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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포에 해녀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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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게임

청사포에 해녀가 산다

해운대 도심 속 어촌 마을 청사포 이야기
배은희 외 지음|최봉기 외 사진|빨간집|2017년 10월|221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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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집 bookzip

 

■ 책 소개

 

에코에코협동조합이 2016년 5월부터 약 4개월간 만나고 기록한 청사포 해녀들 이야기

 

제주출신이 아닌 자생적 육지해녀인 청사포 해녀들의 물질하는 이야기와 살아온 이야기를 채록하고 그들의 일상을 관찰하며 청사포 해녀만이 가진 이야기와 속성을 담아내고 있다. 청사포 해녀의 주요 물질 장소인 다릿돌의 이름을 하나하나 언급한 자료는 이 책이 거의 유일하다.

 

해녀들이 알려준 다릿돌의 이름을 표기하며 청사포 해녀와의 관계를 담았으며, 청사포 해녀도감에는 뒤에 이어질 해녀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한 물질 도구 명칭과 특징들을 일러스트로 담았다,

 

이 책에는 8명의 해녀와 해녀들을 배로 나르는 선장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겨 있다. 바다와 평생을 함께 살아온 해녀들이 어떻게 물질을 하게 되었으며, 해녀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과 내부의 시선은 어떤지, 물질 방식과 바다 속은 풍경 등에 대한 해녀들의 일상 이야기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삶과 속내까지 솔직하게 풀어내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청사포 해녀의 기원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 저자 배은희 외

배은희는 이것저것 기록하는 사람이다. 사람, 문화, 예술, 장소, 지역을 기록하고 출판하는 기획팀인 ‘빨간집’의 대표이며, 잡지를 만들었던 경험을 기반으로 이것저것을 기록하고 있다.

 

최봉기는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인 목사이다. 어릴 때부터 청사포 바닷가에서 놀았으며 지금은 청사포 고개 너머에 살고 있다. 주민들과의 친화력이 강해 해녀들의 이야기를 잘 이끌어 내는 능력을 발휘했다.

 

■ 차례

〈청사포 마을 가는 길〉

바다를 건너는 징검다리, 다릿돌

청사포 해녀도감

 

〈청사포에 해녀가 산다〉

달달달달 떨리고 심장이 톨돌돌돌 - 김수자

만족해놓고 생각을 해야지 - 김숙자

내 가고 싶으면 가고 놀고 싶으면 놀고 - 김업이

아이고 머할라고 숨 안 쉬고 벌이는 돈을 - 김화자

우리 세대에 몇 년 안 하면 물이 끝날 거야 - 김형숙

좀 허탈하지 그때는 저기까지 갔는데 - 이신자

이거 가지고 묵고살다가 죽어야 되겠다 - 정양순

야 우리는 돈 안주고 해수욕장 가고 - 정영자

해녀들이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이 - 한성호

 

〈물에 하러 가다〉

 

〈열길 물속 이야기〉

숟가락과 채, 마음에 꼭 드는

갈코리와 줄, 해녀의 능력

정영자 해녀 실종사건

정양순 해녀 공친 날

열 길 물속을 들어 가 보기나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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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은희 외 지음/최봉기 외 사진/빨간집/2017년 10월/221쪽/15,000원


바다를 건너는 징검다리, 다릿돌

청사포 바다와 송정 바다는 서로 이어져 있어서 자리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릿돌’은 그 경계에 자리한 다툼의 중심이었다. 이 다릿돌의 돌미역 채취권을 놓고 1930년에 청사포와 송정이 법정 소송까지 갔다. 그때 승소해서 다릿돌은 청사포의 영역이 되었다.

 

청사포 바다 가운데에는 작은 등대가 있는데, 이 등대를 받치고 있는 바위가 ‘석우돌’이다. 그 옆의 바위를 ‘상좌’라고 부른다. ‘석우돌’과 ‘상좌’ 쪽은 물살이 세기 때문에 힘이 있는 젊은 해녀나 갈 수 있다. 또 그 너머는 물이 깊어서 숨이 길지 않으면 들어가기도 쉽지 않다. 조금 떨어져서 ‘넙덕돌’이라 부르는 바위가 있다. 해녀들이 물질하다가 힘들면 올라가서 쉴만한 바위다. 그 밑으로 ‘거뭇섬(거뭇돌)’과 ‘안돌’이 있다. 다릿돌은 전복, 소라, 성게 등이 서식하는 바위섬이라 청사포 해녀들의 주요 물질 장소이며 물질의 첫시작점이기에 다릿돌을 빼놓고 청사포 해녀를 얘기할 수 없다. 

 

1950년생 김수자

“달달달달 떨리고 심장이 톨돌돌돌 내 정신이 아이라 그 공포증이 안즉 있어”

동생인 김업이 해녀와 해안가에서 물질을 한다. 친정어머니와 세 자매가 모두 한마을에 산다. 젊었을 때는 깊은 바다로 나가 물질했지만, 어느 날 파도에 놀란 이후 한동안 물질을 할 수 없었다. 지금은 얕은 앞바다에 나가 물질한다. 처음 만난 날 “내 나(나이)가 여든 셋이다. 늙어 보이제?” 하고 농담을 던지셨다. 얼굴 가꾸어 볼 새 없이 살아온 삶을 별 일 아닌 듯 넘겨보려는 어머니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 어머니의 어머니도 해녀 하셨어요?

친정엄마도 했다. 젊었을 때 했으니까 몇십 년 안 했겠나. 내 처이 때도 했거든. 깍줌바리하고, 도박하고, 우뭇가사리 하고 그래 했다. 해녀 망아리 있제? 저래 안 작다. 코도 크고. 항그시 해놓고 다 못 가져오니까 바닷가 올라와 가지고 거서 망아리 밑을 풀어서 한 다라이 담아서 놓고, 또 나머지는 짜매서 지고 오고 그래했다. 망아리를 끌고 와 가지고 도로에 널어놓고, 또 한 망아리 지러 가는 기라. 비 오면 덮고, 비 안 오면 말리고 그래했다. 그때가 더 힘들었지. 그런 걸 하니까네.

 

- 물질하기 전에 다른 일 해보신 적 있으세요?

아가씨 때 저 수영에 삼도물산 보세공장 한 삼 년 다녔다. 언니 결혼 할 때 나왔지. 엄마하고 집에 일을 하려면 내가 있어야 된다 아이가. 막내는 아직 어리고, 학교 다니고 하니. 그래서 엄마하고 내하고 농사짓고. 옛날에 하유~ 우리 언니도 있을 때 언니하고 내하고 일을 마이 했다. 산에서 나무해 가지고 집에 빼까리(더미) 이런 거 세 개 씩 딱 재가이고 해놓고. 우리 고생 마이 했다. 오빠도 없제, 남동생도 없제, 아무도 없으니까 엄마하고 우리들만, 여자들만 해야 되는 거라.

 

- 본격적으로 물질하기 시작한 건 결혼하고 난 이후인가요?

결혼하기 전에 처녀 때도 했지. 나는 멀미를 그래 많이 한다. 다른 사람들은 약도 안 먹고 가는데 나는 바다만 가면 멀미약을 먹어야 돼. 물약을 한 병을 무야 해. 두 번째 가는 날은 반병, 고다음에는 이틀 삼일 달아 하면은 한 병 가지고 세 번을 노나 묵는 기라.

 

약 먹어도 바다 가면 멀미가 나와. 정신도 하나도 없고 머리도 띵~하이 미식미식하고. 데기 심하면 ‘내가 이 거 해 가지고 뭐 하겠노. 아이고야, 내 이거 안 할란다, 집에 갈란다. 내 죽어뿌면 뭐 하노,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 하다가도 쪼끔 괜찮으면 ‘아이고 내가 이걸 해야지, 이걸 해야 산다.’ 이래 하고 쪼끔 저기 하면 ‘아이고 내 이거 해가 머 하겠노, 내 죽는다 내 죽는다.’ 이라고. 그래그래 산다. (웃음) 내만 그렇다 내만. 멀미가 너무 심하다.

 

- 처음 물질할 때부터 그러셨어요?

처음은 안 그랬어. 내가 옛날에는, 삼십 년 다 됐나, 다른 해녀들이 저 섬에 안 가더나, 배 타고. 내가 거기 다녔거든, 같이. 우찌 한번 파도에 놀랬는가 그거를 모르겠어. 우리는 석우돌에 빠져 가지고 물에 질하면서 상좌로 오는데, 상좌에 파도가 데기 치더라고. ‘와, 저 속에 드가면 안 되겠다, 죽겠다.’ 이래 싶어. 물발이, 조리(조류)가 세면 마음대로 안 가져. 아무리해도 떠내려가는 기라. 그 돌 위에 올라가면 죽는 기라, 그 파도에는. 그러다 한번 숨비(잠수) 턱~ 내려가 본 게, 거기에 깜짝 놀랬는 모양인 기라. 파도보고 겁을 먹어뿟는 거라.

 

물 밑에 해녀들이 삼발이, 닻 놓는 거 안 있드나? 그걸 못 빼겠드라고. 마 달달달달 떨리고, 심장이 톨돌돌돌 내 정신이 아이라. 안정이 안 되는 거라. 형숙이, 원철이 엄마라고 있다. “원철아, 원철아, 내 죽겠다. 내 닻 좀 빼라. 내 저 돌 우에 좀 올리주가.” 그라이께네 지 망 아리 놔놓고 왔대. 그래가 내 닻 빼 가지고 돌 위에 올리주드라꼬. 내가 거기 있으이까네 배는 안 오지, 혼자서 바다 보이 죽겠고, 마음이 안정이 안 돼.

 

나중에 배가 오는데 다른 사람들은 안 타고 내만 탔잖아. 그렇게 왔어. 그 길로 섬에서 물에를 얼추 한 삼십 년 가까이 못했지. 저기 진역 가면 정신신경과가 있다. 약을 무이 괜찮은 기라. 그래 그 약을 구 년 뭇다. 배운 게 해녀질 뿐이 더 있나. 섬에는 못가고, 여기 가에는 함 가보자 이래가. 인자 내가 깊은 데를 못 가는 거라. 그 공포증이 안즉 있어.

 

- 살면서 어떤 재미가 있을까요?

돈 버는 재미지. 날 좋으면 바다 나가서 돈 벌제, 파도 치가 바다 못 가면 여 모여 놀제. 이게 제일 좋은 거지 뭐. 다른 게 뭐 있나.

 

- 어릴 때 크면 뭐 해야지, 이런 거 없으셨어요?

아이고, 촌에 옛날에 그런 게 어디 있노. 처이 때도 ‘나는 물에 해묵고 산다.’ 이런 생각은 없었지. 딴 마을에 시집가뿌면 물에질이 어데 있노. 근데 그런 생각하고 딴 데 시집가면 가는 거고. 부모들이 보내주면 간다 이랬지 다른 건 없었다.

 

- 어머니 집에 옛날 사진, 처녀 때 사진 있으세요?

내 처녀 때 사진 보면 탄복을 할 건데. (웃음) 내 처녀 때 사진이 없다. 옛날에 작은 집에 살 때 태풍이 와 가지고 집이 그때 파도에 한 번 쓸렸거든. 애들 학교 앨범하며 싹 다 떠내려 가뿠잖아.

 

- 태풍이 바닷가에서는 참 큰일이네요.

옛날에는 진짜 걱정했다. 이제는 집이 안쪽에 있으니까, 태풍 오면 배만 신경 쓰면 된다.

 

- 살면서 별일, 큰일이 없으신 거네요.

연애 해가 눈맞아 가지고 시집갔고, 그거밖에 없다. (웃음) 안 좋고 그런 것도 없고, 남보고 부럽다, 이런 것도 없고. 내 몸만 안 아프면 그기 제일 행복하다. 이 나이에는 그거 삐 없다. 부럽다해서 남의 돈 이 내 돈이 되나 안 되잖아, 그쟈?    

 

1054년생 정영자

“야 우리는 돈 안주고 해수욕장 가고 얼마나 좋노?”

남편은 청사포 어촌계장이고, 아들 내외는 장어구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청사포 해녀 중 가장 젊은 해녀이며, 그만큼 수확량이 많다. 해녀 ‘세이’들 속에서 막내 노릇을 톡톡히 하다가도 적극적인 성격으로 청사포 해녀들의 물건들을 모아 판매하는 역할도 한다. 남편과의 연애담과 젊은 시절 이야기에서 당찬 바닷가 처이의 모습이 선연히 보였다.

 

- 젊었을 때 이야기해주세요.

나는 여기 스물세 살에 시집을 왔거든. 원래는 기장 공수마을에 살았어요. 해녀는 안 했어요. 어릴 때 여름에는 더우니까 목 감으면서 불가사리 이런 것도 잡고, 천초 이런 것도 뜯고, 쪼끔은 해봤는데 많이는 안 했어예. 직장을 갔는데 열일곱 살, 여덟 살쯤에 갔나? 여기 ‘삼양라면’이라고 라면 공장이 있었거든. 언니가 그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나도 거기 들어가게 됐는데, 라면 회사에 일반인들이 견학 오고 학교에서도 오니까 그쪽에는 이쁜 아가씨들만. 내가 그런 데에 들어갔지예. (웃음) 나는 에이(A)반이고 언니는 비(B)반이라.

 

- 남편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우리 친구가 쌍둥이인데 그 집이 우리 아저씨 이모 집인 거라. 우리 아저씨가 할 일 없이 왔다 갔다 했어. 배도 탈라고. 잠수 있지 잠수, 머구리. 우리 시가집이 대대로 머구리 집안이라. 우리 시아버지도 머구리질을 하고 있었고, 우리 시숙들도 하고 했었고. 우리 아저씨도 자기 아버지 배 따라다니면서 배운 거라. 총각 때는 무기 만들고, 지도 그리는 병기창인가 그런 데에 다녔는가 봐요. 다니다가 군대를 가서 월남 갔다 와 가지고 별로 할 일이 없으니까, 이모집 왔다 갔다 하 면서 여기 친구들이랑 머구리 일을 배웠는가 봐. 그래 가지고 저 아가씨가 괜찮네, 어짜네 저짜네 이래 가지고 눈이 맞아 가지고. (웃음).

 

- 물질을 처음 할 때부터 잘한다는 소리 들으셨어요?

아니, 그때는 꼴찌 했지. 저녁 되면 앙장구를 해녀들이 갖고 온다. 나는 오백 그람, 삼백 그람, 일 키로도 못해 가지고 달아주고, 집에 누워있으면 잘하는 사람들이 밤에 저거끼리 한 번 더 확인한다고 “나는 오늘 사 키로데이”, “삼 키로데이”. 그렇게 가면 나는 방에서 뭐 되겠노. 삼백 그람, 오백 그람 해다 놓고 말도 못하고, 우리 신랑이 다 듣고 있는데. 그래 ‘내일이면 가서 악착같이 해야 되겠다.’ 이 생각만 있는 거라. 그래도 내가 가 가지고 할라 하고, 숨이 길고 이렇다고 빨리 되는 게 아니라 요령을 알아야 돼. 요런 자리는 전복이 붙는다, 요런 자리는 가면 물건이 있겠다, 없겠다. 이런 걸 생각을 하고 찾아가야지, 그냥 아무 데나 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 내 혼자 터득했지.

 

- 해녀일 하면서 기억나는 일이 있나요?

배 스크류에 줄이 걸리면 해녀들이 들어가서 풀어줬거든. 우리가 물질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여기 있을 때 요청을 하는데 어느 날 정양순 할머니하고 둘이서 줄 풀러 간 거라. 저기 앞에 끄는 배 있지예. 뒤에 딸리가는 배가 있고, 그거를 ‘난찌’라고 하거든, 바지선. 그 난찌 배가 줄이 감겼는거라. 그 배가 등대 섬 옆에 붙은 거라 그래가 대표로 내랑 민지 할매, 정양순 씨하고 뽑혀 갔는 기라.

 

- 정양순 어머니도 잘하시는 축에 속하셨네요?

잘했지, 엄청 잘했지. 내 에스오에스 청한 사람이 그 사람밖에 없다. “세이야, 내 닻 못 빼겠다.” 이라면 내려가 자기가 빼주고 이랬다. 지금은 디스크 수술해서 못하지. 제일 깊은데 들어가고, 제일 간이 크다니까. 최고 여기서 (엄지를 들며) 이기라니까. 싸움도 잘하고. (웃음) 지금도 고함지르면 벌벌 떤다. 그래 끌러 갔는데 같이 잠수하는 데 나는 도저히 무서워 가지고 ‘배 밑에 들어가면 스크류가 돌아가면 어떻게 하노.’ 배 밑으로 들어가야 되는 거라. 그러니 얼마나 무섭노. 나는 약간 공포증 이런 게 있거든, 폐쇄공포. 어둡고 좁고 그런데는 그래 무섭대. 자기는 막 잠수해 가지고 내려가가 막 이거 빼고 칼로 비는데 나는 무서워 가지고 같이 하는 척했지. 그래가 지금도 “드르븐 년, 니 년하고 같이 가서, 지는 기어올라 가뿌고 내 혼자 마 베낀다.”고 하믄서. (웃음) 그런 우스갯소리도 있고.

 

- 해녀 하면서 이런 건 너무 좋다 하는 게 있어요?

여름에 너무 덥잖아요. 바다 가면 엄청 시원하거든요. 야, 우리는 돈 안 주고 해수욕장 가고 얼마나 좋노. 다른 사람들은 피서가면 돈 드는데 우리는 돈도 안 들고 얼마나 좋노. 추워서 떨리는데. 이라면서 웃고 하지.

 

**

 

정영자 해녀 실종사건

한번은 넙덕돌에서 하다가 내 혼자서 등대 있는 데까지 간 거라. 그 때는 철도 없었지. 남보다 못하면 안 되겠다 싶어 가지고 내 혼자 막 따고 있었는데, 사공이 태우러 왔는데 사람이 한 명 없어졌는 거라. 등대섬 너머에 있으니까 내가 안 보인 거라. 나는 정신없이 따고 있는 데 저거는 내를 못 찾아 가지고 돌아간 거라. “희영이 엄마가 없어졌다.” “바가치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그때 우리 신랑은 우리 아아들 델고 마산에 산낙지 먹으러 갔어. 소식도 모르고, 전화도 없으니까, 그때 삐삐는 있었을라나. 우리 시가 집은 발칵 뒤집힌 거라. 그래가 우리 시숙은 배 타고 나오고 우리 시 어마이는 내 죽었다고 수건 가지고 울고 댕기며 죽어도 육지로 흘러 나오라고 내를 부르면서. 그때 나는 한참 물질을 해 샀는데 배가 딱 온 거라. 그래서 나는 우리 태우러 온 밴가 싶어 가지고. (웃음) 그래 그 배인 줄 알고 탔는데, 우리 시숙이 딱 타고 있는 거라.

 

“여서 뭐 하고 있는교! 동네가 지금 난리가 났구만.”

 

제일 나이 많은 해녀 할머니(김화자 해녀) 있지예? 그 할머니 아저씨가 우리를 싣고 갔는 거라. 내를 죽이 삤으니까 우리 살림 다 날라갔다고 그 할매도 울고 난리가 났는 거라. 그랬는데 살아오니까 그래도 반갑지. 나는 부끄럽지. 오니까 동네가 다 모여 있고 나는 그것도 모르고 한긋 따가지고 배에서 짊어지고 오니까 얼마나 미안노. 지금 같 면 ‘하이고, 미안해라.’ 이랄낀데 그때는 철이 없어 가지고 그걸 아나. 그냥 건들건들 집에 왔지. 그런 적도 있었다니까네. 그라이 이때까지 살았지.

 

**

 

열 길 물속을 들어 가 보기나 했나

청사포를 왔다 갔다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 해운대에 산지도 오 년이 되었으니 바다를 보면 오늘 물질을 하실는지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은데 알 수가 없다. 물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 바닷가에 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 바닷속이다.

 

해녀들에게 좋은 바다는 물살이 세지 않은 바다이다. 물살이 세면 몸을 가누는 것도 힘들지만, 물속이 뿌옇게 변해서 물건을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방향이 일정한 물살이 좋다. 물질을 하다 보면 물살에 떠밀려 가게 되어 있어서 굳이 물살을 거슬러 가면서 일을 할 필요가 없다. 배를 타고 나가면 먼저 해류의 방향을 봐야 한다. 물결이 어떻게 이는지를 보면서 물살의 방향과 세기를 가늠한다. 생각보다 물살이 너무 세면 잠수를 하고 올라오는 데 훨씬 힘이 든다. 그런 조류와 싸우며 서너 시간을 바닷속에 있기는 너무 힘들다.

 

바닷가 사람들은 계절과 시간대를 보고 대충 어떤 방향으로 바람이 불지 안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딱딱 들어맞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조류마다 이름이 다 붙어 있다. 물질하는 배를 타고 가며 조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애물이 어떻고, 바위에는 물이 어떻게 되고…. 하지만 제대로 알아들은 것이 없다. 마치 조선 시대 사람이 되어 컴퓨터에 관해 설명하는 것을 멍하니 듣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런 막막함이라니. 하지만 그 복잡한 용어들을 통해 조류가 얼마나 변화무쌍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물속은 겉보기와 다른 흐름이 있다. 선장은 배 위에서도 물속을 다 보는 듯 이야기하지만, 직접 들어가 봐야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해녀들은 그 알 듯 모를 듯한 물속에 들어가 물살과 싸운다. 그게 뭔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온몸으로 물살과 싸워야 하는 해녀는 이러쿵저러쿵하는 물 밖 이야기에 신경 쓰지 않는다. 오늘도 물질할 때 위험을 느낄 때가 있냐는 질문에 “뭐, 위험할 끼 있나.”는 심드렁한 대답뿐이다. 사람 속을 아는 것만 힘든 일이랴. 열 길 물속을 아는 것도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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