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6 (화)

  • 맑음속초20.4℃
  • 황사17.3℃
  • 맑음철원15.6℃
  • 맑음동두천16.2℃
  • 맑음파주15.5℃
  • 맑음대관령13.3℃
  • 맑음춘천17.5℃
  • 황사백령도12.2℃
  • 황사북강릉20.7℃
  • 맑음강릉21.0℃
  • 맑음동해21.6℃
  • 황사서울17.1℃
  • 황사인천12.1℃
  • 맑음원주18.8℃
  • 맑음울릉도17.2℃
  • 황사수원16.4℃
  • 맑음영월18.7℃
  • 맑음충주19.6℃
  • 맑음서산14.2℃
  • 맑음울진22.1℃
  • 황사청주20.7℃
  • 황사대전19.3℃
  • 맑음추풍령19.2℃
  • 황사안동20.7℃
  • 맑음상주20.3℃
  • 황사포항23.1℃
  • 맑음군산13.1℃
  • 황사대구23.1℃
  • 맑음전주18.1℃
  • 맑음울산22.8℃
  • 맑음창원21.6℃
  • 황사광주20.8℃
  • 맑음부산21.2℃
  • 맑음통영19.6℃
  • 구름조금목포16.1℃
  • 맑음여수22.0℃
  • 박무흑산도13.8℃
  • 구름많음완도19.7℃
  • 맑음고창17.7℃
  • 맑음순천20.6℃
  • 맑음홍성(예)16.0℃
  • 맑음19.0℃
  • 연무제주17.2℃
  • 구름많음고산14.1℃
  • 구름조금성산20.1℃
  • 구름조금서귀포21.6℃
  • 맑음진주24.2℃
  • 맑음강화10.8℃
  • 맑음양평18.5℃
  • 맑음이천18.9℃
  • 구름조금인제17.7℃
  • 맑음홍천17.9℃
  • 맑음태백15.5℃
  • 맑음정선군18.0℃
  • 맑음제천17.6℃
  • 맑음보은19.6℃
  • 맑음천안18.9℃
  • 맑음보령14.1℃
  • 맑음부여17.6℃
  • 맑음금산19.1℃
  • 맑음19.5℃
  • 맑음부안15.5℃
  • 맑음임실19.8℃
  • 맑음정읍18.0℃
  • 맑음남원21.5℃
  • 맑음장수18.9℃
  • 맑음고창군18.2℃
  • 맑음영광군15.6℃
  • 맑음김해시24.3℃
  • 맑음순창군21.3℃
  • 맑음북창원24.4℃
  • 맑음양산시24.9℃
  • 맑음보성군21.8℃
  • 구름조금강진군20.9℃
  • 맑음장흥20.5℃
  • 구름조금해남18.4℃
  • 맑음고흥22.1℃
  • 맑음의령군24.0℃
  • 맑음함양군22.5℃
  • 맑음광양시23.2℃
  • 구름많음진도군15.4℃
  • 맑음봉화18.2℃
  • 맑음영주19.2℃
  • 맑음문경19.7℃
  • 맑음청송군20.1℃
  • 맑음영덕21.0℃
  • 맑음의성21.3℃
  • 맑음구미21.9℃
  • 맑음영천21.5℃
  • 맑음경주시23.3℃
  • 맑음거창20.7℃
  • 맑음합천23.4℃
  • 맑음밀양24.3℃
  • 맑음산청22.5℃
  • 맑음거제19.3℃
  • 맑음남해23.1℃
  • 맑음25.0℃
기상청 제공
더 로스트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더 로스트

키친 어떤 마음은 부서지지 않는다
에린 프렌치 지음 | 임슬애 옮김 | 윌북 | 2021년 11월 | 396쪽 | 17,800원

x9791155814215.jpg
에린 프렌치 지음/임슬애 옮김/윌북/2021년 11월/396쪽/17,800원 

 

그림2 (3).jpg
북집

 

■ 책 소개

 

미국 아마존 에세이분야 장기 베스트셀러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끝내 꿈을 이룬 한 여성의 이야기

 

이 책은 한 여성이 자아를 찾아가고 자신의 발목을 잡았던 무언가를 당당하게 거절하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는 투쟁의 이야기이자, 단단한 지지를 건네는 연대에 관한 이야기이며, 길 잃은 자매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건네는 치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에린에게 ‘로스트 키친’이란, 단순히 자기 손으로 쌓아 올린 식당만을 뜻하지 않는다. 길을 잃고 헤매던 자신을 이끌어준 빛이자,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던 과거를 저버리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며 완벽한 자유를 찾아낼 방법을 알려준 상징물 그 자체였다.

 

이 책은 아무리 겹겹이 쌓인 절망이라도, 한 겹의 희망으로 흩어낼 수 있다는 진실, 그리고 인생의 두 번째 기회를 마주하는 방법을 명확하게 알려준다. 이것은 자신의 삶을 걸고 쓰인 글만이 가진 힘이기도 하다.

 

■ 저자 에린 프렌치(Erin French)

에린 프렌치는 ‘로스트 키친’의 오너 셰프다. 로스트 키친은 미국 메인주 프리덤에 위치한 좌 석 40개짜리 음식점으로, 최근 《타임》에서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공간들’ 중 하나로 꼽혔고, 《블룸버그》에서는 ‘바다를 건너갈 만한 가치가 있는 음식점 12곳’ 중 하나로 꼽았다. 메인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인 에린 프렌치는 어렸을 때부터 마음이 담긴 음식이 줄 수 있는 소박한 기쁨에 대해, 함께 나누는 식사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식당을 찾는 손님들과 함께 메인의 이야기와 그곳의 맛깔난 유산을 나누는 일을 사랑하고, 그런 그의 열정은 《뉴 욕타임스》(에린 프렌치의 글은 그해 ‘음식’ 카테고리에서 발간된 기사 중 조회 수 10순위 안에 들었다), 《마사 스튜어트 리빙》, 《월스트리트저널》, 《보스턴글로브》, 《푸드 앤 와인》 같은 유수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또한 에린 프렌치는 〈NPR〉, 〈CBS〉, 〈NBC〉에 출연해 자신과 로스트 키친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했고, 방송국 〈테이스트메이드〉에서 L.L.빈과 협력해 그에 관한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후에 그 영화는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에서 수상의 영광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다른 저서 『로스트 키친의 요리법The Lost Kitchen Cookbook』은 《워싱턴포스트》, 인터넷 《보그》, 《리모델리스타Remodelista》에서 최고의 요리책으로 꼽혔으며, 요식업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 파운데이션 어워드에서 수상 후보로 올랐다. 매그놀리아 네트워크에서는 로스트 키친이 요식업계에 타격이 컸던 2020년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탐구해 TV 시리즈를 제작하기도 했다.

 

■ 역자 임슬애

고려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을,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한영번역을 공부하고 현 재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리디아 유크나비치의 『숨을 참던 나날』, 엘리너 데이비스의 『오늘 도 아무 생각 없이 페달을 밟습니다』, 니나 라쿠르의 『우리가 있던 자리에』 등을 옮겼다.

 

■ 차례

1부 HOPE 희망

1 베이컨과 아이스크림

2 타피오카와 새끼 고양이들

3 속도위반과 불량식품

4 다이너에서 보낸 낮과 밤과 시절

5 미트로프의 기억

6 시끄러운 할리 데이비드슨

7 전액 장학금

 

2부 UNITY 결합

8 남자아이여야 할 거다

9 엄마 되기

10 자기 몫의 돈벌이

11 톱밥과 반짝이는 바닥

12 아마란스와 프라이드치킨

13 바이닐헤이븐

14 겹겹의 불안

 

3부 PROSPECT 가망

15 삼각형 벽돌 건물

16 부딪치는 잔, 흔들리는 촛불

17 신체적인, 정신적인, 정서적인

18 발차기, 움켜잡기, 추락하기

19 열아홉 계단

20 72시간

21 떠날 시간이야

 

4부 LIBERTY 해방

22 메인에서의 어두운 하루

23 누가 누구를 살렸을까?

24 배트케이브를 향해

25 달콤 쌉싸름한 이별의 브라우니

26 구덩이와 도로

 

5부 FREEDOM 자유

 

27 잎이 세 개씩 난 풀

28 나를 다시 받아줘

29 처음부터 다시 시작

30 월도의 여자들

31 각성한 여자

32 딸기 빛깔 우리 집

33 집보다 더 나은 곳은 없음을

 

감사의 말

 

x9791155814215.jpg
에린 프렌치 지음/임슬애 옮김/윌북/2021년 11월/396쪽/17,800원


HOPE 희망

타피오카와 새끼 고양이들

나는 딸로, 짐이자 큰 골칫거리로 태어남으로써 아버지의 계획을 망쳤다. 첫째가 딸일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던 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 깜짝 놀랐다. 생각해둔 이름도 없었다. 급한 대로 드라마 <월턴가 사람들>에 나오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아버지는 누나와 여동생이 있었으나 형제가 없어서 대를 이어야 한다는 책임감에 시달렸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대가 끊기면 안 된다며 아들을 채근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새끼 고양이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는 연약한 금발머리 여자아이 둘을 두었다.

 

어머니가 언젠가 말하기를, 간호사가 건강한 공주님을 낳았다고 말하자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얼굴이 볼만했단다. 부자는 낙담하고 실망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어머니가 혼자 병원 침대에 누워 피를 흘리는 사이 축하가 아닌 슬픔의 술잔치를 벌였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그 무거운 실망을 품고 살며 동생이나 내가 속을 썩일 때마다 그 실망을 표출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여자로 태어나서 다행인 줄 알라고 말하고는 했다. “너희들이 남자애들이었다면 지금 당장 맨손으로 두들겨 패줬을 테니까.” 두들겨 맞는 일은 없었지만, 그런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팠다. 

 

UNITY 결합

남자아이여야 할 거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은 잘 풀리고 있는 듯했다. 나는 프리덤을 탈출해 도시에서 꿈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삶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나는 몰랐다. 하룻밤의 결정적인 실수 때문에, 딱 한 걸음 잘못 내디딘 대가로 그간의 노력과 희망과 꿈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사람들은 나를 착한 아이라고, 조심스럽고 똑똑하고, 책임감 강하며 밝은 미래와 큰 꿈으로 가득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으키지 않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대학 2학년까지 마친 스물한 살의 나는 임신하고 말았다.

 

아버지에게 나는 항상 실망스러운 자식이었다. 일단 나는 딸이었고, 게다가 이제는 임신까지 했으니까. 아버지는 나의 임신을 무기 삼아 휘두르며 내가 실패작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아마 내가 고양이었다면 마대에 넣어 물에 던졌을 것이다. 아버지는 거침없이 말하고는 했다. 내가 임신한 아이는 사생아라고, 내가 스스로 인생을 망쳤다고, 나 때문에 매일 아버지 혈압이 치솟고 있으니 아버지 인생까지 망친 셈이라고. 그리고 아이를 지울지 낳을지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라 자신이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것에 미친 듯이 화를 냈다. 나를 임신시킨 고등학교 시절 남자친구가 아기를 책임지지 않겠다고 한 것에도 미친 듯이 화를 냈다. 나는 아이를 낳으면 혼자 키우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 되기

아들은 화요일 오후에 태어났다. 몸무게는 3.45킬로그램, 키는 53센티미터였고, 짙은 갈색 곱슬머리였다. 아기 아빠처럼. 나는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이 기뻐서 울었고, 아기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 곱슬곱슬한 머리카락과 짙은 갈색 눈동자를 볼 때마다 아기 아빠를 떠올리게 될 것이 슬퍼서 울었다.

 

매일 아이를 마주할 때마다 아이 아빠가 냉정하고 무심하게 나를 향한 마음을 접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겠지? 그가 나를 버리고 떠났을 때의 가슴 미어지는 아픔을 매일 또 평생 느끼게 되겠지?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됐다. 그렇게는 살 수 없었다. 나의 마음속에는 갓 태어난 부드러운 아기에게 빌어줄 희망이 너무나도 많았다. 나는 아이에게 ‘제임’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나는 사랑한다’라는 뜻의 프랑스어에서 따온 것이었다.

 

자기 몫의 돈벌이

나는 일주일에 5일 밤을 일했다. 냉장고를 채울 음식과 아기용 기저귀를 넉넉히 구입하고, 내가 일하는 동안 제임을 봐줄 도우미와 나만의 집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벌게 된 것은 평생 처음이었다. 제임이 태어났을 때 나는 아이에게 약속했었다. 나 스스로 파놓은 구덩이에서 탈출해 아이를 위해 더 좋은 삶을 건설하겠다고.

 

톱밥과 반짝이는 바닥

톰은 비스트로에 자주 오는 손님이었다. 친구와 함께 올 때도 있었으나 주로 혼자였다. 내가 서빙 담당이 아닐 때도 어떻게든 나와 말을 섞었다. 호기심을 보이며 가벼운 대화를 시도해 나에 관한 간단한 정보를 알아갔다.

 

전보다 더 자주 톰과 마주치기 시작했다. 그는 뻔질나게 비스트로에 와서 항상 마시는 진 칵테일을 홀짝이고 프랑스식 감자튀김과 레어 스테이크를 먹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지나자 나는 그런 시선에 익숙해졌고, 그의 존재에도 익숙해졌다.

 

아마란스와 프라이드치킨

제임을 프리덤에 있는 부모님에게 맡긴 뒤 톰과 밤을 보내고 난 일요일 아침이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커피를 건넸고 나는 괜찮다고 거절했다. 너무 덥기도 했고, 나이가 두 배나 많은 남자와 사귀고 있으며 거의 넉 달 동안 관계를 비밀로 해왔다는 것을 어머니에게 고백할 생각에 속으로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사실 나는 톰을 만나기 위해 어머니에게 제임을 맡길 때마다 줄곧 나의 일정에 관해 거짓말했다. 나쁜 짓을 꾸미는 10대 청소년처럼 말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내가 ‘정말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바이닐헤이븐

처음 만났을 때는 그의 음주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낭만적이라며 가볍게 넘겼다. 저녁을 먹으며 포도주 몇 병을 나눠 마시고, 점심을 먹으며 맥주 몇 파인트를 홀짝였을 뿐이니까. 그는 처음으로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는 저녁 식사 자리에도 진을 잔뜩 마시고 나타났었는데, ‘너무 긴장되어서 진정하려고’ 마셨다고 했다. 의아하면서도 애틋했다. 여자친구의 부모님이라지만 사실상 동년배였으니 그들과 만나는 자리가 버거워서 그런 것이라고 이해했다.

 

저녁 식사가 끝날 때쯤 그는 10대 남자아이처럼 밖으로 뛰쳐나가 덤불 사이에 토했다. 어머니는 눈빛으로 말했다. ‘이 남자 진짜 괜찮은 사람이야?’ 그러나 나는 모든 경고와 징후를 무시했다. 대신 함께 마셨다. 함께 마시다 보면 전부 대수롭지 않은 일로 느껴졌다. 연애 초기에 술을 진탕 퍼마시며 데이트할 때도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직시하지 않았다. 내가 애써서 건설하던 삶을, 내가 꿈꾸는 삶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톰에게 알코올중독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회피했다. 나는 바보처럼 가능한 한 현실을 부정하기로 했다. 우리는 서로의 나쁜 습관을 부추겼고, 거짓된 삶을 살았다. 그렇기 우리의 현실은 싸움과 말다툼과 술주정으로 변해버렸다.

 

겹겹의 불안

결혼 생활을 잘 유지하려면 서로를 다시 사랑하고 북돋아줄 수 있도록 골똘하고 진실한 노력을 쏟아야 했다. 그러나 상황은 내 맘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동안 술에 절어 있느라 나를 응원해주지 못했던 톰은 이제 기꺼이 나를 찍어 눌렀다. 신뢰는 깨졌고 진심도 바스라진 후였다. 집에 돌아온 후로 톰과 함께 있으면 가끔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덫에 빠진 기분이었고, 마음속에 불안이 가득했다.

 

톰은 자기 나름대로 변화를 겪고 있었다. 이제 톰의 인생에서 술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가 매일 의식처럼 마시던 술의 부재를 애도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오후 4시 정각이면 그는 매우 예민해졌다. 아주 작은 것에도 불같이 화를 냈고, 그가 술을 마시곤 했던 4시에서 6시 사이면 그를 감싸고 있는 긴장감이 더 짙어졌다. 나에게 싸움을 걸고 가시 돋친 말을 던졌으며, 제임에게 말도 안 되는 사소한 일로 소리를 질렀다. 

 

LIBERTY 해방

배트케이브를 향해

나는 톰에게서 해방되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피곤하고 소진된 나날을 보냈다. 톰은 나를 붙잡고 놔주지 않으려고 각오한 것 같았다. 톰과의 이혼에 그렇게 많은 것을 희생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는 몽땅 빼앗아가려고 했다. 내가 그를 떠날 것이라면 그 대가로 모든 것을 박탈당한 채 슬프고 텅 빈 삶을 살아야 한다고, 그것이 합당한 벌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톰은 나보다 나이가 두 배는 많은 사람이었다. 나를 만나기 한참 전에 결혼해서 두 딸아이의 탄생을 지켜보았고, 가정을 이뤘고, 자기 사업을 쌓아 올렸고, 이혼했고, 가정을 잃었고, 양육권을 놓고 싸웠다. 그러면서 요령이 생겼기에 법정에서 어떻게 해야 유리한지 알았다.

 

톰과 함께 살지 않는다는 것에 매일 감사함을 느꼈지만, 아이와 함께 살지 못하는 현실에서는 매일 매 순간 눈물이 났다. 나는 아이가 그리워 괴로워하면서도 매주 변호사 상담과 법정 출두, 후견인 면접, 심리 치료, 위기 해결단 회의를 꿋꿋이 견뎌냈다.

 

구덩이와 도로

트랙터가 터놓은 길을 따라 농장 뒤편에 광활하게 펼쳐진 들판을 가로질렀다. 잠시 멈춰 서서 작고 하얀 야생 딸기꽃을 땄고, 잘 익은 야생 블루베리를 따 입에 넣었다. 들숨에서 아니스와 따스한 건초 내음이 느껴졌는데, 어렸을 때 우리 집 뒤에 있는 들판에서도 이런 향이 났던 것이 떠올라 추억에 젖었다. 동생과 함께 미역취 풀밭을 뛰어다니던 시절이었다.

 

순수하고 행복하고 자유롭던 시절이었다. 잠시 멈춰 서서 들꽃을 꺾으며 옛날 생각에 잠겼다. 텅 빈 바구니를 들고 어머니의 텃밭에 가서 한련과 차이브와 오레가노를 수북이 담아 부엌으로 돌아오던 것, 오븐에서 무엇을 굽고 있던 그것이 완성되면 그 위에 꺾어 온 꽃을 잔뜩 뿌리던 것이 생각났다.  그런 삶은 톰을 만났을 때 놓아버렸다. 그는 자유분방한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꿈 많은 여자도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랬듯이 톰도 나를 밀어낼지 모른다고,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던 나는 결국 나의 한 자아를 놓아버리고 말았다. 다른 사람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연기하는 삶을, 그런 안전하고 서글픈 삶을 나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살았다.

 

장화를 그대로 남겨둔 채 맨발로 줄곧 걸어나갔고, 농장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도달했다. 들판은 적막해서 움직이는 것은 오직 산들바람뿐이었다. 바람은 키가 훌쩍한 풀잎들 위를 스치며 이쪽저쪽으로 초록을 밀어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빙글빙글 돌며 아름다운 들판의 풍광을 만끽했다.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놓아버렸던 과거의 나에게 손을 뻗는 느낌이었다. 나는 과거의 나와 시선을 맞추며 아무도 해주지 않은 말을 해주었다. 너는 완전하다고, 안전하다고, 다 괜찮을 것이라고. 과거의 나는 내 손을 잡고 이렇게만 말했다. “용서해줄게.” 

 

FREEDOM 자유

나를 다시 받아줘

사실 정신 나간 아이디어였다. 이런 외딴곳에, 인구가 800명도 안 되는 시골에 식당을 열겠다니. 다른 동네 사람들이 겨우 저녁 한 끼 먹으려고 프리덤까지 차를 타고 올 것 같지도 않았다. 도무지 확신이 서지 않았는데,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하면 아무래도 자기 회의에 빠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냥 밀어붙여, 이 여자야. 나는 나에게 말했다. 온 정신을, 마음을 다 쏟아붓다 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될 거야. 직감으로 알게 될 거야. 내가 자신에게 이렇게 다정한 말을 해준 것은, 그러면서 그 말을 진심으로 믿은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우리는 이해타산 따위 다 치워버리고 꿈과 두 번째 기회에 판돈을 몽땅 걸었다. 로스트 키친에, 낡은 물레방아와 그 안에 선 나에게 프리덤에서의 새 삶을 걸기로 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

재미있는 파티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부엌으로 모이게 된다. 부엌은 어느 집이든 박동하는 심장처럼 중심 역할을 한다. 나는 내 식당의 주방이 그런 느낌이기를 바랐다. 가정집 부엌 같은 느낌. 식당 한복판에 요리하는 공간이 있어 모두가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접시에 요리를 담고 수프와 샐러드를 가져다주는 동안 손님들 속에 섞이고 그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홀 안에 지글지글 굽는 소리가 들리고, 화구의 불길이 보이고, 재료가 익어가며 맛있는 냄새가 풍기기를 바랐다. 음식을 먹는 손님들의 얼굴에 떠오른 기쁨을 보고 싶었다. 그 기쁨을 보고 있으면 나의 마음이, 마음에 있는 공허가 채워졌으니까.

 

나는 요리 그 이상을 해주고 싶었다. 대접하고 싶었다. 좋은 공간의 주인으로서 손님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었다. 낯선 이들을 불러들여 사랑이 담긴 요리를 먹여주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다른 사람을 챙기면서 기쁨을 느끼도록 타고난 여자인 것 같았다. 나에게는 이 일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자꾸만 갈망하게 되었다.

 

우리는 7월 4일에 개업했다. 날짜는 독립기념일, 장소는 자유의 마을 프리덤. 25년 전 오늘, 나는 동생과 함께 캉캉 의상을 입고 매년 열리는 프리덤 필드 데이 퍼레이드에 참여했고, 바로 이 앞을 지나며 쓰러져가는 물레방아를 쳐다보았다. 이 유서 깊은 건물, 이제는 새롭게 재탄생한 건물 안에서 사장으로서 식당을 운영하게 되리라고, 참으로 용감무쌍한 계획은 품은 선장으로서 미지의 바다로 나아가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이 식당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온 마음을 다 바쳐 요리하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월도의 여자들

우리 공동체의 여자들은 완벽하지 않았고, 기술이 부족했다. 하지만 부족한 것이 무엇이든 사랑의 힘으로 보완해냈다. 매일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마음도 활짝 열었다. 우리는 동료가 아니었다. 이웃도 아니었다. 가족이었다. 함께 있으면 서로를 응원하고 안아 일으키며 더 강해졌다. 다 함께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일주일에 나흘, 사랑을 대접했다.

 

딸기 빛깔 우리 집

문득 무언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조용한 교차로 끝, 언덕 꼭대기에 낡은 농가가 있었다. 세월의 풍파에 해진 농가의 나무 벽은 짙은 딸기 빛깔 페인트가 여기저기 벗겨져 너덜거렸다. 잡초가 빽빽하고 지저분했으며 텅 비어 허름한 모습이었다. 을씨년스럽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었겠으나 나는 묘한 끌림을 느꼈다.

 

다시 딸기 철이 돌아와 그곳을 방문해보니 이번에는 딸기 빛깔 집 앞뜰에 ‘매매 문의’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마치 내가 프리덤을 받아들이자 프리덤의 사랑이 나에게 흘러들고 모든 일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여기 마음에 들어, 엄마.”

 

제임이 진심 어린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우리는 딸기 빛깔 집의 낡은 계단 위에 서 있었다. 나는 아이의 반응에 마음이 놓였고 편안해졌다. 급격한 변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에게 곧 무너질 듯한 낡은 건물을 집으로 삼겠다고 말했던 참이었다. 방마다 안을 들여다보고 자기 방을 고르는 아들을 보니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식당에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이 주택을 집 삼겠다고 생각하니 마지막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이 집을 우리 것으로 삼아,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우리만의 땅으로 만들 것이었다.

 

톰과의 이혼은 2월의 어느 춥디추운 오후에 마무리되었다. 1년 반 동안 이어졌으나 체감상 10년은 된 듯한 분쟁이었다. 평생 이어질 듯했던 싸움도 그것으로 끝이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하기 위한 싸움은 끝이 아니었다. 법원은 일주일씩 번갈아가며 제임을 양육하라고 명령했다. 이 결혼을 시작했을 때 제임은 오롯이 나의 아이였으나, 결혼이 끝난 자리에는 반쪽짜리 양육권, 반쪽짜리 아이가 남아 있었다. 아이와 일주일은 함께하고 일주일은 떨어져 있는 생활에 익숙해져야 했다. 이런 비극을 통해 얻어낸 것도 있었다. 함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은 우리는 서로와의 나날을 소중히 여기고 단 하루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법원의 명령이 더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날을, 월요일 아침마다 제임을 전남편에게 데려다주지 않아도 되는 미래를 기다렸다.

 

제임이 자라면서 나는 아들의 목소리가 중요해질 날이 기필코 오리라는 것을, 그저 시간문제라는 사실을 알았다.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더 성숙해지면 아이의 의사가 무시당하지 못할 날이 올 것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날이 왔다. 7월의 어느 따뜻한 아침, 나보다도, 톰보다도 키가 큰 열여섯 살의 제임은 더는 앳된 티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나는 제임을 막지 않았고 톰은 그 애를 막을 수 없었다. 이런 결말이 오기까지 필요한 것은 오직 시간이었다. 이토록 고군분투해서 바라던 것을 마침내 얻어냈다고, 필요한 것은 그저 시간뿐이었다고 안도하면서도 이제는 훌쩍 자라버린 아이와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은 절대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것을 평생 원통해하리라는 것도.

 

우리가 벌인 끔찍한 전쟁에서 회복하는 여정은 길고 굴곡져서, 우리는 몇 년이나 허비하고 말았다. 회복의 레시피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는 시간, 그리고 인내심이었다. 맛있는 수프를 만들 때와 마찬가지였다. 나날이, 조금씩, 한 걸음씩 우리는 앞으로 나아갔다. 보금자리를 꾸렸고, 우리에게 두 번째 삶의 기회를 선물한 그곳에 깊이, 더 깊이 뿌리내렸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20201003_065012.png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