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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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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요약&칼럼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

대리부터 부장까지 여성 직장인이 모여 펼치는 절대수다의 향연
김부장 등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20년 2월 | 312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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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집

 

 

■ 책 소개

 

호구 안 되는 법, 유리천장 깨기, 사내정치 대처법부터

커리어 플랜과 워라밸까지

 

“회사에 여자 선배가 없다.” “여성 롤 모델을 찾기가 힘들다.” 일하는 여성 중 이런 생각을 안 해본 이가 있을까. 가사와 육아의 부담, 남성 중심으로 짜인 조직 문화로 인해 일하는 여성이 하나둘 밀려나는 상황에서 임원급은 물론 차장·부장 중에도 여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조언을 구하고 자신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이정표가 되어줄 여자 선배가 없다는 뜻이다. 술과 정치가 일상인 데다 단단한 위계와 서열의 회사에서 여자로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이 책의 승부수는 현실감에 있다. 연봉 협상 팁, 사내정치 대처법, 호구 안 되는 법부터 시작해 커리어 플랜과 워라밸까지. 많게는 19년 차, 적게는 8년 차 직장인인 멤버들은 현실적이고 다양한 접근법을 취한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여자이기에 받는 부당함에 대처하는 법, 직장 내 인간관계 노하우, 커리어 플랜, 일과 일상의 밸런스 잡기, 나만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법 등 일하는 여성이라면 한번쯤 부딪혔을 문제에 대해 수다를 풀어놓듯 생생한 조언을 전한다.

 

■ 저자

김부장

저자 김부장은 직장생활 19년 차에 40대 중반이다. 1990년대 말 성차별이 심했던 대기업에 입사해 산전수전 겪다가 퇴사 후, 외국계 투자은행에서 잘나가는 애널리스트 생활을 거쳐 국내 대기업에 부장으로 컴백했다. 단단한 유리천장과 사내정치, 꼰대로 살아가는 고충, 부장의 외로운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대학원 박사 공부로 제2의 인생을 꿈꾸고 있다. 『언슬조』에서 ‘롤마들’ 겸 핑크 꼰대를 맡고 있다.

 

신차장

직장생활 14년 차 · 30대 후반

처음에는 비서로 시작했지만 ‘내 것’이 없는 삶에 회의감을 느껴 금융업 세일즈로 커리어를 전환해 보란 듯이 일하고 있다. 거기다 사랑스러운 아기를 출산하여 아기 역시 쑥쑥 성장시키는 재미에 푹 빠져있는 워킹맘. ‘여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근육’라는 명제를 설파하는 ‘머슬마니아’. 80킬로그램이 넘는 스쿼드도 거뜬하다. ‘회사에 무조건 헌신은 No! 내 삶과 워라밸은 내가 지킨다.’

 

이과장

직장생활 12년 차 · 30대 후반

금융 업계의 ‘여의도 칼바람’을 헤쳐내고 ‘직장은 내가 선택한다’는 모토를 가진 ‘프로이직러’. 첫 취업은 힘들었으나 다섯 번의 이직을 거치며 차곡차곡 커리어를 성장시켰다. 대학원 공부, 독서모임, 꾸준한 운동, 블로그 운영까지 빈틈없이 바쁜 일상을 열심히 살아낸다. 지금은 아래로는 눈치 보고 위로는 비위 맞추는 중간관리자의 애환을 온몸으로 겪고 있다.

 

문대리

직장생활 8년 차 · 30대 초중반

대기업 공채로 입사, 건축직 8년 차로 한 직장에서만 뚝심 있게 자리를 지켰다. 얼핏 보면 조용하고 하라는 대로 순순히 하지만 아니다 싶으면 당차게 아니라고 말하는 반골 기질을 품고 사는, 두 가지 성향을 함께 가진 〈언슬조〉의 그레이존. 얼마 전부터 소리 높여 ‘대리끼리 대동단결’을 외치고 있다.

 

박PD

프리랜서 15년 차 · 40대 초반

정규직 무경험 15년 차로 스스로 ‘프로백수’라 칭한다. 월급 없이 지내는 삶에는 도가 텄다. 방송, 미디어 계통의 다양한 프리랜서 일을 하고 있는 금손.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서 여전히 새로운 일이 궁금한 호기심꾼이다.

 

■ 차례

프롤로그

 

1장 여기 여자들도 일하고 있습니다

요구할 땐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없이

공사는 남자의 일? 나, 현장 뛰는 여자야

정말 여자라서 그래?

여자는 술 따르고 블루스 추라고?

탈(脫) 유니폼 투쟁기

성공하려면 남자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야 할까?

여자는 여자가 돕는다

[언니들의 고민 상담] 일하는 만큼 대우받지 못하는 것 같아요

 

2장 사원도 부장도, 다 처음이라

대리끼리 대동단결

어서 와, 리더는 처음이지?

대리는 모르는 과장의 속마음

중간관리자는 억울해: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는

우리 반항아는 못 돼도 ‘쫄보’는 되지 말자

여자 부장이 골프 라운딩 운전기사를 자처한 이유

90년대생과 꼰대가 직장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

꼰대의 변: 반항아였던 김 부장은 어쩌다 꼰대가 되었나

[언니들의 고민 상담] 계급장 떼고 ‘솔까말’: 대리 vs 과장 vs 부장

 

3장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

나만의 포지셔닝이 필요해

일 잘한다는 것의 의미: ‘회식요정’도 ‘일잘러’일까?

술 못하는 사람이 회사에서 살아남는 법

“이거, 저 팀에서 한 건데요?”

왜 좋은 어른들은 조직을 떠나게 될까?

나는 커피와 점심으로 정치한다

네트워킹은 되는데 사내정치는 왜 안 돼?

너무 안 맞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법

[언니들의 고민 상담] 무능한 상사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4장 그 많던 언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도 몰랐던 내가 받은 차별

유리벽에 갇힌 여자들

여성의 결혼은 어쩌다 조직의 시한폭탄이 되었나

미안함은 왜 늘 엄마들의 몫일까

화려한 커리어를 접고 프리랜서 워킹맘이 된 그녀

나를 버티게 해준 여자들

여자 부장들은 어떻게 조직에서 살아남았나

남자들이 아이를 키우면 어떻게 될까?

[언니들의 고민 상담] 여자라서 해외 출장을 거부당했어요

 

5장 회사, 떠나야 할 때와 버텨야 할 때

한 직장에서 버텨왔다는 것

퇴사와 이직의 반복: 내게 맞는 일을 찾기까지

나의 좌충우돌 커리어 전환기

지하철의 샤넬백, 사직서 그리고 용기

회사를 떠나기 전에 유념해야 할 것

“내가 월급 없이 살아봐서 아는데”

[언니들의 고민 상담] 같이 일하는 동료 때문에 너무 힘듭니다

 

6장 일단, 나부터 챙깁시다

버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들

번아웃이 내게 가르쳐준 것

누가 날 싫어해도 괜찮아

운동은 나의 힘!

열심히 하지만 불안한: 30대의 현실 고민

당신의 황금기는 따로 있다

[언니들의 고민 상담] 신생팀에서 혼자 N명분의 역할을 하고 있어요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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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 등 지음/한국경제신문/2020년 2월/312쪽/15,000원

 

여기 여자들도 일하고 있습니다

요구할 땐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없이

“여자가 나서서 대놓고 말하면 매력 없어.”

“아무리 싫어도 일단은 ‘네’라고 대답하는 게 현명해.”

“여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좀 참아야 해.”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살면서 ‘여자는 이래야 한다’라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호들갑스러운 염려와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여자애가 그러면 어떡하니!”라는.

 

지금 저런 소릴 듣는다면 “자알~ 삽니다”라고 대꾸해줄 것이다. 회사에서 당당하게 할 말 하고, 요구도 하면서, 잘 삽니다. 하지만 20대 때만 해도, 여자는 나서면 안 된다는 외부 기준과 튀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끝도 없이 엎치락뒤치락했다. 유년기, 사춘기를 넘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까지 말이다.

 

사실 대학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게 아주 큰 문제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는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이 잘 나왔고, 굳이 나를 드러내려 애쓰지 않아도 칭찬과 상이 따라왔으니까. 아마 많은 '모범생 여자'들이 나와 같은 코스를 밟았을 거다. 내부의 목소리를 최대한 누르면서 외부 기준에 신경 쓰고, 열심히 노력해서 칭찬받으면 조용히 그리고 티 안 나게 기뻐하는.

 

변해야겠다고 느낀 건 영업 2년 차 때였다. 영업직이 된 첫해에는 너무나 힘들었지만,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끝냈고 그에 대한 상사의 인정과 약간의 연봉 상승이 있었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다음이었다.

 

첫해와는 다르게 경제 불황 때문에 신규 건은 별로 없었고 기존에 끝낸 프로젝트 계약서 수정이나 유보 건만 많았던 그 1년. 여전히 열심히 일했고 야근도 많이 했지만 신규 건과 다르게 기존 프로젝트 업무는 성과급과 큰 연관이 없었다. 즉, 신규 프로젝트 못지않게 수백 페이지의 계약서를 읽고 하루에 몇십 개의 이메일을 쉴 새 없이 뿌려도 눈에 띄지도 않고 인정도 못 받는 일이다. 매일 불 꺼진 부엌에서 산처럼 쌓인 설거지를 하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상사의 방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미팅의 목적은 평범한 ‘업무 업데이트’였지만, 때로는 사안의 중대성을 살짝 확대해서 얘기하기도 했고 무례한 거래처 사람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또 업데이트를 하다가 갑자기 울컥 서러움이 밀려와서 “대표님은 제가 지금 이 파일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는지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사실 엄청 중요한 이슈인데 말이죠”라고 불평을 한 적도 있다. 잦은 면담을 통해 내가 현재 하는 일과 내 상황을 반복적으로 얘기했고, 그래서 내 상황이 상사의 머릿속에 스며들기를 바랐다. '‘내 이야기를 지루해할 수도 있겠다’ 또는 ‘별거 아닌데 너무 과장한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가끔은 우는 아이가 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달까. 더 이상 ‘알아서 묵묵히 잘하는 사람’ 이미지는 싫었다.

 

그해 말, 내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티를 잘 냈던지(?) 상사가 본사에 보내는 메일에도 내 업무에 대한 칭찬이 담겨 있었다. 신규 프로젝트는 많지 않았지만 많은 수정 계약 건을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지었다고, 그리고 이 평가는 이듬해 연봉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 모든 게 내가 열심히 하고 잘한 것을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은 결과라고 믿는다.

 

두려워하지 말고, 부끄러워하지도 말고, 내 것을 받는다는 마음으로 당당히 요구하자. 우리 모두 그럴 자격이 있다.

 

성공하려면 남자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야 할까?

애널리스트 시절, 업무 특성상 무거운 분위기의 미팅이 많았다.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에선 늘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곤 했다. 세계 경제나 기업 현황에 대해 논리 싸움을 하기 때문에 상당히 날 선 이야기가 오갔는데 그런 자리에서 만만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당시 내가 취한 방식은 가능한 한 남자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남색과 검정의 바지와 재킷, 그리고 블라우스 대신 흰색이나 하늘색 셔츠를 빳빳하게 다려 입었다. 강해 보이는 이미지를 고수하기 위해 당시 남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아르마니 정장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 한 적도 있었다. 넥타이만 안 맸다뿐이지 남자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그들과 비슷한 이미지를 가져야 한다는 강박은 전 직장에서 생존하는 법을 터득하면서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다음 해에 해외로 출장을 갔는데 이른바 ‘아하 모멘트(Aha moment, ’아하!‘라는 깨달음의 순간)’를 경험했다. 클라이언트 미팅을 마치고 우리 회사 뉴욕 사무실에 갔을 때다. 저쪽 멀리에서 한 동양 여성이 걸어오고 있었다. 풍채가 있고 얼굴의 잔주름을 가리지 않은 그녀는 누가 보기에도 평범한 중년 여성이었다. 하지만 강렬한 빨간색 치마 정장을 입은 그녀는 이상하게 굉장히 매력이 있었다.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에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옆의 동료에게 저 여자분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우리 회사의 중국 이코노미스트란다. 그때 느꼈다.

 

‘아, 저거구나. 단정하고 절제됐지만 돋보이는 옷차림. 여성적이지만 카리스마를 뿜어낼 수 있는 힘. 여성만이 빛낼 수 있는 강인한 우아함.’

 

그날 이후 개성 있고 밝은 색상의 옷들을 장만하기 시작했다. 남자처럼 보여야 한다는 강박은 검정, 남색 정장들과 함께 옷장 속 깊은 곳으로 집어넣어 버렸다. 과감하게 시도하지 못했던 나의 취향을 일할 때 활용하기 시작했다. 해외 출장을 떠날 땐 핫핑크 코트를 입었다. 하루는 핑크 하트가 그려진 검정치마, 소매에 프릴이 달린 니트를 입고 미팅에 나갔다. 그러자 남녀 불문하고 모든 클라이언트가 환영했다. 평소처럼 날 선 이야기가 오가는 어렵고 불편한 자리에서도 핑크 코트 하나로 자연스럽게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 어색한 분위기를 깨뜨림)을 할 수 있었다. 대화도 훨씬 편해졌음은 물론이다.

 

“당신 옷 너무 멋있다”, “개성 있다”, “어디서 샀느냐” 같은 말을 종종 듣기 시작하면서 패션을 무기로 사용하게 됐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오늘은 전투복을 입고 나가야 해”라고 하면서. 이른바 TPO(Time ․ Place ․ Occasion, 시간 ․ 장소 ․ 상황)에 맞춰 때로는 강인하게, 때로는 우아하게, 때로는 발랄하게 입게 됐다.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

나만의 포지셔닝이 필요해

TV에 나오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다 똑같은 역할을 하는 게 아니다. 누구는 노래, 누구는 춤, 누구는 예능에서 자신의 매력을 뽐내곤 한다. “○○를 맡고 있는 ○○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듯이 말이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회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부에서 자기만의 역할이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애널리스트 출신이라는 경력 덕에 우리 회사와 관련 있는 업종의 금융시장 현황, 그리고 국내외 경쟁사 분석을 주로 했다. 그래서인지 우리 부서의 임원뿐 아니라 내가 관여하고 있는 크고 작은 프로젝트의 담당 임원, 심지어 그다지 관련이 없는 임원도 내가 지적인 참모 역할을 해주기를 바랄 때가 간혹 있다. 그래서 각 부서의 임원을 만날 때 그분이 담당하는 업무 분야나 관심 분야를 잘 기억해두곤 했다. 리서치 업무를 하다가 관련 보고서를 발견하면 소개해드리기 위해서다.

 

한번은 관심 있는 책을 뒤적이다가 아직 번역이 되지 않은 괜찮은 논문을 발견했다. ‘○○부서의 상무님이 이 분야를 담당하시던데…’라는 생각이 들어 논문을 살짝 요약해서 보고를 했다. 굉장히 좋아하셨다. 최근엔 새로운 기술이 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회사의 방향을 정하는 의사결정자들은 최근 정보에 항상 촉각을 세우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보는 기하급수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고위급 임원들은 무엇보다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다. 모든 정보를 일일이 뒤지고 있을 여유가 없다. 그래서 사소하더라도 최근에 읽은 책이나 논문에서 임원의 업무 분야와 관련 있는 정보나 중요한 내용을 요약해드리면, 그분들의 시간을 절약해주는 데다 중요한 결정을 하는 데 최신 정보를 놓치지 않게끔 도울 수 있다. 즉, 그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셈이 된다.

 

같은 부서가 아니거나 특별히 친하지 않은 임원은 같이 작업할 일이 있을 때 편하게 소통하기 어렵다. 그런데 나는 책이나 논문, 보고서 요약 같은 작은 기회를 통해서 임원분과 쉽게 안면을 트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내 공부도 하면서 아주 조금만 더 시간을 투자하면 되는 일로 회사 내에서 다른 사람들은 갖지 못한 나만의 강점을 갖게 되는 셈이다. 그렇게 나만의 확고한 위치를 갖는 것, 적어도 하나의 역할에서는 대체 불가한 사람이 되는 것, 즉 적절한 포지셔닝이 회사생활을 하는 데 무척 도움이 된다.

 

회사에서 ‘일 잘하는 사람’이 대체 불가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일잘러’의 포지션은 아이돌 그룹으로 치면 일종의 센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회사에는 센터만 필요한 게 아니다. 단순하게 일 잘하는 사람은 많을 수 있지만, ‘맛집’을 잘 찾는다거나 어디서든 분위기를 잘 띄운다거나 동종 업계의 현황을 알려준다거나 상사의 비위를 잘 맞춘다거나 등 일 실력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포지셔닝이 훨씬 더 중요한 상황도 얼마든지 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회사에서 어떻게 포지셔닝할 것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당신은 일을 꼼꼼하게 해내는 데서는 뒤처지지만 사람을 상대하거나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데 뛰어난 사람일 수 있다. 프레젠테이션은 잘 못하지만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취합이나 정리는 잘하는 사람일 수 있다. 팀 안에서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일을 잘할 필요는 없다. 내게 딱 맞는 역할, 나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으면 된다. 때로는 실력으로 때로는 실력 이외의 것으로.

 

나는 커피와 점심으로 정치한다

그런 일련의 이야기를 듣자 회사 내에서 솔직함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사내정치는 필요악일까? 나도 예전엔 ‘일 잘한다’라는 것의 정의가 맡은 일을 똑똑하게 처리하는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물론 실무가 주 업무인 과장 직급까지는 일 잘하는 사람들이 승진한다. 윗사람 눈에도 사원이나 대리 때까지는 업무에 열중하는 게 성실해보이고, 일찍부터 ‘정치질’을 하는 직원들은 좋게 보지 않는다. 하지만 차장이나 부장 정도 되면 일 잘하는 것 외에 신경 써야 하는 게 있기 마련이다.

 

여전히 사내정치에 대해 ‘예’와 ‘아니요’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지만, 대기업 부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사내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건 거추장스럽다며 갑옷을 벗어 던지고 전쟁터를 돌아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가, 언제 칼을 들이댈지 모르는 세계에서 최소한의 무기와 방패는 들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부장 직급에서 나의 평판은 내 부서의 평판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 결국 소극적이나마 나만의 정치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술자리, 골프는 애초에 내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술을 잘 못하는 나는 점심시간과 커피 타임을 활용하여 관계의 끈을 넓혀갔다.

 

한번은 두 본부의 협업을 도운 일이 있다. 두 본부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었고, 갈등이 빈번하여 같이 하는 일의 진행이 더뎠다. 당시 나는 점심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자는 핑계로 두 본부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본부 간의 역학관계나 히스토리를 들으며 서로의 이해관계를 최대한 충족할 방법을 찾아나갔다. 발이 부르틀 정도로 양 본부를 왔다갔다한 끝에 한쪽은 실리를, 한쪽은 명분을 챙길 수 있게 도와 일이 잘 진행되게 했다. 그 덕분에 양쪽에서 인정을 받았고 나 또한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셈이 됐다. 이런 것을 점심 정치(lunch politics)나 커피 정치(coffee politics)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회사 안에서는 업무 처리 과정에서 생기는 잡음은 물론이고 그 외에도 수많은 갈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높은 직급일수록 실무보다는 아래와 위의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부서 간의 수평적인 관계를 조율하는 일에서 많은 책임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높은 직급일수록 일의 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 많다. 그 때문에 정글 같은 큰 조직 안에서는 홀로 버티기가 힘들다.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줄 수 있는 조력자와 동료들이 필요하다. 건전한 방식으로 '내 편'을 구성하는 일, 나는 그것이 사내정치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안 맞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법

나는 지지리도 타협을 못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에게 인간관계란 그 자체로 하나의 커다란 숙제였다. 나는 꽤 오랜 기간을 두고 학습해서 상대방에게 맞춰 가곤 하는데, 그중에는 서로 주고받은 상처가 무색할 정도로 유쾌한 경험도 있다.

 

여섯 명이 2년간 꾸역꾸역 꾸려온 <언슬조>도 의견 차이로 생기는 크고 작은 잡음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그중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때때로 사적인 스케줄을 공유하는 것과 꼭 참석하지 않아도 될 모든 미팅 자리에 불려나가는 것이었다. 하루는 내일 잡지 에디터와의 저녁 약속이 잡혔다는 얘길 들었다. 업무 파트너와 미팅이 있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 자리에 나오라고 하는 김 부장 언니에게 드디어 한마디 했다.

 

“내일은 쉬고 싶어요. 미팅에 매번 나가기가 힘들어요.”

 

언니는 말했다.

 

“그래, 쉬어.”

 

꾹꾹 참다가 어렵게 지른 것치고는 너무 쉽게 허락을 받았다. 이제 나도 싫은 건 하지 않겠다. 꼭 나가지 않아도 되는데 왜 매번 부를까.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내가 김 부장 언니를 이해하게 된 건 또 다른 미팅이 잡혔을 때였다.

 

“언니는 매번 미팅에 참석했으니 이번엔 힘들면 굳이 나오지 않아도 돼요.”

 

배려하느라고 한 내 말에 언니는 전혀 예상 못 했던 답을 했다.

 

“난 제발 불러줘, 중심이 되는 게 좋거든”

 

누군가와의 갈등이 풀리는 건 때론 한순간이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멤버를 외부 미팅 때마다 꼬박꼬박 불러냈던 건 김 부장 언니가 꼰대여서도, 눈치를 주고 싶어서도, 날 훈련시키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안 부르면 섭섭해할까 봐’ 그랬던 것이다. 그제야 고구마 백 개를 먹은 듯 답답했던 속이 확 풀렸다.

 

그때부터 우린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 언니가 멤버들을 매번 불러내는 건 자신이 모든 미팅에 나가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의 사적인 스케줄에 관심을 갖는 것도 자신이 사적인 스케줄을 터놓고 공유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본 동화에서 여우는 두루미를 초대해 멋진 접시에 음식을 담아 대접했다. 부리가 긴 두루미는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나중에 두루미도 여우를 초대했는데,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내놓았다. 여우가 입맛만 다시는 사이 두루미는 우아하고 맛있게 식사를 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서툰 우리는 두루미를 대접하는 여우 또는 여우를 대접하는 두루미와 비슷하다. 동화책에서는 여우의 심술이 발단이었지만, 현실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호리병에 담긴 음식을 내놓는 건 나를 미워해서가 아니다. 내게 잘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남들이 자신에게 그렇게 해주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나 조직에서는 너무 안 맞는 사람들과 마주치게 된다. 불필요한 건 제발 대충 넘어가 줬으면 좋겠는데 무식할 정도로 꼼꼼하게 붙들고 있는 동료 대리, 나는 제발 관심을 끊어줬으면 좋겠는데 부담스러울 정도로 관심 갖고 챙기는 팀장…. 세상엔 나와 정말로 ‘다른’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이 잔뜩 포진해 있는 곳이 조직이다. 어쩌면 오늘도 당신을 괴롭히는 건 못된 놈의 악의가 아니라 착한 사람의 서투름일 가능성이 크다. 

 

그 많던 언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도 몰랐던 내가 받은 차별

처음 취직해서 흔히 ‘세뇌 교육’이라 불리던 그룹 신입사원 연수를 받았다.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데 조금 놀랐다. 내가 뽑힌 계열사는 동기의 남녀 비율이 반반이었기 때문에 차이가 이렇게 많이 날 줄은 몰랐다. 전체로 보면 남녀 비율이 거의 3:1이었다. 보름간의 연수 중 하루는 강의를 하던 임원이 남자 직원들을 향해서 말했다.

 

“너희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더 잘해야 한다. 여자들이 스펙이 훨씬 좋았지만 그래도 남자여서 너희를 뽑은 거야.”

 

기가 찼다. 하지만 이내 그런가 보다 했다. ‘귀하는 뛰어난 실력을 갖췄으나 이번에는 함께하지 못해…’로 시작하는 탈락 통지를 워낙 많이 받아 자존감이 바닥을 친 상태였기 때문에 뽑아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남자들보다 우월하다거나, 다른 뛰어난 여자들이 성별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선발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뛰어났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떨어진 여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인사 담당자가 아닌 이상 입사자들 눈에는 보이지도 않고 알 수도 없기 때문이다.

 

연수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와 계열사 교육을 받았다.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서 상을 받았고, 동기들은 나의 성실함과 능력을 인정해줬다. 교육이 끝나고 우리는 각각 부서에 배치를 받았고, 시간이 흘러 누군가는 대리가 됐고 누군가는 과장이 됐다. 그런데 기분 탓일까. 성별이 반반이었던 동기들 중에 과장이 되지 않은 남자 동기는 없었다. 반면 몇몇 여자 동기는 지금도 대리다. 뭘까. 왜일까. 의구심이 생겼다. 기분 탓인지 내 심증이 맞는지 확인해야 했다.

 

위아래 기수의 진급 시기를 조사했다. 역시나 여자들의 진급이 상대적으로 늦었다. 진급이 늦은 이유는 제각각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하나였다. 물론 여자이기 때문에 진급을 시키지 않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진급은 속해 있는 부서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힘이 있고 진급이 잘되는 부서에 주로 남자들이 배치된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기획, 재경, 구매처럼 힘이 있는 부서에는 남자가 적합하다고 판단하거나 그 부서에서 남자를 원했다. 반면 영향력이 적은 마케팅, 지원 부서는 여자들이 배정됐고 결국 진급에서 밀렸다. 그렇다면 이유는 부서일까, 아니면 성별일까?

 

회사는 성별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겉보기엔 그럴지 몰라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 차별이 녹아 있다. 비공식적이지만 입사할 때 이미 ‘남성할당제’가 시행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력서에 성별을 배제하고 사진 없이 인원을 선발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여자가 뽑히리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을 것이다. 공식적인 여성할당제를 반대하려면, 그전에 적어도 비공식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남성할당제를 없애고 채용 과정을 투명하게 하는 게 먼저다.

 

여자 부장들은 어떻게 조직에서 살아남았나

마 부장은 한 직장에서 22년째 일하고 있다. 수 부장은 현재 직장에서 10년째 일하고 있고, 직장생활 연차는 총 19년이다. 두 사람 다 대기업 조직에서 여자 부장으로 승진했다. 둘은 어떻게 견제와 정치, 편견이 심한 조직에서 살아남아 부장이 될 수 있었을까. <언슬조> 64화 ‘여자 부장들은 어떻게 조직에서 살아남았나(ft. 마 부장, 수 부장)’에서 물어보았다.

 

두 사람의 대답은 각각 다른 의미로 흥미로웠는데, 가장 큰 요인은 두 사람 다 그 자리에서 꾸준히 버텼다는 사실이었다. 먼저 마 부장의 대답은 이랬다. 그녀는 특별히 일을 더 잘하거나 사내정치를 잘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함께했던 수많은 여자 동료 중 일하는 것에 비해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나간 분들도 많죠. 여기서 인정을 받지 못하니까 아예 다른 직종으로 가는 거죠. 선생님으로 가신 분들도 있어요. 다른 회사로 이직한 분들도 있고, 결혼해서 육아를 하겠다고 관둔 분들도 있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분들은 떠나고 저는 버텼던 건, 그분들과 제 삶의 우선순위가 좀 달라서였던 것 같아요. 저는 일을 하는 게 좋았어요. 저는 22년 동안 아주 즐겁게 일했습니다.”

 

수 부장은 또 다른 흥미로운 대답을 했다 ‘옵션의 자유로움’이 여자들이 회사 밖으로 나가게 하는 동기를 준다는 것. 그녀는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자유로운 가치관에 노출되어 있다고 했다. 수 부장에 따르면, 남자들은 조직에서 승진 열차에 올라타는 쪽을 많이 택하는데, 이는 일 잘하고 승진한 남자들이 그들의 획일적인 롤 모델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가족이나, 사회봉사, 공부, 더 멋지게 자아를 개척하는 것에 대해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있다고 느낀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래서 직장을 떠날지 말지의 갈림길에서 자신에게 소중한 일이 회사 바깥에 있고, 그것이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라면 젖은 낙엽처럼 직장에 붙어 있는 게 꼭 더 나은 선택은 아니라고 본다고 두 사람은 입을 모았다.

 

하지만 직장이 내게 소중한 의미를 갖고 있고 일을 사랑한다면, 혹은 조직에서 버텨야만 한다면 다음과 같은 점을 유념하라고 두 부장은 조언한다. 우선 일만 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등산을 함께 가서 요리를 하거나 누군가를 즐겁게 해주는 센스로 다른 사람들과 부드러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일을 잘한다는 것은 실무 처리나 프레젠테이션 능력을 넘어서 폭넓은 네트워킹, 인간관계, 사람 관리 스킬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누구든 다른 사람을 승진시키지는 못해도 깎아내릴 수는 있기 때문에 평판 관리가 무척 중요하다고 했다. 대신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 억지로 남자 무리에 낄 필요는 없다고, 진정성 있는 좋은 사람들을 든든한 우군으로 만들어두라고 수 부장은 조언한다. 업무 전문성이나 인간성, 평판, 가족의 지지, 네트워크 중 무엇이 되었든 나만의 자신감과 든든한 '빽'을 곁에 두길, 높이 올라갈수록 치열한 견제가 있겠지만 마음 단단히 먹고 안전벨트 잘 매라고, 체력과 정신을 무장하고 조직생활의 면역력을 키워가길.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모든 여성에게 그녀들이 보내는 굳은 지지의 메시지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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