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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년생 엄마 황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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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년생 엄마 황순유

일과 육아 사이에서 찾아낸 가장 이상적인 삶의 합의점
황순유 지음 | 씽크스마트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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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년생 엄마 황순유
(황순유 지음/씽크스마트/2017년 1월/224쪽/13,000원)
■ 책 소개
가슴 한편이 뜨거워지는 보통 엄마들 이야기!
 
경인방송 FM90.7mhz ‘황순유의 해피타임907’DJ, 파워 프리랜서 진행자, 엄마 황순유. 워킹맘이라기엔 동네 놀이터에서 이웃 엄마들과 공감할 일상이 넘쳐나고 전업주부라기엔 다소 화려한 직업생활을 해온 엄마 황순유의 현실 육아와 일 이야기에는 함께 울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수없이 울고 웃은, 내 동료 같은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오늘도 다 잘될 거예요. 내일은 더 잘될 거예요”라고 외우는 긍정의 주문이 세상에 뿌려지기를 기대한다.
 
■ 저자 황순유
워킹맘과 전업주부 그 중간 어디쯤 - 꽃다운 나이 스물다섯에 아줌마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결혼 생활이 익숙해질 즈음 쉼 없이 아이 셋을 낳았고, 지금도 육아와의 전쟁을 끊임없이 치르고 있다. 좋은 엄마도, 나쁜 엄마도 아니다. 양처도 아니지만, 악처는 더더욱 아니다. 반인반수와 같은 워킹맘과 전업주부 그 중간 어디쯤을 오가며 열심히 엄마 자리를 살아내는 중이다.
 
부모님의 가르침대로 - 어릴 때 부모님은 좋은 일과 나쁜 일 중에서 좋은 일을 먼저 들려주셨고 언제나 제일 예쁜 과일부터 먹게 하셨다. 부모님의 방식대로 살아보니 내 앞에는 항상 제일 좋은 것이 있었다. 친정에서 아름다운 유산을 미리 받았다. 피곤할 땐 쪽잠만 자도 개운해지고 기력 떨어질 땐 맛있는 음식만 먹어도 완충되는, 고맙게도 효율적인 나의 몸.
 
꿈꾸는 엄마 - 나이가 들수록 해보고 싶은 일들이 점점 많아져서 하루가 모자란다. 아이의 꿈을 만들어내는 엄마가 아니라 오직 나의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달린다. 30년 후의 나도 지금처럼 라디오 DJ로 소통하고 내 아이들의 아이들을 사랑하는 할머니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년도 퇴직도 없는 나만의 자리를 꿈꾼다.
내일은 더 잘될 거예요 - 세 아이를 모유 수유로 키우면서 아이들의 눈을 한없이 바라봤다. 세상 모든 이들은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아이의 행복을 심어놓지 않은 부모는 없다. 잘될 거다, 잘될 거다, 주문처럼 흘리던 말들이 씨앗이 되어 행복의 뿌리를 내렸다. 그 꽃의 홀씨가 또다시 내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뿌리내리고 있다. 말의 힘을 믿는다. 모든 일은 말대로 이루어진다. 오늘도 다 잘될 거예요. 내일은 더 잘될 거예요.
 
■ 차례
04 - 추천사
13 - 머리말. ‘엄마’라는 이름으로 수없이 울고 웃은 나의 동료,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1장 시월드에 뛰어든 한 여자
23 - 아줌마의 버킷리스트 하나, 호텔에서 혼자 보내는 하루
26 - 어서 와, 살림은 처음이지?
31 - 결혼이란 원래의 나를 잃지 않는 것
34 - 결혼이란 원래의 너도 잃지 않는 것
41 - 여자들의 무협지, 출산 비화를 아시나요?
46 - 며느리를 조심하세요
49 - 사물의 이력, 부엌칼에 이름을 새기다
♬ DJ 순유의 선곡 - 삶이 더 행복해지는 노래
 
2장 어쩌다 보니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57 - 나만 모르는 다자녀 혜택이 있나요?
60 - 회장 선거, 떨어져도 괜찮아!
65 - 내 아들이 남의 아들 되는 시기, 중2를 부탁해
70 - 내가 무슨 복을 타고나서 너의 엄마가 되었을까?
75 - 밖에서만 정상인 아이, 너는 나의 평생 숙제
♬ DJ 순유의 선곡 - 지친 당신에게 에너지를 주는 노래
 
3장 체험 삶의 현장! 극한 직업, 엄마 체험기
83 - 엄마는 아이와 함께 자란다
87 - 왜 부모에게 받은 사랑은 돌려드릴 수 없는 걸까?
90 - 연중무휴, 육아식당
95 - 부르면 눈물이 먼저 나는 이름, 이모할머니
102 - 취하니까 얼마나 좋아요?
105 - 동네 아줌마, 학교에 가다
♬ DJ 순유의 선곡 - 엄마 아빠의 애창곡
 
4장 내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은 학교에서 배웠다
113 - 당신의 싸가지는 안녕하십니까?
116 - 빈칸을 채워라! 0.00000001%의 확률
118 - 공짜 표 달라는 친구는 되지 말자!
120 - 책가방보다 무거워도 포기할 수 없었던 도시락 가방
123 - 아빠, 고마워요! 술 취하지 않는 유전자를 주셔서
126 - 정년퇴직하고도 제자들 챙기라고 나라에서 연금 주는 겁니다
♬ DJ 순유의 선곡 - 학창 시절이 그리운 날 듣는 노래
 
5장 크게 라디오를 켜고
131 - 촌스럽게 아직도 라디오를 듣는다고?
136 -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란 말은 절대로 하지 마라!
141 -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라면 해야만 하는 일쯤이야!
146 - 스무 살을 지나 두 번째 스무 살이 되다
151 - 보름달이 뜬 밤에 그 남자는 왜 옥상으로 올라갔을까?
154 - 세상의 모든 마지막 방송은 슬프다
158 - 저희 아버님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셔서 고마웠어요
♬ DJ 순유의 선곡 - 홀로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노래
 
6장 소심한 A형의 일기장
163 - 말은 씨가 되는 법이지. 말하는 대로, 그 후의 이야기
167 - 오늘도 곱게 마시고 곱게 취하세요!
170 - 내 어릴 적 꿈, 나의 옛날 이야기
177 - 나는 프리랜서 방송인이다!
183 - 끝보다 더 애틋한, 끝에서 두 번째
185 - 순간의 음악이 모여 인생의 BGM이 되었다
190 - S맨이 세상 밖으로 나온 길, El Camino
 193 - 세상을 빵빵하게 만드는 빵집 아저씨들
♬ DJ 순유의 선곡 - 오늘 하루 내 다이어리를 대신해주는 노래
 
7장 꿈꾸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세상
201 - 5남매를 데리고 공연장에 온 여자
204 - 여자는 두 번 태어난다
207 - 백 세 인생, 어른에게도 자유학기제가 필요해
213 - 집에서 밥만 하기엔 아까운 ‘어떤사람’J 이야기
216 - 여보, 당신만 고생하면 우리 행복할 수 있어. ‘어떤사람’B 이야기
219 - 접은 날개를 펼쳐봐! ‘어떤사람’A 이야기
221 - 청춘은 아름다워라!
♬ DJ 순유의 선곡 - 다시 새로운 길로 나서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
 
77년생 엄마 황순유
시월드에 뛰어든 한 여자
어서 와, 살림은 처음이지?

토끼를 따라 굴속으로 뛰어든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 도착해 신기한 모험을 하기 시작한다. 한 남자를 따라 새로운 세상에 뛰어든 한 여자도 낯선 나라에 도착해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된다. 시집이라는 원더랜드에서.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아침 6시 20분이면 늘 출근을 하셨다. 결혼 전 스물다섯 살까지 내가 보고 자란 모습이다. 항상 정확한 시계와 같았다. 그래서 우리 집 하루의 시작은 TV화면 조정이 끝나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장면이었다. 대학생이 되어 전날 술을 마시고 들어왔어도 아침이면 기분 좋게 일어나 밥을 먹었다. 아침은 하루를 여는 기분 좋은 출발점이었다. 내 기억 속 세상의 모든 아침은 개운함, 상쾌함 그 자체였다.
 
모든 집의 아침이 이런 모습일 거라고 상상하던 내가 결혼했다. 상상은 자유. 헉! 우리 집과는 달랐다. 결혼은 다른 문화와 만나는 것이다. 동시에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안겨줄 수도 있다. 적어도 70년대생들의 결혼 생활은 두 집안의 만남이었다. 남녀의 로맨스로 시작된 관계지만 결혼을 결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일은 서로 다른 집안에 적응하는 과정이었다. 어는 쪽도 틀린 게 아니라 그저 다른 두 집안. 다름을 틀림이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지옥이다. 하지만 원더랜드로 들어선 여자는 이상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신기하고도 희한한 일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게 결혼 생활이다.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 자기 앞가림은 한다. 닥치면 다 하게 마련이다. 결혼 전 나는 집안일은 정말 안 했다. 그랬으니 평생 밥하고 빨래하면서 살아야 하는 결혼에 대해 큰 고민 없었을 수밖에. 물론 결혼하고 나서는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아무리 아파도 집안일이 신경 쓰였다. 하지만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이라는 걸 미리 알았기 때문일까. 낯설고 어색하고 서투른 일투성이였지만 단 한 번도 결혼을 물러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행히 시어머니도 생각이 깬 분이셨다. 내가 스물다섯에 결혼했으니, 아이를 하나둘 낳을 때까지도 친구들은 미혼이었다. 그런 친구들이 만나자고 하면 시어머니는 흔쾌히 다녀오라고 하셨다. “아기 잠깐 봐주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나는 결혼해서 시어머니 모시며 4남매 키우는 동안 친구들을 못 만났어. 그게 수십 년이라 참 아쉽더라. 며느리한테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아.”라고 하셨다.
 
물론 모든 여성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의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레 겁먹고 결혼 생활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댁이라는 원더랜드는 꿈과 환상의 나라가 될 수 있다. 언젠가 내 딸도 원더랜드에서 더 신기하고 멋진 체험을 하게 될 날이 올 거다.
 
어쩌다 보니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밖에서만 정상인 아이, 너는 나의 평생 숙제

아이를 키우는 게 왜 힘들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몸이 힘들고 마음이 힘든 건 다른 일도 마찬가지인데, 왜 유독 아이를 키우면서 ‘죽겠다’고 말하는 엄마들이 많을까? 기본적으로 육아는 끝이 없어서 그렇다. 마감 기한이나 종료 시점이 없다. 자식이 성인이 되어도 부모는 다 키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혹 넘긴 자식을 보면서도 다 키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죽지 않는 한 끝나지 않는 게 육아다. 반면 직장 일은 출근과 퇴근이 있다. 끝내 견딜 수 없다면 퇴직하거나 이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며칠 밤을 새워서 프로젝트를 끝낼 수도 없고 어디 가서 애를 바꿔 올 수도 없다. 짜릿한 쾌감은 잠시뿐, 산 넘어 산이라는 느낌을 준다. 기한 없는 프로젝트가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아이가 하나여도 힘든데 둘, 셋이다. 말을 말아야지.
 
‘아이들을 키우는 게 왜 힘들까?’라는 질문에 내가 찾아낸 답은 일의 ‘동시성’이다. 차례대로 하나둘 차근차근 하는 학교 공부와는 다르다. 직장 업무와도 다르다. 모든 일이 한꺼번에 벌어지면서 정신을 온전히 차릴 수 없다. 첫째 아이 다 키워놓고 손을 뗀 다음 둘째, 셋째에게 집중하는 게 아니다. 첫째 아이는 계속 자라고, 그 와중에 둘째와 셋째가 태어나 자란다. 막내에게 젖을 먹이면서 첫째, 둘째에게 그림책을 읽어준다. 큰 애는 누워서 재우고, 둘째는 안아서 재우고, 막내는 업어서 재운다. 막내 똥 기저귀 갈아주면서 큰 애들 밥을 차려주어야 한다. 감당할 능력도 마음도 커져야 하는데 내 몸은 따라주지 않는다. 정신과 몸의 불일치를 경험한다. 이게 바로 멘붕이다.
 
해도 해도 풀리지 않는 숙제가 나에게도 있다. 내 인생의 가장 빡센 숙제, 바로 한겨울에 샌들 신겠다고 떼쓰는 너다. 멀쩡하게 차려입고서는 왼발에는 구멍 숭숭 뚫린 크록스 샌들을, 오른발에는 털 달린 부츠를 신고 나가겠다고 한다. 온 방에 스카치테이프로 거미줄을 쳐놓고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림보를 하면서 다닌다. 학원 버스 기다리다 말고 비둘기 쫓아가느라 버스 놓치는 일이 허다하다. 온종일 같이 있다가 문방구 다 닫은 시간에야 내일 준비물을 말하는 것은 약과. 아침잠이 많아서 깨우는 데만 한 시간, 잠깐 동생 챙기는 동안 살금살금 나가버리고. 남들은 오빠가 있어서 든든하겠다고 하지만 쉬는 시간이면 동생네 반으로 학용품 빌리러 오는 오빠, 어떻게든 동생을 이겨보겠다고 부득부득 생트집을 잡는 오빠다. 하나부터 열까지 숙제의 연속이다.
 
글로 쓰니 별것 아닌 듯하다. 나도 안다. 이게 석현이라는 숙제 하나라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한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여 맞춰주고 기다려주면 된다. 그런데 내 생활은 그렇지 않다. 한 아이만 챙기면 나머지 둘은 어쩌란 말인가.
 
비가 올 것 같은 날마다 우산을 하나씩 가져가 버려서 정작 비 오는 날에 우리 식구가 쓸 우산이 하나도 없다. 점퍼를 입고 학교 가서는 서랍에 벗어두길 밥 먹듯 해서, 어떤 날은 점퍼 세 벌을 한꺼번에 가져오기도 한다. 필통 욕심은 왜 그렇게 많은지, 문방구 갈 때마다 꼭 사야 한다. 그렇지만 매번 새로 산 필통은 온데간데없고 실내화 주머니에 연필 한 자루 달랑 갖고 다니는 아이다.
 
밖에만 나가면 멀쩡하다. 학교에 가도, 동네에 나가도 칭찬이 넘쳐난다. 우리 가족은 당황스럽다. ‘밖에서만 멀쩡한 아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10분이면 반짝 끝낼 수 있는 숙제든, 두고두고 힘들게 장기 프로젝트로 해내야 하는 숙제든 언젠가는 끝낼 일이다. 새 학기가 올라가면, 학교를 졸업하면 이전 숙제와는 이별이다. 내게도 ‘숙제 잘 끝냈다!’하는 날이 올까?
 
체험 삶의 현장! 극한 직업, 엄마 체험기
엄마는 아이와 함께 자란다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 “네 인생에서 가장 걸림돌이 된 것은 무엇이니?”이런 질문은 평온하게 흘러가는 평범한 일상에서 불현 듯 머릿속을 멍하게 만든다. 여자의 인생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
 
내 또래 여자들의 수다에서 왕년의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내가 20년 전에는…”“내가 대학 다닐 때는…”과거 한때 잘나가던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눈을 반짝인다. 과거의 빛났던 순간을 떠올리면 머릿속에 핑크빛 환상이 채워진다.
 
리즈 시절을 말할 때는 눈이 초롱초롱하다가 갑자기 표정과 말투가 바뀐다. “그런데 내가 애 낳고부터는 이러고 살잖아.”갑자기 모든 문제의 원인이 깔대기처럼 하나로 귀결된다. 애를 낳고부터는 왕년의 내가 될 수 없다. 급격하게 달라진 인생은 스스로 원한 적 없는 형태다. 거울 속의 나는 질끈 묶은 머리에, 무릎이 튀어나온 회색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다. 내 이름을 누군가 불러준 지 오래되었다. 이력서의 마지막 줄은 이미 십 년 전 이야기다. “내가 이러려고 애를 낳았나 생각하니 자괴감이 들어요.”라고 지금의 나를 만든 근원이 바로 출산과 육아라고 말한다. 아이를 낳고부터 여자의 인생은 일시정지 되어버렸다. 플레이되지 않는 오디오처럼.
 
베이비시터도 못 믿겠고 시댁이나 친정엄마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녀들은 결국 육아를 택한다. 보람도 없는 중노동의 삶이 연일 이어진다. “남들의 시간표와는 달리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하고, 잘 수 있을 때 자야 하고, 굳이 마렵지 않아도 쌀 수 있을 때 싸둬야 한다”라고 생각하며 아이를 키우던 시절이 있었다. 보통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자들이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비혼이니 싱글족 같은 말이 낯설던 때, 결혼과 출산은 사회적인 관문이었다. 나 역시 남들 다 하는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아이를 낳은 게 어떤 일인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엄마가 되어버렸다. 어쩌다가 내 인생, 애 셋을 둔 엄마가 된 걸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정말로 아이가 엄마들 인생의 걸림돌일까?’세상에서 가장 슬픈 상상이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들이 내 인생의 걸림돌로 남는 건 어떤 슬픈 드라마보다 더 슬프다. 시간이 흘러 나의 지난날을 돌이켰을 때 절대 아이들 탓을 하고 싶지 않다. 상황을 탓하고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을 후회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 아이들이 걸림돌이 되어 제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궁색한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기로 했다. 먼 미래에 ‘아이들 때문에... 아이들이 내 걸림돌이었어’라고 화살을 돌릴 이유도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지내니 마음이 가볍다. 물론 때로는 두려움도 몰려온다. 반대로 아이들에게 엄마가 걸림돌이 될까봐.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약속하고 싶다. “너희들이 어른이 되고 엄마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 서로 고마웠다는 말을 건넬 수 있는 사이가 되자”라고. “단단하게 자기 길을 묵묵히 걸어간 엄마와 아빠가 있어서 내 인생도 당당하게 그릴 수 있었어요.”라는 말을 듣고 싶다. 서로에게 짐이 아니라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는 그날까지 나는 오늘도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연중무휴, 육아식당
동현이가 여섯 살 때 다니던 미술학원에서 가족을 그린 적이 있다. 아빠를 제일 크게 그렸고 엄마, 석현이 그리고 자기를 그렸다. 엄마 배 속에는 곧 태어날 막냇동생도 그려 넣었다. 동현이가 자기 그림을 소개하는 시간에 그만 “우리 엄마가 또 동생을 낳으러 병원에 간대요. 여자 동생이 생기는 건 좋은데, 우리 엄마 병원 가면 내 밥은 누가 줘요?”하고 엄청 울었다고 한다. 선생님들은 너무 귀엽고 웃겨서 배꼽을 잡고 웃다가 또 짠한 마음에 눈물도 흘렸단다.
 
그래, 나는 밥순이다. 우리 애들은 내가 해준 밥을 남이 해준 밥보다 훨씬 좋아하고 잘 먹는다. 메뉴가 달라서가 아니다. 엄마가 해주는 밥에 익숙해져서겠지. 우리 집 세 아이는 엄마표 음식을 먹을 때 가장 행복해한다.
 
물론 10대와 20대 시절이라면 이렇게 밥을 열심히 하는 나를 상상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현재 내 정체성은 ‘밥하는 엄마’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육식동물로 태어난 아이들의 식성에 맞춰 고기류는 끼니마다 꼭 있어야 한다. 동네에서는 아침 댓바람에 삼겹살 굽는 집이라고 소문나 있다. 좋아하는 과일이 제각각이다. 냉장고에는 제철 과일과 이른 과일이 종류별로 대기 중이다. 남편과 아이들의 취향을 모조리 기억했다가 음식을 한다.
 
배달음식을 원래 좋아하지 않는 취향도 한몫했다. 특별한 가족 모임이 있는 날이 아니라면 외식하는 걸 즐기지 않는 편이다. 외식을 안 하니 알뜰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오해다. 집에서 해 먹는 게 비용이 덜 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 집은 해마다 엥겔 지수 최고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자라나는 아이가 셋이니 식비와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 크다.
 
언젠가 방송에서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순유 씨는 아이 셋을 키우면서 체력을 어떻게 유지하세요?”이런 질문에 나는 고민할 새도 없이 대답했다. “저는 냉동실의 한우 꽃등심과 냉장실의 갖가지 과일들로 건강을 챙기죠. 애들 자면 고기 구워 먹어요”라고. 하지만 이것도 모두 옛날 얘기다. 아무리 집에서 해 먹더라도 한우 꽃등심 배불리 먹던 시절은 다 갔다. 하지만 우리에겐 호주산 와규가 있지 않은가? 그것도 힘들 땐 돼지고기, 닭고기로 적당히 돌려막으면 된다.
 
나는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이 유독 강한 사람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심지어 비주얼적으로도. 내가 먹는 것에 집착하다 보니 아이를 키우면서도 고스란히 반영될 수밖에. 아이들이 큰 지금도 내 손으로 간식을 챙겨줘야 직성이 풀린다. 따뜻한 것을 먹여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 집은 간식마저도 김치 볶음밥이나 떡국, 만둣국 등의 식사 메뉴다.
 
내가 어릴 때 친정엄마는 새벽이면 수산물 시장에서 사 온 생선을 손질하고 계셨다. 조기 비늘을 벗겨내는 칼질 소리에 아침잠을 깼었다. 복날에 삼계탕을 하면 1인 1닭은 기본이었다. 심지어 키우던 개에게 먹일 영양식도 직접 시장에 가서 장어 머리나 닭 머리 등을 얻어 와 푹 고아 만들었던 엄마다. 이제 세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소풍날이면 김밥을 싼다. 소풍날 김밥 한두 줄 사서 보내면 편하겠지만 나는 무려 20줄 이상을 싼다. 시댁에도 갖다 드리고, 동네 엄마들과도 나눠 먹는다. 우리에게는 그런 추억이 있다. 어린시절 소풍 가는 날 김밥 싸는 엄마 옆에서 꼬투리를 얻어먹던 기억. 나의 아이들에게도 그런 소소한 이야깃거리를 남겨주고 싶다.

내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은 학교에서 배웠다
공짜 표 달라는 친구는 되지 말자!

MC라는 직업 특성상 연주자들의 공연을 무대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다. 때로는 인연이 있는 예술인들에게서 공연 초대를 받는 일도 적지 않다.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내가 먼저 보고 싶다면 어떻게 할까? 주변에서는 초대권 받아서 가겠거니 하고 넘겨짚지만 나는 열여덟 살에 이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
 
당시 내 담임 선생님은 국어, 문학을 가르치셨다. 그 시절에 《한국의 대표설화》라는 책을 쓰셨는데, 매일 보는 학교 선생님이 책의 저자라니 신기하고 놀라웠다. 우리는 당연히 책을 나눠주시겠구나 하고 기대했지만, 선생님은 “책을 사 오면 사인은 해줄게”라고 하셨다. 한편으론 실망스러웠다. 학생들에게까지 책을 사 오라고 하시다니. 학생들이 선생님의 책을 샀을까? 아무도 안 산 건 아닐까?
 
우리 학교 학생들은 그 책을 정말 많이 샀다. 사인을 받기 위해 쉬는 시간마다 교무실로 찾아가는 줄이 끊이지 않았다. 나도 사인 받으러 가서 선생님의 따뜻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다음에 너희들 중에 책을 쓰는 친구도 나올 거고 연극을 하거나 콘서트를 하는 친구들도 나올 텐데 절대로 연락해서 책 달라, 티켓 달라고 부탁하는 친구는 되지 마라. 꼭 제일 먼저 책 사 들고 가서 사인받는 멋진 친구가 되어야지?”
 
나는 학교에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공교육이 무너졌다고, 학교 교육에서 배울 것 없다고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학교는 시험에 나오는 것들만 배우는 곳이 아니다. 알게 모르게 이런저런 인생철학을 학교에서 많이 배웠다. 국어 선생님이 쓰신 《한국의 대표설화》 안에 나온 이야기들은 이제 기억도 안 난다. 다만 민폐 끼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보고 싶은 공연은 꼭 내 돈 주고 예매한다. 지인이 쓴 책은 내 돈 주고 구매해 읽는다. 절대 공짜로 얻으려 하지 않는다. 지인 할인 제도는 대환영이다.
 
크게 라디오를 켜고
촌스럽게 아직도 라디오를 듣는다고?

라디오 DJ에게 보낼 편지를 쓰느라 밤을 새워본 적이 있는가? 이제는 라디오 DJ에게 보낼 사연을 적기 위해 엽서를 사는 일은 거의 없다. 빌보드 팝 순위가 적힌 주간지 받으려고 줄을 섰다면 지금 아이들이 믿을까? 아날로그의 사회는 불편함 속에서 내 몸으로 진짜 음악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음원을 스트리밍해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다. 라디오 세대인 내가 라디오를 진행하는 DJ가 된 것은 운명처럼 예정된 일이었을까?
 
내가 처음 라디오를 진행한 것은 2003년이었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EBS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시절 내 애칭은 ‘방글이 언니’였다. 2005년 ‘황순유의 음악이 있는 아침’이라는 이름으로 첫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문화적 충격이 컸다. 학창 시절 내내 라디오를 끼고 살았던 내가 간직한 라디오라는 매체의 잔상은 꽤 진하다. 그런데 이제는 편지나 엽서로 사연을 보내는 청취자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 실시간 문자로 사연을 보낸다. 이미 TV방송을 경험한 터라, 열악한 라디오 제작 시스템에 더더욱 놀랐다. 스태프 두세 명이 모든 요일의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시설과 장비도 TV의 화려함은 찾아볼 수 없다. 아날로그적인 방송이 갖는 묘미는 있지만 이게 라디오라는 매체의 한계일 수도 있다. 10년이 지나도 똑같은 자리에서 어려운 상황에 여전히 발버둥치고 있다.
 
요즘은 라디오를 듣는 젊은 층의 비중이 정말 낮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팟캐스트 방송을 할 수 있는 시대다. 1인 방송, 1인 미디어로 라디오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굳이 고리타분하게 방송용어, 표준어를 따지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다. 상표를 말했다는 이유로 정장을 차려입고 방송심의위원회에 갈 일도 없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공중파라는 타이틀보다 자신이 선호하는 제작 스타일이 더 중요하다.
 
어린아이들은 라디오가 뭔지나 알까? 라디오나 레코드, CD플레이어가 없는 집이 많다. 카세트테이프는 추억의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고물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엄마 아빠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잠깐씩 들었던 ‘컬투쇼’가 라디오의 전부인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지금 라디오를 듣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직도 라디오 DJ가 직업으로 존재하는가 묻는다면? Yes!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의외로 라디오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 듣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얼마든지 손쉽게 음원 사이트에서 스트리밍으로 들을 수 있는 세상에 살면서. 굳이 유료 문자 메시지로 신청곡 보내 노래를 틀어달라고 한다. 그리고 다시 노래를 들려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문자로 보낸다. 설마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 듣는 사람들이 있기에 방송이 존재한다. 시계의 알람처럼 프로그램의 시그널 음악이 들려오면 ‘이 코너가 시작되었구나!’‘지금이 몇 시구나!’‘OO 게스트가 나오는 걸 보면 무슨 요일이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라디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건 아직 세상이 따뜻하고 살 만하다는 증거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울고 웃는다. 세상 사는 이야기가 거기서 거기라고 말할지 모르나 모든 사람의 사연에는 각각의 인생이 담겨 있다. 그래서 소중하다. 노래 신청에도 각각의 이유가 있다. 그래서 사연과 함께 노래를 신청하는 것이다. 언젠가 음식물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라디오가 대중화되고, 보이는 라디오에서 나아가 서로 볼 수 있는 라디오 시대를 꿈꾸다가 마음을 접는다. 그건 아니다. 라디오는 내 기억속의 장면처럼 그저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상상하는 일이다. 좋은 음악 들으면서 일기를 쓰고 싶어지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은 오래오래 간직되어야 한다. 라디오는 내게 그런 소박한 친구다.
 
꿈꾸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세상
청춘은 아름다워라!

어느 가을, 동네 엄마들과 함께 헤르만 헤세의 그림 전시회를 보러 가기로 했다. 예매해놓고 우리는 한참 웃었다. “보다가 지루하면 그냥 밥이나 먹자.”중학교 시절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서와 같은 작품들을 읽으며 인간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던 때가 잠시 있었다. 그런데 소설가로만 알던 헤르만 헤세의 그림 전시회라니 놀라움과 동시에 ‘나만 몰랐나?’하는 마음도 들었다. 작품들은 주로 수채화였는데 소박하며 따뜻한 색채로 자연을 담고 있었다. 한 시간 남짓 기분 좋게 작품을 감상한 우리는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아까 읽었어? 헤르만 헤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게 마흔 살이었대. 마흔 살에도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거야?”
 
마흔을 앞두고 있던 나와 J, 마흔 고개에 이제 막 올라선 C, 그보다 몇 년 더 살아본 N은 모두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결론지었지만 사실 내면의 소리는 달랐다. “마흔에 시작할 수 있는 일들이 왜 없겠니? 늦지 않았어!”라고 그녀들의 마음은 외치고 있었다. 지금도 헤르만 헤세 그림 전시회를 다녀오던 날을 잊지 못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생겨나던 날이었다.
 
몇 해가 지난 지금,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 더 성숙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 그 무섭다는 중2 아들도 탈 없이 거뜬히 키워냈다. J는 공인중개사 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고, C는 전에 하던 일을 살려서 파트타임 일을 시작했고, N은 언니와 동생의 아이들까지 모두 여섯 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모양은 다르지만 우리는 각자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날 이후 나는 결심했다. 불혹에도 여전히 떨리고 흔들리는 나로 살아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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