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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색을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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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색을 입다

10가지 색, 100가지 패션, 1000가지 세계사
캐롤라인 영 | 명선혜 번역 | 리드리드출판 | 2023년 05월

■ 책 소개


컬러, 패션, 인간을 파고드는 지적 여행!
10가지 컬러와 패션이 들려주는 화려한 이야기의 향연

우리는 다채로운 컬러의 시대에 살고 있다. 다양한 색채는 인류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 왔다. 문화에 따라 태어날 때부터 남자와 여자는 다른 색의 옷을 입고, 죽음을 맞이할 때도 정해진 색의 수의가 입혀진다. 이렇게 컬러는 국가별, 시대별로 다른 의미가 있다. 

빨간 드레스 효과를 아는가? 최신 연구에 따르면 빨간 옷은 특히 여성이 입었을 때 욕망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다른 색상의 옷을 입었을 때보다 더 많은 남성의 관심을 끈다. 로체스터 대학교의 색상 심리 실험에 따르면 빨간색 옷을 입거나 붉은 색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여성은 남성들로부터 더 매력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외에도 저자는 칵테일 파티에서 녹색 드레스를 입으면 어떤 의미가 있고, 여성 정치인이 흰색 바지 수트를 입으면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등 10가지 컬러에 담긴 숨겨진 상징성과 컬러에 따른 패션의 역사를 치밀하게 탐구한다. 시대와 세계를 넘나들며 컬러에 얽힌 역사적 사건과 각 컬러가 가진 상징이 변화해 온 과정을 저자와 함께 여행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과 장소, 상황에 어울리면서도 자신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컬러를 찾게 되고, 패션 센스를 갖추게 될 것이다.

■ 저자 캐롤라인 영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영어와 영화 및 TV 연구를 공부한 후 호주 브리즈번에서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받았다. 또한 헤럴드 스코틀랜드(Herald Scotland)에서 패션 작가 및 보조 디지털 편집자로 일하면서 스코틀랜드 패션 산업과 패션의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얻었다.

1990년 토론토에 본사를 둔 그래픽 디자인 회사 햄블리와 울리(Hambly & Woolley)를 창업했다. 그 이전부터 오랜 기간 《뉴욕타임스》, 《타임》, 《선데이 매거진》 등 많은 매체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북미 전역에서 수많은 수강생에게 디자인과 관련된 강의를 하면서 초빙대상 1순위의 실력 있는 강사로 인정받았다.

지금은 컬러 스터디(https://www.colourstudies.com/)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사진, 미술, 저술 분야에도 집중하고 있다. 컬러는 그의 모든 활동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할리우드의 황금기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며, 이번 책을 위해 로스앤젤레스의 기록보관소에서 영화사 및 의상에 관한 조사 활동을 광범위하게 펼쳤다.

패션과 영화사 전문 작가로 꾸준히 글을 써 오고 있으며, 《타르탄(Tartan)》, 《트위드(Tweed)》, 《스타일 트라이브스(Style Tribes)》, 《클래식 할리우드 스타일(Classic Hollywood Style)》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 또한 인사이트 에디션(Insight Editions)의 《히치콕의 여주인공들(Hitchcock.s Heroines)》과 더히스토리 프레스(The History Press)에서 출간한 《로만 홀리데이(Roman Holiday)》의 저자이기도 하다.

■ 역자 명선혜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통역번역학을 전공했다. 한영국제회의통역사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수의 클래식 음악 분야 통번역 경력을 통해 거의 준전문가 수준의 전공 지식이 있으며 현재는 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브랜드 경험의 본질》, 《쓰레기의 정치학》, 《더 스타트》, 《성공하는 여자의 자격》 등이 있다.

■ 차례
Introduction
BLACK
PURPLE
BLUE
GREEN
YELLOW
ORANGE
BROWN
RED
PINK
WHITE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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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라인 영 | 명선혜 번역 | 리드리드출판 | 2023년 05월


 

BLACK 

패션에서 블랙은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는 하나의 캔버스다. 1950년대 급진적인 보헤미안이라 불린 사람들은 하나같이 검은색 폴로 목티를 입고 미국의 반체제 문화의 성역인 그리니치 빌리지의 허름한 술집에 모여 비트를 즐겼다. 1990년대 이후 블랙은 누구나 쉽게 입을 수 있는 주요 패션 아이템이 됐다. 이러한 차림의 패션은 평범함을 추구한다는 뜻에서 ‘놈코어’라 불렸다.

 

시대를 초월하여 세련된 멋을 내는 블랙은 상복으로 입으면 슬픔과 상실을 나타낸다. 무솔리니의 블랙 셔츠는 파시스트적 위협을 나타내고, 미국의 흑인 무장 조직인 흑표당의 블랙 베레모는 흑인 인권을 옹호하는 강력한 표상이 되었다.

 

블랙은 표현의 부재, 즉 표현의 자제를 상징하며 결과적으로 더 많은 것을 표현하기도 한다. 펑크 음악의 대부 말콤 맥라렌은 “블랙은 불필요한 장식에 대한 공개적 비난입니다. 허무주의, 지루함, 공허함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블랙이죠.”

 

색상으로서의 블랙 

블랙은 물체가 가시적 파장을 삼켜 색 스펙트럼의 모든 빛을 흡수하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 눈에 보인다. 그러므로 엄격하게 말하면 검은색은 존재하지 않는 색이다. 블랙을 색상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지만 적어도 블랙이 가장 오래된 색소 중 하나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중세 초기 기독교는 엄격한 도덕규범을 내세워 지나치게 화려한 옷차림을 죄악으로 간주하며 소박한 검정 옷을 입는 사람을 의로운 사람으로 여겼다. 1346년 흑사병이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전멸시키자 예술은 해골과 귀신같은 으스스한 공포 이미지로 당대의 희생과 고통을 표현했다.

 

스칼렛 실크 컬러가 15세기 이탈리아 초상화의 특징이라면,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부와 고상함을 나타내는 검은색이 주를 이뤘다. 르세상스 시대의 패션을 연구한 폴라 호티 에리히센이 1550년과 1650년 사이 베네치아, 피렌체, 시에나 지역에서 나온 유물을 조사한 결과 공예 장인의 의복 중 40% 이상이 블랙이었다.

 

루카스 데 헤레의 초상화에 담긴 메리는 금색 치마 위에 검은색 가운을 걸치고 왕좌에 앉아 있다. 펠리페는 검은색 더블릿(14~17세기에 남성들이 입던 짧고 꼭 끼는 상의)과 금색 반바지를 입고 그녀 옆에 서 있다. 그들의 의상은 웅장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검은색을 통해 도덕적 경건함과 종교적인 상징성을 표현했다. 

 

팜므파탈 

검은 옷을 입은 여성은 주로 과부를 상징하지만 빅토리아 시대에 들어 블랙은 이브닝드레스의 컬러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팜므파탈적 묘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블랙 드레스의 관능적인 힘은 필연적으로 그 옷을 입은 여성의 몰락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레오 톨스토이의 원작 소설 영화 <안나 카레니나> 속 안나는 검은 옷을 입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무도회에 참석한다. 그녀의 아름다움과 자신감을 드러낼 색은 검은색밖에 없었다. 단순하고, 소박하고, 자연스럽고, 우아하면서도 쾌활하고 열정적인 그녀에게 블랙은 자유를 주고 도전을 불러일으킨다.

 

안나처럼 도덕적으로 타락한 여성과 블랙 컬러를 연관 짓는 것은 다른 영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할리우드는 악한 이미지의 캐릭터를 담기 위해 초창기부터 블랙을 사용했다. 영화 <신>의 여주인공인 테다 바라는 검은 옷을 입은 뱀파이어에 영감을 얻어 긴 검은 머리와 끈이 없는 블랙 드레스를 선택하였다. 블랙 새틴을 입은 팜므파탈은 제2차 세계대전 말 누아르 장르에서 한때는 천사였으나 몰락한 존재로 등장한다.

 

영화 <블랙 스완>은 악한 유혹의 이미지를 검은색으로 제대로 살렸다. 영화 의상 디자이너인 에이미 워스트콧은 주인공 니나의 발레 의상에서 위축된 소녀스러움은 핑크와 화이트로, 마음이 뒤틀리고 괴로워하는 모습은 블랙과 그레이 컬러를 적용해 심경의 변화를 드러냈다. 검은 백조가 입은 검은 깃털과 검은 발레 스커트는 니나의 어두운 면을 온전히 감싸 안아, 그녀의 마지막 여정을 향해 가면서 정점에 다다른다.

  

YELLOW 

노란색은 꽃잎을 활짝 피고 햇볕을 정면으로 받는 해바라기나 1990년대 광란의 포스터 또는 티셔츠에 인쇄된 형광노랑빛 스마일 페이스와 같이 여름날과 낙관주의를 연상케 한다. 연한 미색의 목련, 버터, 레몬에서부터 해바라기, 사프란, 겨자, 형광에 이르기까지 노란색은 감정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다고 여기는 심리학적인 원색이다.

 

노란색은 자극적이면서도 낙관적인 감정을 북돋울 수 있지만, 압도적이기도 하며 부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긴 파장을 가진 노란색은 우리 눈에 가장 먼저 보이기 때문에 도로나 건설 현장에 배치되어 확실한 주목 효과를 내며, 매우 실용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많은 문화권에서 노란색은 태양과 황금을 상징하는 색이었으며, 생명을 주는 힘과 부를 상징하는 화려함을 의미하기도 했다. 로마인들에게 노란색은 꿀과 벌, 그리고 잘 익은 곡식의 색을 의미했다. 수확과 풍요의 여신인 세레스는 종종 노란 드레스를 입고 금발에 밀 왕관을 쓴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 가시성 때문에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고 혐오스러운 상징물에도 사용되었다. 바로 유대인의 노란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는 독일과 점령 지역의 유대인에게 노란색 다윗의 별을 옷에 착용하도록 강제했다. 이는 유대인을 게토로 옮긴 후 최종적으로는 강제 수용소로 보내기 위한 서곡으로서, 신분 확인과 분리 작업의 수단으로 활용됐다. 노란색이 두려움과 박해를 상징하는 순간이었다.

 

괴테는 노란색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노란색은 밝고 부드럽고 유쾌한 색이지만 빛이 약하면 금세 불쾌해지며 조금만 많아지면 더럽고 추하고 재미없어진다.”


노란 비단과 국화 

고대 중국에서 노란색은 철학, 의학 및 풍수에 사용된 오행론의 오색 중 하나였다. 지구를 상징하기도 하는 만큼 가장 귀한 존재로 여겼던 노란색은 금과 부, 태양의 빛, 장수와 건강을 상징하는 국화꽃의 색이기도 하다. 청 왕조와 같은 특정 시대에는 황제와 황후만이 입을 수 있는 귀한 색으로 대접받았다.

 

중국을 중앙집권 국가로 만든 5명의 전설적 황제 중 첫 번째 황제 ‘Gongsun Xuanyyuan'은 중국 문화의 중요한 측면을 확립했다. 그의 황후 Lei-Tzu는 차를 마시던 중 찻잔에 떨어진 고치 뭉치를 꺼내다 우연히 비단실을 발견한다. 이 비단실로 짠 실크는 고대 중국의 귀한 상품이었기에 짜는 방법은 철저히 기밀로 유지되었다.

  

누에고치에서 비단을 수확하는 ‘양잠’ 또한 매우 비밀스러운 기술로 다른 문명에서 비법을 알아내려 애를 쓰기도 했다. 상 왕조(기원전 1600-1046) 시대에 이르러 비단은 종교의식과 제사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고, 황후는 궁궐 내 누에 농장을 직접 감독하기까지 했다.

 

노란색의 부정적 의미 

중세 시대의 노란색은 온통 부정적인 이미지였다. 노란색은 질병, 질환 및 황달을 암시했으며, 4대 체액 중 하나인 황담즙과도 관련이 있다. 노란색 직물을 만들 수 있는 수많은 천연 물질이 있었지만 노랑은 오래 지속되는 빨강과 파랑에 비해 색이 빠르게 퇴색되었고, 이러한 특성들 대문에 불신의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이다.

 

유럽 사회에서는 기형이나 질병이 있는 사람 또는 범죄자와 같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을 노란색 스카프, 모자 또는 배지로 구분하였다. 중세 미술에서 사형 집행인은 일반적으로 노란색 옷을 입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노랑은 또한 반역자를 묘사하기도 했으며, 파산한 사람들의 집을 표시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은 노란색을 통해 유다의 이중성을 표현하기도 했다. 조토 디 본도네의 파도바 성당 프레스코 벽화에는 예수를 껴안은 유다가 노란색 망토를 입고 있다. 유다의 노란색 옷은 그를 반역자임을 뜻할 뿐 아니라 그가 유대인임을 의미했다.

 

반짝이는 모든 것 

중세 시대 노란색이 지닌 부정적인 의미를 감안하면 유일하게 수용 가능한 노란색은 금이었다. 금은 영적으로 신성하게 여겨졌고 실크로드 무역에서도 수요가 높았다. 7천여 년 전에 처음 채굴되어 보석과 장식품으로 사용된 금은 그 희소성과 비용 덕분에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중국에서 페르시아와 지중해로 거래되던 실크는 로마인들이 매우 귀중하게 여겼다. 당시는 티리안 보라 실크가 가장 고급스러운 색상으로 알려졌으나, 압제적 황제였던 코모두스는 밝은 노란색 실크에 줄무늬가 있는 예복을 입었다. 그 옷은 매우 아름답고 밝게 빛나 마치 금사로 짜인 천은 화려하고 호화로운 빛을 발했다.

 

골드는 과도하게 착용하면 촌스러우면서도 ‘독재자 같은 딱딱하고 고압적인 분위기’를 내지만, 레드카펫에서만큼은 인기다. 매거진 <엘르>는 골드 드레스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금빛 드레스는 리틀 블랙 드레스의 섹시한 여동생과도 같은 존재다. 활기차고 최면에 걸릴 정도로 황홀하며,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완전한 매력을 선사한다.”

 

패스트푸드 패션과 Z세대 옐로 

노란색은 “샌프란시스코에 오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라는 구호와 함께 1960년대 반문화적 시대의 조화를 상징했다. 비틀즈의 <옐로 서브마린> 앨범과 영화는 사랑과 평화를 이야기했고, 도노반의 노래 <맬로우 옐로>는 ‘쿨하고 느긋한’ 내용으로 제임스 조이스의 저서 <율리시스>에서 파생된 표현을 사용했다.

 

1960년대 희망을 상징했던 노란색은 1988년 사랑의 여름날을 상징하는 색으로 재등장한다. 애시드-옐로 컬러의 스마일 페이스는 광란의 파티와 엑스터시의 힘을 빌려 황홀한 기분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젊은 세대의 쾌락주의를 대변했다. 스마일 페이스는 1963년 미국의 광고 전문가 하비 볼이 보험 회사 직원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디자인되었으나, 이후 사이키델릭 운동의 축제 스티커로 사용되었다. 1988년 오리지널 런던 애시드 하우스 클럽 나이트 ‘Shoom’의 상징으로 채택된 후 앨범 커버, 배지 및 전단지, 패션 디자인 등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었다.

 

어린이의 기분 좋은 감정에 호소하여 부모의 구매를 유도하는 노란색은 패스트푸드 업계의 대표적인 컬러다. 맥도날드의 빨강과 노란 배색은 세계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색상이다. 편안함과 행복을 선사하는 노랑과 설렘과 배고픔을 느끼게 하는 빨강의 자극적인 조합으로 구성되어 시선을 잡아끈다. 노란색 포장지와 로고가 자주 사용되는 패스트푸드의 키치 미학은 현대 소비자에게 어필했으며, 노란색은 재미있고 순간적인 색상으로 받아들여지며 즉각적인 만족감을 선사했다.

 

팬톤은 2018년에 ‘Z세대 옐로’를 소개했다. 작가 헤일리 나만이 2017년 인스타그램 피드를 장식했던 밀레니얼 핑크가 노란색에 점점 밀리는 것을 보고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이는 미래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고, 처지와 환경의 우려 속에서 사람들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에너제틱한 색상으로 꼽힌다.

 

RED 

빨간색은 사이렌, 교통 정지신호, 영화 <이유 없는 반항>의 제임스 딘이 입은 바람막이처럼 경고의 신호를 나타낸다. 빨간 옷을 입은 여성은 어딜 가나 눈에 띄게 마련이다. <누가 로져 래빗을 모함했나>의 제시카 래빗이나 <사랑의 행로>의 미셸 파이퍼 역시 레드 의상을 입고 관객의 시선과 관심을 사로잡는다. 미셸 파이퍼의 빨간 옷은 그녀가 자신의 관능미를 온전히 컨트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빨간색은 시선을 사로잡는 색이기에 올 화이트 복장의 무도회에 등장한 빨간 드레스처럼 종종 부적절하거나 촌스러운 선택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영화 <붉은 옷의 신부>에서 조안 크로포드는 목조 건물 리조트에서 귀족인 척하는 카바레 가수 애니를 연기한다. 그녀는 항상 빨간 드레스를 꿈꾸었는데, 이는 더 나은 삶을 살려는 욕망의 표현이다. 상류 사회의 관습을 모르는 애니에게 청소부는 레드 드레스를 입지 말라고 강력히 권고하지만 끝내 빨간색을 선택한다. 결국 애니는 이 레드 드레스가 너무 요란하고 싸구려이며 잘못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빨간색의 힘 

빨간색은 불타는 태양, 붉은 머리 짐승, 전쟁과 혼돈, 폭력과 파괴를 상징한다. 또한 피, 힘, 생명을 의미한다. 종종 붉은 거들을 착용하는 다산의 여신 이시스의 핏방울을 상징하는 붉은 벽옥, 카넬리안 또는 붉은 유리로 만들어진 티예트 부적을 지닌 사람은 이시스의 보호를 받는다고 여겼다. ‘이시스의 매듭’이라 알려진 이 부적은 생리혈을 흡수하는 천과 비슷해 여성들에게 생명을 주는 힘을 연상케 한다.

 

구석기 시대에도 빨간색은 보호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부적, 목걸이, 팔찌를 만들기 위해 뼈와 치아를 빨갛게 칠한 조각들이 매장지에서 발견되었다. 로마 시대에는 붉은 천과 보석이 무덤에 놓였는데, 그중에서도 루비가 가장 귀했다. 루비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성욕을 불러일으키며, 마음을 자극하고 독이 있는 생물을 멀리 쫓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빨간색이 나타내는 불과 피는 삶과 죽음을 관장한다. 초기 기독교는 붉은색을 지옥의 파괴적인 불꽃, 악마, 악령과 연결했지만, 12세기와 13세기에 이르러서는 그리스도 피의 상징으로 여겨 로마 추기경들도 붉은색 망토와 모자를 쓰기 시작했다. 또한 판사와 법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정의를 대표하기 위해 빨간색을 착용했다.

 

르네상스의 빨간색 

1495년 파리에서 처음 인쇄된 문장학의 색깔에 대한 익명의 안내서 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미덕 중에서 빨간색은 고귀한 출생, 명예, 용기, 관대함, 대담함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리는 공의와 관용의 색이다. 빨간색은 다른 색들을 고귀하게 만든다. 빨간 옷 한 벌을 입은 사람에게 큰 용기를 준다. 녹색과 짝을 이룬 빨간색은 아름다움과 젊음, 그리고 기쁨을 의미한다. 푸른색과 함께 사용되면 지혜와 충실함을, 노란색과 함께 사용되면 탐욕과 욕망을 나타낸다. 빨간색은 검은색과 어울리지 않지만 회색과 함께 사용되면 큰 희망을 나타낸다. 또한 아름다운 흰색과 함께 사용되면 매우 높은 경지의 고귀함을 엿볼 수 있다.”

 

중세 시대, 빨간색은 전쟁이나 사냥에 나가는 남성에게 힘과 영광을, 여성에게는 아름다움과 사랑을 선사했다. 붉은 드레스는 매력적이고 매혹적으로 디자인되었다. 중세 마상대회에서 여성이 기사에게 사랑의 표시로 붉은색 소매를 주었는데, 이를 기사의 창에 묶으면 행운이 온다고 믿었다.

 

중세 영국은 양모 생산의 강국이었다. 15세기부터 서아프리카의 강국이었던 베냉왕국과 무역을 시작한 유럽에서 주홍색털실은 매우 귀중한 무역품 중 하나였다. 선명한 붉은색과 주홍색을 만드는 비용과 상징성으로 붉은색은 유럽 전역에서 가장 높은 계급의 시민들만 사용하도록 엄격히 규제되었다. 그리고 붉은색 천의 수입을 제한함으로써 국내 경제도 보호하고, 신분의 계급 차이를 드러낼 목적으로 1337년에 사치금지법이 도입되었다.

 

높은 염색 비용 때문에 베네치안 스칼렛이라 불렸던 연지벌레 염색 천은 고위층들의 전유물이었다. 염색 품질이 섞이지 않도록 꼭두서니와 연지벌레 기반의 염색 시설도 별도로 운영되었다. 꼭두서니 혹은 브라질우드로 염색된 레드는 종종 매춘부, 나환자, 죄수들에게 사용되었다. 이는 그들이 사회에서 버림받은 존재들임을 상징했다.

 

WHITE 

작은 얼룩도 즉시 눈에 띄는 화이트진은 부와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나타낸다. 지중해에서 값비싼 요트 파티의 복장이나 클럽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은 주로 화이트진을 즐겨 입는다.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흰옷은 육체노동을 하지 않아 옷이 더러워질 일이 없는 사람들, 즉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이 입었고, 19세기 이후부터는 여가를 즐기는 계층들이 시원한 흰색 린넨 정장과 드레스를 즐겨 입었다.

  

세계의 문화적 전통에서 흰색은 순수함과 처녀성을 나타낸다. 고대 로마에서는 불과 부엌의 여신인 베스타의 여사제들이 순결의 상징으로 흰색 린넨 로브를 입었다. 값비싼 비단은 천국에서만 입는다고 알려진 이슬람 문화권에서 순백색 면 옷은 헌신을 뜻한다. 흰색은 갓 내린 눈, 우유,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색으로 단순함과 순수함을 의미한다. 백색광은 스펙트럼의 모든 색을 반사하기에 백색 물체는 다른 모든 색을 표현할 수 있는 빈 캔버스가 된다.

 

오스틴 시대의 흰색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흰 드레스는 1790년부터 1820년까지 영국 섭정 시대의 신고전주의 패션을 반영했다. 소설 <노생거 수도원>에서 앨런 여사는 캐서린 몰랜드에게 엘리너 틸니가 항상 흰옷을 입으니 그녀를 만날 때는 흰옷을 입으라고 권한다. 오스틴은 캐서린 몰랜드와 헨리 틸니 사이의 관계 발전을 표현하기 위해 하얀색 모슬린을 사용했다.

 

흰색은 미덕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계몽주의 낭만에 어울리게 우아하고 섬세하다. 영국은 프랑스와 전쟁 중이었고, 혁명의 바람과 함께 여성복의 흐르는 듯한 실루엣은 고대 그리스 예술과 민주주의, 그리고 계몽정신을 담아냈다. 버드나무처럼 섬세한 실루엣은 고전적인 조각상 같았고, 하얀 모슬린, 케임브릭 또는 면이나 아마사 직물의 바슬거리는 순수함은 산업혁명 시대의 청결감을 강조했다. 그리하여 평평한 슬리퍼와 함께 편안함과 자유를 제공하는 옷차림이 되었다.

 

섬세한 흰색 직물의 아름다움에는 식민주의, 노예제도, 섬유산업의 노동자 착취라는 진정한 공포가 비밀리에 숨어 있다. 메그나 강둑에서만 자라는 목화로 제작되는 다카 모슬린은 16단계의 비밀 공정을 거쳐 정교한 수작업으로 만들어진다. 노예들은 화이트 패션에 쓰일 면화 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영국에서 수입된 거친 모직물이자 ‘흑인의 옷감’으로 알려진 화이트 웨일스 직물만 입을 수 있었다.

 

많은 노예가 이 거친 흰옷의 노예화와 그 상징성을 거부하고 자유인으로 보이도록 그들만의 미학을 창조했다. 흰옷을 인디고 식물로 염색하거나 호두나무 껍질에서 갈색 염료를, 삼나무 이끼에서 노란색 염료를 추출하는 등 식물학적 지식을 활용해 그들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었다. 낡은 옷을 수선하기 위해 패치를 달거나 일요일에 입을 예쁜 드레스를 위해 다양한 컬러의 실을 직물에 짜 넣기도 했다.

 

하얀 결혼식

하얀 옷을 생각하면 결혼식에서 신부가 순결과 순수함을 알리기 위해 입는 정교한 프릴과 레이스가 달린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떠올린다. 현대 사회에서 순백의 웨딩드레스는 순결의 상징에서 점점 멀어지는 개념이긴 하나, 눈처럼 새하얗고 섬세한 실크, 새틴 및 레이스 달린 웨딩드레스는 그 자체로 의미가 남다르다.

 

18세기 패션 삽화에서 선명한 빨간색이나 다른 밝은 색상의 웨딩드레스가 있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샬럿 공주와 같은 왕실 신부들은 금사로 장식된 천을 선호했다. 그러나 1840년 빅토리아 여왕은 결혼식에서 상아색 새틴 웨딩드레스를 입음으로써 흰색 웨딩드레스 관습에 새로운 시도를 가져왔다.

 

영국 여왕들의 삶을 책으로 쓴 영국 작가 아그네스 스트릭랜드는 “그녀는 화려한 옷차림을 한 여왕이기보다 순수한 처녀처럼 티끌 하나 없는 흰색 옷을 입고 신랑을 맞아했다.”라고 기록했다. 그리고 처녀성을 강조하려는 목적이 아닌 데본 지역의 호니톤 레이스를 특별 주문하여 완성된 빅토리아 여왕의 웨딩드레스는 침체된 레이스 산업을 활성화시켰을 뿐 아니라 흰색 드레스의 붐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흰 드레스는 일반 여성에게 실용적이지도 않고 가격도 저렴하지 않았다. 흰 천은 깨끗하게 유지하는 비용뿐 아니라 한 번만 입고 말 드레스를 구입할 만큼 여유가 없었다. 여러 행사에서 입을 수 있는 드레스가 필요했기에 19세기 흰색 웨딩드레스는 누구나 갖고 싶어 하지만 쉽게 가질 수 없는 사치품으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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