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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브루타 조용한 질문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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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보안

하브루타 조용한 질문혁명

이스라엘식 밥상머리 공부법
탈무드창의평생교육원장 지음 | 느티나무가 있는 풍경 | 2020년 10월 | 294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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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둘연·정은아 외 지음/느티나무가 있는 풍경/2020년 10월/294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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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집


■ 책 소개

 

하브루타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질문으로 창의의 세계를 여는 혁명이다

 

하브루타는 유대인의 전통적인 학습 방법이다. 아랍어로 ‘우정’이나 ‘동반자 관계’를 뜻한다. ‘친구, 동반자’를 뜻하는 ‘하버’에서 유래했다. 전통적으로 하브루타는 유대인 율법인 토라(Torah)를 함께 공부하는 사람이나 학습법을 뜻했다. 같은 생각을 하는 유대인들이 모여 안식일과 휴일, 기도, 학습과 같은 경험을 함께 하며 공유하는 모임을 뜻하는 말이다. 현대에 하브루타라 하면 ‘학습 파트너’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하브루타가 가진 강점을 우리 한국적 상황에 도입해서 살아있는 교육현장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다름으로 다투는 것이 아니라 다름으로 지식영역의 확장과 정신영역의 확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전개를 위해서 하브루타는 필요하다. ‘다툼’에서 ‘열린 마음’으로 가는 길은 열려있다.

 

■ 저자 조둘연·정은아 외

조둘연

탈무드창의평생교육원장

 

정은아

메싸METHA+하브루타연구소장

 

연구원

김옥경, 김현경, 김도연, 이미순, 임소명, 안정준, 이호종, 신광철

 

■ 차례

서문

하브루타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없다

하브루타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소통하는 것이다

 

1장 이스라엘 교육법 하브루타Havruta

-이스라엘 교육법, 하브루타Havruta

1.토라Torah

2.탈무드Talmud

-탈무드는 종교 해석서면서 문학

3.리쉬마Lishmah

-하브루타와 목표

-하브루타의 현재

1.하브루타를 잘 하기 위한 준비

2.하브루타를 하기 위한 선행 조건

(1) 좋은 스승의 역할

(2) 좋은 친구의 역할

(3) 긍정적인 자세

 

2장 하브루타의 목표

-하브루타는 생각성장의 과학

-하브루타는 토론의 혁명

 

3장 하브루타 실전

-짝만들기

-질문하기

1.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깨닫게 하는 것이다

2.위대한 질문이 위대한 창조의 문을 연다

(1)질문 만들기

(2)질문의 방법

(3)질문의 효과

-대답하기

1.대답의 종류

2.대답의 방법

 

4장 하브루타 실행

-하브루타 실행하기

1.하브루타 방법

2.하브루타 토론하기

3.하브루타의 종류

(1)짝 하브루타

(2)팀team 하브루타

(3)합合 하브루타

4.하브루타 토론의 효과

 

5장 하브루타 생활하기

-하브루타를 한국 실정에 적용하기

-하브루타를 일상에서 적용하기

1.말하기

2.경청의 비밀

3.경청의 자세

4.대화 완성하기

-내가 나를 보기

1.메타인지의 의미

2.메타인지를 해야 하는 이유

 

6장 하브루타로 세상 보기

-교육의 출발지, 가정

1.생각의 키가 크는 사람들

2.생각의 키가 자라는 엄마, 생각의 키가 자라는 아빠

3.가정에서 하브루타 교육 시작

4.동기부여를 스스로 하게 하는 가정에서의 하브루타

5.이제는 엄마 차례

6.아이의 무한 호기심은 무한 성장의 열쇠

-교육의 근거지, 학교와 공동체에서 하브루타 적용하기

1.위대한 해결능력을 가진 하브루타

2.하브루타의 힘은 논리력과 분석력의 향상

3.스승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깨우치도록 하는 사람

4.질문은 가정에서도 아주 중요하게 작용

-변해야 사는 사람들

 

7장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기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생각하기

1.객관인지客觀認知 : 다른 눈으로 나를 보고 생각하기

2.입체인지立體認知 : 새의 눈으로 보고 생각하기

3.전환인지轉換認知 : 입장 바꿔 바라보고 생각하기

 

8장 우리교육의 현장 가정에서 교육의 출발을 생각한다

-밥상머리교육을 현대화하라

-세상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라

 

9장 또 다른 하브루타, 창의적 수학數學놀이

-지식공부가 아니라 창의적 사고 개발놀이

-수학놀이교구 하브루타가 있다

-창의적인 하브루타놀이수학

-하브루타놀이수학의 한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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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둘연·정은아 외 지음/느티나무가 있는 풍경/2020년 10월/294쪽/15,000원


이스라엘 교육법 하브루타(Havruta)

이스라엘 교육법, 하브루타(Havruta)의 실체

1.토라(Torah)

하브루타를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의 종교를 이해해야 한다.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이 토라다. 토라는 한 마디로 정의하면 유대교 율법이다. 토라(Torah)의 의미는 가르침, 교훈, 지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좁은 의미의 토라는 모세의 율법이다. ‘십계명’을 비롯하여 ‘모세를 통해 준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가리켜 ‘토라’라고 부른다. 넓은 의미로는 5경(Pentateuch)이다. <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로 모세가 저술한 5권의 책을 토라, 즉 율법이라고 부른다. 모세 5경, 토라는 ‘하나님의 가르침, 교훈, 지침’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썼다. 다른 의미로는 히브리 성서 전체를 일컫는 말이다. 더 나아가서는 유대인의 율법·관습·의식 전체를 아우르는 말로도 쓰인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즉 유대 백성에게 내린 계시의 본질이며,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계시한 가르침 또는 지침이다. 토라는 <구약성서> 처음에 나오는 5권을 가리키는데 국한된다. 율법 또는 5경(Pentateuch)이라고도 한다. 토라는 전통적으로 시나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모세가 썼다고 인정한다.

 

토라는 이스라엘인의 종교이자 성경이다. 이스라엘인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결정하는 단서다. 결국 이스라엘인의 정신적 모체가 토라다. 진정으로 이스라엘인이게 하는 중요한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증거로서 토라는 작동하고 있다. 성스럽게 다루는, 다루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종교로서뿐만이 아니라 한 국가의 역사다. 종교와 역사를 함께 현재의 생활에 적용하고 있는 드문 사례다.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었지만 아직도 굳건하게 정치와 종교가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 국가가 이스라엘이다. 토라는 이스라엘인에게는 종교이자 역사며, 또한 국가관이며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지켜야할 일상생활의 관습이자 도덕이기도 하다.

 

2.탈무드(Talmud)

탈무드는 ‘연구’,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토라가 유대인의 성경이라면 탈무드는 토라의 해석서이자 주석서다. 토라가 교과서라면 탈무드는 참고서다. 신의 영역인 토라를 인간의 영역에서 풀어 설명한 것이 탈무드다. 예를 들면 토라에서 ‘사랑하라’는 말이 하나님의 선언이자 절대적인 명령이이라면 왜 사랑해야 하느냐, 어떻게 사랑해야 하느냐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 탈무드다. 토라에서 사랑하라고 했지만 나를 죽이려는 자를 사랑해야 하는가. 천사를 해치려는 악마를 사랑해야 하는가. 나를 죽이려는 자를 진정으로 사랑해야 한다면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천사를 해치려는 악마를 사랑해야 한다면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탈무드다.

 

결국 탈무드는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영적 종교의 영역에서 일상 생활전선의 영역으로 인간화시켜 주는 것이 탈무드다.

 

탈무드는 종교 해석서면서 문학

이스라엘의 힘은 믿음에서 나온다. 이스라엘인들은 하나님이 자기를 선택하여 주었다는 확신에 차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고 미래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특별히 간택해서 돌보아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나라 없이 천년에 넘는 세월을 흩어져 살면서도 결속과 연대를 할 수 있었던 힘은 종교다. 토라는 가르침이고, 탈무드는 배움이다. 탈무드는 유대인을 유대인답게 만드는 책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하나로 만나게 하는 힘이 있다. 탈무드에는 삶의 방법들이 기록되어 있다. 지혜와 깨달음으로 안내하고 있다. 토라가 뼈대라면 탈무드는 가지다. 세세하게 생활 속의 일들을 해석하고, 작은 결정들까지 탈무드의 지혜에서 배우고 익힌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탈무드는 질문과 토론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철학서이자 인문학을 가르치는 입문서다.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책으로 종교의 기본 철학은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결정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토라가 신의 계시라면 탈무드는 인간의 해석이다. 무수히 많은 사례가 있고, 살아가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해결해야 한다. 큰 명제를 작게 나누어 상황마다 결정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탈무드는 필요하다. 탈무드가 탄생하는 지점이다.

 

요약하면 하나님의 계시가 토라고, 하나님의 계시를 풀어 쓴 책이 탈무드다. 하나님의 뜻이 토라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방법이 탈무드다. 이스라엘인들은 탈무드를 일러 ‘위대한 학문’이라고 부른다.

 

3.리쉬마(Lishmah)

유대인들의 최고의 학습기관이 ‘예쉬바(Yeshiba)’다. 예쉬바의 학습법을 하브루타라고 한다. 하브루타는 예쉬바에서 교육하던 전통적 학습법이었다. 하브루타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르치고 배우고, 공부하는 방법이다. 하르부타 방식은 묻고 답하고, 토론한다. 너무 간단한 방식이다. 하브루타는 학생과 학생이 짝을 이루어 묻고 답한다. 또한 선생님과 학생이 서로 묻고 답한다. 형식엔 주체가 없다. 하지만 이끌어나가는 주체는 확실히 선생님이다. 반면 우리의 현재 교육은 가르치고 배운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으로 나뉜다. 선생님은 말하고 학생은 듣는다. 학생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궁금한 것이나 의문점을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주입식 교육이라고 한다.

 

리쉬마(Lishmah) 정신

유대인에게 ‘리쉬마’ 정신이 있다. 리쉬마(Lishmah)를 토라 리쉬마(Torah Lishmah)라고도 한다. 토라 리쉬마란 ‘토라를 위한(For the sake of the Torah)’ 이라는 의미로 전제 조건이 유대인의 교육철학이다. 토라를 위해 공부하면서 공부의 실천은 리쉬마 정신으로 ‘공부 자체를 위해서 공부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공부 자체를 위해서 공부한다’는 말은 쉽지만 심오한 뜻이 담겨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를 공부에 두고 있다는 말이다. 평생 공부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목적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리쉬마는 결국 구약성경인 토라를 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평생 동안 공부한다는 교육의 자세를 말한다. 모든 것이 신 안에 있으니 모든 것이 대화의 대상이고, 모든 공간이 토론의 장이다. 어디서 누구와 만나든 주제를 놓고 대화하고 토론할 자세가 되어있는 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이다.

 

하브루타와 리쉬마를 해야 하는 의미는 세 가지로 대별된다. 첫째는 토라의 율법 자체와 준수가 중요한 목적이다. 둘째는 순수한 동기와 목적의 공부다. 돈과 명예 또는 권력을 위한 목적의 공부가 아니라 토라 자체가 보상이 되는 공부다. 셋째는 공부는 즐기는 공부가 되어야 한다. 첫째는 우리의 목표가 아니고, 우리의 의미와 부합되지 않는다. 우리 한국사회의 교육이 나아가야 할 때 필요한 것은 두 번째와 세 번째 부분이다. 토라와 상관이 없는 순수한 목적의 공부와 즐기는 공부를 필요로 한다.

 

하브루타 실행

하브루타 실행하기

인생의 결과는 무엇이 되는가에 있지 않고 도달하는 과정을 몸과 마음으로 경험하는 것에 있다.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하다. 과정에서 상대를 알 수 있다. 과정에서 설득하는 방법도 배운다. 과정에서 좋은 결론을 찾아낸다. 과정에서 스스로 알아가는 것을 배운다. 우리가 배워야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다. 지식을 얻는 과정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 하브루타다. 이미 답이 나와 있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지식이다. 지혜는 사물의 이치나 상황을 깨닫고 현명하게 대처할 방도를 생각해 내는 정신적인 능력이다. 더 확실하게 표현하면 지식은 과거의 정보고, 지혜는 미래의 정보다. 지식은 이미 논리적으로, 실험적으로 확정이 되어 있는 것을 아는 것이고, 지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을 찾아가는 것이다. 지식은 과거의 영역이고 미래는 현재와 미래의 영역이다.

 

1.하브루타 방법

하브르타는 생각의 힘을 길러주는 데 있다

하브루타의 최대 장점은 생각의 힘을 길러주는 데 있다. 하브루타는 생각의 힘을 길러주는 방법으로 짝을 이루어 주고받는 질문과 대답에 있다. 우리의 학부모나 팀의 책임자 그리고 경영자들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같은 수준의 사람들끼리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으면 정답은 누가 알려주느냐고 물을 수 있다. 우리는 정답을 찾고, 제자는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스승은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우리의 사고체계에서 일반화되어 있다. 하브루타는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의 하브루타를 살펴보자.

 

가르치지 말고, 지시하지 말고, 질문으로 묻고 답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하브루타에 들어가는 기본 과정이다. 강제가 아닌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것이 부모의 몫이다. 지식을 깨우쳐가는 과정을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교육방법이다. 아이가 떼를 쓸 때도 질문해야 한다. 아이들은 지각이 깨어나기 시작할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떼를 써서 이루려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떼를 쓸 때 부모가 받아주는 경우 흔하게 발견하는 특별한 면이 있다. 공부를 하는 것이 부모에게 자랑할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 것은 잘못이다. 밥을 잘 먹는 것이 큰일이라도 한 것처럼 생각하게 한 것은 더 큰 잘못이다. 사소해 보이는 문제를 바로 잡지 못하면 아이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데 오래 걸린다. 감사해야 할 것을 오히려 안하겠다고 떼를 쓰는 상황을 만든 책임은 부모가 고스란히 받아야 한다. 평생의 짐이 된다. 이미 나이 들어 사회에서 미성숙아로 낙인찍힐 수 있다. 부모는 단호해야 한다. 그리고 자식은 자신이 잘못된 것을 자각하는 순간 자신을 방치한 부모를 원망할 수도 있다. 바르게 가르쳐주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이다. 자식이 바른 길을 가도록하는 것이 부모의 몫이다. 끝까지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한다.

 

한국의 부모는, 특히 한국의 엄마는 지나친 애정으로 아이들이 독립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버린다. 아침마다 아이들을 깨우느라 고생하고, 아이들에게 엄마는 귀찮은 존재로 전락하는 것을 종종 본다. 아이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대로 두어서 지각하도록 서너 번만 하면 자신이 알아서 일어난다. 그래도 안 일어나면 학교를 쉬게 하면 된다. 그토록 싫어하는 학교라면 학교에 가도 아무 소용이 없다. 하지만 아이는 친구가 없는 세상을 잠시만 살아보면 바로 깨닫는다. 아이가 어른보다 더 적응력이 뛰어나다. 한두 달 쉬면 학교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나는 것은 아이다. 아이가 원할 때에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이에게도 좋다. 열정도 생기고, 성취감도 느끼게 된다. 아이에게 결핍을 느끼도록 가르쳐 주는 것이 필요하다. 결핍을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아이의 독립에 필요하고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인생에서 공부 한두 달 쉰다고 낙오자가 되지 않는다.

 

분명하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고마운 일이고, 엄마가 밥을 차려주는 것이 배려고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넘치면 아이는 결핍을 몰라 자기 멋대로 행동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공부도 마찬가지다. 학교를 갈 수 있는 것이 고마운 것이라는 것을 깨우쳐주는 것이 부모의 몫이다. 학교가기 싫다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을 수 있는 용기가 부모에게 있어야 아이가 스스로 일어선다.

 

2.하브루타 토론하기

하브루타 시 주의할 점

하브루타를 진행할 때 주의할 점이 있다. 기본적인 토론할 때 또는 대화를 나눌 때에 지켜야 할 예의 내용과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토론할 때나 대화할 경우와 다른 점은 뚜렷한 주제와 목적이 있어서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규칙이 없는 자유로운 토론이나 대화가 아니라 규칙이 있는 엄격한 토론이라는 점이다.

 

첫째, 상대의 입장을 확실하게 존중한다.

둘째, 대화를 할 자세를 가지고 시작한다. 마주 앉아 눈을 마주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셋째, 상대가 말을 마치기 전에 말을 끊지 말아야 한다.

넷째, 상대의 논리에 가능한 동조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고수해야 한다.

다섯째, 상대의 생각을 반박할 때는 논리적이고 근거를 들어서 분석하고 설명해야 한다.

여섯째,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를 확실하게 상대에게 설명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일곱째, 끝까지 결론이 나지 않아도 좋고, 결론을 내도 좋다.

 

하브루타를 실제로 할 경우에 주제 내용을 교대로 상대에게 소리 내어 읽어준다. 주제를 상기시키는 의미도 있고, 토론에 들어가기 전 다시 한 번 주제를 대하면 토론할 내용으로 들어가기가 수월해진다. 토론을 할 때 한 사람은 질문만 하고, 한 사람은 답변만 하면 지루해질 수가 있다. 서로 역할을 바꾸어서 질문하고 대답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브루타는 논리의 대결이다. 논리가 충돌할 때에 상대와 다른 점을 다시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대화기법이다. 하나의 질문에 깊게 파고들수록 의미가 있다. 심층적인 문제와 철학과 사상적인 문제까지 서로 토론할 수 있으면 더욱 가치가 있다.

 

깊이 있는 하브루타가 되기 위해서는 사전에 준비해 와야 한다. 주제에 대한 공부를 하고 질문내용을 미리 만들어오면 더욱 심도 있는 하브루타가 될 수 있다. 아는 만큼 토론이 될 수 있다. 공부한 만큼 토론이 깊어질 수 있다. 상대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도 하브루타 주제에 대한 공부와 질문 내용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하브루타 생활하기

하브루타를 한국 실정에 적용하기

논쟁은 아름다운 마음나눔이다

토론으로 공부가 가능할까. 가능하다. 한국인에게는 낯설다. 토론으로 하는 수업은 대학원 과정이나 가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최고학부인 대학교에서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학습법이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방적인 강의형식이 우리에게는 익숙하다.

 

우리의 경우 논쟁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면이 강하게 포함되어 있지만 좋은 방안을 끌어내기 위한 긍정적인 면에서의 논쟁이다. 우리에게 흔한 상대를 제압하거나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정치적인 논쟁과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논쟁은 아름다운 마음나눔이라고 생각해야한다.

 

또 하나는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가족 간의 대화고, 사회 속에서의 대화다. 또한 소통에 문제가 있다. 교육적인 문화의 차이점이다. 우리는 가르치고 배우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 선생과 학생의 관계로 수직적인 면이 강하고, 이스라엘의 경우는 부모와 자식, 랍비와 제자라고 해도 수평적인 관계에서 공부하는 것이 다르다. 이스라엘에서는 지혜를 구하는 입장에서 나이와 신분은 중요하지 않다.

 

이스라엘에서는 생각에 자극을 주어 학습효과를 높이는 것이 교육의 한 방법이다. 이스라엘에서는 가정 내에서 대화와 독서가 일반화되어 있다. 아이가 생각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지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고 생각하게 하는 것에 무게 중심이 있다. 다시 말하면 지식보다 지혜에 관심을 더 가지게 하는 것이 이스라엘 교육법이다.

 

하브루타를 일상에서 적용하기

나의 주장을 주장하기 전에 상대의 주장이 옳을 수 있음을 생각하라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이스라엘 환경에 맞는 하브루타가 필요하다. 우리 한국에서는 한국적인 상황에 맞는 하브루타가 필요하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학업방식이 있다. 좋은 점은 받아들이고, 나쁜 점은 버려야 한다는 일반적인 공식에서 하브루타도 예외일 수는 없다. 또한 좋아도 우리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소리 내어 읽거나, 움직이면서 읽는 것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듯 싶다.

 

한국인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토론문화다. 우리의 경우는 토론을 할 때 자기주장을 하다 싸우게 되거나 얼굴을 붉히는 경우는 종종 본다. 토론에 감정을 들여놓아서다. 그리고 자기 주장이 옳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어서다. 두 가지 다 토론에서 배제되어야 할 요소다. 먼저 감정적인 면을 살펴보자. 토론을 할 때는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한다. 감성적인 생각이나 감성적인 마음을 들이면 토론이 감성적으로 흘러 냉정하게 판단하고, 결정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토론은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할 때 필요하다. 진로를 찾아야할 때 필요하다. 여기에 감성적인 면으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면 토론에 지장을 준다. 화를 내야할 이유가 없는 것이 토론이다. 이성적으로 주장하고, 이성적으로 답변을 주면 된다. 판단을 이끌어가기 위한 방법으로 토론이 필요한데 감정적으로 사안을 대하면 토론이 깨질 수 있다.

 

다음으로 한국인에게 종종 드러나는 자기주장이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강한 주장이다. 모두는 옳고 모두는 틀릴 수 있는 것이 토론이다. 어떤 주장도 근거가 없는 것은 없다. 한 사람의 주장이라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모두가 반대할 때 한 사람의 주장이 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토론을 할 때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전제 하에 시작된다. 물론 내 생각이 틀렸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논리를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내 생각이 옳다고 주장한다면 토론의 기본자세가 갖춰지지 않은 것이다. 내 생각이 옳다고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면서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에 갇혀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생각의 감옥은 무엇보다도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 사회적인 관계를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운 현실에서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결과를 만들게 된다. 한국사회에서 주장은 있고 논리는 없는 토론을 종종 본다.

 

하브루타는 어디에서나 적용할 수 있다. 하브루타를 할 경우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브루타는 현실 속에서 적용하면 보다 깊이 있게 논의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하브루타는 나와 다른 사람, 즉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의 만남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인이 부족한 면이 바로 이점이다. 얼굴을 붉힐 이유가 없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자신의 주장에는 논리가 있어야 한다. 무조건 내 생각이 옳은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 옳아야 하는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주장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내가 왜 이런 주장을 하는지 이유가 명백해야 한다. 보다 더 좋은 방안을 찾기 위한 것이 토론이다. 언제든 나와 다른 생각이었다면, 옳은 생각이었다면 박수를 쳐줄 수 있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우리교육의 현장 가정에서 교육의 출발을 생각한다

밥상머리교육을 현대화하라

하브루타의 출발은 가정이다. 우리의 밥상머리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우치게 된다. 우리의 밥상머리 교육은 나름의 교육환경을 만들어냈지만 새로운 시대의 교육환경에 맞는 변화가 필요하다. 우선 일관되게 주장해온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깨우치게 하는 것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첫째, 밥상머리는 가르치는 장소가 아니라 소통의 장소로 만들어라

변해야 산다. 세상이 바뀌면 예절도 변한다. 세상이 바뀌면 교육법도 바뀌어야 한다. 한국식 교육은 밥상머리 교육으로 가르치는 교육이었다. 선험자(先驗者)가 후발자(後發者)에게 가르쳐주는 자리로 이용되었다. 당시에는 더없이 좋은 교육 방법이었다. 이제는 달라지고 있다.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 밥상은 가르치는 공간이 아니라 소통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평화가 온다. 분위기가 달라진다. 엄마의 하루 이야기가 시작되고, 아이의 학교이야기가 친구 이야기가 봄날에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피어나고, 아빠의 세상 이야기가 엄마와 아이들의 공감을 받으며 이뤄지는 소통의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가족은 인류가 만든 가장 따뜻한 공동체다. 세상의 고난을 쉴 수 있고, 세상의 경쟁을 완화시켜주는 공간이어야 한다. 집에 와서는 천국이라는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제는 다시 소통이다. 밥상머리에서 어떤 말을 해도 받아주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아이는 입을 연다. “너, 하고 싶은 말 다해라.”라고 해서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 아이는 없다. 모자라거나 분별력이 없는 아이에게나 가능한 이야기다. 모처럼 마음을 먹고 이야기를 했더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니?”라고 할 때 아이는 충격을 받는다. 다시는 입을 열지 않는다. 아버지와 엄마의 힘은 아이에게는 무서운 권력이며 두려움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더구나 일관된 가족의 원칙이 없다면 수시로 변하는 잣대에 아이는 발언을 포기하고 만다. 마음을 닫는다.

 

소통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아이에게 있지 않다. 아이들에게도 아버지와 엄마의 넉넉함을 기대한다. 아버지와 엄마와 대화를 원한다. 대화를 피한다는 것은 피하게 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 그것을 찾아내 개선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소통은 없다.

 

아이들은 자신의 의무를 다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아이들은 아직 경험이 없어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부족할 수가 있다. 지혜를 깨닫게 해주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자신이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보살펴주어야 한다. 아이에게 많은 것을 주고, 아이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해주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먼저 아이에게 많은 것을 주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아이에게 용돈을 많이 준다는 것이 잘못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용돈뿐만이 아니라 넘치는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 아이가 불편함이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을 절제할 줄 모르는 아이로 키우는 것과 같다. 아이에게는 아이에게 맞는 돈의 용처가 있다. 쓰는 것도 정상적이지 않게 쓰지만 더 중요한 것은 버는 힘듦을 경험하지 못하고 쓰는 것만 배운다는 점이다.

 

아이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해주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부족함이 인생을 공부하게 한다. 부족함을 참고 견딜 줄 알아야 한다. 한국의 엄마가 이스라엘을 가서 겪은 일을 소개한다. 밤새 고생을 해서 만든 작품을 아침에 아이가 학교에 가면서 서두르다 챙기지 못했다. 그냥 집을 나가는 모습을 보고 한국의 엄마가 그것을 보고 작품을 들고 문을 나서려 하자 이스라엘 엄마가 말렸다. 한국 엄마가 놀라 “왜 그러냐?”고 했다. 이스라엘 엄마가 말했다. “그것은 아이의 몫이예요.” 챙겨주는 것이 정상이 아니라는 이스라엘 엄마의 생각이다. 당연히 한국 엄마의 입장에서는 아이를 불러 챙겨주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멀리 갔다면 학교까지 가져가서 전달해주어야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이스라엘 엄마 생각은 다르다. 아이가 부주의로 못 챙긴 것은 아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자신의 잘못을 다시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다.

 

한국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 한국의 아이들이 다른 나라 아이들보다 부족해서 버릇이 없는 것이 아니다. 버릇없게 가르친 부모들은 분명하게 아이의 부모다. 아이의 부모가 책임이 있다. 가족이 들어오고 나갈 때 나와서 맞이하게 하는 것이나 사람이 나가고 들어올 때 나와서 인사를 하는 것은 기본 예의다. 아이가 예의를 지키지 않고 있다면 책임은 전적으로 부모에게 있다. 마찬가지로 아이에게도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책임을 스스로 지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서 지켜야 할 것은 감정적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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