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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나 혼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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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나 혼자 산다

외로워도 슬퍼도 발랄 유쾌 비혼 라이프
엘리 지음 | 카시오페아 | 2021년 07월 | 240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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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지음/카시오페아/2021년 7월/240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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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집

  

■ 책 소개

 

“나만을 위해 사는 삶,

꽤나 두근거리고 멋진 일 아닌가!”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한 작은 시작, 즉 비혼 생활을 생생하게 그린 이 책은 저자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다양한 직업군의 비혼 여성들의 일상과 생각들까지 공유한다.

 

비혼을 지향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혼자 사는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외로움’과 ‘고독’이란 감정을 “단순히 물리적으로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세상과의 교집합을 찾을 수 없을 때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런 맥락으로 혼자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선 “스스로 행동하고 창조하는 행위에 중심을 두는 것, 세상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다는 수동적 입장을 벗어나 자신의 행위를 통해 산출된 결과로 세상에 사랑을 보태고 싶다는 능동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 저자 엘리

아이디 읽고 쓰는 사람, 글로생활자.

브런치 연재를 통해 첫 책 《연애하지 않을 권리》를 낸 이후로 꾸준히 글을 써 오고 있다. 독립 출간물 《우리 모두 죽어야 하는 존재들》을 펴냈다. 현재는 프리랜서 크리에이터로 다양한 창작 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도서 리뷰 영상 콘텐츠 중심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

 

이 책 《이번 생은 나 혼자 산다》는 네이버 연애·결혼판에서 연재한 칼럼을 바탕으로 쓰였다. ‘혼자는 외롭다’, ‘혼자서는 살기 어렵다’와 같은 편견, 전통적 가족관에서 벗어나 멋진 홀로서기를 다짐한 사람들 역시 인생에서 충분히 나름의 여유와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음을 전하고자 했다.

 

사회적·경제적·개인적 이유들로 인해 비혼할 것임을 굳게 다짐했지만 “사람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마따나 다양한 변수에 의해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이 책이 비혼이 될, 또는 비혼이 될지도 모르는 동지들에게 일말의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웹페이지 elliethereader.imweb.me

브런치 @ellieyang47uu

인스타그램 @elliethereader_

트위터 @elliethereader_

유튜브 북큐멘터리

 

■ 차례

프롤로그 오직 내 선택과 의지로 굴러가는 인생을 위하여!

 

PART 01. 나 하나 키우기에도 충분한 삶

하지 않을 권리│버진로드│좋은 남자는 새치다│개체수 조절을 위한 제2세대 생산│나를 망치러 온 내 인생의 구원자, SNS│짝이 없어 슬픈 그대여 슬퍼 말게나, 원래 짚신은 제 짝이 없다네│DON’T BE SILLY, DARLING│ 많은 사건이 발생할 것 같은 그런 오후

 

PART 02. 외로워도 슬퍼도 홀로 멋지게 사는 법

작가님, 혹시 요새 외로우세요?│비혼 1인 타운 하우스│역마살│문어가 문워크하는 법│실시간 현관 앞 영상 확인│혼자 사는 삶의 진정한 장점(반박 안 받음│우산은 없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감정의 자작농│나의 축제를 위하여

 

PART 03. 지속 가능한 비혼 라이프를 위하여

데이트 말고 네트워킹│당신만의 속도│언니! 나 먼저 가연│‘정상 가족’ 궤도를 이탈한 주거 난민들│법 밖의 새로운 가족, 생활동반자│다른 이들에게 들어갈 문│호시절好時節

 

에필로그 이렇게 이상하고 슬픈 나라에서 어쩌다 사랑에 빠졌다고 결혼하지 말자

부록 언어의 프레임이 곧 권력이 된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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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지음/카시오페아/2021년 7월/240쪽/15,000원

 

나 하나 키우기에도 충분한 삶

짝이 없어 슬픈 그대여 슬퍼 말게나, 원래 짚신은 제 짝이 없다네

휴일을 맞아 가족과 한국 민속촌으로 나들이를 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인파에 쓸려 어슬렁어슬렁 구경하러 다니다가 전통 공방 거리에 있는 안내판 앞의 문구를 보게 되었다.

 

과거에는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한 바람으로 짚신을 한 짝만 보관하기도 했다.

 

조선 시대 상인 계층으로 분장한 채 열심히 새끼를 꼬고 있는 민속촌 관계자 옆에서 이 문구를 한참 동안 의심의 눈초리로 쏘아보며 서 있었다. 진짜 과거 사람들이 저랬다고?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이름, “Hey, Siri!”를 소환 주문처럼 비장하게 외친 후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뜻밖의 사실을 조우했다.

 

본디 짚신은 좌우 구분이 없어서 딱히 ‘제 짝’이라고 할 게 없고,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골라 신으면 장땡이라고 한다. 게다가 노동자들의 짚신 수명은 최대가 사흘 정도였다고 하니, 거의 일회용품 수준 아닌가?

 

이와 같은 사실에 근거해 짚신에 대한 안내문을 다시 써보자면 아래와 같이 재구성해볼 수 있겠다.

 

*짚신 설명서

: 짚신은 본디 제 짝이랄 게 없으니 ‘자신에게 딱 맞는 짝을 찾겠다고 애먼 시간 낭비, 허튼짓꺼리 하지 마라’는 뜻을 담고 있다. 또한 아무거나 발에 채이는 대로 골라잡는다 해도 짚신이란 것이 원체 그 내구성이 좋지 않으니, 오래 못 가 금방 해지고 말 것이오!

 

그럼 이제부터 짚신을 비혼 선택 가구의 상징적인 집들이 선물로 삼으면 어떨까? 자, 봐봐! 짚신도 원래 제 짝이 없대잖아! 너도 짝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가려는 길이나 열심히 걸어가도록 하려무나! 

 

외로워도 슬퍼도 홀로 멋지게 사는 법

우산은 없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글쓰기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 삑! 카드를 찍고 지하철 개찰구 밖으로 나오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휴대 전화 진동이 두어 차례 울려댔다.

 

금일 현재 서울 지역에 많은 비가 올 것으로 예상하오니 절대 입산하지 마시고, 산사태 발생 우려 거주민분들께서는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 바랍니다.

 

아뿔싸, 비 소식이다. 그것도 폭우 예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져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히 나 같은 사람이 더 있었다. 띵! 순간 시스템 알림음이 들리는 느낌이었다.

 

미리 기상청 예보를 확인하지 못한 자들 파티에 가입하셨습니다.

 

임시 파티원들과 함께 하늘에서 시멘트 바닥을 향해 직하하는 빗줄기를 망연하게 내다보고 서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들은 마치 던전 입구에 모이기는 했으나 퀘스트 스크롤이 없어 입장하지 못하는 캐릭터처럼 보이기도 했다.

 

‘유럽사람들처럼 나도 비에 좀 관대해져 볼까’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할 무렵, 파티원들이 게이트 밖으로 나가 “나 지금 옆 앞이야. 데리러 와줘”라며 긴급 무전을 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덜컹. 등 뒤에서 에스컬레이터가 작동하는 소리를 들으며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해봤다.

 

‘그래, 아직 여름이고 빠른 걸음이면 집까지 10분 컷... 옷이야 빨면 된다지만 신발은 어쩐다?’

 

그러다 문득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급격하게 배가 고파졌기 때문. 덜컹.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뒤에 임시 결성된 파티원들을 내버려둔 채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이 되어 빗속으로 한 발짝 내디뎠다. 잘 있게, 2번 게이트 동지들이여. 나는 나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나가기로 했네. 그럼, Adios!

 

순식간에 온몸이 폭삭 젖어들어갔다. 빗줄기 아래 서 있으니 수영 후 샤워 부스 아래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비 오는 날 야외 수영 하는 것이었는데, 아마 지금 이 느낌과 비슷하려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에서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떡볶이’였다. 그것도 시뻘건 양념을 듬뿍 끼얹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밀 떡볶이. 나는 길 한가운데 우뚝 멈춰 섰다. 얼른 가던 길에서 방향을 틀었다. 편의점은 아까 1분 22초 정도 전에 지나쳤다.

 

딸랑.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편의점에 들어선, 젖은 생쥐 한 명. 아니, 한 마리? 세는 단위를 무얼로 붙일까 고민하며 슬쩍 편의점 유리 벽면에 비친 나를 돌아봤다가 ‘마리’로 합의를 보기로 했다. 젖은 생쥐, 그것도 머리에 검은 물미역을 덕지덕지 붙인, 바다에서 막 걸어 나온 해양 생쥐... 한 마리요!

 

집에 에어프라이어와 커피머신은 들여놨어도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아직 전자레인지는 없는 살림이었기에 점포 내 전자레인지를 2분 30초 간 이용했다. 땡! 전자레인지가 집에 갈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렸다. 나는 조심조심 인스턴트 떡볶이를 집어 들었다.

 

차박, 차박, 웅덩이를 밟으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불이 꺼진 상점가 유리 벽면에 해양 생쥐가 슥 비쳤다. 입술 새로 웃음이 슬금슬금 비집고 올라왔다. 혹여 떡볶이에 물이 들어갈까 소중하게 움켜쥔 채 빗속에서 종종걸음치고 있는 생쥐 모습이 재미났기 때문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비가 쏟아진다고 누구 하나 마중 나올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집에 가면 누가 따뜻하게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왜 이리 경쾌한지. 누군가 나도 모르게 내 영혼을 전자레인지에 2분 30초 동안 따뜻하게 데운 것만 같았다.

 

통, 통, 통, 바닥 위로 튀어 오르는 빗방울처럼 한없이 가벼워지는 것. 내 기분에 부딪혀 다시 표면 위로 튀어 오르는 즐거움. 나는 빗줄기 아래서 범인의 실마리를 찾아 영국의 골목골목을 누비는 셜록 홈즈가 되기도 하고, 온몸에 비누칠을 한 채 빗속으로 뛰어드는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 속 주인공 카프카가 되기도 하다가, 마침내는 국물 떡볶이를 두 손에 쥔 채 빗속을 걷는 생쥐로 되돌아온다.

 

유쾌한 밤이었다. 나는 집에 들어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문 앞에서 내 발소리를 듣고 마중 나온 반려 고양이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비에 젖은 옷을 홀딱 벗어 세탁기에 처박았다. 차가워진 손만 따뜻한 물에 녹이고 먹는 밀 떡볶이 맛은, 요새 말마따나 ‘역대급’이었다. 물은 신기하다. 왜 수영이 끝나고 나와 마시는 초콜릿 우유는 더 맛있으며, 비에 젖어 먹는 떡볶이는 왜 유독 더 맛있는 걸까? 이렇게 지속할 수 있는 삶이라면, 이따금 고독감을 느낄 때가 온다 할지라도 외롭지는 않겠구나, 그런 기분에 사로잡힌 늦은 밤의 오후가 조각조각 쪼개진 밤의 순간들과 함께 저물어가고 있었다. 

 

지속 가능한 비혼 라이프를 위하여

당신만의 속도

버락 오바마는 55세에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70세에 취임식을 가졌다.

누군가는 25살에 CEO가 되었지만 50살에 세상을 떠났다.

반면 다른 누군가는 50살에 CEO자리에 올랐고 90살까지 살다 세상을 떠났다.

누군가는 여전히 싱글이고, 반면 누군가는 결혼을 했다.

세상 사람 누구나 자신만의 타임 존(Time zone)을 가지고 있다.

다이아나 나이아드는 전 세계 최초로 쿠바 해협을 횡단한 수영 선수다.

그는 2013년 8월 쿠바에서 출발해 180킬로미터의 거리를 장장 53시간 동안 쉬지 않고 헤엄쳐 9월 2일 플로리다 해변에 도착했다.

무려 5번의 실패 끝에 이룬 성공이었다.

그의 나이 64살 때의 일이다.

 

한때 사이트에 떠돌던 유명한 문구다. 당신만의 속도, 원문에서는 ‘타임 존’이라는 표현을 썼다. 지구상의 여러 나라가 각자의 타임 존에 맞춰 일상을 영위하고 있듯, 각 개인에게도 각자에게 맞는 타임 존이 설정돼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니 누군가를 부러워하지도 또 누군가를 따라 하려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서로의 생애주기와 속도를 인정해주면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50살이 다 되어서야 공부를 시작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성인이 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홀로 첫 여행을 떠나게 될 수도 있다. 또 일흔이 다 되어서 첫 결혼을 선택할 수도, 또 다른 누군가는 배우자 없이 홀로 삶을 꾸려가기로 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반대로 20대가 되자마자 법적 혼인 관계를 맺었던 누군가는 단 몇 개월 만에 이혼을 결심하고 나머지 평생을 혼자 살아가기로 삶의 방향성을 재조정할 수도 있다. 인간의 결혼과 제 2세대 재생산에 대해 자연이 정해놓은 법칙 같은 것은 없다. 오직 인간들의 편견만 있을 뿐이다.

 

사램이란 서두는 게 앙이오. 목수가 대피질하듯 이 설설 살아야지비.

 

박경리 작가의 《토지》에 나오는 대사를 읽으며 내 인생을 목수의 대패질을 견주어 생각해봤다. ‘신중하게 자재를 고르고,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페인트칠하고, 못을 박고 또 대패질하며 모두가 그렇게 진득하니 저마다의 인생을 꾸리며 살아가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일양래복(一陽來復), 음산한 겨울 날씨 속에서 양기(陽氣)가 싹트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동지는 1년 중 가장 밤이 긴 날. 그러나 이날을 기점으로 밤의 길이는 점차로 짧아지기 시작한다. 겨울의 최정점을 찍은 그 순간, 봄이 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대여, 부디 지금 겪는 밤이 길다고 하여 쉬이 낙담하지 말기를. 남의 계절과 시간을 부러워하거나 좇으려 또는 맞춰 가려 애쓰지 말기를. 당신을 위한 계절이 곧 모퉁이를 돌아 종종걸음쳐 품속에 폭 안겨올 것이니.

 

호시절(好時節)

수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두유에 빨대를 꽂아서 한 손에는 수영 가방, 다른 손에는 우산과 두유를 들고 숲 옆으로 난 오솔길을 걸었다. 늦여름의 오후는 곧 무언가 시작될 것 같은 촉촉한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빗속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자전거 탄 아저씨 뒤를 좇아 내리막길로 종종걸음을 쳤다. 아저씨는 중간중간 멈춰서 휘파람을 불며 강아지가 잘 뒤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때마침 들려오는 산사의 목탁 소리. 그리고 물안개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과거의 잔상. 부연 가스등처럼 깜빡이는 기억 속에는 7살 난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2층 발코니에서 정원을 기웃거리던 모습 그대로였다. 따뜻했던 시절이었다. 터울 많은 사촌 언니들 사이에서 막내처럼 자란 아이는 어느덧 성인이 되었다. 그 사이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서로 함께 머리를 맞대고 뜨거운 국을 후후 불어가며 밥숟갈을 뜨던 가족들은 파편으로 세월 속에 뿔뿔이 흩어졌다. 서로 참 멀리도 갔구나. 지나가는 바람에 나는 가만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다. 이 계절이 몇 번이나 돌고 또 돌았을까? 다시 여름이, 우거진 8월이 왔다. 늘 그렇듯 비에 젖은 흙내음을 몰고서. 푸른 녹음 위로 하얀 실 빗금을 긋는 계절이 내게 묻는다. 너의 이번 여름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니? 지난여름으로부터의 안부 인사다.

 

너는 잘 지내니? 너무 슬퍼하고 우울해하며 좋은 시절을 하릴없이 흘려보내지 말렴. 호시절. 좋은 시간이란다. 너의 젊음을 축복한다. 무르익어가는 계절을 살아라. 현재를 살고, 후회는 조금만. 기대도 덜. 다만 현재의 감각은 최대한 오래, 오래 음미하렴. 적게 두려워하고 더 자주 도전하는 삶을 이어가렴. 새들은 날개가 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빗속에서도 훨훨 날갯짓한단다.

 

가끔은 안정감이 그리워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잊지 말렴. 너는 ‘푸른 도화선 속으로 꽃을 몰아가는 힘’과 같은 자극이 언제고나 필요한 인간이란다. 너는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것보다 육지에서 가장 동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초와 난파선을 찾으러 떠나는 리브어보드 트립에 참여하는 게 더 체질에 맞는 인간이야. 세상의 온갖 것을 다 경험해보고 싶어서 하는 성격이라는 것도, 종종 충동적으로 행동할 거라는 것도, 비가 오는 날은 여행이 취소되는 날이 아니라 수영하기에 완벽한 날씨라고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두 발로 선 토끼가 “바쁘다, 바빠”라고 중얼거리며 회중시계를 들고 뛰어가는 장면을 보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토끼 뒤꽁무니를 쫓아갈 그런 대책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기를.

 

무엇보다 자유로운 네 모습이 내게 가장 매력적이라는 것을, 부디 오래오래 잊지 말고 기억해주기를.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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