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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도 엄마는 예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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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부

나이가 들어도 엄마는 예쁘네

언젠가 당신의 아이가 건넬 이야기들 | 박현 에세이
박현 지음 | 일요일오후 | 2021년 09월 | 216쪽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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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 지음/일요일오후/2021년 9월/216쪽/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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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집

 

■ 책 소개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아이의 고백 같은 것이다. 뜬금없이 날씨 좋은 어느 하루에, 당신의 아이가 꽃과 함께 마음속에 담아뒀던 추억의 조각들을 건네는 것이다. 나도 사실은 엄마와 함께 웃고 울었던 순간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것. 모두 지나간 일일지라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한 번쯤은 수줍은 마음으로나마 이야기를 건네보고 싶었다는 것.

 

당신의 아이가 아직 갓난쟁이라 언제 커서 이럴까 싶어도, 시험 준비에 지쳐 감상에 빠질 여력이 없어 보여도, 먹고 살기 바빠서 전화 한 통이 어렵다 싶어도, 모든 자식의 마음 한 켠에는 이런 마음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어느 한순간도 잊지 않고서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것. 당신에게 소중한 만큼, 우리 자식에게도 소중한 추억이라는 것. 조금 이르냐 늦냐의 차이가 있을 뿐, 언젠가 당신의 아이가 당신에게 건넬 이야기들이라는 것.

 

■ 저자 박현

오래도록 읽고 쓰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어떤 선입견도 없이 책을 읽고,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읽어도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자 합니다.

 

■ 차례

ㆍ 당신의 닭도리탕은 무엇인가요

ㆍ 당신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

ㆍ “엄마가 딸기를 왜 먹어?”

ㆍ 꽃을 선물한 날

ㆍ 뜨거운 밥솥을 손으로 만진 사연

ㆍ 수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ㆍ 조금씩 멀어지는 시간

ㆍ 산낙지 때문에 죽을 뻔했는데

ㆍ 혼자 밥 차려먹기

ㆍ 엄마와 영상을 남겨보세요

ㆍ “거짓말하면 혼난다”

ㆍ 엄마는 뮤지컬을 본 적이 없다

ㆍ 내가 천재인 줄 알았는데

ㆍ 엄마랑 자주 먹던 떡볶이집

ㆍ 미아 될 뻔한 사연

ㆍ “이거 좀 먹어봐라”

ㆍ 맛없는 감자탕의 변명

ㆍ 엄마와 유럽여행

ㆍ 동그란 뒤통수

ㆍ 필살 음식, 호박죽

ㆍ 컵라면 여행

ㆍ 콩나물 다듬는 시간

ㆍ 엄마에게 전화 한 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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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 지음/일요일오후/2021년 9월/216쪽/14,000원

 

당신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한순간을 꼽으면?”

 

어찌 보면 식상한 이 질문을 듣는 순간, 나는 그 이전의 나로 돌아가기 어려워졌다. 종종 생각날 때면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답하기 어려웠으니까. 그래서 이 질문이 어느 순간이면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곤 했으니까.

 

지금보다 긴 시간이 흘러 나도 결혼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아장아장 걸을 즈음이 되어 함께 길거리를 걷는 순간이 오면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게 될까. 남 부러울 것 하나 없는, 선명한 행복의 순간이 내 인생의 어느 한 지점에 새겨지게 될까. 엄마가 종종 말씀하시곤 하는 그 한순간처럼. 내가 쉬이 답하지 못하는 이 질문을 엄마에게 건네봤더니, 엄마는 평소에 보기 어려운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고.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하루의 점심 즈음이었다. 열 살이 채 되지 않은 아들의 옷을 입히고, 아직 갓난쟁이 딸은 유모차에 눕히고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서는 한 손으로 아들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론 유모차를 밀며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가 빨간불인 횡단보도 앞에 서서 파란불을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그때 시원한 바람이 엄마의 뺨을 어루만지며 스쳐 갔다. 그러니까, 한 손에는 아들의 손을, 다른 한 손에는 딸의 유모차를 잡은 그때, 따사로운 볕과 시원한 바람이 함께한 순간, 엄마는 세상에 어느 하나 부러운 것 없는 행복을 느꼈다. 이 순간은 너무도 선명하여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어제 일처럼 떠올릴 수 있다고, 그렇다고 종종 말씀하시곤 한다.

 

사실 지금의 나로서는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그래도 행복의 순간이란 대개 평온한 일상에서 스치듯 지나간다는 건 알아서, 막연하게나마 그 행복의 감촉이 전해지기는 했다.

 

이로부터 20년을 훌쩍 넘는 시간이 지나, 얼마 전 대학생이던 동생의 졸업식이 있었다. 사정이 있어 부득이하게 아버지는 올라올 수 없었고, 엄마만 올라오게 되어 있었다. KTX를 타고서 서울역으로 오시기로 했는데, 서울 지리는커녕 혼자서는 복잡한 서울 지하철에서부터 헤맬 게 분명해 내가 모시러 가기로 했다. 그리하여 엄마가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마중하고, 동생의 학교로 이동해 함께 점심을 먹고 커피도 한잔했다. 연차를 썼음에도 평일 출근날보다 바쁜 하루였지만, 카페에서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니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다.

 

동생네 학교는 안 그래도 캠퍼스가 예쁘기로는 손에 꼽을 만한 학교라 함께 거닐기 좋았다. 내가 엄마의 오른편에, 동생이 엄마의 왼편에 서서 천천히 걸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두런두런 사진도 찍으면서. 별달리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어느 정도 일정을 함께 소화한 뒤 동생은 졸업식의 여흥을 즐기러 떠났고, 나는 엄마를 모셔다드릴 예정이었다. 물론 그전에 서울 구경도 함께 하고서.

 

삼청동에 팥죽을 아주 잘하는 가게가 있다. 팥죽과 함께 수정과도 잘하는 가게라 내부에 생강 향이 그윽하다. 이 그윽한 생강 향 덕에 가게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팥죽의 맛과 향도 이 생강 향에 못지않다. 잘 쑨 팥죽에다가 커다란 찹쌀떡 한 덩이와 푹 쪄낸 밤을 올리고, 은행과 잣으로 모양을 낸다. 살짝 뿌려진 계핏가루가 팥의 향에 모자라지 않는 풍미를 더한다. 엄마와 함께 팥죽을 먹으며 죽이 좀 비싼 것 같아도 손이 정말 많이 가는 음식이라느니, 금방 배가 꺼지는 게 양이 적어서가 아니라 소화가 잘되어서라느니, 엄마가 끓인 호박죽보다 낫네 못하게 하는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가 문뜩 말했다. 오늘 하루 정말 행복한 하루였다고. 일전에 말한 그날이 생각날 만큼이나.

 

엄마를 서울역의 기차까지 모셔다드리고 배웅까지 마치고서,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실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엄마가 20여 년 전 그날 심어둔 가장 소중한 행복의 씨앗이 오늘 아름답게 꽃피운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면 그 날과 모든 게 반대로였다. 아직 채 마흔도 되지 않던 젊은 엄마는 어느덧 예순 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이에 반해 유모차에서 쌔근거리던 동생은 오늘로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고, 엄마 손을 잡고서 한 발자국씩 길을 따라 걷던 내가 이제는 엄마 앞에 서서 넓은 서울 바닥을 휘젓고 있었다. 그래도 분명한 건, 그렇게나 즐거운 날에 나와 내 동생이 엄마의 옆에 서 있었다는 것이겠다.

 

이리저리 찍은 졸업식 날 사진을 보면 남자인 나와 작지 않은 키에 힐까지 신은 동생 사이에서, 엄마가 가장 작아 보인다. 그래도 이 사진을 보며 괜히 훌쩍 커버린 우리라든지, 엄마 얼굴의 주름 따위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괜히 서글퍼지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대신 나는 이런 세월의 흐름을 두고 행복이 시간을 머금으며 여물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로, 그러기로 마음먹었다. 이날 찍은 사진을 보자면 엄마와 나와 동생은, 우리는 정말이지 활짝 웃고 있으니까. 그걸로 충분하니까. 

 

꽃을 선물한 날

엄마는 내가 어릴 적부터 꽃을 싫어한다고 했다. 항상 하던 말이 그랬다. ‘그거 어디다 쓰노?’라는 말. 그래, 꽃은 쓸모가 없으니까. 엄마는 내게 언제나 그저 ‘엄마’였으니까. 그래서 어릴 적 내게는 그 말이 너무 당연하게 들렸다. 그래, 쓸모. 500원이면 검은 봉지 가득 담아주는 시장 콩나물을 사서 직접 다듬는 우리 엄마. 꼬리 말끔히 다듬어진 마트 콩나물은 쓸데없이 비싸다고 하던. 부티나 보이던 브랜드 외투 대신 구제 외투로 충분하다고 하던, 우리 엄마. 엄마인 엄마는 무엇보다 쓸모를 따지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꽂아놓고 관상용으로나 쓰는 꽃은 쓸모없다고 말하던 엄마의 모습은 내게 당연하게 다가왔다. 이런 당연함 때문일까. 나는 나이가 차고서도 관성적으로 이렇게만 생각했다.

 

아주 우연한 계기로 이런 말을 하는 엄마에게 꽃 선물을 할 일이 생겼다. 내가 직접 사다가 건넨 것도 아니었다. 입사한 첫 회사에서는 부모님의 생일에 맞춰 꽃다발과 케이크를 보내줬었다. 첫해에 그냥 막연히, 선물이 간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일하는 중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업무 시간에는 전화가 오는 일이 거의 없어 무슨 일인가 하고 받았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그렇게나 들뜬 모습을 보인 적은, 살면서 그다지 많지 않았다. 기분이 묘했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일 년에 한 번은 효도한다며 엄마 생일이면 값비싼 선물을 사고, 예약도 어려운 식당에 엄마를 데리고 가면서 혼자 뿌듯해했다. 하지만 그런 값비싼 선물이며 맛있는 음식보다 꽃다발 하나가 엄마를 더 기쁘게 한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대단히 특별하거나 화려한 꽃다발도 아니었다. 아주 평범한, 어디서나 살 수 있는 꽃다발이었다. 그렇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엄마도 엄마이기만 한 건 아니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하지만 나는 “꽃, 그거 어디다 쓰노?” 하던 엄마의 옛날 말을 방패로 삼아 엄마에게 꽃을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순진한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첫 회사를 퇴직하게 되었을 때 엄마가 반쯤 농담으로 이야기했다. “앞으로 생일에 꽃다발이랑 케이크는 못 받겠네.”라고. 명절이면 맞춰서 오는 한우나 곶감 세트보다도 꽃다발과 케이크 얘기가 먼저 나왔다. 한우나 곶감 세트가 아쉽다고 했다면 답하기 쉬웠을 텐데. 분명 새 회사에서 명절이면 더 좋은 선물 보내줄 거라고. 하지만 새 회사에서 엄마 생일에 맞춰 꽃다발과 케이크를 보내주기를 기대하긴 어려울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냥 어색하게 웃으며 넘어갔다. 그러며 다시 한번 되새겼다. 앞으로 꽃다발과 케이크는 내가 챙겨야 하는 몫이란 걸.

 

아무쪼록 끝은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겠다. 다가오는 시간에는 엄마에게 꽃을 선물하길 주저하지 않아야지. 엄마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선물해야지.

 

조금씩 멀어지는 시간

고등학교 때부터 타지 생활을 했으니, 집을 떠난 지 어느덧 15년이 훌쩍 넘었다. 거리도 거리고 시간도 시간이라 일 년에 한 손으로 꼽을 정도로만 집에 가는데, 이제는 집이라기보다 차라리 별장 같은 느낌이 더 정확하달까.

 

다른 친구들처럼 살던 동네의 고등학교로 진학하지 않고 타지의 기숙학교로 간 건 온전히 내 의지 때문은 아니었다. 정확히 내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갈 무렵 즈음에, 집이 크게 기울었다. 이제 고등학생이라 열심히 공부해야 할 텐데 이런 집안 분위기에서는 힘들지 않을까 하던 엄마가 내게 먼저 권했다. 집안이 정신 사나울 것 같으니 기숙사 고등학교로 ‘유학’을 가는 게 어떻겠냐고.

 

인생에서 처음으로 집을 떠나 생활하는 곳이라는데, 기숙사에 자그마한 기대도 없었다면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하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대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법이다. 물론 그때는 기대에 못 미쳐도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런 줄로 알았다. 딱히 다른 방법도 없었고.

 

한 달, 그 좁은 촌 동네에 적응하고 새로운 친구들과도 조금은 익숙해져 이제 생활이 몸에 붙을 즈음인 한 달이 지나고서 동향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나뿐 아니라 기숙사의 거의 모든 아이들이 타지살이는 처음이었던지라, 집에 갔다 오고 싶은 심정은 모두 한마음이었을 터다. 집 가는 길은 대관한 버스로 세 시간 반 정도 이동하고, 동네에 내려 다시 택시나 시내버스로 삼십 분의 시간이 걸렸다. 그때까지도 주욱 유쾌했다. 새로운 장소와 생활, 또 새로운 친구들에 대해서 가족에게 말할 생각에 들떴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우리 집 층의 버튼을 누르고서 집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익숙하면서도 낯선 우리 집 현관문이 눈앞에 있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초인종을 누르는 대신 집 문을 두들기며 말했다.

 

“엄마!”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가 잰걸음으로 나와 문을 활짝 열었다. 문이 활짝 열리고 엄마 얼굴이 보였다. 엄마의 눈을 마주했다. 그러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엉엉 소리 내며 울었다. 내 마음이고 내 행동이었는데도 영문을 알 수 없었는데, 아무튼 그냥 펑펑 울었다. 지금 와서 그 당시의 마음을 가늠해보자면, 생각보다 긴장되고 힘들었던 거겠지.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지냈지만, 응석받이로 자라 제 마음대로 지내다가 다른 일곱 명의 친구들과 부대끼며 지내게 됐으니 마음이 결코 편하지 않았겠지. 괜찮아야 했기에 괜찮은 척하고 있었던 것이겠지.

 

아주 가끔, 이를테면 지금처럼 글을 쓰는 등의 계기로 그날 내가 왜 그리 울었는지 다시 한번 곱씹어보기도 한다. 조금만 차분하게 생각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이어보자면 아마, 아마 이렇게 조금씩 집과 떨어지고 멀어지게 될 것을 직감했던 게 아닐까. 이 한 달이 두 달, 석 달로 멀어져 가족을 보는 시간보다 보지 않는 시간에 더 익숙해질 미래의 내가, 집을 집이 아니라 별장처럼 여기게 될 내가 어렴풋이 상상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금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노라면, 정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싶기도 하다.

 

“이거 좀 먹어봐라”

설이나 추석을 비롯해 언제고 집에 내려가기 전이면 항상 다짐하곤 한다. 이번 귀향에도 효자는 못 되겠지만 효자인 척은 하고 오자고. 하지만 막상 집에 도착하면 이 마음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커다란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항상 먹는 것 때문에.

 

“현아, 이거 좀 먹어봐라.”

 

집에 도착한 순간부터 이 말이 시작된다. 밥을 먹기 전에는 뭐 먹을래, 밥 먹으면서는 이거 좀 더 먹어라, 밥 먹고 나면 과일 안 먹나, 커피 한잔 타 줄까, 그 이후에도 식혜며 강정을 가리키며 맛 좀 보라는 이야기. 처음 한두 번은 웃으며 아니라고 괜찮다고 하다가, 서서히 굳는 표정을 숨기며 정말 안 먹을 거사고 손사래 치고, 그렇게 참다 참다 기어이 한 번은 짜증을 내고 만다.

 

“먹으라 소리 좀 그만하라고!”

 

이번 설도 어느 귀향과 다르지 않아 엄마와 먹는 걸 두고서 이런저런 실랑이를 하다가 가벼운 짜증을 냈는데, 엄마가 이야기했다. 이 말을 듣는 때가 그리운 순간이 올 거라고. 나중 되면 이 이야기도 그리울 때가 올 거라는 말까지도 평소의 레퍼토리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말의 뉘앙스가 평소와 미묘하게 달랐다. 평소의 그것보다 분명 생각이 한 움큼 더 들어가 있는, 그런 뉘앙스였다. 무슨 의미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우선 참았다. 조금만 기다리면 엄마가 먼저 이야기해줄 걸 알아서.

 

아니나 다를까. 식사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과일에 커피를 한잔하며 엄마가 자연스레 이야기를 풀었다.

 

할머님과 말동무하는 중에 들은 이야기라고. 어르신도 지금보다 좀 더 건강할 적에 아들딸이며 손주가 올 명절을 앞두고서는 부지런히 장도 보고 음식도 정성껏 준비해 같이 식탁에 둘러앉아 먹는 게 인생의 낙이었단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고. 자식을 챙기고 싶은 마음이야 예전과 다를 리가 있겠냐만, 이제는 도저히 몸이 따라주지 않아 음식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그러며 엄마는 나와 동생 생각을 했단다. 집에 내려올 적이면 항상 해주는 닭도리탕과 김치찌개를 앞으로 얼마나 더 해줄 수 있을까 하고.                    

 

이제 내가 고민해야 할 차례였다. 정말로 엄마의 얼굴에 늘어가는 주름과 흰머리만큼 기차역으로 마중 오는 빈도와 식탁에 차려진 음식의 개수가 줄어들게 될까. 그 시간이 사소한 슬픔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축적의 시간일지, 아니면 커다란 슬픔을 대비하는 정리의 시간일지, 혹은 두 경우 모두 틀리지 않아 사소한 슬픔이 커다란 슬픔을 대비하는 완충 역할을 해줄 시간이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혼자 상념에 빠져서 이런 생각을 한들, 집에 내려갈 때 먹으라 먹으라 하는 엄마의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나 역시 계속 거절하다가 여태처럼 짜증을 내곤 할 터다. 이러면서도 아주, 아주 조금씩 바뀌려나. 먹으라는 이야기를 차츰 덜 하는 엄마에 조금씩 짜증을 줄이는 나의 모습으로. 서서히 엄마와 나의 이야기도 달라지다가, 어느 순간에 돌아보면 ‘옛날에는 안 이랬는데...’라고 말하는 순간이 오려나. 

 

엄마에게 전화 한 통을

우연한 계기로 <나이가 들어도 엄마는 예쁘네>를 쓰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속 어딘가에는 으쓱한 마음이 차올랐다. 하지만 과거의 추억을 글로 쓸 때의 즐거움보다 다음 이야깃거리로 무얼 써야 할지 고민이 커지는 중반 무렵이 되자, 굳이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진실 하나가 나를 덮쳐왔다. 무슨 미사여구를 붙이건 효도는 결국 자기만족이라는 진실.

 

과거를 곱씹어보면 나는 항상 내가 먼저였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활동들을 엄마에게 선물하고 함께하며 막연히 엄마가 좋아하기를 바랐다. 정말로 엄마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얼 할 때 즐거워하는지는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이러나저러나 내 효도와 실천의 사이에는 홀로 뿌듯한 나만 있었을 뿐, 진짜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은 생각보다 얕았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글을 남기며 나름 성찰하는 시늉을 한다지만 이런 생각을 한들, 앞으로 내 행동이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나의 자기중심적인 효도, 몸에 맞지 않는 옷 같은 효도를 받는 엄마에게 내가 바라는 방식의 감동은 전해지지 않으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굳이 낙담하거나 실망하지는 않는다. 정확히 내가 바라는 감동은 아니라 할지라도, 내가 엄마를 생각하고 위하는 그 진심만큼은 전해지리란 걸 잘 알고 있으니까. 자식의 사소한 선물에도 넘치도록 감동하는 게 엄마니까. 세상의 모든 엄마가 그러니까.

 

그래서 한 번은 이러고 싶었다. 온 마음을 다해 시간과 정성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오롯이 엄마만을 위한 선물을 마련하고 싶었다. 이 책에 쓰인 글들은 이런 마음으로 완성되었다. 이 또한 자기만족이라 할지라도. 그래. 그럼에도.

 

또 이런 마음이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자식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읽고서 엄마에게 전화 한 통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걸로 이 글을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엄마에게 전화 한 통을 걸고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화를 끊기 전에, 두서없이 사랑한다고 말하면 좋겠다. 어떤 이유도 목적도 없이, 그냥 그러면 좋겠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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