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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 류성룡 인생십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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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 류성룡 인생십계명

평화를 누리려면 전쟁을 준비하라
권대봉 , 신광철 지음 | 느티나무가 있는 풍경 | 2021년 09월 | 351쪽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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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봉 외 지음/느티나무가 있는 풍경/2021년 09월/351쪽/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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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집

 

■ 책 소개

 

평화를 누리려면 전쟁을 준비하라

 

류성룡은 조선의 대표적인 재상 가운데 한 사람이다. 문관으로서 전쟁의 지휘관을 맡아 조선의 위기를 극복해낸 인물이다. 변덕스럽고 겁 많은 선조라는 국왕이 조선의 왕으로 자리하고 있는 상황을 극복하면서 전시내각을 이끌어 국난을 극복한 해결사였다. 인생을 산 당사자로서 저술한 책이 징비록이다. 징비는 ‘과거를 징계하고 미래를 대비한다’는 의미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전략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십계명 하나하나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가르침을 갖게 한다.

 

류성룡은 지혜와 현명함을 가진 인물이었다. 중도를 지키는 현장주의자였다. 좌우에 흔들리지 않고, 상하를 균형있게 관리하는 능력자로서 전쟁을 이끌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이순신 장군과 권율을 천거해서 전쟁을 대비했고, 전쟁 중에는 전쟁을 이끈 실질적인 지휘관이었다. 조선의 최대위기였던 임진왜란을 극복하는데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던 서애 류성룡이 살아간 지혜가 담겼다. 위기를 살아가면서 지혜롭게 해결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처세를 배울 수 있는 책이다.

 

■ 저자 권대봉

고려대학교에서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쌍용그룹에서 8년간 근무한 후,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교육행정학과 조교수 및 국제전문인과정 디렉터로 일하였고, 귀국하여 서울대학교와 연세대학교에 출강하면서 삼성그룹과 현대그룹에 인재개발과 관련한 자문을 하였다. 국민대학교에 봉직 후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및 사회교육원장, 교육대학원장, 사범대학장, 교육문제연구소장, 한국인력개발학 회장, 한국평생교육학회장, 중앙공무원교욱원 겸임교수,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방문 학자, 전경련 국제경영원 이사, 경동나비엔 사외이사로도 활동하였다. 현재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제5대 원장으로서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 한국 위원회 집행위원, 교육과학기술부 자격정책심의위원, 노동부 고용정책심의위원이다. 저서로는 ‘글로벌 인재의 조건’, ‘직업준비 교육과 직장 계속교육’, ‘중 고령자의 고용과 평생학습’등이 있다.

 

■ 차례

책을 내며

 

제 1 부 서애 류성룡 10계명

01. 외부의 적과는 싸워도 내부의 적과는 싸우지 마라

02. 전쟁을 대비하지 않고 평화를 누리지 마라

03. 결단의 순간에 망설이지 마라

04. 옳은 일을 했다고 당장 인정받을 거라고 기대하지 마라

05. 현장을 모르고 탁상공론으로 정책을 만들지 마라

06. 고정관념을 깨지 않고 세상에 인재가 없다고 하지 마라

07. 능력을 보지 않고 신분과 학력을 이야기하지 마라

08. 경계를 넘어 공부하지 않고 할 수 없다고 하지 마라

09. 마음을 통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지 마라

10. 반성하는 삶을 살지 않고 내 인생만 힘들다고 하지 마라

 

제 2 부 서애 류성룡 일대기

01. 역사가 류성룡을 평가하다

02. 어린 시절 류성룡이 한양에서 자라다

03. 부모형제 가족관계

04. 17세에 혼례를 올리다

4-1. 이황의 제자로 학문을 익히다

05. 출세의 길에 나서다

5-1. 중앙에서 변덕스러운 선조와 함께하다

5-2. 출세가도를 달리다

5-3. 조선의 중요 관직을 두루 섭렵하다

06. 조선을 구할 육군의 명장 권율과 수군 수장 이순신을 추천하다

07. 전쟁 직전까지 소모적인 당쟁으로 해가 뜨고 해가 저물었다

08. 결국 전쟁이 일어나다

09. 조선의 반격 토대가 만들어지다

10. 반격의 토대를 마련하다

11. 류성룡은 전쟁의 책임으로 파직당하고, 이순신은 전장에서 전사하다

12. 낙향하여 하회에서 머물다

13. 징비록을 쓰다

 

서애 류성룡 선생 년보

 

책을 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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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봉 외 지음/느티나무가 있는 풍경/2021년 09월/351쪽/16,000원

  

서애 류성룡 십계명

외부의 적과는 싸워도 내부의 적과는 싸우지 마라

내부의 적은 용서하라

조선의 붕당 정치가 시작되고, 붕당 간의 견제를 정권 안정과 왕권 강화를 위해 철저하게 이용했던 인물이 바로 선조다. 조선 붕당 정치의 시작이 선조 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붕당을 즐기고 이용한 왕이 선조였다. 선조는 그 두 세력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훈구파는 조선이 개국하고 나서 세월이 흘러 사라지고 사림파가 분열되기 시작했다.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었다.

 

출발은 자리 하나를 가지고 싸웠다. 이조 정랑직을 놓고 대립했다. 붕당의 대표격인 김효원의 집이 동쪽 건천동에 살아 동인이라고 했고, 심의겸의 집이 서쪽 정릉에 살아 서인이라 했다. 동인은 주로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학문을 이어받은 경상도 출신이 많았고, 서인에는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충청도와 경기도 출신이 많았다. 조선의 철학을 양분한 사람이 바로 이황과 이이였다.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두 인물이 있었을 때 붕당 간의 다툼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황은 성리학을 집대성한 학자였고, 이이는 현실 정치를 우선으로 보았다. 류성룡은 동인이었다. 이황의 문하에서 공부를 한 사람으로 류성룡은 동인 중에서도 온건파였다. 붕당의 이익보다는 국사를 우선했다. 류성룡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객관을 유지하려 했다. 정치가 한쪽으로 기울면 바른길로 가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실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뜻밖의 길로 간다.

 

정여립 모반사건을 살펴보자. 정여립은 본시 율곡 이이의 제자로 서인이었다. 정여립의 이력은 특별했다. 의리와 명분을 중요하게 여기던 조선에서 보기 힘든 붕당을 갈아탄 사람이었다.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여당에서 야당으로 당적을 옮긴 사람이었다. 조선에서는 드문 일이었다. 그리고 붕당을 갈아 타고나서 스승인 이이를 욕하고 다닌 사람이었다. 정여립은 선조의 미움을 사서 고향 진안으로 내려갔다.

 

정여립은 언변이 뛰어나고 사람을 좋아했다. 문제의 발단은 대동계를 만들어서 활쏘기와 말 타기, 그리고 무술을 연마하는 집단을 만든 것에 있었다. 조선 시대로서는 의심을 받을 만했다. 왜구가 쳐들어 왔을 때는 대동계 사람들이 나가 왜구를 격퇴하기도 했다. 대동계는 무력을 가진 집단이었다. 거기에 ‘천하는 공물’이라는 말을 하고 다닌 인물이 정여립이기도 했다.

 

정여립은 당당하게 떠들고 다녔다.

 

“천하는 공물이니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으리오.”

 

세상은 왕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논리다. 모두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재라는 주장이다.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