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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엄마의 행복한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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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보도자료

게으른 엄마의 행복한 육아

시 쓰는 아이와 그림 그리는 엄마의 느린 기록
이유란 지음 | 이유란 그림 | 서사원 | 2021년 08월 | 252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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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란 지음/이유란 그림/서사원/2021년 8월/252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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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집

 

■ 책 소개

 

최선을 다해 게으름을 피우면 행복이라는 단어를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오늘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란을 만들고, 좋아하는 마음이 닿는 곳에서 쉼표를 그린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한마을이 필요하다’는데, 바쁘고 바쁜 요즘 부모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많은 엄마가 SNS를 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SNS는 나와 아이의 일상을 중계하는 보이는 라디오가 되어버리고 댓글에는 사이버 훈수쟁이만 넘쳐납니다. 타인의 시선 안에서 엄마도, 아이도 지쳐가지요.

 

이 책의 필자 역시 아이의 모든 행동이 엄마인 자신에게는 성적표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멈추었습니다. 아이를 최우선에 두었고요. 그러자 비로소 내 마음과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볼 여유가 생겼다고 해요. 필자는 말합니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당신과 아이는 이미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요.

 

■ 저자 이유란

빨래는 쌓여 있어도 감정은 쌓아두지 않습니다.

나물은 다듬지 않아도 글을 다듬고 만집니다.

 

밥은 잘 차려주지 않아도

마음은 잘 헤아려주는 엄마입니다.

 

다정한 사람이 꿈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다정한 그림을 그립니다.

 

아들 김 공룡과 함께 『공룡 동시』를 출간했습니다.

 

■ 차례

시작하며

들어가는 글

 

제 1 장, 멈추어 돌아보기

눈치를 보는 편인지 안 보는 편인지

고집대로

엉킨 감정들

어른스러워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제 2 장, 여행 학원

소모품이 되지 않으려고

첫걸음은 네 힘으로

일시 정지

게으름 교육

추억에 소비하다

어디라도 안단테(andante)!

놀이터만 기억나도 괜찮아

거기, 책방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려고 태어났나 보다

 

제 3 장, 아이의 시

노래가 되는 시

감정 소화제

계절을 안아줄 거야

플루트와 비

책이 낳은 동시

단어를 탐닉하다

들숨과 날숨

시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면

 

제 4 장, 감정 돌보기

감정 카드

화풀이 쓰레기통

존중 박스

취향을 읽어줄게

그림을 쓰다

탁월한 이중인격자

서랍에 문장을 넣고 싶다

다정한 내가 그리운 날엔

 

제 5 장, 10년 차 게으른 엄마

당신의 정원에는 꽃이 피나요?

오지선다 말고 오선지를 주세요

시간 있어요?

감정은 소모품이라서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유산 상속

쉬다 보면 알게 될 거야

 

마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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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란 지음/이유란 그림/서사원/2021년 8월/252쪽/15,000원

 

멈추어 돌아보기

눈치를 보는 편인지 안 보는 편인지

사진은 내가 보고 싶은 장면만 담고 내가 보고 싶은 각도로 비틀어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삶은 사진과 달랐다. 눈치를 보고 줄을 서서 나만 틀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애써야 했다.

 

육아도 그랬다. 하필 아동학이 전공이라 아이의 행동이 내가 받는 성적표처럼 느껴졌다.

 

‘왜 나는 아이를 잘 키우지 못할까?’

 

첫째가 네 살이 되던 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내가 휴대전화 속에 있는 누군가의 눈치를 볼수록 아이는 내 눈치를 보면서 크고 있었다. 한참 마음을 앓았다. 나는 처음부터 다시 아이를 키우기로 했다.

 

오롯이 아이를 최우선에 두기로 했다. 나를 평가하는 눈은 버렸다. 타인의 인정과 칭찬에 기대어 살 수 없었다. ‘댓글’과 ‘좋아요’ 개수가 진짜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지도 않았다. 그래서 불편한 상황이 생기면 거울로 달려가 질문을 했다.

 

“그래서, 나 지금 어때?”

 

거울 속 내 눈을 보면서 질문하자 아이를 돌보는 만큼 나를 돌볼 시간이 생겼다. ‘실패한 전공자’는 사라졌다. 아이에게 그럴듯한 무엇을 더 해주지도 않았다. 오히려 관심을 나에게 돌렸다. 그러자 아이와 나 사이에 있던 거친 대화의 벽이 사포로 문지르듯 갈리고 부드러워졌다. 나는 나의 감정과 아이의 감정을 지키는 삶을 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담을 것은 소중한 네 감정이야.”

 

초등학생이 된 아이의 책가방을 챙기면서 말한다. 아이는 책가방을 탈탈 털어 비워 내고 가슴에 양손을 댄다. 그리고 마음에서 감정을 꺼내는 흉내는 내며 “어이 차~” 소리와 함께 빈 책가방에 손을 넣고 웃는다.  

 

여행 학원

첫걸음은 네 힘으로

오른발 한걸음, 여행 경비 마련하기

자립은 자기 힘으로 대문 밖을 나설 용기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첫 여행 이후로 부모님의 경제력 안에서 내 꿈을 재단하지 않았다. 혼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이 귀한 경험이 아이에게 전달되기를 바랐다. 겨우 어른의 허리춤밖에 못 자랐지만 충분하다 생각했다.

 

여행의 시작과 끝은 돼지저금통이다. 나와 남편도 저금통에 돈을 모으고 두 아이도 용돈과 세뱃돈을 저축하여 여행자금을 마련한다. 여행이 끝나면 제일 먼저 텅 빈 저금통에 동전을 넣고 다시 시작한다. 돈은 여행에 빠질 수 없는 조건이다. 그리고 세상에 당연한 돈은 없다. 아이들은 내 생각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

 

“엄마가 아닌 너의 여행이야. 당연히 네가 모아야지.”

“엄마 그런데 돈이 많이 부족해요!”

“그래? 그럼 돈을 벌어야지! 어떻게 벌 수 있을까?”

“일을 해요! 음식점 같은 곳?”

“너희는 너무 어려서 일을 하게 할 수 없어. 그럼 엄마 감옥 가. 하하하.”

“그럼 우리 여행 못 가요?”

“그럴 수는 없지. 같이 가야지. 그럼 벼룩시장은 어때?”

“네! 벼룩시장에서 돈 벌어요! 그럼 내가 팔 걸 챙길게요.”

 

봄과 가을에는 벼룩시장이 자주 열린다. 우리는 가깝고 규모가 큰 시장을 알아보고 신청했다. 그리고 최대한 꽤 비싼 옷, 상태가 좋은 장난감과 전집을 가지고 나갔다. 생각보다 잘 팔리지 않는 날도 있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아이들은 물건을 파는 게 힘들다고 했다. 그리고 돈의 크기를 가늠했다.

 

몇 번의 벼룩시장으로 돈이 모이면 아이들이 직접 은행에 방문해 환전했다. 신기하고 낯선 다른 나라의 돈을 만지며 환율을 알았다. 당연히 몇 번의 벼룩시장으로 여행자금이 마련이 되지는 않았다. 중요한 점은 부모가 손에 쥐어주는 경험이 아닌 스스로 노력해서 가진 경험이었다. 여행은 시작부터 몸으로 배운다. 가족 여행에서 아이는 결정권을 가진 주체자로 여행한다. 첫걸음은 동전 하나로 시작이다. 

 

아이의 시

노래가 되는 시

마트에서 제 몸만 한 상어 인형을 꼭 끌어안고 아홉 살 김공룡이 말했다.

 

“엄마, 나는요. 인형도 생각한다고 생각해요. 슬프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하고 그런거요.”

“네가 시를 사랑해서 그런가 봐. 마음은 마음으로 보는 거니까, 네 마음이 그걸 보는 거야.”

 

시를 읽으면 마음이 먼저 내려앉는다. 내려앉은 마음은 시인의 말에 오래 머무른다. 그래서 시를 곁에 두면 머무르고 싶은 어른이 되지 않을까. 나는 가끔 기대한다.

 

아이와 첫 시를 쓰던 날이 생각난다. 온종일 노래 부르는 아이와 동요를 개사하며 첫 시를 썼다. 아이는 시가 쉽다고 했다. 어른보다 아이에게 쉬운 것들은 대부분 아름답고 순하다.

 

-김공룡

 

 

바나나 닮았네

먹지는 못해요

하늘에 있어요

깜깜해야 보여요

(산토끼 노랫말 개사)

 

작전은 시작되었다. 아이의 생각에 유연하게 반응하고 크게 웃어주며 할 수 있는 모든 응원을 부어준다. 시도 그렇게 놀이가 되었다. 아이는 시와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친해졌다.

 

초등학생이 된 아이는 도서관 수업에서 시인 선생님께 시를 배우기도 했다. 한 편의 시가 책에 실리는 기회도 생겼다. 시는 언어가 주는 가장 소박한 모양의 축복이었다.

 

나는 날파리야

-김루루

내가 너무 빨리 나나?

그래서 나한테 박수치니?

(<동시 발전소> 2019. 여름호)

 

아이의 일상에는 시가 수시로 찾아온다. 꽃 같은 우리 아이들에게 바란다. 간간이 외로울 때 소란스럽지 않아도 풍요로운 정을 나누기를, 고운 언어로 따뜻하게 곁을 내어주기를 말이다. 닳아 있는 모서리를 서로 쓰다듬어 주는 친구가 되어주고 마른 나뭇가지 위에 꽃으로 피어 있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감정 돌보기

감정 카드

감정을 표현하는 일상을 아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감정 카드>는 사건이 아닌 감정으로 대화를 하게 하는 좋은 도구다.

 

학교에서 일어난 일에 말을 아끼는 아들도 감정 카드를 고를 때는 경계가 허물어진다. 4학년 반장이 된 김공룡은 자신의 리더십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반장이 된 지 한 달 만에 자기는 마음이 약해서 반장과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주눅이 든 것이다.

 

반에서 유독 목소리가 크고 통솔력 있는 어떤 친구가 반장이 되었다면 더 잘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던 아이는 선생님께 편지를 써 고민을 털어냈다.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돌아온 저녁, 감정 카드를 통해 아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오늘은 <감동적인> <용기나는> <존중받는> 감정 카드를 뽑았구나?”

“선생님이 제 고민을 잘 들어주시고 진심으로 같이 고민해 주셔서 감동 받았거든요. 리더는 여러 가지 색깔이 있대요. 나는 이해해주는 리더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런 제가 좋으시대요. 존중받는 기분이었어요. 또 세게 이야기하거나 큰 소리를 낼 필요는 없다고 하셨어요. 그냥 지금처럼 해달라고 하셨고요. 용기가 났어요. 지금처럼 해 볼게요, 다 괜찮아졌어요.”

“맞아, 엄마도 네가 건강한 리더라고 생각해. 항상 똑같은 성향의 리더가 있는 건 아니거든. 나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배려하지 않고 세게 소리치는 리더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지키려는 리더가 공동체 안에서 더 필요해. 엄마가 보지는 못했지만 너는 그걸 잘하고 있는 게 아닐까? 엄마가 너에게 해줄 말 카드는 <성숙해가는 모습 멋져!>야.”

 

내 사건을 감정 중심으로 풀어내는 연습은 나의 기분을 한 번 더 살펴주는 좋은 습관이 되었다. 아이도 어른도 감정을 공감받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하나로 충분해졌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유독 일기장에 덧글을 꼬박꼬박 남겨주신 담임선생님이 계셨다. 그것은 나에게 <감정 카드>와 같았다.

 

일기장을 돌려받는 날이 너무 좋았다. 쿵쾅대던 심장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공감의 한마디로 선생님의 애정을 한 그릇씩 받는 기분이었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사생활 침해의 우려로 일기가 사라지는 추세다. 건조하고 바쁜 요즘 아이들은 감정을 꺼내어 돌볼 시간이 없다. 나는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안다. 몸으로 표현하고 그림이나 음악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삶은 쓰다듬어지면서 앞으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글, 그림 몸 어느 것 하나라도 쓰는 어른이 되는 것은 아이에게 부리는 내 첫 욕심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아이들은 일기 쓰는 법을 배운다. 삶의 첫 기록을 위해 연필을 꽉 쥔다.

 

항상 그림부터 그려야 할지 글부터 써야 할지 고민하다가 하루 중 소중한 한 장면이 알록달록 옷을 입는다. 찰나에 사라질 여덟 살의 서투른 글자 가루들이 일기장 위에 부슬부슬 떨어진다. 김공룡이 쓴 일기장을 넘겨보았다. 김공룡의 감정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마음이 풍선처럼 쪼글쪼글해졌다.

친구들이 내편이 되고 싶어 할 때는 당황스러웠지만 행복했다.

에디슨 아저씨처럼 실패를 성공의 어머니라고 생각하니

넘어져도 힘이 솟아올랐다.

개를 키우는 것은 이런 느낌일까?

마지막 페이지를 풀었을 때 굳어 있던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 아픈 마음이 가을바람과 함께 사라진 것 같았다.

따뜻한 햇살 아래 소풍을 가니 기분 에너지가 폭파했다.

오늘은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 같았다.

내 생각엔 사랑은 좀 끈질긴 감정 같다.

 

김공룡은 글을 쓰면서 자기의 행동과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눈물이 났던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존중을 받고 싶었는지, 무엇이 마음을 들뜨게 했는지 알았다.

 

아이는 아이 마음을 쓰고 나는 내 마음을 쓰면서 삶에 집중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각자의 문장을 돌봐 준다. ‘괜찮은 나’는 내 감정을 살피는 한 줄 문장에 있다.

 

존중 박스

“내 물건을 엄마 아빠 마음대로 하지 말아 주시면 안 돼요?”

 

알고 있었지만 아이의 마음을 직접 들으니 미안한 마음에 덕지덕지 변명이 붙었다. 그날 우리는 대화 끝에 방법을 생각해냈다. 일단 커다란 상자를 꺼내 비우고 [존중 박스]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동안 아이가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존중하지 않았다. 인정하고 사과하니 아이는 인정받고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모양이었다. [존중 박스]는 짓이겨진 마음을 세우는 박스였다.

 

“여기에 담겨 있는 물건은 함부로 만지거나 버리지 않을게. 너에게 진짜 소중한 물건은 여기에 보관해줘. 그럼 가족 모두 [존중 박스]에 있는 물건은 허락을 받고 꺼낼 거야.”

 

아이가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는 의미가 없고 왜 모으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각종 공룡카드와 포켓몬 카드는 제일 먼저 [존중 박스] 안에 자리잡았다. 그날 아이 일기장의 제목은 [존중 박스]였다.

 

(...) 나는 내 물건을 버리는 게 싫어서 엄마께 부탁했다. 그래서 존중 박스를 만들어주셨다. 존중 박스에 장난감을 넣으면 내 허락을 받고 만져야 한다. 그것 때문에 엄마가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물건을 버릴 수가 없다. 물건이 쌓이다 보면 엉망진창 박스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존중 박스는 공룡 같은 존재다.

 

‘너를 존중해’는 ‘나의 생각이나 가치관과 달라도 너를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너를 인정해’라는 의미다. 우리에게 왜 존중의 공간이 필요할까, 존중은 무엇을 바꿀까. 아이의 일기를 보며 나에게도 존중 박스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글쓰기 수업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 존중 박스를 경험했다. 함께 글을 쓰며 만난 언니들은 “그렇구나, 그럴 수 있어, 잘하고 있어!”를 외쳐주는 존중 동기였고, 내 감정과 존중과 안전을 보장받을 때 얼마나 깊은 지점까지 털어놓을 수 있는지 알았다.

 

존중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아이의 글도 나의 글도 그렇다. 그렇기에 아이는 아이를 위한 문장을 쓰고 나는 나를 위한 문장을 쓴다. [존중 박스] 속에 아이 장난감처럼 우리는 안전하다. 

 

10년 차 게으른 엄마

오지선다 말고 오선지를 주세요

사람이 태어날 때 한 장의 종이를 받는다면 나는 어떤 종이를 받았을까. 그 종이에 무엇을 기록했을까. 또 태어난 내 아이에게 어떤 종이를 건네줄까.

 

어떤 이는 밑그림이 잘 그려진 캔버스를 받고 색칠만 하면 된다. 반면에 밑그림도 그려져 있지 않은 점만 찍힌 백지 같은 종이를 받은 사람도 있다. 백지에 무엇을 그려나가고 써나갈지는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 오지선다를 받고 시험 문제를 풀듯이 사는 사람도 있다.

 

맞고 틀리고가 중요한 오지선다는 나는 사교육 현장에서 많이 보았다. 성정과 지식을 우선순위에 둔다. 사실 오지선다는 심플하다. 다섯 개 중의 하나는 정답이 있으니 어렵지 않게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게 심플하지 않다. 맞고 틀리고로 한 사람의 생을 결정할 수 없다.

 

종이를 받은 ‘나’ 자신이 우선이다. 부모도 연인도 친구도 아닌 내가 쓰고 그릴 것을 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떠나보고 만져보고 읽어보고 느껴 보고 생각하고 스스로 그려야 한다.

 

내가 받은 종이는 오선지였다. 높은음자리표를 엄마와 함께 그린 후 나의 음표와 쉼표를 그려왔다. 인생은 음악과 닮았다. 서사가 있으며 감정의 흐름이 있고 쉼표와 음표가 반복된다.

 

4분의 3박자에 맞추어 음표를 그리고 왈츠가 흐르는 사랑을 했다. 사랑이 나부끼는 언어가 음표 아래에 쓰이면 살랑거리는 봄바람을 닮은 선율이 흘렀다. 가단조의 어둡고 낮은 소리도 만들었다.

 

아무렴 괜찮았다. 인생은 장조와 단조를 넘나드는 변주곡이었다. 낮은 소리는 무게감을 주었다. 내 바닥을 채우고 결핍과 아픔이라는 자산이 생겼다. 낮은 소리는 묵직한 어른의 소리였다.

 

내 아이에게도 오선지를 주고 싶다. 오지선다를 아이에게 준다면 내가 생각한 답과 아이가 생각한 답이 다를까 전전긍긍하게 되겠지만 오선지는 다르다. 아이의 음악을 아이가 만든다.

 

아이의 첫 음표는 엄마의 음표를 따라 그리게 되어 있다. 나는 쉼표부터 그리는 법을 보이겠다. 남들 따라 그리는 음표 말고 쉬어야 할 때 쉬는 쉼표를 정확하게 그리면 다음에 그려질 음표는 더 풍성한 소리를 낼 수 있다.

 

여덟 살의 악보와 열다섯 살의 악보는 싱그러울 테다. 스무 살의 악보는 얼마나 찬란할까. 아이의 악보와 노랫말에 귀를 기울이며 생을 깊이 안아주고 싶다. 아마도 아이의 악보를 내가 더 자주 보고 외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이가 어른이 되면 짊어진 삶의 무게를 맞춰 함께 연주하고 싶다. 모든 감정의 선율을 품고 화음을 맞춘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낡고 오래된 날, 서로의 곡을 연주해주듯 서로의 생을 만져주기를 섬세하게 그려본다. 그리고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내 음악에는 네가 있었다. 인생 가장 아름다운 선율에는 아가, 늘 네가 있었단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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