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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당신이 참 보고 싶은 날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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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조정실

오늘은 당신이 참 보고 싶은 날이네요

존경하고 사랑하는 남편을 추모하며
보리 지음 | 아마존북스 | 2020년 9월 | 327쪽 | 15,000원

그림2 (3).jpg
북집

 

■ 책 소개

 

존경하고 사랑하는 남편을 추모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과 그 고독을 이 책 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

 

이 책은 순천에서 명의로 이름난 남편과 24년을 살고 췌장암으로 사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살아생전에 보리라는 이름을 남편이 지어주었다. 그래서 보리가 필명이 되었다. 이외에도 명바라(명희를 바라본다)라는 이름으로 남편이 아내를 즐겨 부르곤 했다.

 

아내는 프롤로그에서 사랑을 고백한다. 나에 대한 사랑과 추억, 연민을 마지막 가는 길에 고이 안고 간 당신. 처음 만난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당신의 마음속 깊이 우러나오는 사랑을 받았다는 것 잊지 않을게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수호신이자 스승이었고 참의사였던 우리 기호 씨. 안녕, 진심으로 고마웠어요. 아내의 이 진심이 한 권의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2018년 불꽃 같은 생을 마감한 한의학 박사 양기호. 아내로서 길고도 짧은 24년의 세월을 양기호 박사와 함께했다. 5남매 집안의 큰며느리로, 네 아이의 엄마로, 열정 넘치는 한의사의 아내로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왔다.

 

함께 했던 수많은 세월, 무지 짧았던 순간의 기억들도 지나고 나면 한없이 길어져 아련한 여운을 남긴다. 저자는 좋았던 기억과 싫었던 기억, 안타까웠던 기억까지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차곡차곡 글을 써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설레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한다. 췌장암으로 사랑하는 남편을 먼저 보낸 아픔을 글로써 승화시켜 에세이집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한의학 박사 양기호는 24년간 ‘양기호 한의원’ 원장으로 수많은 환자의 건강을 지켜왔다. 명지대학교 전자공학과 학사, 한양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 후 원광대학교 한의예과에 다시 입학해 한의사로서의 미래를 준비했다. 원광대학교 한의예과 졸업 후 동신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해 명실공히 전문 의료인으로서 입지를 다졌다.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진정한 명의로 인정받으며 순천시한의사협회 회장 및 전남한의사협회 수석부회장을 역임했으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남후원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도 앞장서 왔다.

 

2015년 췌장암 선고를 받고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견디며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온몸의 기력을 잃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열정적으로 환자 진료에 매진하다 2018년 9월 4일 불꽃 같은 생을 마감했다.

 

■ 저자 보리

그 사람이 지어준 이름이 ‘보리’였고 깨달음과 지혜란 뜻을 담고 있다.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날에는 어김없이 ‘보리’ 또는 ‘명바라(명희만 바라본다)’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남편은 한양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한 후 원광대학교 한의예과 졸업반이었을 때 친구의 소개로 내 나이 서른둘에 만났다. 첫 만남에 “너는 주로 어떤 책을 읽고 어떤 글을 쓰냐?”고 물었다. 늦은 인연이 운명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프러포즈도 마트 평상에 앉아 새우깡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며 “내가 널 사랑할 테니 너도 날 사랑해라.”고 말했다.

 

기타도 잘 치고 하모니카도 기가 막히게 불었던 그 사람이 남진의 ‘둥지’와 임채무의 ‘사랑과 진실’을 나지막이 가끔 불러주었다.

 

한의원을 개원한 후 1995년 2월 13일 결혼식을 올린 직후 바로 시댁에 들어가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2015년 췌장암 선고를 받고 항암치료를 하던 중 초개처럼 가 버리고 싶다 했던 평소 말처럼 2018년 9월 4일 24년의 결혼생활과 함께 한의사로서도 방점을 찍고 불꽃 같은 생을 마감했다.

 

■ 차례

한의학 박사 양기호

 

추천사 박사님께 제가 많이 배웠습니다

“100명 중에 저만 남았어요”

환자만을 생각한 진정한 명의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부르십시오

 

프롤로그 그대, 이제 바람처럼 자유로워지기를……

 

chapter 01 걸림없이 살 줄 알라

운명이 되어준 첫 만남

데이트를 하다

수학이 싫었어요

담배 이야기

한의원을 열고 싶어

서른둘에 찾아온 사랑

내가 너 끝까지 지켜줄게

결혼식

살림을 배우다

적응

독종

장미꽃 한 다발과 1백만 원

자식

음식 솜씨

노래방과 경고

친구의 죽음

자격증

보리와 명바라

한의원 건물을 짓다

나는 장사꾼이 아니다

분가

이사를 하다

3천만 원과 큰아들

형님의 전화

작은 행복

시부모님

자궁암

혈관성 치매

보리야, 넌 어릴 때 꿈이 뭐였니?

화해

남편의 금연

두 번째 경고

사람된 도리

 

Chapter 02 운명 같은 사랑

딸과 수학

독종 양기호

무심코 던진 돌

내 운명의 상대

한 번뿐인 인생

나 대학원 갈란다

아버님 잘 가세요

비밀

자식들과의 갈등

고등학생 딸들

박사 남편

무뚝뚝한 한의사

동네 아줌마

좌병우치 상병하치

나쁜 소문

요양병원의 꿈

한없이 작아지는 나

요양병원 꿈을 내려놓다

지척이 천리

대학생이 된 딸들

엄격한 원장님

속사랑

큰아들에 대한 사랑

마음이 따뜻한 어머님

어머님 검사

췌장 미부암

어머님 사랑해요

헛소문으로 올라간 건물

집에서 막걸리 한잔 어때

진료비

상속세 내세요

욕심

1천만 원의 사랑

순천의 허준

운전면허시험

도로연수

췌장염 증상

양기호 한의원

췌장 두부암

명희 아줌마

아버님, 어머님 보십시오

안녕하세요? 어머님

나의 사랑 나의 빛 러블리마이마더에게……

 

Chapter 03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치료 시작

수술실 앞의 긴긴 기다림

복강 내 전이

포기는 없다

구차하게 살고 싶지 않아

퇴원

유지요법

다시돌아온우리집

떠도는 말

한의원 진료를 시작하다

앞으로는 더 강해져야 해

초음파 검사

폴피리녹스 치료

115병동

기억

쓰러지다

악수

주말여행을 가다

인사를 하다

조카와 100만 원

2017년

마음 다스리기

여전히 주말이면 내 기사 노릇

간으로의 전이

한의사로서의 사명감

자존심

뭣이 중헌디

오해를 풀다

 

Chapter 04 나는 너 믿는다

항암치료에 지치다

가을과 겨울

2018년

기호 씨가 아픈 거예요

내가 강해져야 한다

완벽한 존재

친정아버지

자기는 강한 사람이잖아

정 떼고 갈란다

1침, 2뜸, 3약

좋은 사람

아직 포기할 때가 아닙니다

새로운 항암치료

우선 순위

갑질 환자

나의 선생님

마음의 병

고맙단 말 왜 안 해

고집쟁이 양기호

마지막 만남

가을에 가고 싶다

휴대폰을 바꾸다

양기호에 매달려

이젠 내가 다 가르친 것 같아

이마와 눈에 입술을 대다

기호 간다!

안녕, 내 사랑

장례식

어떤 사람들

감사합니다

 

Chapter 05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불면증이 찾아오다

가족관계부

49재를 선암사에서 지내다

마지막 열정

남편의 편지

나에게 과분했던 사람

명바라 효과

공허함을 보다

그 사람의 영혼을 만나다

병든 마음

묻고 싶다

양기호가 내 남자

동행의 나날들

소문

흔들리지 않겠다

당신이 그리워지는 날

나만 믿고 따라와

소중한 가족

멍순 여사

최가수

운명적 만남

국밥

이제 조언할 사람이 없다

빈자리

사무치는 그리움

자식 걱정

단 하나의 사랑

작별인사

진짜 이별

한의원

 

Chapter 06 너랑 나랑 진정한 사랑을하는 거다

내 인생의 진정한 고수

고마운 직원들

잊었던 기억

위로를 받다

후회

인성이 먼저다

생로병사

좋은 환자와 좋은 의사

스트레스

반짝이는 별처럼 남편이 늘 곁에 있어요

마음의 빚

벚꽃 때문에 눈이 부셨다

예감

슬픔은 나누면 반이 아니다

비 오는 날

무소의 뿔처럼

떠난 뒤에야 안 것들

삶에 대한 희망

웃는 거 잊었어

하트 표시

우리 좀 따로 살아 볼까

희망의 끈

서글픔

들꽃

처음 맞는 봄

과부

너무 보고 싶은 내 사랑

맑은 바람이 되다

 

에필로그 전하지 못한 진심

 

Special Thanks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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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지음/아마존북스/2020년 9월/327쪽/15,000원

 

걸림없이 살 줄 알라

한의원을 열고 싶어

명지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관련 자격증을 섭렵하고 차석의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교수의 꿈은 이룰 수 없었고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수학교사로 1년을 재직했다. 하지만 그것도 본인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경영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한양대 경영대학원 과정을 수료했다.

 

대학원 수료 후 기회가 있어 아이큐를 측정했더니 멘사 회원도 될 법한 아이큐가 나왔다고. 칼을 갈면 날이 서 더 잘 들 듯이 머리는 쓰면 쓸수록 좋아지는 걸 그때 알았다고 했다.

 

그는 직업과 취미 그리고 삶의 목표에 관한 생각도 명확했다. “인간은 사회적, 경제적 동물이고 흐르는 물은 썩지 않아.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고 자기가 좋아하는 건 취미로, 잘하는 것은 직업으로 삼으면 좋지 않겠어? 돈도 정승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그저 취미라고 하기엔 아까울 만큼 그 사람은 잘하는 게 너무 많았다. 하모니카와 기타는 학창시절부터 시작해 수준급이었고 낚시, 바둑, 장기, 정원수 전지, 요리, 전기공사, 식물 가꾸기 등 여러 분야에 능숙했던 그는 소위 말하는 ‘금손’이었다.

 

그렇게 그의 매력을 하나둘 발견해 가며 만남을 이어갔다. 우린 강변의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을 하며 밤늦도록 대화를 했고, 함께 많이 걸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한의원을 하게 된다면 이곳(연향동 동부상설시장 부근)에서 하고 싶다고 운을 뗐다.

 

“난 나중에 한의원을 열면 여기서 하고 싶어. 열심히 해서 이 지역을 대표하는, 그리고 너를 위한 랜드마크로 키울 거야. 근데 너 내가 만약 한의사를 안 한다면 뭐 하고 살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난 순간 당황했지만, 우리 둘이라면 뭘 못하겠냐며 자신 있게 답했다. 대답은 그렇게 했어도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26년 전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곳에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의아했지만, 난 내색하지 않았다. 

 

운명 같은 사랑

무뚝뚝한 한의사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나에게 한의원 일을 좀 돕는 게 어떠냐고 물어왔다. 5년 이상 우리 한의원에서 성실하게 근무했던 직원이 결혼해 순천을 떠나게 되었다며, 이번 기회에 네가 나와 한의원 일을 전체적으로 배워두는 게 좋겠다고 했다.

 

간호사 면허가 있었던 나는 직원 뽑을 때 면접만 종종 보곤 했었는데, 본격적으로 나와서 일을 도우라니 처음엔 정말이지 너무 부담스럽고 나가고 싶지 않았다. 내 상태를 눈치 챈 남편은 지금 직원이 부족한 건 아니니 오후에만 잠깐씩 나와서 병원 돌아가는 상황만 파악하라고 했다. 식당을 해도 주인이 직접 나서서 친절하게 잘하면 장사가 더 잘되는 거 아니냐면서…….

 

내가 봐도 남편은 친절과는 조금 거리가 먼 한의사였다. 실력이 좋다는 소문 때문에 한의원을 찾았다가 특유의 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오해하는 환자들도 종종 있었다. 그래도 그 사람은 정말 중요한 건 실력과 환자를 대하는 진심이라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집에서 막걸리 한잔 어때 

남편은 한약을 달일 때도 내가 먹는다고 생각하고 정성을 기울일 것을 강조했다. 정수기 물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약재를 선별하고 관리하는 일도 늘 본인이 직접 했다.

 

어쩌다 침 맞으러 오신 어르신들의 속옷에 대소변이 묻어 있는 걸 보고 직원들이 인상을 찌푸리면 남편은 “너네도 나중에 늙는다.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는 태도를 길러라.”라며 호통을 쳤다.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약도 잘 권하지 않는 한의사로 유명했던 그 사람에게 어떤 환자 한 명은 대놓고 말도 안 되는 불평을 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침을 한 번만 맞아도 다 나았다는데, 왜 나는 여러 번 맞아도 차도가 없는 겁니까?”

 

누가 들어도 황당한 이 질문에 그 사람은 당당하고 침착하게 대응했다. “병증이 심해 다른 병원을 전전하다 막차 타고 오신 분까지 단번에 낫게 해줄 엄청난 능력이 있었다면 제가 여기서 이러고 있지 않았겠죠.”

 

이렇게 마음을 답답하게 한 환자가 있었거나 진료를 많이 보았던 날에는 남편이 “명바라, 집에 가서 막걸리나 한잔하자.”라고 했다.

 

욕심

퇴근하는 차에서 나는 한마디 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동네 사람들이 말로 우리 빌딩을 올려줘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어머님이 아파트 들어선 용당동 땅 보상받아서 자기 동생들한테 다 줬는갑네.”

 

조용히 듣던 그 사람은 한기가 가득 서린 말투로 대꾸했다. “차에서는 입 다물어라. 황천길 가고 싶지 않으면.” 냉랭한 침묵 속에서 우린 집에 도착했다.

 

그날 저녁 나는 공부하듯이 그 서류들을 꼼꼼히 훑어보았고, 돈이 날짜별로 빠져나가긴 했는데 도대체 누구한테 갔는지가 적혀있지 않았다. 난 결국 어머님이 거래하셨던 은행 두 군데를 열심히 쫓아다니며 하나하나 밝혀냈다.

 

알고 보니 적지 않은 돈이 남편 동생들과 조카들에게 흘러간 것이었다. 어머님은 내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누구한테 무엇을 주실 때면 꼭 나에게 말씀을 해주셨었기에 적잖이 실망했다. 생색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지만, 시부모님 병원비나 생활비도 우리가 많이 충당했었는데…….

 

은행에서 자료를 모두 뽑아다 회계사 통해 정리해 세무서에 넘긴 날 세무서 직원이 “큰 아드님 내외분이 어머니와 사이가 안 좋으셨나 보다.”라고 말했다. 가산세가 붙어 일반 가정에서는 흔치 않은 금액의 세금을 모두들 냈다.

 

그날 밤 나는 남편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어머님이 내가 돈 욕심이 없어서 예뻐하신 거였네. 돌아가신 형님 대신 조카들 챙기신 건 이해해도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돈을 받았으면 상속세는 제대로들 낼 것이지.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독종 양기호 씨! 당신 형제들도 별 볼일 없네!”

 

작정하고 속을 건드렸지만, 할 말이 없는지 그 사람은 조용했다.

 

췌장 두부암

2015년 설이 막 지났을 무렵, 남편은 자꾸만 살이 빠졌다. 가까운 병원에서 검사해도 이상이 없다 했지만, 그 사람은 어깨가 아프다며 골프도 그만두고 입맛도 없다 했다. 점점 입이 짧아지는 그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려고 나는 자주 장에 들렀다.

 

몸 상태는 안 좋았지만 늘 환자들로 붐비는 한의원을 비울 수 없어 진료는 꾸준히 했다. 봄이 오면서 갈수록 그 사람 체중이 줄어 또 검사했는데도 이상을 찾을 수 없었고, 당뇨약만 처방받았다.

 

5월 초 갑자기 혈당이 더 높아지고 눈에 황달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 췌장CT와MRI를 했고, 그 결과 췌장 두부암 진단을 받았다.

 

청천벽력이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리라.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내가 사랑했던 단 한 사람, 내가 원한 건 뭐든 들어줬던 그 사람이 암이라니. 하늘이 무너졌다. 오후 진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펑펑 우는 나에게 그는 조용히 말했다.

 

“오늘만 울어라. 언제 죽을지 모르는 놈 때문에 네가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젠가 될지 모르지만 나 없으면 네가 새끼들하고 살면서 힘든 일도 많을 텐데, 쓸데없는 감성팔이는 하지 말자. 나는 너를 강하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앞으로 나 치료받는 동안 부부보다는 의사와 간호사로 살자. 나 혈당 관리도 잘해야 하고 신경 쓸 일 많을 테니 내 오더 잘 받고 가정 관리 잘하자. 서울대병원으로 예약해라.”

 

그 누구보다도 놀라고 힘들었을 그 사람은 도리어 나를 위로해 주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마음 다스리기

2개월에 한 번은 검사를 위해 서울대병원에 갔다. 한번은 아침 일찍 검사가 잡혀 있어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갑자기 접수 데스크를 향해 큰 소리를 내고 있었다. 뭐가 뒤틀려서 저렇게 화를 내는 걸까. 또 2인실에 입원했을 때, 함께 있던 환자가 교수인 듯 보이는 바쁜 친구를 불러놓고 온갖 유세를 떠는 모습도 봤었다.

 

나도 종종 화를 내고 싶을 때가 있었다. 누구나 각자의 상황이 있는 거고, 오해도 있을 수 있는 법이니까. 그럴 때마다 남편은 “하늘이 언제나 맑을 수는 없다. 그래도 이 교수를 생각해라. 아는 사람이 있을 때는 더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라고 했다. 

 

나는 너 믿는다

항암치료에 지치다

반복되는 항암치료에 남편은 많이 지쳐 가고 있었다. 이 교수가 이제는 간격을 좀 더 늘려서 면역력이 올라갈 때쯤 한 번씩 하자고 했다. 항암치료는 3주에 한 번씩 가서 받기로 했고, 남편은 환자 진료에 더욱 집중했다.

 

한번은 한의원을 좀 쉬면 어떻겠냐고 했지만, 남편에게는 어림없는 소리였고 오히려 화만 더 돋우고 말았다. “면역력에 좋다는 음식 먹고, 휴식기 길면 뭐 해. 환자들한테 기다 뽑히면서……. 바쁜 와중에도 이 교수가 그렇게 신경 써주는데 제발 한의원 좀 잠시 쉬면 안 될까?”

 

“야, 너! 내 앞에서 그런 말하려면 너도 사라져 버려! 너 병간호로 고생시키며 산다는 말 듣고 싶지 않고, 나도 내 할 일 하고 살고 싶어서 그러니 두 번 다시 그런 말 하지 마!”

 

남편은 날이 갈수록 더 예민해지고 말이 없어졌으며, 나는 그런 그 사람이 더 어려워졌다. 10월에 다시 서울대병원에 갔고,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 항암치료는 안 받겠다고 했지만, 이미 오더가 떨어져 약이 들어왔다. 이번엔 몸이 힘들어서 쉬고 다음번에 하겠다고 한 거였는데 김 과장님과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었던 것 같다.

 

결국 항암은 하지 않은 채 집으로 내려왔고, 몸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남편은 다음 날 변함없이 한의원으로 출근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자기를 기다리는 환자가 있다면 언제까지라도 진료할 거라 했다. 남편의 실력은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번졌고, 방까지 잡아가며 타지에서 오는 환자도 생겨났다.

 

고맙단 말 왜 안 해

남편은 며칠 동안 별말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차가 강변도로에 잠시 정차하자 추억을 더듬듯 말했다. “우리 아지트 있던 곳이네, 처음부터 너만 바라본…….”

 

‘명바라’는 ‘명희만 바라본다’는 의미로 ‘보리’와 함께 남편이 나를 부르던 애칭 중 하나였다. 세차게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나는 그 달달했던 순간까지도 잊고 살고 있었다.

 

“세상에 나 같은 놈이 어디 있다고……. 넌 왜 나한테 고맙단 말 안 하냐?” 말은 안 했지만, 그 사람은 나에게 자랑스러운 남편이자 인생 선생님이었고, 아이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아빠였다. 그 당시에는 그런 사람이 내 곁에서 숨 쉬고 있다는 사실에만 집중했다. 다른 낭만 섞인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하루하루가 긴장되고 바쁘게 흘러갔다.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하려던 찰나에 휴대폰 벨이 울려서 받았고, 그 사람은 벌교 쪽으로 차를 세게 몰기 시작했다. 무심코 손잡이를 꽉 쥐는 나를 보더니, 남편이 “너 오래 살고 싶은가 보다. 하긴 너 속물이 다 되었더라. 네 것 따지는 거 보면.” 하고 말했다. 어이가 없었던 난 “자기가 해준 거 말고 내가 부모님이나 형제들 것 탐내는 거 본 적 있어?”라고 답했다.

 

대꾸할 말이 없었던지 그 사람은 잠자코 차를 돌렸고 우린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먼저 집에 들어갔고 아무리 기다려도 남편이 들어오지 않아 아래를 보니 그 사람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날 남편은 밥 생각이 없다고 했다.

 

기호 간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지만, 서울대병원에 가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결국 한국병원 황 원장에게 연락해 중환자실로 남편을 옮겼다. 평소 그 사람을 존경하고 형님처럼 모시던 목사님이 오셔서 간절히 기도해 주셨고, 오 교수님도 오셔서 그 사람이 다시 일어나길 염원하고 또 염원해줬다.

 

지인 및 분이 다녀간 일요일 오후 면회를 들어간 나와 사촌형님에게 그 사람이 작은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했다. “기호 간다, 명희야!” 너무 작은 목소리라 우리가 혹시 못 알아들었을까 봐 그는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해 ‘명희, 가! 가!’라고 써주고 손가락 세 개를 힘겹게 들어 보였다.

 

안녕, 내 사랑

느낌이 좋지 않았던 나는 아침 일찍 황 원장을 만나고 그 사람에게 갔다. 난 꼭 같이 살자며 사랑한다는 말을 무한 반복했고, 그 사람은 눈만 반짝이며 나를 바라봤다. 아침 면회가 끝나고 복도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누군가 양 원장님이 호흡기를 떼버렸다고 급하게 말했고, 원 과장이 들어가서 다시 호흡기를 연결했다.

 

나는 다시 그 사람한테 가서 가지 말라고 왜 그러냐고 하면서 펑펑 울었다. 아무리 울어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도 다 알았다. 의식 또렷한 그 사람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한의사 중의 한의사였던 그 사람은 이제 떠날 때라는 걸 스스로 분명히 느끼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보낼 수 없었다. 양기호, 내 남편이 어떤 사람인가. 아픈 몸으로도 나를 철옹성처럼 지켜 주었고, 수많은 고통을 이겨내며 강인한 정신력으로 기적처럼 내 옆에 있어 줬던 사람이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나 사랑이 없던 나에게 끝없는 신뢰감과 사랑을 주었지만, 어느 순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어졌던 내 인생 단 하나의 사랑. 미안하고, 사랑하고, 고마웠던 그 사람만 살릴 수 있다면 난 대신 죽을 수도 있었다.

 

아마도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나 먼저 보내고 싶지 않아 홀로 먼 길을 떠난 것 같다. 2018년 9월 4일, 그렇게 그는 가버렸다. 내 생각은 항상 건강한지, 영혼은 제자리에 있는지 생각하면서 잘 살다 오라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진짜 이별

시간이 흘러도 그 사람은 계속 내 곁에 있었다. 하루는 동생과 식당엘 갔는데 곁에 있던 그 사람의 기운이 심하게 요동치는 게 느껴졌다. 난 식당에 들어오는 사람을 무심코 봤을 뿐이었다. 그 사람은 두어 번 한의원에 왔던 동창이었고, 그 동창이 가족들과 식사하러 온 거였다. 그 가족들과는 안면도 없던 사이였는데, 남편의 혼이 알아보고 내게 신호를 준 것 같았다.

 

며칠 뒤 꿈속에서 아버님과 어머님이 방으로 오셨고, 어머님이 이제는 기호를 그만 놓아주라고, 기호는 여기 없다고 하셨다. 난 다음 날 바로 산소로 달려가 울며 소리쳤다.

 

 “어머님이 그렇게 아끼던 큰아들 데리고 가시면서 나한테 말 한마디 안 해주시더니 이제 이곳에 없으니 그만 잊으라고요? 어머님 저 진짜 예뻐하고 사랑하신 거 맞나요? 차라리 저랑 아픈 제 아들을 데리고 가시지, 왜 아까운 사람을 데리고 가셨나요?” 원망스러운 마음에 아무리 울어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내 곁에서 더는 그 사람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진짜로 가버린 걸까. 아이들은 내가 그런 말을 하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 다른 사람들 앞에선 절대 그러지 말라고 했다. 난 스님께 전화를 드려 이제는 정말 그 사람이 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스님은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해주셨다. 

 

너랑 나랑 진정한 사랑을 하는 거다

희망의 끈

아프고 힘든 사람들에게는 당장 오늘 하루가 버거울 수 있다. 그렇지만 희망의 끈을 절대 놓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환자와 그 가족에겐 사랑과 웃음이 서로에게 특효약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곁에 있을 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이라도 더 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가슴 속에 있는 사랑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를 바란다.

 

언제나 끝은 온다. 그게 좋은 끝이든 나쁜 끝이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읽고 나서 죽음도 친구처럼 가깝게 생각하며 하루를 정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수많은 밤을 함께 하며 그 사람과 맞이했던 아침은 얼마나 찬란했던가 추억하면서…….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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