 거라. 그랬는데 살아오니까 그래도 반갑지. 나는 부끄럽지. 오니까 동네가 다 모여 있고 나는 그것도 모르고 한긋 따가지고 배에서 짊어지고 오니까 얼마나 미안노. 지금 같 면 ‘하이고, 미안해라.’ 이랄낀데 그때는 철이 없어 가지고 그걸 아나. 그냥 건들건들 집에 왔지. 그런 적도 있었다니까네. 그라이 이때까지 살았지. ** 열 길 물속을 들어 가 보기나 했나 청사포를 왔다 갔다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 해운대에 산지도 오 년이 되었으니 바다를 보면 오늘 물질을 하실는지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은데 알 수가 없다. 물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 바닷가에 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 바닷속이다. 해녀들에게 좋은 바다는 물살이 세지 않은 바다이다. 물살이 세면 몸을 가누는 것도 힘들지만, 물속이 뿌옇게 변해서 물건을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방향이 일정한 물살이 좋다. 물질을 하다 보면 물살에 떠밀려 가게 되어 있어서 굳이 물살을 거슬러 가면서 일을 할 필요가 없다. 배를 타고 나가면 먼저 해류의 방향을 봐야 한다. 물결이 어떻게 이는지를 보면서 물살의 방향과 세기를 가늠한다. 생각보다 물살이 너무 세면 잠수를 하고 올라오는 데 훨씬 힘이 든다. 그런 조류와 싸우며 서너 시간을 바닷속에 있기는 너무 힘들다. 바닷가 사람들은 계절과 시간대를 보고 대충 어떤 방향으로 바람이 불지 안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딱딱 들어맞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조류마다 이름이 다 붙어 있다. 물질하는 배를 타고 가며 조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애물이 어떻고, 바위에는 물이 어떻게 되고…. 하지만 제대로 알아들은 것이 없다. 마치 조선 시대 사람이 되어 컴퓨터에 관해 설명하는 것을 멍하니 듣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런 막막함이라니. 하지만 그 복잡한 용어들을 통해 조류가 얼마나 변화무쌍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물속은 겉보기와 다른 흐름이 있다. 선장은 배 위에서도 물속을 다 보는 듯 이야기하지만, 직접 들어가 봐야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해녀들은 그 알 듯 모를 듯한 물속에 들어가 물살과 싸운다. 그게 뭔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온몸으로 물살과 싸워야 하는 해녀는 이러쿵저러쿵하는 물 밖 이야기에 신경 쓰지 않는다. 오늘도 물질할 때 위험을 느낄 때가 있냐는 질문에 “뭐, 위험할 끼 있나.”는 심드렁한 대답뿐이다. 사람 속을 아는 것만 힘든 일이랴. 열 길 물속을 아는 것도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스크럼의 힘

5가지 역량이 만드는 단단한 성장 배동철 지음|서울경제신문|2023년 3월|256쪽|17,000원

스크럼의 힘

북집 bookzip ■ 책 소개 “최고의 인재보다 최적의 인재가 돼라!” 스크럼이 만드는 유연하고 발 빠른 대응 좋은 회사와 좋은 직업은 누구나 꿈꾸지만 좋은 역량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은 적다. 남들처럼 공부하고 스펙을 쌓아 간신히 직장을 잡고 나면 진짜 시합이 시작되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 시합에서 나를 지켜주는 것은 지식이나 시험점수가 아니다. 그동안 쌓아왔던 관계와 자신이 강점을 가진 역량이 무엇인가에 달려있다. 그것이 바로 ‘스크럼’이다. 세상의 변화는 가속화되고 그에 따라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졌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변화는 늘 위기이자 기회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미래의 변화에 대비하도록 저자는 우리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한다. “앞으로 노동은 어떤 식으로 바뀔까?”, “우리는 어떤 능력을 키워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기업은 어떤 인재를 원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지만 누구나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일의 방향이 잘못되면 실망스러운 결과를 얻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커리어를 쌓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하는 일의 방향을 점검하고 바꾸는 것이다. 일의 방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비즈니스의 성패가 갈린다. 원하는 일, 잘하는 일, 해야만 하는 일. 우리는 이 세 가지 일의 성격을 구분해야 하고, 이를 균형 있게 맞춰야 한다. 이 책은 ‘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성찰을 도와주고 ‘목적, 목표, 비전’으로 연결되는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도록 자세하게 설명한다. ■ 저자 배동철 기업 글로벌 전략 컨설턴트. 대한민국 1호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인 (사)스타트업포럼 상임대표이며 아시아미래인재연구소 공동소장, 인적성검사 및 공공기관 채용 대행 기업 엔잡얼라이언스의 회장이다. 또한 일본 HR·인크루팅 선도 기업 파소나그룹의 고문을 역임했고 한중일을 오가며 시대를 이끌어갈 창업가를 발굴하고 멘토링하고 있다. 미국 브릿지포트대학교(University of Bridgeport) 경영학과와 클라크대학교(Clark University) 경영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배재대학교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2000년 당시 최연소 기업가로서 외화획득 공로로 대통령표창을 받았으며 2010년 〈재팬타임즈〉 선정 ‘아시아를 이끌 100인의 CEO’에 오르기도 했다. 저자는 지난 30년 동안 크고 작은 기업을 창업해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얻은 귀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과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를 이 책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공저 《2020 부의 전쟁 in Asia》, 《2030년 부의 미래지도》는 한국과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 차례 추천의 글 1부_ 변화의 물결은 파도가 아니라 해일이다 ‘내가 왜 대학을 다니고 있지?’ 이것이 뉴 노멀입니다_ 40대 은퇴 시대 창직이 출발이다 정보가 변하고 있다 디지털 지구의 자전은 빠르다 머리 쓰는 일이 변화하고 있다 몸을 쓰는 일도 달라진다 마음을 쓰는 일도 달라진다 사물이 변하고 있다 2부_ 무엇을 바꿀 것인가 재미는 흥미를 이길 수 없고, 흥미는 의미를 이길 수 없다 제2, 제3의 커리어 일의 방향을 바꿔라 커리어 시스템을 구축하는 법 원하는 일 가치 있는 비전의 4가지 요소 원하는 일을 위한 선순환 구조 잘할 수 있는 일 해야만 하는 일 KRS 법칙 1:2:7 법칙 천칭의 법칙 일의 방점을 바꿔라 스크럼의 시대다 N잡러와 스크러머의 차이 N잡러의 일 스크러머의 일 3부_ 누구와 스크럼을 짤 것인가 인재 전쟁 시대, 정말 필요한 인재 Sensing, 위기와 기회를 감지하고 통찰하는 힘 센싱능력을 갖춘 사람 Connecting, 협업을 이끄는 힘 빅블러의 시대 외부의 협력을 끌어내는 힘 대가 없이 줄 수 있는 힘 평판의 힘 다양성의 힘 Remixing, 당연한 것을 새롭게 만드는 힘 주목받는 리믹싱의 조건, MZ이즘 Uniting, 기술을 융합하는 힘 유니팅능력이 뛰어난 사람 Mapping, 전체를 시각화하는 힘 스크럼이 답이다 4부_ 어떻게 할 것인가 비정상이 정상인 시대 기하급수적 변화의 시대 기하급수적 변화의 의미 1단계: 수용하라, 미래와 부의 변화를 예언가인가, 예측가인가 부의 원천이 바뀌고 있다 개별 네트워크 조합이 만들어낸 BTS 테슬라는 네트워크 기업이다 2단계: 이해하라, 미래 산업구조를 5개의 인프라 레이어 5개의 응용 영역 해체하고 재구성하라 3단계: 만들어라, 스크럼 역량을 공유비전, 견고한 스크럼의 근간 4단계: 참여하라, 강력한 플랫폼에 잘 짜여진 스크럼이 잘나가는 기업을 만든다 저자의 말 참고자료 배동철 지음/서울경제신문/2023년 3월/256쪽/17,000원 변화의 물결은 파도가 아니라 해일이다 ‘내가 왜 대학을 다니고 있지?’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겁니다. ‘대학이 다 무슨 소용인가?’ 그동안 사람들이 기를 쓰고 대학을 가려고 했던 이유는 자명합니다. 이런저런 개인적 상황이 있겠지만, 대부분은 ‘취업을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요? 현재 대학생들은 새로운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나를 내세울 만한 내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어떤 스펙을 얼마나 쌓아야 내가 기업의 눈에 들까? 곧 사회로 나갈 텐데 얼마나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하지? 공부도 하고 스펙도 쌓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는데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방향을 찾을 수 있을까? 온갖 걱정이 마음속 깊이 똬리를 틉니다. 늘 초조하고 불안합니다. 청년들이 원하는 곳에 취업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입니다. 최근 늘어난 청년 취업자 가운데 임시직 증가분은 전체의 70퍼센트에 달합니다. 청년 취업자 10명 중 7명은 1년 미만의 단기 계약자입니다. 대학 시절 그토록 ‘노오력’ 했지만 취업 시장은 차갑기 그지없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년들도 이젠 포기한 모양입니다. 2021년 한 취업 포털 사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대졸 취업준비생 10명 중 7명은 ‘첫 직장으로 중소기업도 좋다’고 답했습니다. 아예 취업을 포기하는 청년까지 크게 늘었습니다. 이른바 ‘취포세대’입니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더 심해졌습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 3월 청년 실업자는 41만 명을 넘었습니다. 청년 체감실업률은 26퍼센트를 상회합니다. 다시 말해 사회에서 일할 마음이 있는 청년 중 4분의 1이상이 실업자이거나, 너무 적은 시간만을 일해 추가 취업이 필요한 초단시간 취업자였다는 뜻입니다. 창직이 출발이다 우리는 세상의 변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단단한 개인이 되고, 단단한 팀을 찔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한 방법론에 앞서 앞으로 꼭 알아야 할 핵심 키워드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바로 ‘창직’입니다. 이 단어가 다소 생소한 분도 계실 겁니다. 창직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구직과 창직의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기존에 있는 직업을 찾으면 구직이고, 새로운 직업을 만들면 창직입니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창직을 ‘개인의 재능과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현실화하여 경제적, 예술적,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 냄으로써 창조적으로 일감과 일자리를 만들어 나가고 자기 주도적으로 직업과 일자리를 개척하는 활동’으로 설명합니다. 한국창직협회에서는 ‘스스로 자신의 적성분야에서 재능과 능력에 맞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직업이나 직무를 발굴하여 노동시장에 보급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에를 들면 에코 라이프 디자이너, 미래 캐스터, 관점 디자이너, 푸듀케이터, 반려동물 상조 전문가, 업사이클러, 메시지 필름 제작자, 메타버스 건축가, 아바타 디자이너 등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던 독특한 이름의 직업이 그것입니다. 비즈니스 세계는 창직 친화적으로 진화 중이며, 이런 흐름을 만들어낸 심층적 힘은 ‘정보’ 와 ‘사람의 일’ 과 ‘사물’의 근본적 변화입니다. 이 심층원동력이 가공할 속도로 세상을 바꾸고 있습니다. 앞으로 10년 후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입니다. 이제 기존 관념을 바꿔야 할 시간입니다. 정보가 변하고 있다 정보란 ‘의미가 부여된 자극’입니다. 외부의 자극이 머릿속에서 구체적인 형태로 만들어져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런데 지금 이 정보의 형태와 종류가 크게 바뀌고 있습니다. 정보의 가장 큰 변화는 그 형태에 있습니다. 먼저, 정보가 조각조각 나뉘며 파편화하고 있습니다. 책이 디지털화되면서 책의 내용이 조각조각 나뉘어 인터넷에 떠돕니다. 지상파 뉴스가 꼭지별로 나뉘어 인터넷에 오릅니다. 예능 방송 하이라이트는 쪼개져 나옵니다. 소셜미디어 트위터는 글자를 280자 단위로 쪼갰습니다. 동영상 플랫폼 틱톡은 영상을 10초로 나눴습니다. 유튜버들도 드라마 속 장면을 쪼개서 여러 밈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무의미한 정보가 의미 있는 정보로 변하고 있습니다. 먼저, 개인의 일상 정보입니다. 매일의 나의 행동 일거수일투족이 디지털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내가 야외 어느 곳을 돌아다녀도 곳곳에 설치된 CCTV가 나의 행동을 기록합니다. 하루에 우리가 CCTV에 찍히는 횟수는 얼마나 될까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하루 평균 83.1회, 심지어 이동 중에는 9초에 한 번꼴로 노출된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이런 정보가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CCTV 정보는 범법자를 식별하고 추적합니다. 하지만 집도 더는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공간이 아닙니다. 최근 집에도 홈 CCTV를 장만한 사람이 많으니 자는 시간까지 24시간 CCTV로 기록되는 세상입니다. 심지어 집에서 내가 가족들과 하는 말이나 혼자서 중얼거리는 말까지 디지털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 감시자는 바로 인공지능 스피커입니다. 정보는 이제 인간의 감각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기록합니다. 구글은 전 세계 도로 구석구석을 카메라가 달린 차량으로 누비며 세상을 디지털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바닷속까지 디지털로 기록하고 있지요. 하늘 위에서는 저궤도 인공위성이 자동차의 위치, 항만 컨테이너 숫자, 유통업체 주차장 현황, 원유 저장 현황, 농작물 성장 과정을 디지털로 기록합니다. 심지어 살아 숨 쉬는 사람의 신체 정보까지 디지털로 복제해 ‘아바타 환자’를 만드는 시도까지 이뤄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금융권에 손바닥 정맥 정보를 등록하면 공항에서 별도 등록 및 신분증 확인과정 없이 국내선 항공기에 탑승할 수 있는 서비스도 탄생했습니다. 지금 땅 위에서, 하늘에서, 바다 밑에서 그리고 우리 몸속 구석구석에서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수많은 종류의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정보가 디지털로 기록되면서 쪼개지고, 확산하며, 새롭게 탄생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바꿀 것인가 일의 방향을 바꿔라 불확실하고 급변하는 시장에서 지속할 수 있고 확장이 가능한 커리어를 설계하려면 크게 3가지를 바꿔야 합니다. 일의 ‘방향’과 일의 ‘방점’ 그리고 일의 ‘방식’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먼저 내 일의 방향이 시대의 흐름에 맞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아무리 안정적이고 높은 수준의 급여를 받는 일이라도 일의 방향이 틀리면 머지않아 곤란한 상황에 부딪히게 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곧 인공지능이나 기계로 대체될 수 있는 일이라면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새로운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공개한 한국의 직업정보 보고서에 따르면,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이나 장비로 대체될 상위 20가지 직업은 다음과 같습니다. - 주유판매원 - 보험인수심사원 - 통신기기 판매원 - 계기 검침원 및 가스 점검원 - 방송·통신·인터넷케이블 설치·수리원 - 타이어·고무제품 생산기계 조작원 - 총무 및 일반 사무원 - 금융자산운용가 - 은행 사무원(출납창구 제외) - 생산관리 사무원 이 중 보험인수심사원이나 금융자산운용가는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은행 사무원 역시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과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이 직업군이 앞으로 인공지능이나 기계로 대체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지목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당장 기존 직장을 버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안정적인 소득원을 두고 두 번째, 세 번째, 심지어 네 번째 커리어까지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제일 바보 같은 조언이 바로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과감히 사표를 쓰고 새 일을 찾아라’입니다. 지금은 본업을 유지하면서 다른 분야의 커리어 시스템을 차근차근 만들어야 합니다. KRS 법칙 안정적인 커리어 시스템을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은 크게 3가지입니다. 지식(knowledge), 관계(Relationship), 그리고 영성(spirituality)과 관련된 일입니다. 먼저 지식을 얻기 위한 기본적인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고등교육을 받는 이유는 기본적인 공동체 생활을 원활하게 영위하기 위함입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커리어를 쌓기 위해서는 세상의 변화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쌓고 갱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반드시 해야만 할 일 중 하나입니다. 두 번째가 관계입니다. 관계는 초연결 사회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 나의 커리어는 크게 바뀝니다. 자신이 소심하고 낮을 가린다고 사람을 가려서 만나거나, 항상 만나던 사람들과만 관계를 맺는다면 커리어의 확장성은 매우 떨어지게 됩니다. 때로는 만나기 싫거나, 만나기 힘든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일과 관련이 된다면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관계 맺기를 시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느슨한 관계가 기회로 바뀌기 이해서는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세 번째인 영성입니다. 3가지 중 가장 많이 신경을 쓰고 보강해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영성이란 차가운 음지보다는 따스한 양지, 딱딱함보다는 부드러움, 찌푸림보다는 미소, 태풍보다는 햇살, 먹구름보다는 뭉게구름과 같은 것입니다. 행복과 감사함이 샘솟는 마음의 원천이죠. 비즈니스에서 쓰는 다른 말로 대체하자면 ‘인성’ 또는 ‘양심’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이런 영성은 상대와 관계를 더욱 촘촘히 하고 높은 수준의 연결을 가능하게 합니다. 초연결 사회에서 신뢰는 매우 중요합니다. 신뢰는 상대를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 자주 바뀌고, 말과 행동이 다르다면 그 상대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 상대를 배제한 채 오로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만 움직인다는 증거입니다. 영성 지능이 떨어지는 것이죠. 영성은 한마디로 ‘내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요구하지 말고, 내가 받고 싶은 대로 남에게 줄 수 있는 지능’입니다. 그래서 이 능력이 풍부한 사람은 마음이 따뜻하고 항상 얼굴에 미소가 가득합니다. 또 영성이 충만한 사람은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므로 집중력이 높습니다. 높은 수준의 지식을 쌓는 데 그만큼 유리합니다. 누구와 스크럼을 짤 것인가 인재 전쟁 시대, 정말 필요한 인재 인재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글로벌 인재를 붙잡기 위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특히 페이스북,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이른바 빅테크 기업들은 최근 대세가 된 메타버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죠. 관련 기술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것을 넘어 전 세계 인재들을 싹쓸이하고 있습니다. 현재 페이스북의 XR 인력은 무려 1만 명 이상이고 애플, 구글도 수천 명에 이릅니다. 한국도 레이더망에 걸리긴 마찬가지여서 국내 기업에서 이들 빅테크 기업으로 영입된 인재들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심지어 빅테크 기업들은 대학원에서 연구 중인 학생까지 ‘입도선매’ 할 정도로 인재 영입 경쟁이 치열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빅테크 기업들이 공통으로 붙잡고 유치하려고 경쟁하는 인재는 업무에 고도의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는 ‘디지털 근로자’입니다. 4차산업혁명의 근간이 정보통신 기술이고 초연결시대에 디지털 전환이 필연적인 까닭이지요. 문제는 디지털 전환이 필연적인 까닭이지요. 하지만 앞으로 기업에 필요한 인재는 전문 개발인력뿐 아니라 5가지 새로운 능력을 가진 인재입니다. - 변화를 꿰뚫어 시장의 기회와 위기를 감지하는 능력 - 기업 내부와 외부 자원을 연결하고 응집해 협업을 이뤄내는 능력 - 당연한 것을 낯설게 하는 능력 - 다양한 기술을 통합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 일을 시각화해 공유하는 능력 나는 이 5가지 능력을 보유한 구성원들이 모인 조직을 ‘스크럼’이라고 부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기업이 이런 5가지 능력을 갖춘 인재가 아예 없거나, 한쪽에 치우쳐 있거나, 있어도 회사 전체부서에 뿔뿔이 흩어져 있습니다. 심지어 해당 인재가 회사에 존재하는지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유망한 산업 분야에서 개발 능력이 뛰어난 인재가 모여 있으면 무조건 성공하리라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위 역량 중 하나의 역량이라도 부족하다면 성공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집니다. 이 5가지 역량은 서로 상호보완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빅블러의 시대 지금은 ‘빅블러(Big Blur)’의 시대입니다. 블러란 사전적으로 흐릿해진다는 의미로 빅블러는 미래학자 스탠 데이비스가 그의 저서 블러현상 : 연결 경제에서의 변화의 속도에서 사용한 데서 유래했습니다. 빅블러는 기존에 존재하는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소위 ‘경계 파괴’입니다. 경계가 파괴됐다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서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이죠. 얼핏 긍정적 의미 같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움직이지 않으면 곧바로 나에게 위기가 들이닥친다는 의미가 됩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저 건너편에 있던 기업이 내 영역에 침범해오면 내 시장은 잠식당합니다. 대표적으로 카메라 시장이 스마트폰 시장에 잠식된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사물인터넷, 핀테크, 인공지능, 드론 등 4차산업혁명의 혁신적인 기술이 등장하면서 빅블러 현상은 더욱 가속되고 있습니다. 유통업계는 그야말로 전쟁터를 연상케 합니다. 오프라인 대형 유통업계는 다른 대형 유통업계가 아닌 쿠팡이나 11번가, G마켓 등과 같은 인터넷 쇼핑 업체에 시장을 잠식당하더니, 이들 업체마저 이젠 거대 포털 사이트에 시장을 순식간에 내주고 있습니다. 금융권도 전쟁터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우리는 은행을 통해서만 송금하지 않습니다. 카카오나 네이버와 같은 핀테크 앱을 통해 세계 곳곳에 송금할 수 있죠. 소셜 네트워크 업체나 포털 업체가 금융권으로 속속 진입하고 있습니다. 빅블러의 흐름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2020년 신년사에서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놀랍게도 “스타벅스가 경쟁 상대”라고 밝혔습니다. 스타벅스는 커피 전문점입니다. 그런데 스타벅스는 멤버십 시스템이 구축된 선불카드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고객의 충전금을 받아두고 원하면 환불도 해줍니다. 고객의 40퍼센트는 스타벅스 앱을 이용해 결제합니다. 스타벅스는 앱에 예치된 금액을 정확하게 공개하고 있지는 않지만, 업게에서는 미국에서만 약 12억 달러(약 1조 4,800억 원), 전 세계적으로는 20억 달러(약 2조 4,000억 원)가 넘는 예치금이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아니나 다를까요. 2018년 10월 스타벅스는 이미 아르헨티나 은행 방코갈리시아와 파트너를 맺고 인터넷 뱅킹이 아닌 실제 온라인 은행 지점을 오픈했습니다. 은행 이름도 ‘커피은행’입니다. 더 나아가 비트코인을 활용해 전 세계 어디에서든 하나의 앱으로 현지 통화 결제가 가능하도록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은행권이 바짝 긴장하며 스타벅스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자동차 시장도 거대한 빅블러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무려 지난 100여 년 동안 기존 내연기관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보였던 자동차 업계는 빅블러 현상이 가속되면서 최근 10년도 되지 않은 짧은 기간 동안 친환경화, 지능화, 서비스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급격히 이동 중입니다. 그 선두주자는 기존 자동차 제조회사가 아닌 ICT 기업 테슬라입니다. 2022년 10월 기준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6,900억 달러로 글로벌 ‘넘버 1’인데요. 놀랍게도 폭스바겐·토요타·닛산·현대차·제네럴모터스·포드·혼다·피아트크라이슬러·푸조 글로벌 9대 자동차 제조업체의 시총을 합친 것보다 많습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기하급수적 변화의 시대 흔히 예상치 못한 일이 자주 발생해 개인이나 기업이 의사결정 자체를 하기 힘든 상황을 불확실성이 크다고 이야기 합니다. 특히 구성요소가 증가하고 구성요소 간 상호작용이 늘어날수록 변화의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면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합니다. 사실 기하급수의 위력을 처음 언급한 사람은 인구론을 저술한 토머스 맬서스입니다. 그는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느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5년마다 인구가 2배 늘면 2세기 뒤 인구와 식량비율은 ‘256 대 9’가 되고, 3세기 뒤에는 ‘4,096 대 13’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물론 출산율 저하로 이런 파멸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인류 문명 발달과정을 봐도 기하급수적 변화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과거 농경시대는 6,000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아마 농경시대 사람들은 그 시대가 영원하리라 생각했겠죠. 그런데 1700년대 증기기관과 방적기가 발명되면서 농경사회가 산업과 도시로 전환되며 산업화 시대(1차산업혁명)가 새롭게 열렸습니다. 연이어 철강, 석유 및 전기 분야와 같은 산업과 모터, 전화, 전구, 축음기 및 내연기관 기술이 급격히 발달했습니다(2차산업혁명). 하지만 1970년 개인용 컴퓨터, 인터넷 및 정보통신기술이 등장하면서 산업화 시대는 200년 만에 끝을 맺습니다. 그리고 소위 정보화 시대(3차산업혁명)가 새롭게 열립니다. 홈페이지와 이메일이라는 것이 등장하고 인터넷을 통한 정보검색이 일상에 자리잡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2016년 이세돌 9단을 꺾은 인공지능 기술이 등장하면서 정보화 시대 50년이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지금은 로봇공학, 인공지능, 나노 기술, 양자 프로그래밍, 생명공학, 사물인터넷, 3D 프린팅 및 자율주행 등 혁신적인 디지털 기수이 발달하는 후기정보시대 즉, 4차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바로 지금이죠. 하지만 4차산업혁명 시대도 2030년 이후가 되면 초연결시대로 접어듭니다. 불과 10여 년 전후로 지금과는 또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20년 만에 4차산업혁명 시대가 끝날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1990년대 인터넷 사용인구는 3억 5,000만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2010년에는 20억 명, 2014년에는 30억 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습니다.2023년에는 57억 명, 2030년경에는 전 세계 79억 명의 인구가 인터넷으로 연결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 세계를 패닉에 빠뜨렸던 코로나19 역시 이런 기하급수적 변화 양상을 보였습니다. 이처럼 기하급수적 변화를 통해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을 물리학의 복잡계에서는 ‘거시적 창발 질서’라고 말합니다. 학술적으로 말하면 ‘열린 시스템을 구성하는 하부 구성요소들이 특정한 조건에서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내는 시너지 효과’입니다. 여기서 열린 시스템은 지금처럼 점점 모든 것이 연결돼 개방되는 세상을 말합니다. 연결되면 연결될수록 그 속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사람들이 특정한 상황에서 긴밀히 상호작용을 할 때 급격한 변화를 만들며 새로운 질서를 창조합니다. 즉, 기하급수적 변화는 단순히 불확실성과 혼돈만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의 근원이 됩니다. 새로운 질서가 창직자에게 유리한 상황인지 불리한 상황인지의 문제만 남게 됩니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보도 섀퍼 부의 레버리지

경제적 자유로 가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 보도 섀퍼 지음|한윤진 옮김|비즈니스북스|2023년 2월|400쪽|17,500원

보도 섀퍼 부의 레버리지

북집 bookzip ■ 책 소개 26살에 파산하고 30살에 백만장자가 된 보도 섀퍼가 직접 깨닫고 경험한 가장 빠르고 확실한 부의 축적의 길! 지금보다 돈을 더 벌고 싶은가? 그 시작은 지금 내가 있는 현실을 파악하는 것이다! 당신은 왜 돈에 쫓기며 살고 있는가? 당신은 어느 분야에서 일하고 있으며 그 분야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가? 당신이 한 번 일해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일회성인가, 다회성인가? 당신의 소득원은 단 하나뿐인가? 당신의 자산은 얼마만큼의 이자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지금보다 돈을 2배 이상 번다면 당신의 삶은 무엇부터 바뀔 것인가? 이 질문들에 바로 답하지 못했다면 저자는 그것이 바로 당신이 돈을 벌지 못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책의 맨 앞에 나의 현 소득 상태를 파악하는 28가지 체크리스트가 담겨 있다. 이 28가지를 점검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이 책에서 얻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돈을 더 벌기 위해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저자는 직접 자신의 삶에 적용하고 실천해 밝혀낸 부의 축적 공식을 토대로 실제 강연과 다양한 컨설팅 사례들을 통해 누구에게나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조언이 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아냈다. ‘돈을 버는 5가지 분야’, ‘돈에 관한 사고방식을 점검하는 법’, ‘달라진 시대에 돈을 버는 12가지 규칙’, ‘5가지 분야에서 고소득을 이루는 방법’ 등 어떤 환경이나 조건에서든 “나는 어떻게 해야 더 빨리 돈을 벌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이 한 권을 통해 찾도록 돕는다. 20년 넘게 저자의 대표작이자 스테디셀러로 읽혀온 ‘보도 섀퍼 부의 레버리지’는 지금 읽어야 더욱 실천적이고 살아 있는 경제적 자유를 향한 조언들로 가득 차 있다. 당신은 3년 안에 매월 얼마를 벌고 싶은가? 이 책을 읽고 난 후 당신이 원하는 그 돈은 당신의 현실이 되어 있을 것이다! ■ 저자 보도 섀퍼 저자 보도 섀퍼는 독일 최고의 금융전문가에서 세계적인 머니 코치이자 강연가로 25년 넘게 활동하며 수천만 명의 삶을 바꿨다. 대학 졸업 후 능력을 인정받고 경력을 쌓으며 꽤 높은 연봉을 받으며 일했지만 ‘돈은 나쁜 것이다’, ‘돈은 사람을 망친다’ 등 어렸을 때부터 가져온 돈에 대한 파괴적 신념으로 26세에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파산하게 된다. 이때 부의 원칙을 가르쳐준 멘토를 만나게 되고 돈이 불어나는 원리를 깨우쳐 4년 후 30세에 가진 돈의 이자만으로 평생을 영위할 수 있는 경제적 자유를 이루게 된다. 그는 단순히 경제적 자유를 이룬 데 멈추지 않고 돈과 성공, 행복의 문제를 꾸준히 연구했다. 그리고 돈에 대한 마인드를 바꾸는 데 있어 데일 카네기, 세네카, 토니 로빈스, 로버트 기요사키, 디팩 초프라 등 다양한 분야의 전설적인 멘토들이 말해온 나와 세상, 사물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사람은 누구나 부를 쌓고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자신이 직접 깨닫고 경험한 부의 축적 원리를 정리해 강연과 집필 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그의 강연과 세미나는 유럽 전역에서 화제를 불러모으며 경제적 자유에 대한 돌풍을 일으켰고, 20년 만에 개정증보판으로 돌아온 이 책에는 그가 단 4년 만에 어떻게 압도적 부를 이루고 완전한 경제적 자유를 얻게 됐는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법과 마인드가 담겨 있다. 또 저자가 직접 만들어 제안하는 자산을 증식시키는 공식도 소개된다. 현재 직업으로 얼마를 벌고 있는지, 어떤 경제적 목표를 세워야 하는지, 이를 이루기 위해 일과 돈, 인생을 어떻게 경영해야 하는지 그 답을 찾도록 12가지 부의 원칙과 수입을 불리는 15가지 계명 등을 전한다. 이번 개정증보판에는 저자가 그동안 더욱 발전시켜온 돈을 버는 기술적인 조언과 진정한 성공에 대한 깊이 있는 메시지를 더했다. 저서로는 ‘보도 섀퍼의 돈’, ‘보도 섀퍼의 이기는 습관’, ‘멘탈의 연금술’,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 등이 있다. ■ 역자 한윤진 역자 한윤진은 연세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수학했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 ‘코스톨라니의 투자노트’, ‘사랑한다고 상처를 허락하지 마라’, ‘자기 회복력’ 등이 있다. ■ 차례 한국어판 서문_ 당신만의 부와 성공의 레버리지를 찾길 바라며 들어가며_ 나는 이제 돈을 더 벌기로 했다 체크리스트_ 지금 나의 소득은 어떤 상태인가 제1부 나는 부자가 될 수 있는가 제1장 부와 성공이라는 게임 제2장 지금까지 배운 돈에 관한 생각을 점검하라 제3장 돈을 버는 규칙은 어떻게 달라졌나 제4장 직장인으로 살 것인가, 투자자로 살 것인가 제5장 인생에서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찾아라 제2부 부의 레버리지로 경제적 자유를 이루어라 제6장 그냥 일하지 말고 즐길 수 있는 것을 하라 제7장 직장인, 이렇게 돈을 더 벌어보자 제8장 투자자, 스스로 황금알을 낳아라 제9장 전문가, 최소 시간 최대 효율로 벌어라 제10장 기업가, 위험을 감수한 만큼 큰돈을 벌어라 제11장 돈을 더 벌고 싶다면 나누는 법도 알아야 한다 제12장 돈으로 시간을 살 때 경제적 자유가 시작된다 감사의 글 부록 보도 섀퍼 지음/한윤진 옮김/비즈니스북스/2023년 2월/400쪽/17,500원 나는 부자가 될 수 있는가 부와 성공이라는 게임 돈을 버는 5가지 방법 보다시피 별은 둘로 나뉜다. 별의 오른쪽에는 두 가지 소득 분야, 왼쪽에는 세 가지 소득 분야가 위치한다. 나는 여기서 두 가지 사항을 설명하고자 한다.

웰씽킹

부를 창조하는 생각의 뿌리 켈리 최 지음|다산북스|2021년 11월|316쪽|16,000원

웰씽킹

북집 ■ 책 소개 “결핍의 생각에서 풍요의 생각으로, 부의 흐름을 완전히 전환하라!” 이 책 『웰씽킹』은 부를 창조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의 뿌리를 이해하고 체득하기 위해 ‘풍요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풍요의 생각은 결핍의 생각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풍요의 생각이나 결핍의 생각이나 모두 에너지이지만, 그 방향성은 정반대다. 결핍의 생각은 과거에 잡혀 있다. 풍요의 생각은 현재와 미래로 향한다. 그래서 결핍의 생각은 당신의 인생을 제한하고 당신을 벽에 가둔다. 풍요의 생각은 인생의 지평을 넓히고 당신의 벽을 부순다. 당신의 인생을 제한하는 벽은 세상에 대한 믿음, 타인에 대한 믿음, 나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생기는 고정관념이다. 부자들은 이 세 가지 벽을 부순 멘탈의 소유자들이다. 당신도 이 세 가지 벽을 부순다면 풍요로운 삶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켈리 최 글로벌 기업 켈리델리 창립자 및 회장 시골에서 태어나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힘든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졸업장이라도 있어야 먹고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 큰맘 먹고 상경하여 소녀공이 되었다. 그때 나이가 열여섯 살이었다. 낮엔 봉제공장으로, 밤엔 야간 고등학교로 눈코 뜰 새 없이 주경야독하며 꿈을 향해 전진했다. 그 결과 30대에 성공 가도에 올랐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남은 건 10억이라는 빚뿐이었다. 죽을 만큼 열심히 살았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 자신의 인생을 보며 죽음까지도 생각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자신과 똑같은 상황 속에서도 큰 부를 이룬 부자들의 습관과 생각을 체득하기 위해 1000여 명의 대성한 사람들을 연구하고 몸소 실천했다. 그 덕분에 유럽 12개국 1200개 매장, 연매출 6,000억 원이라는 고속 성장을 이룬 글로벌 기업 켈리델리(KellyDeli)를 일궈냈다. 부자들의 성공 방법을 삶 전반에 적용하여 인생을 역전시킨 것이다. 이후 자신이 산 증인이 된 경영 노하우와 부자의 마인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웰씽킹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모든 사람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선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평생의 사명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공헌하는 삶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는 켈리 최는 성장, 도전, 상생이라는 공생의 철학으로 오늘도 많은 이에게 희망의 불씨를 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2021)가 있다. ■차례 추천사 프롤로그 “내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깨달았다!” 제1부 인생의 밑바닥에서 싹튼 부의 씨앗 그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다 넘어지지 않고 걸을 수는 없다 세 가지를 결단하다 1000명의 사람을 스승으로 삼다 한 단계 성장을 위한 마중물 같은 것 100일만 실천해도 누구나 알게 된다 돈과 공헌 그리고 인격까지 완성될 때 “대신 돈은 오픈하고 벌어서 갚으세요.” 1년에 걸쳐 대서양을 횡단했다 부자에 대한 르상티망이 있는가 당신은 이미 성공의 불씨를 얻었다 그 모든 비밀은 웰씽킹에 있다 제2부 부를 창조하는 생각의 뿌리, 웰씽킹 부를 위한 초석, 생각의 뿌리 1 부를 위한 초석, 생각의 뿌리 2 부를 위한 초석, 생각의 뿌리 3 웰씽킹의 정수는 시각화다 웰씽킹의 여섯 가지 시각화 방법 “그럼요, 아주 중요합니다!” 내가 만난 부자들은 확언의 대가였다 그러니 선언하고 또 선언하라 부모로서 떳떳한 마음을 갖고 싶은가 여성들을 위한 멘토가 되고 싶다 인생의 수레바퀴를 균형 있게 디자인하라 내가 센강에서 한번 죽었듯이 나는 그때 동행의 아름다움을 배웠다 에필로그 “공헌하는 자가 곧 웰씽커다!” 켈리 최 지음/다산북스/2021년 11월/316쪽/16,000원 인생의 밑바닥에서 싹튼 부의 씨앗 그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한성실업, 나의 첫 직장. 그곳은 열여섯이었던 나의 일터였고 집이었다. 전북 정읍에서 버스를 타고 저녁 무렵 서울 답십리에 도착했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소녀들이 버스에서 우르르 내렸다. 내일부터 ‘공순이’로 불리게 될 이 소녀들은 누군가의 안내를 받고 낯선 건물로 발길을 옮겼다. 한 층 전체가 기숙사였던 건물에는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10여 개의 방이 있었다. 한 방에 3층짜리 철제 침상이 12개씩 있었다. 캡슐처럼 생긴 작은 방에 서른여섯 명의 소녀들이 모두 들어오자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해졌다. 당연히 기본적인 생필품은 준비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불은 물론 세면도구도 각자 준비해야 했다. 난방이 되긴 했지만 12월의 싸늘한 냉기를 이불 없이 이겨내기란 쉽지 않았다. 한성실업은 돈을 벌려고 선택한 회사가 아니었다. 나처럼 가난한지만 학업을 이어가고 싶은 소녀들을 야간학교에 보내준다는 명목으로 운영되는 회사이기도 해서 잔업이 없었다. 공장일은 아침 8시에 시작해서 오후 5시에 끝났다. 학교는 오후 6시에 시작했다. 1시간이나 여유 있는 것 같지만 공장에서 학교까지 30분 남짓 걸렸다. 게다가 천을 만지는 일이라 일이 끝나면 머리며 옷이며 먼지가 뿌옇게 내려앉아서, 옷을 털고 씻는 일부터 가방을 챙기고 간단히 저녁까지 먹으려면 모든 일을 20분 내에 끝내야 했다. 이듬해 늦가을이었다. 여느 때처럼 공장 앞에는 우리를 학교로 실어 나를 버스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날 나는 웬일로 일찍 버스에 탔다. 창밖에선 나랑 가장 친한 친구 영숙(가명)이가 손에 무언가를 든 채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었다. 손에 들린 건 보나마나 백설기 빵과 우유였을 것이다. 그날은 일이 좀 늦게 끝났거나 씻는 데 줄이 길어서 저녁을 먹지 못한 모양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버스에 올라탄 영숙이는 앞자리에 앉아 있던 내게 눈인사를 하고는 뒤쪽으로 얼른 걸음을 옮겼다. 그날, 어린 여공 영숙이는 버스에서 내리지 못했다. 버스가 학교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이미 죽어 있었다. 백설기 빵을 급히 먹다 그만 빵 덩어리가 기도를 막은 게 이유였다. 요즘 같으면 뒤쪽에서 끌어안아 횡경막을 자극시켜 이물질이 튀어나오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만, 그때는 아무도 그런 지식을 알지 못했다. 버스 뒤쪽이 웅성웅성하더니 친구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가정 형편이 다 고만고만했는데 영숙이의 집은 유독 어려웠다. 우리 중에서 공부도 제일 열심히 하는 친구였다. 밥 먹을 시간도 없어 꾸역꾸역, 버스 안에서 밀어 넣은 백설기 빵이 그런 친구의 목숨을 앗아갔다. 하고 싶었던 게 많았던 그 소녀는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자기가 죽어간다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날 학교는 온통 울음바다였다. 가장 친한 친구가 죽었지만 공장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했다. 자동화시스템이라 내가 정신을 놓으면 다른 친구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어떻게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소녀 노동자들은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다. 그게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그녀가 죽은 뒤 깊은 잠에 들 수 없었다. 여느 날처럼 새벽까지 잠자리에서 계속 뒤척이는데 기숙사 옆 교회에서 종이 울렸다. 홀린 듯 일어나 교회로 갔다. 알지도 못하는 찬송가를 우물우물 따라 부르는데 느닷없이 눈물이 솟구쳐 멈추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왜 시험에 들게 하는가. 가엾은 여자애들을 왜 이렇게 고생시키나. 고통에 점점 지쳐갈 때 내 마음이 고요해졌다. 그 순간 ‘이곳을 떠나야 한다!’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솟아올랐다. 이유는 자명했다. 나는 이렇게 살려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아쉬움만 남기고 일찍 떠난 내 친구 영숙이에게 더 좋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공장을 떠나는 날 나는 영숙이를 가슴에 묻고, 그녀의 몫까지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다. 1000명의 사람을 스승으로 삼다 성공으로 가는 길에 올라타는 건 매우 간단한 일이다. 문제는 지속과 해결이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포기의 욕망과 결정적인 순간에 일어나는 각종 사고를 통제할 수 없다면 우리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이게 멘토와 롤모델, 더 나아가서 그 분야 전문가의 코칭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목표를 세우는 단계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명망이 높다는 이유로 돈이 없는 사람에게 돈 버는 방법을 자문하거나, 아직 돈 버는 방법을 습득하지 못한 가족이나 친구, 선배에게 인생을 상담한다. 심각하게는 내 돈을 앗아가려는 자들에게 투자한다.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길을 막는 방해꾼은 오히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바로 내 부모, 형제 친구다. 사업을 해본 적 없는 사람에게 사업에 관한 조언을 구하는 게 맞을까? 리더도 아닌 사람에게 리더가 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당신이 선택한 분야의 최고가 되고 싶다면 그 분야 최고의 사람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그들은 너무나 바쁘고 만날 수 없어요.’, ‘만난다고 하더라도 지속적인 친분을 쌓을 수 있을까요?’ 어느 정도 공감한다. 하지만 직접 만나지 않고도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책에서 스승을 찾아라 당신과 비슷한 환경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책을 읽어라. 읽는 것에서 끝나면 안 되고 아예 그 방법을 먹어버리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공명을 유지하고 실천해야 한다. 당신이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이 방식으로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스승의 행적을 팔로우하라 그들의 공개 강연이나 기사, 각종 인터뷰와 SNS콘텐츠 내용을 모아 스크랩북을 만들고 공부하라. 나는 내가 닮고 싶은 구루가 생기면 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그 사람의 강연을 듣고 또 듣는다. 이 방법은 워런 버핏, 토니 로빈스 같은 성공의 대가들도 사용하는 방법이다. 스승처럼 생각하는 연습을 하라 결정의 순간이 왔을 때, 롤모델이라면 어떻게 행동하고 결정했을지 상상하는 게 중요하다. 롤모델에 대해 충분히 공부가 된 상태라면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스승이 정말로 필요한 이유는 지속할 힘을 얻고 해결책을 얻기 위해서다. 목표 달성도 결국 지속과 해결이 관건이다. 포기하지 않는 것, 문제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완주는 가능하다. 단, 혼자서는 외롭고 지난 한 길이 될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 곁에는 늘 훌륭한 스승이 있다. 그 모든 비밀은 웰씽킹에 있다 부도 일종의 패턴이다. 쉽게 말하면 돈을 버는 방식도 일종의 반복과 숙달이기 때문에 그 방법만 알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누구는 부자로 살아가고 누구는 빈자로 살아가는 건가요?’ 부를 이루는 패턴이 있음에도 부자와 빈자로 나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부를 얻으려는 태도다. 부자는 부를 얻기 위한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수용하고자 한다. 좋은 일이 있으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나쁜 일이 있으면 곧바로 자신의 태도를 고친다. 무엇보다 거저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확천금의 요행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돈이 따라붙질 않는다. 따라붙더라도 금세 도망가기 마련이다. 부를 얻기 위한 태도에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돈은 그런 사람을 단번에 알아차린다. 돈도 누울 자리 설 자리를 알기에 자기가 온당히 쓰여야 할 자리를 찾아간다. 자신의 쓰임을 올바르게 할 사람에게 기꺼이 자기를 내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부자가 되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믿는다. 웰씽킹을 실천할 당신의 목적이 단순히 돈만 있는 사람이어선 안 된다. 당신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속 성장하는 행복한 부자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자신이 왜 부자가 되고 싶은지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내면의 밑바닥에 있는 공허함을 채우지 못하면 부자가 되어도 행복할 수 없다. 돈을 벌고 싶은 이유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1000명 이상의 자수성가한 부자를 연구하고, 만나면서 깨달은 것은, 성장이 멈추면 행복하지 않다는 결론이었다. 돈도 있고 꾸준히 성장할 수 있을 때 행복할 수 있다는 점을 결코 잊지 마라. 무엇보다 선한 영향력을 가지고 공헌해야 오랫동안 행복을 유지할 수 있다. 부의 습관을 정착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 중 하나가 강한 멘탈이다. 부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뜨거운 의지가 있다면, 그 의지를 지속시킬 멘탈도 반드시 필요하다. 멘탈은 결코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멘탈은 삶에 주어진 미션들을 하나씩 해결하면서 강화시키는 것이다. 다음은 내가 웰씽킹을 통해 멘탈을 강화시키려고 적용했던 생각 습관들이다. 탓하기를 멈추고 내 목표에 집중하라 탓하려거든 남보다 내 탓을 하라. 간혼 내 탓을 하라는 의미를 잘못 이해해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내 탓이란 질책이나 꾸지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이미 일어난 실패와 실수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중하는 걸 말한다. 강한 멘탈의 소유자처럼 보이는 부자들도 당신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당신처럼 후회하고 좌절한다. 하지만 그들은 당신보다 조금 빠르게 회복한다. 실패에 초점을 두지 않고 앞으로 가고자 하는 길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합리적으로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사람은 마음먹은 대로 하지 못하고 실패를 반복하다 보면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점차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듯이 실패 또한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어제의 나는 실패한 사람일지 몰라도 오늘의 나는 실패했던 사람일 뿐이다. ‘실패한 나’, ‘실패했던 나’를 ‘실패도 해봤던 나’로 바꿔야 한다. 결핍의 사고를 풍요롭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웰씽킹이다.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멘탈이 강한 사람들은 빠르게 회복하는 특징이 있다. 그들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것은 과감히 내려놓는다. 내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지금의 나와 환경을 개선하는 데 몰입한다. 통제력이란 내가 원하는 삶에 도달하기 위해 아주 조금씩 나아가는 힘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함으로써 새로운 판도를 여는 힘이다. 만약 잘 되는 것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나의 마음가짐이 올바른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부를 창조하는 생각의 뿌리, 웰씽킹 부를 위한 초석, 생각의 뿌리 1 겨우내 살을 에는 칼바람을 이겨내고 결국 피어나는 꽃과 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이것이야말로 생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아주 작은 결핍에도 무너지는 인간에 비하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순간에라도 포기하지 않고 이겨낸다면 그 자체로 경이로운 존재가 된다. 물론 핵심은 무엇을 심었느냐다. 그렇다. 그래서 심는 것이 먼저인 것이다. 당신의 현재 상황은, 그간 당신이 삶의 중심에 무엇을 심었으며 또 그것을 얼마나 애지중지해왔는지를 잘 나타낸다. 꿈을 이룬다는 건 사과나무에 비유하면 풍성한 사과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 일이다. 과즙이 풍부하고 빛깔이 좋은 사과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지치기를 해줘야 한다. 그러나 가지치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뿌리를 내리는 일이다. 강한 뿌리가 있어야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부를 창조하는 진짜 필요한 가치를 삶에 뿌리내려야 한다. 나는 이것을 ‘부를 끌어당기는 일곱 가지 생각의 뿌리’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사람이 습관을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람을 만드는 건 습관이다. 고로 당신이 진정 부를 이루고 싶다면 그에 맞는 습관의 뿌리를 내려야 한다. 첫 번째 뿌리, 핵심가치 핵심가치란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의사를 결정하는 기준이다. 자신의 핵심가치를 발견하면 목표에 도달할 시간과 열정을 엄청나게 절약할 수 있으며 남은 시간과 열정으로 또 다른 목표를 이룰 수도 있다. 핵심가치가 없이 설정한 목표는 작심삼일로 끝나거나 중도 포기할 수도 있고 흐지부지되기도 한다. 포기로 인한 심리적 박탈감은 말할 수 없이 크다. 핵심가치를 세우라는 말은 다른 가치들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핵심가치는 중요한 순간에 빠른 결정과 행동을 유도하기 위한 지표다. 핵심가치를 기준으로 결정을 내리면 더 생산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핵심가치를 깨달은 후에 해야 할 일은 목표와 꿈을 설정하는 것이다. 두 번째 뿌리, 결단력 나는 사람들에게 ‘기적은 행동하는 사람에게 찾아온다’고 늘 조언한다. 지금 당장 결단하라. 나를 괴롭게 하고 아프게 만드는 문제점이 아니라, 그 해결책에 집중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겠다고 결단해야 한다. 그리고 결단했다면 반드시 행동으로 실천하라. 목표 성취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진정한 결단을 내리는 일이다. 어떻게 할 것인지,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지 걱정하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마라. 크게 대성한 사람들은 가치체계가 확실하고 인생의 목표가 명확했다. 그래서 일단 결단하면 행동으로 옮겼다. 결단을 내리는 것 자체가 일종의 행동임을 명심하라. 혹시 결단보다는 고민에 빠져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는가? 오늘은 과거에 당신이 내린 결단의 결과다. 만족하는가? 당신이 지금 어떤 상황이든 결단하지 않는다면 미래도 지금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변화를 원한다면? 그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작은 것부터 결단을 내리는 습관을 가지면 된다. 만약 당신이 무언가를 결단했다면, 유연한 태도로 선택의 폭을 넓혀가며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결과이지 매 순간의 과정을 그대로 이루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첫 사업 실패 후 취직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처럼 무능한 인재를 쓰겠다는 회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사업을 하기로 결단했다. 아무도 나를 고용하지 않겠다면 내가 나를 고용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일본에서의 경험과 한국인으로서의 강점을 살려 삼각김밥을 새로운 사업의 아이템으로 결정했다. 지금의 켈리델리는 초밥 도시락 사업으로 시작되었다. 결단을 내렸다고 자기 자신을 너무 혹사시킬 필요는 없다. 항상 다음을 대비하여 자신의 상황과 상태를 고려하면서 유연성 있는 태도로 나아가야 한다. 최종 결과에 이르는 과정에서 궤도의 수정은 필수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를 위한 초석, 생각의 뿌리 2 세 번째 뿌리, 선언 아무리 확고한 결단도 머릿속에만 있다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선언하라. 선언은 탈선하지 않고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도록, 또 여러 갈래로 나뉜 길에서 한눈을 팔지 않도록 가드레일을 설치하는 작업이다. 많은 사람에게 선언하면 무조건 할 수밖에 없는 길로 들어선다. 네 번째 뿌리, 믿음 모든 성공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고 무엇보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사랑해야 문제의 해법이 보인다. 나를 사랑하는 일의 핵심은 ‘없음’보다 ‘있음’에 집중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 뿌리, 신념 믿음이 의식 속에 있는 것이라면, 신념은 무의식 속에 존재한다. 의식 속에 있는 것은 상황에 따라 변하지만 무의식 속에 있는 것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 의식 속의 믿음은 당신이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무의식 속의 신념은 당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현하며 이후 자취를 감춘다. 부를 위한 초석, 생각의 뿌리 3 여섯 번째 뿌리, 확신 강한 확신은 여섯 번째 뿌리인 곧은 신념으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확신할 수 없다면 신념의 상태를 다시 점검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처음부터 바꾸기 어려운 것과 씨름하지 마라. 삶에 방해가 되는 작은 습관을 고쳐 성공의 달콤함을 맛보는 게 중요하다. 할 수 있다는 기운의 충만함을 느껴보는 게 우선이다. 그렇게 작은 습관을 고치며 성공의 깊은 여운을 느끼는 걸 반복하다 보면, 강한 신념이 잠재의식에 자리하게 된다. 일곱 번째 뿌리, 질문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진짜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이렇게 대답한다.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제가 원하는 새로운 일을 찾고 싶어요”라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꿈인 사람은 많지 않다. 일단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최고가 되는 게 중요하다. 꿈은 다른 곳에 있다 하더라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꿈을 향해 도약할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단 한 번도 한 가지 일에 온전히 미쳐본 적도 없고, 뼈가 으스러지도록 정성을 다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부자가 되겠는가?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