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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말하지 않으면 늦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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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요약&칼럼

지금 말하지 않으면 늦어버린다

죽음을 앞둔 28인의 마지막 편지
이청 지음 | 이재희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07월 | 300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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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집

 

 

■ 책 소개

 

“당신의 유언을 모집합니다”

어느 날, 〈뉴욕타임스〉에 실린 350달러짜리 광고에 응답한

수천 통의 편지로부터 이 책은 시작되었다

 

뉴욕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던 저자는 석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중 사람들이 가장 진솔해지는 시기와 그때의 속마음이 궁금해 공공도서관에서 유언에 관한 수많은 문헌을 뒤졌지만, 끝끝내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문득 다양한 사연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의 임종 유언을 모아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뉴욕타임스〉에 광고를 냈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게 남겨주세요. 익명은 보장합니다.” 350달러짜리, 지면 한 귀퉁이에 작게 실린 이 엉뚱한 광고에 누가 답을 해줄까 싶었지만, 하루에 일고여덟 통, 많게는 수십 통씩 오며 수많은 사람의 응답을 받은 저자는 마침내 자신이 궁금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게 된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늦어버린다》는 저자가 받았던 이 수천 통의 편지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뭉클하면서 살아 있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줄 만한 28개의 편지를 엄선하여 실었다.

 

■ 저자 이청

밀스대학(Mills College)에서 영어작문 석사 학위를 받았고,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에서 심리학 석사 논문을 준비하던 중 ‘인간이 가장 진실해지는 때는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를 연구 주제로 삼은 뒤, 사람들의 유언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수많은 문헌에서 원하는 답을 찾지 못하자, 〈뉴욕타임스〉에 유언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실었다.

 

택시 운전사부터 가정주부, 의사, 대학교수, 유명한 배우와 감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들의 사연이 하루에도 수십 통씩 날아들었고, 죽음을 앞둔 이들의 마지막 편지에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것, 때늦은 고백이나 잘못을 뉘우치고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이들의 마지막 말을 기록하고 때때로 그들을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 있는 한 사람으로서 더 큰 감동과 깨우침을 얻게 되자, 이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해 가장 울림이 컸던 28개의 편지를 모아 이 책을 펴냈다. 저서로는 소설 《어린왕자의 귀환》이 있으며, 현재 베이징에서 심리학 작품 번역과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 역자 이재희

루쉰(魯迅) 작가에게 반하여 중국 문학을 전공하였고, 그의 발자취를 좇아 상하이로 건너가 화둥사범대학교에서 중국 근현대 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과 중국 대학을 오가며 강의하고, 번역 에이전시인 엔터스코리아에서 중국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 차례

작가의 말┃ 죽음을 앞두고서야 마음에 떠오른 것들

 

1장┃ 시간이 남아 있다면 사랑하는 마음을 고백하고

세상을 호령한 부자의 손에 남겨진 것

브로드웨이 극작가가 본 최고의 피날레

진실한 행복을 깨닫게 해준 단 하나의 가족

두 명의 아내, 두 개의 사랑

영화감독이 부인에게 전하는 마지막 작별 인사

가난한 남자가 가족을 지키는 방식

판타지 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이유

부모님의 뜻대로만 살았던 피아니스트

동성애를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에게

고해성사 속에 싹튼 마음

사랑을 증오했던 여자의 깨달음

신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수녀의 고백

여배우가 스포트라이트보다 그리워했던 것

 

2장┃ 시간이 주어진다면 후회는 남김없이 털어버리고

자신의 울타리 밖으로 나온 의사의 바람

한평생을 옭아맨 말뚝을 뽑는 일

백혈병에 걸린 꼬마의 마지막 소원

핵 전문가가 평생 후회한 일

수신인을 잃은 집배원의 러브레터

누구도 타인의 삶을 단죄할 권리는 없다

아이의 환청을 들은 엄마의 선택

트라우마로 얼룩진 어느 가장의 삶

환경미화원이 미처 치우지 못한 마음속 쓰레기

점잖은 노교수의 가려진 두 얼굴

월스트리트 주식 중개인의 충고

오해와 증오하는 마음을 내려놓은 택시 운전사

참전용사가 다리 말고 잃어버린 것

어느 신부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

 

마지막 편지┃ 이번 생의 종착역으로는 다시 돌아올 수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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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 지음/이재희 옮김/쌤앤파커스/2020년 07월/300쪽/15,000원

 

시간이 남아 있다면 사랑하는 마음을 고백하고

세상을 호령한 부자의 손에 남겨진 것

“당신에게 유일한 재산이란 무엇인가요?”

임종 유언을 모집한다는 당신의 광고를 보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유산 분배는 이미 끝내놓은 상황인데,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은 고백할 곳이 없더군요. 내게 믿을 만한 비밀 금고를 제공해주어 감사드립니다. 정말로 필요했거든요. 나는 나이가 많지는 않습니다만, 뇌종양을 앓고 있어 오래 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의사 말이 치료가 어렵다고, 기껏해야 반년 정도 더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나는 세계 500대 기업의 총수로 일찍이 업계에서 꽤나 떵떵거렸습니다. 하는 일마다 승리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남들 눈에 비친 내 인생은 자연히 성공 모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즐거움이 없습니다. ‘부’라는 것도 익숙해지고 나면 사실 별것 아니거든요. 마치 내 뚱뚱한 몸뚱이와 같지요.

 

지금에 이르러서야 병상에 누워 일생을 되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마음먹은 대로 누려왔던 사회적 명성과 부는 곧 다가올 죽음 앞에서 흐릿해져 가고,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더군요. 한밤중에 ‘만약 내가 죽으면 살아생전의 모든 것들이 재평가되고 가치를 잃어버리게 되겠지. 지금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한평생 돈과 명예가 주지 못한 게 무엇일까? 그런 게 있을까?’라고 스스로 몇 번이나 물어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차가운 금속 의료기기들이 뿜어내는 검푸른 빛과 삑삑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치 죽음이라는 음습한 기운이 내게 다가오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생각에 빠져들었고, 갑자기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지요. 제가 잊고 있었던 곳으로요. ‘그게 뭐지, 누구였더라?’ 마침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더군요. 사실 이건 생각해서 얻어낸 결과가 아니라, 직감으로 얻어낸 답입니다. 어쨌든 그곳으로 다가가고, 또 다가가는데... 오, 그녀였군요, 비비안! 어떻게 나는 어릴 적 소꿉친구를 생각해낸 걸까요? 그녀가 아직 살아 있다면 아마도 나처럼 늙었겠지요. 그녀는 분명 나 같은 사람을 진작 잊어버렸을 겁니다.

 

내가 여덟 살이었던 그해, 우리 가족은 메릴랜드주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비비안은 캘리포니아에서 온 일곱 살짜리 소녀인데, 외삼촌 댁으로 여름방학을 보내러 왔더군요. 그녀의 외삼촌 댁이 바로 우리 옆집이었지요.

 

우리는 처음 만나자마자 통했습니다. 그녀는 동실동실하고 갈색 곱슬머리와 하얀 피부, 주근깨를 지닌 여자아이였는데, 갈색 눈이 참 예뻤지요. 나는 여덟 살치고 키가 작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또 그때는 꽤 잘생긴 편이었지요. 적어도 비슷한 또래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었으니까요. 우리는 강가나 큰 버드나무 밑에 숨어 있는 매미를 찾으며 놀았답니다.

 

하루는 비비안을 주려고 미친 듯이 울어대는 매미를 잡으려 나무 위에 올라간 적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나뭇가지에 옷이 걸려서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습니다. 내가 안절부절못하고 울기 시작하자, 비비안이 무서워하지 말라고 저를 타이르다가, 또 자기가 밑에서 받아줄 테니 빨리 뛰어내리라고 횡설수설하더군요. 그때 그녀의 통통하고 조그마한 손이 내 발에 자꾸 닿는데, 속으로는 엄청 무서웠지만 한편으로는 또 그 상황이 달콤해서 정말이지 계속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고 싶었습니다. 그녀가 내 발을 붙잡으며 위로해주고, 또 나를 걱정하느라 초조해하는 모습이 좋았나 봅니다. 나를 엄청 생각해주는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가 마침내 옷이 찢어지면서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비비안이 피를 보고 놀라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나는 나무 위에서 떨어질 때에도 매미를 꽉 붙든 손을 풀지 않았습니다. 울고 있던 비비안 앞에 손을 내밀어 펴보였지요. 더 이상 울지 않는 매미가 내 손바닥에 누워 있었습니다. 나는 비비안에게 “너 가져.”라고 말했습니다.

 

비비안은 제게 “오빠는 참 좋은 사람이야.”라고 울면서 말했고, 나는 의기양양하게 웃어 보였지요. 비비안은 “아빠한테 가을이 되어도 캘리포니아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얘기할 테야.”라며 아주 진지하게 얘기했어요. 물론 그녀는 결국 부모님을 따라 학교로 돌아갔고, 그 후 다시는 보지 못했지요. 세월이 흐르고, 나도 그녀를 생각하는 날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떠날 때가 되니 느닷없이 그녀가 생각난 겁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아마도 그건 그녀에게 느꼈던 감정이 제게 아주 소중했기 때문이지요. 불필요한 것들을 걸러내고 남은 소중한 기억 말입니다. 그 후로 나는 비비안에게 느낀 그런 달콤한 감정을 다시는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재산이 충분한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재산과 관계없는 또 다른 것,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들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감정일지도, 예술일지도, 어렸을 때의 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끝없이 부자가 되려는 욕망은 그저 탐욕스럽고 재미없는 사람, 괴물로 만듭니다. 지금의 저를 보세요.

 

어떤 사람은 사랑과 감정이 헛된 것이고, 재산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생전에 모아둔 재산을 가져갈 방법이 없습니다. 그저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거라고는 기억 저편에 자리 잡은 순진무구한 감정, 재산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랑입니다. 어떻게 해도 자연히 사라질 수 없는 것들 말입니다. 결국 그것들이야말로 인생에 남은 유일하고도 진정한 재산이 아닐까요.

 

그래요.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그래도 깨달음을 얻긴 얻었네요. 이런 말들은 전처들과 아이들에게 할 수 없습니다. 모두들 유산에 혈안이 되어 남보다도 못하게 싸우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얘기할 수도 없습니다. 나는 이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별로 없거든요. 사실 나는 재산을 빼놓고 보면 아주 가난하게 살았던 셈입니다.

 

당신에게 털어놓고 나니 속이 많이 후련해지는군요. 사람은 때가 되지 않으면 이렇게 간단한 진리도 깨닫지 못합니다. 만약 다음 생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제 나는 잘 압니다.

 

가난한 남자가 가족을 지키는 방식

“가족들을 도울 길이 이 생명보험금뿐이네요.”

 

저는 지금 심한 중병에 걸렸습니다. 간암 말기요. 얼마 있지 않아 곧 죽을 겁니다. 저는 맨해튼에서 홀로 9년간 살았습니다. 생계를 위해 브로드웨이 거리에서 신문 가판대를 운영하고 있었죠. 7년 전, 예뻤던 제 아내는 당시 다섯 살밖에 안 된 아들을 데리고 저를 떠났습니다. 차이나타운에서 작은 보석 가게를 운영하던 남자가 전부터 제 아내를 쫓아다녔는데, 그만 그에게 가고 말았죠.

 

제 발로 그를 찾아갔을 때 심장에서 피가 거꾸로 솟구쳐 오르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내를 탓할 수는 없었어요. 제가 그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할 수 없었으니까요. 지금 전 퀸스에 살고 있는데, 이 편지를 이웃집 사람들에게 부쳐달라고 부탁했어요. 그 집 식구들은 모두가 믿을 만하고 정직한 분들이죠. 수년간 저를 보살펴주었거든요.

 

제 인생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걸 알고 있어요. 평생 성실하게 일하고, 공손하게 사람을 대했으니 아마 저는 알라신을 뵈러 갈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전에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습니다. 제게는 고향인 인도에 지병을 앓고 있는 부모님과 장애가 있는 형이 있어요. 죽기 전에 가족들의 형편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도록 돕고 싶어서, 그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해냈습니다. 해내고 보니 일말의 양심이 끝도 없이 저를 불안하게 하네요. 그래서 당신께 이 비밀을 맡기려 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 편지에 적어두었어요. 어젯밤에 생각해낸 말들이지요.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지만, 당신에게는 털어놓으려 합니다. 당신이 누구든 진심으로 알라신의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

 

저는 제가 저지른 이 일을 꼭 회개해야만 합니다. 미국으로 건너온 지 여러 해가 지나는 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하지만 아침식사를 팔든 가판대에서 신문을 팔든 제 수입은 항상 쪼들렸지요. 그래서 아내와 아들도 다른 사람을 따라 떠났어요. 또 저는 멀리 인도에 살고 있는 제 가족들을 도와줄 수 없는 게 늘 부끄럽고 죄송했어요.

 

미국에 와서 여태껏 보험에 가입한 적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2년 전, 저축한 돈을 모두 털어 생명보험 하나를 들었습니다. 수혜자는 부모님과 형으로 해두었고요. 저는 책에서 암을 유발한다는 나쁜 습관들을 읽고 곧바로 기록해두었어요.

 

그리고 곰팡이가 핀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지요. 부패한 음식을 먹고 유통기한이 지난 기름을 쓰면서 독한 술을 미친 듯이 마셨습니다. 물론 이렇게 할 때마다 정말로 고통스러웠지요. 하지만 반드시 성공해야했어요. 제 전부를 걸었으니까요. 제가 희생해야 남은 제 가족들을 도울 수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버틴지 2년이 지났고, 전 마침내 해냈습니다.

 

얼마 전 몸이 이상하다는 걸 느꼈어요. 살이 급속도로 빠지고 온몸이 나른하더군요. 자주 토했고,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어요.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그 백인 여의사가 그러더군요. 제가 간암이라고요. 그것도 말기라네요. 생명보험을 좀 늦게 가입했기 때문에, 제가 죽으면 7만 달러 정도의 보험금이 나온답니다.

 

알라신께서 저의 죄를 용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신의 곁에서 제 부모님과 형이 잘 사는 걸 볼 수만 있다면 전 그걸로 충분해요. 그전에 신께 용서를 구하고 제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칩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아요.

 

제 지난 삶은 보잘것없었습니다. 제가 죽더라도 제 부모님이나 형 말고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예요. 그 누구도 저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가족들이 저 때문에 많이 슬퍼하겠지만 그건 이미 죽은 저와는 관계없는 일일 겁니다. 아, 제 아내와 아들도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랍니다. 제 가족들, 영원히 사랑합니다. 알라신이시여, 부디 저의 죄를 용서해주세요! 

 

시간이 주어진다면 후회는 남김없이 털어버리고

자신의 울타리 밖으로 나온 의사의 바람

저는 몇십 년을 뉴욕에서 살면서 빽빽한 고층 건물을 왔다 갔다 하는 게 이미 몸에 배었습니다. 뉴욕의 태양은 늘 고층 건물에 가려져 있는데다 겨울은 습하고 음산하지요. 햇빛이 좋은 날이면 사람들은 기껏해야 센트럴파크 잔디밭이나 컬럼비아대학교 도서관 계단 위에 드러누워 햇볕을 쬐는 정도입니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꼭 벌레 먹은 쌀을 햇빛에 널어 말리는 듯했지요. 저는 오랫동안 만족해왔던 제 생활에 처음으로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뉴욕에 돌아와서 에이즈 환자의 피부를 치료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실수로 그만 환자의 혈액이 묻은 칼에 수술 장갑을 낀 손이 베이고 말았어요. 이렇게 공교로울 때가. 곧바로 응급처치를 했지만, 불행하게도 몇 개월 후에 HIV 검사에서 처음으로 양성반응이 나왔습니다.

 

사실 에이즈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몇 번 검사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음성으로 나왔었거든요. 이번 환자는 음악을 하는 게이였는데, 마약을 복용한 경력이 있고 피부 곳곳이 벌써 속부터 짓무르고 있었습니다. 그 환자에게 옮아 에이즈에 감염됐지만 그렇다고 그 환자를 탓할 수는 없었지요. 제 부주의로 인해 벌어진 일이니까요.

 

아내는 그 사실을 알고 너무나 괴로워했어요. 아내는 집에서 두 아이를 돌보느라 이미 여러 해 동안 일을 하지 않았거든요. 아이들이 대학에 갈 때까지는 제가 도와줘야 하는데...

 

에이즈 급성 감염기 때는 몇 주간 미열이 느껴졌고, 지금은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집중 치료를 받으려고 일도 그만두었지요. 일을 그만두고 나니 너무 어색하고 그간의 생활과 완전히 유리된 것만 같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이미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두었죠. 어쨌든 에이즈 완치율이 절대 낙관적이지 않으니까요. 누구보다 제가 잘 알지요.

 

‘만약 뭐든지 가능하다면, 죽기 전에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게 뭘까? 가장 바라는 게 뭘까?’ 저는 스스로 몇 번이나 이렇게 물었습니다. 사실 지난번에 캘리포니아에 다녀오면서 결코 내가 잘 살았던 게 아니었음을, 진정한 삶을 살아보지 않았음을 깨달았거든요.

 

그동안 살면서 아내와 아이가 있고 매일 일하고 주말에 쉬는 삶이야말로 완벽한 생활이라고 굳게 믿었어요. 그런데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 삶은 그저 하나의 선택지에 불과하며, 그 생활이 전부라고 믿었던 것이야말로 편협한 생각일 뿐이라는 것을요. 우물 안 개구리였던 셈이지요. 이는 안정된 삶만을 살았던 저의 짧은 생각이었고 난생처음 진정으로 나를 위해 살았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뭐든지 할 수 있게 된다면, 저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여행을 할 겁니다. 더 이상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돈을 버는 것만이 제가 살아갈 이유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가족을 책임진다는 것은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그 못지않게 한 번뿐인 자기 인생을 책임지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자신의 울타리 밖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꼭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과 생활 말고, 다른 사람이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으니까요. 스스로 좀 더 그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살펴보세요.

 

어쩌면 누군가는 저 같은 중산층 생활이야말로 안정적이고 부럽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보다 못한 사람들을 안쓰럽고 딱하다고 여길지도 모르죠. 하지만 말씀드렸듯이 저는 그런 평가야말로 국한된 삶은 산 사람들이 편견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설사 제가 세계 일류 도시에 살고 있더라고 말이죠.

 

이보다 더 평범할 수 없는 삶일지라도 꼭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 진심을 이 편지에 담아 당신에게 남깁니다. 너무 늦어 버렸지만, 지금이라도 제 인생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떠나게 되어 기쁩니다. 그만하면 제게도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핵 전문가가 평생 후회한 일

“내 연구가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는 일이 없기를”

자네가 내 손자뻘 되는 젊은이일 것이라 짐작하는데, 어쨌거나 자네 나이가 얼마나 많든 내가 여든넷이니 이렇게 불러도 괜찮겠지?

 

난 벌써 두 번이나 심근경색을 앓았고 이번에는 꽤나 심각했지. 다행히 응급처치를 했지만, 이번에 중환자실에 들어가면 아마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 같구나.

 

정신은 아직 멀쩡하니 네게 몇 마디 남기마. 얘야. 내 비밀을 꼭 지켜다오.

 

나는 일찍이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줄곧 뉴욕의 한 유명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구를 해왔단다. 한 번도 뉴욕을 떠나본 적이 없지. 내가 평생을 바쳐 연구해온 전공 분야는 원자탄 연구를 포함한 핵물리학이란다. 이 연구로 노벨상에 버금가는 수많은 상을 받았고 영예도 얻었지. 그 덕분에 사회에서 그리고 사람들에게 존중도 받고 있단다.

 

그런 내게 일생 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큰 비밀이 하나 있단다. 그건 바로 내가 비록 핵물리학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뒀지만, 오히려 그것이 한평생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는 거지!

 

오래 살면 살수록, 핵무기를 연구하고 사용하는 일이 사람들에게 어떤 심리학 영향을 끼치고 참혹한 결과를 초래할지 똑똑히 알게 되더구나. 내 죄책감은 날이 갈수록 더해갔단다.

 

비록 내 연구가 정치적 성향을 띄고 있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만일 내 연구 성과가 특정 정부나 정치인들에게 이용되어 정치적 도구, 심지어 전쟁의 도구로 변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지 않겠니. 그렇게 되면 내가 직접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더라도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죄인이 될 것이라 생각한단다.

 

지난번 응급처치를 받고 나서 목사가 다녀간 적이 있었단다. 그 목사도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진지하게 얘기하더구나. 나는 사실 그에게 애초에 요리사가 되는 것만 못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하고 싶었단다. 맛있는 음식은 사람들의 생활에 즐거움이라도 더해주지 않니.

 

내가 아프지 않고 계속 살아간다면, 내가 계속 이 분야를 연구한다면 결국에는 평생의 내 연구 성과가 어떻게 인류를 파멸할지 보게 될 것이고, 또한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는 것을 보게 될 테지.

 

마지막으로 어떤 말을 남겨야 한다면... 나는 내가 일생을 몸 바쳐 한 일이 지금 더할 나위 없이 후회된다고 알려주고 싶었단다. 그런데 어떤 일인지 그 목사에게 말이 안 나오더구나. 그저 고개만 저었을 뿐이지. 목사가 떠나기 전에, “신은 당신을 용서하실 겁니다”라고 말하더구나. 마치 내가 마음속에서 꺼내지 못한 말을 그가 듣고 대답해준 것만 같았단다.

 

그래서 나는 그때 목사에게 하지 못한 유언을, 지금 네게 남기기로 했단다. 이 유언은 언젠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지게 되겠지.

 

직업을 선택할 때에는 경제적인 것만 생각할 게 아니가, 도덕적인 면도 절대 소홀히 하지 마려무나. 이 비밀은 네게 남겨놓았으니, 절대 소홀히 하지 마려무나. 이 비밀을 내게 남겨놓았으니, 나를 대신해 잘 보관해다오. 이 비밀이 나를 따라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게 말이야. 인간의 이성이 본성에서 나오는 탐욕과 잔인함을 이기기를. 그래서 사람들이 영원히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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