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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부 대신 논어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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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게임

나는 공부 대신 논어를 읽었다

대한민국 최초 중 ․ 고생 자기 계발서
2020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김범주 지음 | 바이북스 | 2020년 07월 10일 출간 | 240쪽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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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주 지음/바이북스/2020년 7월/240쪽/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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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집


■ 책 소개

 

대한민국 최초 중ㆍ고생 자기 계발서

 

중3 때 미국 단기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학교 성적이 전교 최하위권이었던 저자 김범주가 고3인 현재 전교 학생회장이 되고 토론토 대학교까지 합격한 변화의 과정을 담은 책이 『나는 공부 대신 논어를 읽었다』이다. 사춘기와 반항이 시작될 중1 무렵 우연히 나간 독서 모임이 계기가 되어 책과 친해질 수 있었고, 논어 필사를 통해 정신적인 성장을 경험한 덕분에 그런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0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선정작인 이 책은 평범한 사람의 특별한 이야기다. 누구라도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 한 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앞길이 깜깜한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가며 청소년 자녀를 키우는 대한민국의 모든 학부모님들에게 강추하고 싶다.

 

■ 저자 김범주

저자는 현재 캐나다 윌로데일 고등학교에 3학년으로 재학 중이며 전교학생회장이다. 중3 때 미국 단기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학교 성적은 전교 최하위권이었다. 그런데 사춘기와 반항이 시작될 중1 무렵 우연히 나간 독서 모임이 계기가 되어 책과 친해질 수 있었다. 또한 논어 필사를 통해 정신적인 성장을 경험했다.

 

어릴 적부터 해외여행을 통한 다양한 체험으로 견문과 시야를 넓혔으며, 미국 유학 동안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고, 만만치 않은 어려움을 극복함으로써 질풍노도의 시기를 오히려 자기 계발의 시간으로 보냈다. 지금은 자신감과 자립심이 강한 학생으로 변했으며,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에 지원해 합격 통지를 받았다.

 

■ 차례

1. 독서로 만난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내가 공부를 이렇게 못할 줄이야 | 800명과 함께한 떼독서로 인생의 때를 만나다 | 내가 잘하지도 않았는데 | 택시까지 타고 달려간 진정성 | 아빠는 왜 매일 밥을 사요? |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자녀를 이끌 수 있는 특별 노하우 | 책을 읽을수록 질문이 늘어났지만 | 최연소 독서 리더에서 내 인생의 리더로 | 그들은 상금을 받아 어디에 썼을까?

 

2. 십대, 논어로 살아내다

나의 한계를 시험하는 프로젝트 | 논어가 사랑받는 이유 | 모래주머니 원리로 성공하다 | 사춘기 시절 순한 양으로 살았다 | 가족의 소중함을 빨리 깨닫는 비결

 

3. 미국에서 내 인생에 도전하다

겁 많은 아이가 꿈꾼 나라 | 만나기 전에 상대에게 신뢰받는 방법 | 두려움으로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시간 | 미국에서 처음 본 노란 하늘 | 스물두 살 엄마와 지내면서 배운 것 | 자고 나니 동양인 괴물로 변해 있었다 | 내게 왜 이런 시련을 | 낯선 곳에서 강해질 수 있는 비결은 | 불가능한 학생회장 선거를 가능하게 만든 비법

 

4. 나를 키운 경험들

캄보디아에서 배운 세계 그리고 인생 | 그랜드캐니언의 고산병을 통해 얻은 깨달음 | 행복한 나와 보스니아의 어린 집시 | 열정, 몸으로 느끼는 성공의 키워드 | 엄청난 행복 공부 | 또 하나의 도전 토론토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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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주 지음/바이북스/2020년 7월/240쪽/14,000원


십대, 논어로 살아내다

나의 한계를 시험하는 프로젝트

2015년 아버지는 어떤 프로그램의 과제 하나로 모임을 만들어야 했다. 인원은 본인 포함 5명 이상이었다. 논어 필사 모임이었다. 처음에 나는 필사를 함께할 사람으로 지목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사람을 섭외하다가 모으기가 힘들어 마지막 한 명이 비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인원 충족용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말들이 오고 갔다. 처음에 나는 학교와 학원 가기도 바쁘니 다른 사람을 구해보라고 했다. 필사의 필자도 모르니 다른 사람 구해서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논리를 펼치며 아버지와 긴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나 결국엔 내 의사와 관계없이 반강제적으로 모임에 끌려들어가게 되었다.

 

"신선한 십대의 생각이 어떤지 궁금하네요. 기대됩니다!"

 

멘붕이 왔다.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나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필사를 더 열심히 해야 하는 분위기가 돼 부담만 잔뜩 지고 돌아오게 되었다. 생각하니 억울했다. 나를 위한 필사가 아닌 아버지와 어른들을 위한 필사 같았다. 온전한 나만의 생각을 담지 못할 것 같았다. 걱정부터 앞섰다. 물론 아버지는 나에게 아무도 기대를 안 한다고 했다. 부담을 덜어주려는 말이었지만 그래도 신경이 많이 쓰였다.

 

논어 필사는 나의 한계를 시험해보는 프로젝트로 변했다. 평일엔 학교와 학원을 가느라 늘 시간이 부족했다. 필사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처음에는 필사하지 않고 버텼다. 모임의 규칙은 매일 2문장씩 써서 카톡방에 사진 찍어 올리는 것이었다. 나 빼고 다른 분들은 매일 2문장씩 하루도 빠짐없이 올렸다. 아버지의 독촉이 시작됐다. 대충이라도 써서 사진 찍어 올리라 했다. 처음에는 건성으로 대충 적었다. 대충 적으니 이번엔 제대로 쓰라는 잔소리로 변했다. 아버지는 늘 제일 먼저 카톡방에 올렸다. 성실했으며 아주 모범적이었다. 너무 착실해 얄미웠다. 나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었다. 지속적인 잔소리가 시작했다. 아버지의 잔소리는 날로 심해졌다.

 

버티다 못해 잔소리가 듣기 싫어 달리 생각하기로 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이 있듯이 내 삶에 한 번의 큰 의식적인 변화가 필요했고, 그 변화를 필사를 계기로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 어차피 해야 한다면 건성으로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고 생각했다. 처음 두 달은 여전히 건성으로 성의 없이 대충 적었다. 그런데도 두 달이 지나자 조금의 변화가 느껴졌다. 변화가 느껴지니 필사에 탄력이 붙었다. 탄력을 받자 더 효과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사람의 인생은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아버지의 반강제성이 없었다면, 나는 필사하지 않았을 것이고 성장의 기회 또한 잡지 못했을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지금은 필사를 통해 많이 성장했음을 느낀다. 독서 모임도 그렇지만 필사도 내 삶의 터닝 포인트라는 생각이 든다. 필사를 통해 세상의 이치와 원리, 인간의 본성. 인간에 대한 이해, 사람들과의 관계, 생각하는 힘, 글 쓰는 능력 등에 대해 많이 배우고 깨달을 수 있었다.

 

논어가 사랑받는 이유

중학교 2학년 때와 고등학교 1학년 때를 비교하면 개인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스스로 성장했음을 느낀다. 단순한 물리적인 나이로만 성장한 것은 아니다. 일단 배경지식이 넓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의미 있는 변화는 바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였다. 사람 보는 눈이 생긴 것이다. 논어를 필사하기 전에는 사람을 볼 때 단순한 기준을 적용했다. 한마디로 부모님이 인정하시는 분들만 좋다고 생각했었다. 스스로의 시각으로 사람을 보는 눈이 없었다. 물론 지금 그 시각이 많이 나아졌다는 뜻은 아니다. 한 단계 성장했다는 의미다.

 

지금은 누군가를 만나면 나의 시각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 노력한다. 그 사람에 대한 나의 판단이 맞는지 아버지와 함께 공유도 한다. 의견을 나누다 보면 아버지와 나의 판단이 비슷할 때가 있다. 그런 경우가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작은 행동을 보면 대략 알 수 있다. 심성은 어떤지, 가까이해야 할 사람인지, 가까이하면 안 되는 사람인지 구별이 된다. 아버지가 늘 일관되게 강조하시는 부분은 사람의 인성이다. 인성과 심성 좋은 사람들을 가까이하면 자신도 모르게 좋은 부분들을 닮아간다. 반면 가까이하면 안 되는 사람들도 있다. 말을 자주 바꾸는 사람, 질투심이 강한 사람, 부정적인 사람, 험담을 잘하는 사람,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 등이 피해야 할 부류들이다.

 

사람을 선별할 수 있는 안목과 통찰은 삶을 사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리더의 위치에 있다면 필수적인 사항이다. 작은 습관 하나만 봐도 그 사람에 대해 대략은 알 수 있다. 작지만 좋은 습관들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인사 잘하기, 약속 잘 지키기, 성실한 모습, 솔선수범하며 책임감 있는 자세 등은 우리가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이 아닐까?

 

공자가 살았던 시대와 2,500년 지난 현대는 사람을 제외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 순간에도 미래를 향한 변화와 혁신은 지속되고 있다. 사람을 제외한 모든 것이 변화된 지금, 2,500년 전의 도서가 어떻게 현존할 수 있으며, 나아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시대의 변화와 상관없이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과 기본 덕목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2,500년 전의 인류와 현대의 인류가 서로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시대를 불문하고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과거의 인류와 지금의 인류가 추구하는 올바른 가치는 여전히 같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등 사람의 본성 또한 다르지 않다.

 

나는 논어뿐만 아니라 고전 속에 길이 있다고 믿는다. 고전을 공부하면 사람에 대해 알게 되며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예지력과 통찰력을 배울 수 있다. 조선 시대 왕손들도 이를 알았기에 어려서부터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등 고전 서적들을 공부하고, 입이 불어 터질 정도로 외우고 또 외웠는지 모른다. 과거의 지혜를 배워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고전은 나이를 초월한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아도 그 속에 담긴 일화를 통해 여러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논어를 비롯한 고전을 읽어야만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논어에는, 고전에는 인간과 세상이 존재한다.

 

사춘기 시절 순한 양으로 살았다

부모님 세대와 비교해서 요즘 학생들은 사춘기가 빠르다고들 말한다. 내 경우에도 심하게 빠른 것은 아니었지만 이른 편이었다. 아마도 초등 6학년 때쯤으로 기억된다. 부모님의 말씀에 괜히 삐딱하게 반항하고, 다른 의견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함께하는 시간이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저학년 때는 부모님과의 동행을 좋아했지만 6학년이 되고부터는 혼자가 좋았다. 부모님과 함께라면 거북스럽고 피하고 싶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랄까. 어느 순간 갑자기 시작된 사춘기의 영향인 것 같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간섭받지 않고 독립하고 싶었다. 사춘기는 누구나 겪고 지나가는 과정이지만,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라 많이 혼란스러웠다. 정신적으로 흔들리는 시기였다. 더 크게 흔들리기 전에 논어를 만났고, 필사를 접하게 되었다. 필사 당시에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어렵고 힘든 작업을 왜 하라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은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그때는 매우 불만스러웠다.

 

돌이켜보면 필사는 내 인생을 이전과 다른 삶으로 변화시켰다.

 

첫번째는 사춘기 극복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필사를 통해 바른 생각을 가지게 되었으며, 폭풍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필사하면서 매일 자신을 돌아보았다. 공자의 말씀을 통해 나의 행동을 반성했다. 물론 실제 행동이 곧바로 변하지는 않았지만 늘 ‘잘해야지, 변해야지’ 생각했다. 그것만으로도 내겐 크고 긍정적인 변화였다.

 

두번째는 반항심이 줄어들었고 생각이 긍정적으로 변했다. 좋은 글귀나 도움이 되는 말씀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반항심이 수그러들었다. 그 당시 친구들은 욕을 많이 사용했다. 대부분의 대화가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났다. 욕하지 않으면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 느낌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려면 욕을 해야만 했다. 만약 논어 필사를 하지 않았다면 친구들과 아무 생각 없이 욕하고 지냈을 것이다. 필사하고부터 욕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욕을 하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무시하는 일이었다.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스스로 낮추는 철없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사하면서 나만의 생각과 중심이 생긴 결과였다. 필사는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힘을 준다. 그 힘 덕분인지 나는 어린 나이에도 정신적으로 빨리 성장할 수 있었다.

 

세번째는 효, 신의, 예절, 의리 등에 관한 내용도 논어를 통해 배웠다. 필사하면서 이들 덕목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특히 신의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약속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 않고, 말한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지고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신의는 매우 중요하다. 신의를 잃으면 사회생활과 인간관계가 어려워진다. 이처럼 중요한 신의를 얻으려면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이것은 실천하기 쉽지 않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고전 필사는 학생들에게 매우 유용한 공부라고 생각한다. 사춘기의 학생들에게는 아무리 좋은 말이나 조언을 해주어도 여간해선 귀담아 듣지 않는다. 원래 그런 말들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시기다. 누구의 말도 긍정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남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깨달아야 한다. 고전은 사춘기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나는 논어 필사를 통해 큰 어려움 없이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를 잘 극복할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학생들에게 필사를 강추하는 이유다. 

 

나를 키운 경험들

캄보디아에서 배운 세계 그리고 인생

나는 어려서부터 여행을 많이 다녔다. 책도 마찬가지지만, 여행이 없었다면 나의 짧은 인생에 대해 할 말이 없을 정도이다. 그만큼 여행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해외여행이 주를 이룬다. 나의 첫 해외여행은 2010년 겨울, 초등학교 3학년 때 홍콩이었다. 가족 다섯 명이 모두 함께한,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여행 가기 일주일 전부터 나와 누나들은 모두 들떠 있었다. 어릴 때 제주행 비행기를 타 본 기억은 있었으나 해외로 나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홍콩을 무사히 다녀온 뒤, 아버지와 둘만의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10월, 한창 학교에서 학예회를 준비할 때였다. 아버지가 여행을 가자고 하셨다. 홍콩에서의 좋은 기억 덕분에 무조건 좋다고 했다. 그런데 여행 날짜를 보니 세상에, 학예회 날짜와 겹쳤다. 친구들과 춤을 추기로 계획했었는데, 여행을 가려면 학예회를 포기해야만 했다. 고민했지만 결국 여행을 선택했다.

 

부자지간에 떠난 여행의 첫 번째 나라는 캄보디아였다. 아버지는 캄보디아의 유명한 유적지를 보여주고 싶다고 하셨다. 캄보디아의 대표적인 유적지 ‘앙코르와트’ 말이다. 4박 5일의 짧은 여행이었다. 캄보디아에 도착하자, 후끈한 열기가 우리를 덮쳤다. 날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더웠고 습기도 대단했다. 버스를 타고 호텔로 이동하던 중 가이드가 말했다.

 

“캄보디아 호텔 방에는 도마뱀이 있습니다. 천장에 붙어 있다가 잘 때 얼굴 위로 떨어진다면 내일 당장 복권을 사러 가세요. 1등 당첨될 기운입니다.”

 

당시 그 말을 듣고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호텔 로비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공포에 휩쓸려 호텔 방에 들어가는 것도 무서웠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도마뱀이 있는지부터 둘러보았다. 10분 정도 수색한 결과 다행히 우리 방에는 도마뱀이 보이지 않았다.

 

캄보디아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앙코르와트’였다. 그 크기부터 실로 어마어마했다. 당시 기술로 불가사의한 건물들을 지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정말 아시아의 대표 유적지다웠다. 앙코르와트를 제대로 보려면 며칠이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일정들이 많아 속성으로 둘러보았다. 점심 식사 후 4시간 정도 둘러보았는데 심한 무더위로 인해 마치 8시간처럼 느껴졌다. 땀을 비 오듯 흘렸지만 어린 나이에 세계적인 유적지에 왔다는 기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 한국이 아닌 세계를 바라본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앙코르와트 투어가 모두 마무리될 무렵, 가이드는 자신이 잘 아는 마을을 소개하겠다며 우리 일행을 그곳으로 안내했다. 마을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바닥은 모두 흙바닥이었고, 집들은 거의 쓰러질 것만 같았다. 개울가 근처의 양철로 덮은 집인데 집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다. 마을에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모두 신발을 신지 않은 채 흙바닥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반바지만 입은 채 위에는 아무런 옷도 걸치지 않고 있었다. 어떤 어린아이는 맨몸으로 뛰어놀고 있었다. 불우하게 사는 동네였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정말로 가난하게 사는 마을이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캄보디아에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이 많을 것이라 예상은 했었지만 내가 생각했던 환경보다 훨씬 심했다.

 

이윽고 가이드가 아이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가이드는 미리 준비한 공책과 연필들을 현지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는 시간을 가진다고 했다.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아이들이 한 줄로 줄을 서서 그 친구들에게 공책과 연필을 나누어주었다. 캄보디아 친구들은 차례대로 우리가 준비한 공책과 연필을 모두 받아갔다. 그 경험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기억 속에 있다.

 

나는 너무나도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행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내가 보는 세상만이 전부라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 열한 살의 나에겐 그런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직접 보지 않았다면 말해도 믿지 못했을 것이다. 캄보디아에서 본 풍경은 나의 세계관과 시야를 넓혀준 계기가 되었다. 몇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캄보디아 여행은 어린 시절의 내게 다양한 시각과 마인드를 경험하게 해준 인생 여행이었다.

 

열정, 몸으로 느끼는 성공의 키워드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2월 초에 아버지와 둘이 중국 상해로 캠프를 가게 되었다. 사전 계획된 여행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가게 된 가족 캠프였다. 1학년 때 독서 모임에 나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강의가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접하는 강의였는데 바로 김형환 교수님의 강의였다. 김형환 교수님은 성인들의 자기 계발이나, 대학생, 청소년과 관련된 강의를 주로 했다. 대구 강연을 했을 때 아버지는 김형환 교수님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 후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던 중 이번 프로젝트의 제의를 받았다.

 

프로젝트란 바로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3박 4일 일정으로 부모와 함께하는 상해 여행이었다. 20여 명이 참여했는데, 학습 프로그램이었기에 부모님과 자녀가 함께했다. 김형환 교수님이 직접 참여 해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상해 투어 안내를 하며 시간 날 때마다 특강도 해주었다. 학생들은 교수님의 지도에 따라 직접 상해의 모습을 보고 느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매우 유익한 학습 프로그램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고 의미가 있었던 곳은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였다. 임시정부는 평소도 무척 가보고 싶었던 장소였다. 역사적인 명소를 실제로 보고 느낀 점들은 세계 어느 유명한 관광지에서 느낀 점보다 더 귀한 가치가 있었다. 나라 잃은 설움, 잃어버린 나라를 찾기 위해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은 애국지사들의 나라사랑을 뼛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만큼 내겐 뜻깊은 시간이었다.

 

어느덧 3박 4일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마지막 날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고된 훈련프로그램이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되었다. 그 프로그램은 김형환 교수님이 직접 짠 코스를 누구 의 도움도 없이 팀원끼리 지하철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니며 여러 장소에서 미션을 수행하는 방식이었다. 4명이 한 조가 되어 움직였고, 팀마다 현지인 가이드들이 말없이 동행했다. 혹시나 길을 잃을까 해서 현지인을 대동한 것 같다.

 

시작할 때는 무척 재미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산이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여러 장소를 옮겨야 했기에 쉴 틈이 없었다. 점심 식사도 일정이 타이트하게 짜여 있어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계속 걷기만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4~5가지의 미션 완료 후 최종 집합 장소는 상해의 한 박물관이었다. 5시가 가까워지자 팀별로 속속 박물관에 도착했다. 학생들의 표정을 보니 모두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우리 팀도 모두 기진맥진이었다. 반면 교수님의 표정은 생기 있어 보였다. 교수님은 우리에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모두 안전하게 돌아오셨네요! 상해를 직접 걸으며 돌아보니 어때요? 의미가 있죠?”

 

“제가 왜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힘든 미션을 드렸을까요? 사람은 신체적, 육체적으로 힘들어야 배우는 것과 얻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학생들을 보면 열정을 가진 친구들을 찾기가 어려워요. 열정이란 신체적으로 힘들어 봐야 비로소 느낄 수 있습니다. 살면서 한 번도 신체적으로 힘들어 본 적이 없었기에 열정이란 감정을 느껴보지 못한 거예요. 여러분들이 오늘 이 힘든 일정을 소화해 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열정이란 감정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덧붙여 독립심과 자립심, 문제 해결력도 길러줄 수 있었죠.”

 

3박 4일 상해 투어는 교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신체적으로 매우 힘들게 보낸 시간이었다. 말이 아닌 몸으로 배워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는 매일 저녁 식사 후 방에 모여 약 한 시간 동안 오늘 여행의 소감과 좋았던 점, 깨달은 점을 돌아가며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루의 피드백을 나누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 느끼지 못한 부분을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 공유하고 배울 수 있어 좋았다.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경험을 통해 발표력도 키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버스 이동 중에 교수님이 직접 들려주신 다양한 에피소드와 인생에 도움이 되는 말씀들이었다.

 

3박 4일 아빠와 아들의 상해 여행은 특별했다. 눈이 아닌 몸에 각인된 여행이었기에 여행 기간이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내 가슴속에 남아 있다. 참고로 김형환 교수님의 가족 캠프 여행은 청소년들에게 매우 유익한 프로그램이다. 학창시절 부모와 자녀의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다. 자녀가 있는 부모님들에게 강추한다.

 

엄청난 행복 공부

18년간 인생을 살며 삶을 바꾼 세 가지를 꼽으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첫 번째 독서, 두 번째 미국 유학, 세 번째는 바로 핵심 강사 과정이다.

 

핵심 강사 과정이란, 10주에 걸쳐 자신감, 배려와 경청, 미소와 칭찬, 성공, 감사, 행복 등을 배우는 과정이다. 줄여서 ‘핵심’이라 불리며 김홍걸 교수님이 지도하고 있다. 강사가 아닌 일반인도 배울 수 있는 과정이다. 김홍걸 교수님은 『현재를 즐겨라 』 『홍걸 씨! 강의해주실래요?』 『 행복 완전 정복』 『 행복! 그게 도대체 뭔데?』라는 네 권의 도서를 출간한 저자이면서 기업과 단체를 대상으로 전국적으로 강의를 하는 명강사다. 2015년엔 의료 보험공단의 강의 평가에서 전무후무한 100점 만점을 받아 최우수 강사상을 받을 정도로 강의 분야에서는 탁월한 실력을 자랑한다.

 

아버지가 내게 권할 만했다. 아버지는 대중 앞에서 말하는 법과 인생 최대의 화두인 행복이 무엇인지 일찍 알게 해주기 위해 이 과정을 추천하셨다. 아버지는 50세가 될 때까지 행복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살아오셨다고 한다. 행복이란 나이가 든다고 아는 것이 아니며 공부하고 배워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사실 핵심 강사 과정은 원래 학생은 수강이 안 된다. 그런데 아버지가 특별히 부탁해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제안을 받고 처음에는 굉장히 부담스러워 거절했다. 강의법을 배우고 강사를 양성하는 곳이라 생각했다. 더욱이 과정에 참여하는 분들이 대부분 삼사십대가 넘은 분들이라 선뜻 과정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일반 독서 과정도 아닌 강의를 배우는 수업이라 생각해 도저히 못 가겠다며 말씀드렸다. 그러자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강의만 배우는 곳이 아니야. 강의법도 배우지만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법도 배울 수 있어. 넌 강의 안 해도 돼. 거기서 교수님 강의만 들어도 엄청난 행복 공부가 될 거야. 내가 왜 한 과정이 끝났는데도 계속해서 1년 넘게 그분의 수업을 듣겠니?”

 

“근데 왜 한 번 들었던 강의를 1년 동안 4~5번이나 계속 듣는 거예요? 돈도 많이 들지 않아요?”

 

“너도 내가 왜 같은 과정을 계속해서 듣는지 궁금하지? 먼저 이 과정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배우는 과정이야. 누구나 말은 쉽게 하지만 몸으로 익히는 과정은 매우 어려워. 한 번에 되지도 않고, 직접 연습하는 과정이 필요해. 예를 들면 미소 연습을 할 때 처음에는 익숙지 않아 어색해. 몇 달 꾸준히 매일같이 노력해야 조금 나아질 수 있어. 이런 과정이야. 그러니 한 번 배운다고 되겠니?”

 

그제야 어느 정도 마음이 열렸다. 나는 고민 끝에 핵심 강사 과정에 참여하기로 했다.

 

일요일 수업 3시간은 매번 너무나 재미있게 지나갔다. 갈 때는 힘들어도 올 때는 만족스러웠고 뿌듯했다. 특히 행복에 관한 내용은 신선했으며 충격적이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3감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공감이 많이 갔다. 감○하라, 감○하라, 감○하라 해서 3감이라 한다. 그 밖에도 다른 요소들이 많았지만 공개하진 않겠다.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특별한 행복에 관한 내용이었다. 자연을 보는 법, 내 마음을 행복하게 하는 법, 미소 짓는 법 등을 통해 마음의 안정과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죽을 때까지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행복을 어린 나이에 알게 되어 심적으로 안정되고 풍요로움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행복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면 “행복은 주위에 널려 있다”라고 답할 것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것들이 삶 주변에 가득하지만 우리는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이 들수록 근심, 걱정으로 인해 주변에 존재하는 아름다움과 행복감 그리고 고마움에 대해 둔감해진다.

 

수업 시간에 배운 행복은 바로 느끼며 감사하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풍경이 있으면 경치를 즐길 줄 알고,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좋은 음악을 들으면 그 느낌을 말로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느끼라는 것이다. 꽃이나 커피의 향기로운 냄새와 보드라운 옷이나 사람의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피부 접촉까지도 우리를 순간순간 행복감에 젖게 한다. 신이 우리에게 준 오감을 많이 활용하는 사람일수록 더 많이 행복해질 수 있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한다면 행복은 없다. 언제나 행복은 미래가 아닌 현재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밝아지고 평안해진다.

 

김홍걸 교수님으로부터 배운 행복 수업은 결국 자존감을 심어준 시간이었다. 세상과 삶에 대한 감사를 통해 긍정적인 마인드와 함께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6개월의 특별한 배움은 대중 앞에서의 발표력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길러주었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배웠다. 미국 유학 중 상처받으며 외로울 때 나는 핵심 강사 과정을 떠올렸다. 이때 배운 행복을 되새기며 행복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자기 성장의 시간으로 활용했다. 행복이 무엇인지 배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행복에 대한 깨달음을 주신 김홍걸 교수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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