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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 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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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보통신부

블러, 오아시스

브릿팝의 두 불꽃, 블러 오아시스 연대기
이경준 지음 | 산디 | 2020년 09월 | 311쪽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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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준 지음/산디/2020년 9월/311쪽/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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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집


■ 책 소개

 

브릿팝의 두 불꽃, 블러 오아시스 연대기

 

그 전쟁은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다. 블러가 먼저 나타나 불을 피웠고, 곧 오아시스가 매서운 추격에 돌입했다. 그 밖에 펄프, 스웨이드, 버브 같은 밴드가 참여해 판을 키워놓았다. 이는 영국 팝 시장에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곧 세계가 열광하는 전시장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을 브릿팝이라고 부른다. 영국의 여러 음악가가 훌륭한 작품을 공격적으로 쏟아내 미디어를 장악한 시절의 이야기다.

 

이 책은 브릿팝의 두 불꽃, 블러와 오아시스의 활동을 추적한다. 두 그룹이 각각 어떤 배경에서 데뷔를 하고 주목을 받으며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 성과를 거두었는지를 살펴본다. 이것은 블러와 오아시스의 활동 일대기인 동시에 1990년대 브릿팝의 연대기다. 1960~1970년대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 이후 가장 치열하게 다툰 두 음악가를 통해 영국 팝 음악이 빛나던 마지막 순간을 돌아보는 것이다.

 

1990년 블러는 첫 싱글 〈She’s So High〉를 발표했다. 1994년에는 오아시스의 데뷔 음반 《Definitely Maybe》이 나왔다. 오아시스의 갤러거 형제가 늘 허세와 욕설로 말잔치를 벌이는 동안 블러의 데이먼 알반은 1997년 “브릿팝은 죽었다”고 냉소적으로 선언했다. 그 전쟁으로 그들은 무엇을 얻고 잃었을까. 결국 남은 것은 작품이다. 이만큼 시간이 흘렀어도 돌아볼 가치가 충분한 좋은 노래와 음반이다.

 

■ 저자 이경준

고민만 하다가 불혹을 넘겼다. 예전에는 음악을 좀 듣는다고 생각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말을 삼가게 된다. 부족함을 통감한 탓이다.

 

그래도 여전히 음악이 좋고, CD가 좋다. 아마존에서 새로 나온 CD와 음악 서적을 구경하는 게 낙이다. 낮에는 음악을 듣고, 밤에는 책을 번역하거나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낸다. 음악 글쓰기는 때론 고통스럽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오래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지금은 마음뿐이지만 언젠가 소닉 유스와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소개할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린다.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있고 온오프라인 매체에 음악 관련 글을 쓰고 있다. 공동 저작으로 『한국대중음악 명반 100』이 있고, 역서로는 『Wish You Were Here: 핑크 플로이드의 빛과 그림자』 『광기와 소외의 음악: 혹은 핑크 플로이드로 철학하기』 『스미스테이프』 『조니 미첼: 삶을 노래하다』 등이 있다.

 

■ 차례

들어가는 말

 

블러, 오아시스 연대기

블러 음악 관계도

오아시스 음악 관계도

 

CHAPTER 1 다른 계급 Different Class

CHAPTER 2 사랑받고 싶어 I Wanna Be Adored

CHAPTER 3 다른 길은 없어 There’s No Other Way

CHAPTER 4 앞날을 위해 For Tomorrow

CHAPTER 5 로큰롤 스타 Rock ’n’ Roll Star

CHAPTER 6 새로운 세대 New Generation

CHAPTER 7 브릿팝 전쟁 The Britpop War

CHAPTER 8 달콤 씁쓸한 교향곡 Bitter Sweet Symphony

CHAPTER 9 더는 도망갈 곳이 없어 No Distance Left to Run

CHAPTER 10 인생의 설계도 A Design for Life

CHAPTER 11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

CHAPTER 12 사랑과 증오가 충돌할 때 When Love & Hate Collide

CHAPTER 13 진실을 믿지 마라 Don’t Believe the Truth

CHAPTER 14 이건 내 세대야 This Is My Generation

CHAPTER 15 이 또한 지나가리라 All Things Must Pass

CHAPTER 16 누가 달을 만들었는가? Who Built the Moon?

 

왜 갑자기 블러, 오아시스일까 - 저자의 말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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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준 지음/산디/2020년 9월/311쪽/16,000원


다른 계급 Different Class

브릿팝의 두 불꽃

어쩌면 둘은 브릿팝의 ‘셜록 홈스와 모리아티 교수’였을 것이다. 닮은 구석이라곤 없었다. 용모, 배경, 출신 지역, 가치관까지 모두 그러했다. 그냥 모든 것이 달랐다. 세상에 나온 시점조차도 달랐다. 블러와 오아시스. 둘은 친구가 될 수 없었다. 2001년 음악 매거진 『NME』의 표현을 빌리자면, 둘의 구도는 “잉글랜드 축구팀 대 아르헨티나 축구팀”의 관계였다.

 

물론 둘을 품은 브릿팝이라는 우주는 광활했고, 그 안에서 반짝인 별들은 여럿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근거리에서 긴장감을 유지하며 함께 빛난 라이벌은 많지 않았다.

 

정작 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누구 마음대로 우리를 같은 범주로 가두었냐고, 우리는 그런 라이벌 따위는 아니었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록 스타의 비극이란 자신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스펙터클이 된다는 것이다.

 

감당하지 못할 만큼 인기를 얻는 것도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예감이야 있을지 몰라도, 그 어떤 유명 밴드도 터질 시점을 미리 알지는 못한다. 비틀스도 그랬고, 핑크 플로이드도 그랬다. 하지만 블러와 오아시스는 모두 같은 시대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운명이었다. 전쟁은 불가피했다.

 

이 시점에서 누가 최종 승자인지를 정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아마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남겨진 기록을 따라서 지나간 시대를 잠깐 거슬러 올라가볼 뿐이다. 그들이 찬란하게 꽃피웠던 브릿팝을 복기해볼 뿐이다. 그 작업은 정화할 수 없다. 항상 완전할 수는 없는 사료, 편견, 잘못된 기억, 빗나간 애정 등 여러 변수들과 싸워야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돌아볼 시점이 되었다. 시간이 그만큼 흐르기도 했다. 록 음악의 파급력이 예전과 같지 않은 지금, 록이 마지막으로 찬란했던 시절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길은 없어 There’s No Other Way

데이먼, 물 좀 마셔야겠다

먼저 치고 나간 쪽은 블러였다. 1990년 3월, 블러는 독립 레이블 푸드 레코즈와 계약을 체결했다. 1984년 설립되어 1994년 EMI에 팔린 푸드는 블러와 계약한 당시 세 명이 일하던 작은 레이블이었다. 하지만 잠재력을 갖춘 회사이기도 했다.

 

물론 푸드가 유명한 레이블은 아니었다고 해도, 블러에겐 길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알렉스 제임스의 말에 따르면 “받아들이든지 말든지”식 계약이었다.

 

멤버들의 의견은 좀처럼 고려되지 않았다. 밴드의 활동과 미래를 둘러싼 중요한 결정 대부분은 회사에서 나왔다. 심지어 이름이라는 밴드의 정체성까지도. 회사는 밴드를 설득해 밴드 이름을 ‘블러’로 바꿨다.

 

푸드의 대표 앤디 로스는 싱글부터 내자는 멤버들의 의견을 각하하고, 밴드의 이름을 알리는 것이 우선이라는 사내 정책에 따라 열심히 공연부터 돌렸다.

 

첫 싱글 <She’s So High>가 나온 것은 1990년 10월이었다. 계약으로부터 7개월이 지난 뒤였다. 노래는 UK 싱글 차트 48위를 기록했다. 결코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평단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심지어 <She’s So High>를 프로듀싱한 스티브 파워조차 곡의 성공을 확신하지 못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완성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알렉스 제임스의 연주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차라리 그레이엄이 베이스를 연주하길 바랄 정도였다.

 

최대한 호의적으로 바라봐도 <She’s So High>는 약점이 명확한 싱글이었다. 하지만 블러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데이먼의 지인은 당시 블러의 공연이 상승세의 동력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록 페스티벌 무대에 오를 때면 더욱 적극적이고 강렬한 무대 매너로 가끔은 헤드라이너의 지위를 위협했고, 스톤 로지스의 쇠퇴 이후 다음 타깃을 찾던 록 언론은 이들의 행보를 면밀히 주시했다.

 

1991년 4월 『NME』는 블러의 가능성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청바지를 입고 윗도리를 탈의한 채 자신감 있게 정면을 응시하는 네 멤버 사진과 함께 ‘벌거벗은 야망’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겸양이라고는 없다. 수많은 관객 앞에서 연주할 때 겸손함이라는 건 미덕이 아니라고 믿는다. 나는 이들이 위대하고 전설적인 무언가로 개화할 거라 믿는다. (…) 블러는 최근 10년간 영국 음악이 맞이한 최고의 순간이다.”

 

1991년 4월 두 번째 싱글 <There’s No Other Way>가 발매되었고 밴드는 영국의 인기 음악 TV프로그램 「톱 오브 더 팝스」에 출연해 이 곡을 연주했다. 첫 출연이었지만 위축된 구석이라곤 없었다. 데이먼의 말에 따르면 그날 공연은 “이 순간을 위해 몇 년 동안 준비했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자리였다. 당시 공연 영상이 업로드된 유튜브에는 “데이먼, 물 좀 마셔야겠다”는 댓글이 달려 있다.

 

<There’s No Other Way>는 사실상 블러라는 밴드의 첫 분기점이었다. 리듬은 독창적이라고 말하기 어려웠지만, 서서히 자신들만의 감성이 자리 잡히고 있었다. 블러가 대세였다. 늘 호평을 얻은 것은 아니었고, 솔직히 설익은 구석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 영국의 모든 매체가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 

 

로큰롤 스타 Rock ’n’ Roll Star

로큰롤 스타가 나타났다

오아시스란 어떤 밴드였는가? 그들의 로드 매니저였던 이언 로버트슨은 회고록 『오아시스: 왓츠 더 스토리Oasis: What’s the Story?』(2016)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롤러코스터 타본 적 있나? 정점에 다다른 그 순간을 떠올려보라. 열차가 지상을 향하는 그 찰나의 영예로운 순간을. 무중력 상태로 돌입하는 그 순간을. 그들은 그 정도로 좋은 밴드였다.”

 

로버슨이 오아시스를 처음 본 것은 1994년 7월 뉴욕에서였다. 그에 따르면 당시 그들은 모이스트라는 무명 밴드의 서포트 밴드로 무대에 섰다고 한다. 브릿팝 신이 만들어낸 여파가 미국에 도달하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날 공연에서 로버트슨이 들었던 오아시스의 노래 <Supersonic>과 <Shakemaker>가 증거가 되었든 그들은 세계 시장에 곧 상륙할 브릿지팝의 징후였다.

 

그 징후는 뉴욕 공연으로부터 한 달이 지난 1994년 8월 29일, 오아시스의 데뷔 앨범인 《Definitely Maybe》라는 형태로 세상에 알려질 예정이었다. 오아시스라는 싹을 알아본 존재는 많았다. 특히나 매체는 이 신예의 출현에 진작부터 들떠 있었다.

 

주간지이기에 영국 음악 뉴스를 상대적으로 빠르게 전달한 『NME』는 1994년 4월 <Supersonic>, 6월 <Shakemaker>를 ‘이 주의 싱글’로 선정했다. 『NME』는 시간이 흘러 그해 12월 <Whatever>가 나왔을 때도 오아시스를 반겼다. 오아시스의 시작은 블러와 달랐다. 적어도 데뷔 앨범에 있어서는. 찬사가 쏟아졌다.

 

《Definitely Maybe》는 당시 20대 초중반의 젊은이들이 만들었다고 믿기에는 너무 노련하고 원숙한 작품이었다. 심지어 노골적으로 드러난 레퍼런스조차도 매력적이었다. 밴드의 입담은 작품보다 더 노골적이었다. 선배 밴드들은 물론이고 동시대 브릿팝 밴드들이 차례로 그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그만큼 오아시스의 등장은 센세이션이었다. 음악성과 캐릭터를 모두 갖춘 이 신예 밴드의 출현에 록 저널리스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Definitely Maybe》 20주년 재발매반에 8.8점(10점 만점)을 부여한 웹진 『피치포크』는 <Rock’n’Roll Star>를 “번뜩이는 상상력을 필연적인 것처럼 변화시킨 곡”이라고 평가하며 이렇게 부연했다. “그렇다. 그(리엄 갤러거)는 당신의 로큰롤 스타다. 그는 다른 어떤 존재도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 시절 갤러거 형제가 바라던 유일한 건 로큰롤 스타가 되는 것이었다. 망상처럼 보이던 일은 상상이 되었고, 상상은 다시 현실이 되었다. 

 

브릿팝 전쟁 The Britpop War

시비 터는 존재, 관심 없는 존재

사건의 발단은 1995년 1월 24일이었다. 영국의 음악 매거진 『NME』가 주최하는 음악 시상식 ‘NME 어워즈’가 열리는 날이었다.

 

둘은 주요 부문의 상을 나눠 가졌다. 세부 사항을 따져봐도 용호상박이었다. 하지만 최우수 밴드에 지목된 것이 블러(오아시스는 최우수 신인 밴드)였다는 걸 감안하면, 블러의 판정승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날 수상 소감을 발표하던 노엘 갤러거는 갑자기 엘라스티카와 셰드 세븐을 조롱했다. 순간,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가 정중하게 쏘아 붙였다. “닥쳐!” 식장엔 정적이 흘렀다. 역사의 현장을 경험한 『NME』 기자 스티브 서덜랜드는 특집 기사 ‘블러와 오아시스의 차트 대격돌-실제로 일어난 일은 무엇이었나?’에서 그때의 정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리엄과 노엘은 자기들끼리도 잘 싸웠지만, 그 녀석들이 정말 좋아한 건 다른 사람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었어요. 오아시스는 블러가 록 스타에 걸맞다고 보지 않았어요. 블러는 오아시스가 뭐라고 생각하든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죠.” 

 

이 또한 지나가리라 All Things Must Pass

경쟁의 끝

2012년 2월 런던 O2 아레나에서 열린 브릿 어워즈에서 블러는 공로상을 받았다. 시상식 분위기는 좋았다. 방송 시간에 쫓긴 사회자 제임스 코든이 마지막 공연의 주인공으로 블러를 호명하기 위해 올해의 앨범 수상자인 아델의 수상 소감을 자르기 전까지는.

 

졸지에 주연에서 엑스트라로 강등된 아델은 불쾌감을 표시했고 모두가 다 보는 앞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억지웃음을 보였지만 그녀의 표정엔 비수가 있었다. 예기치 못한 비상사태에 코든도 아델에게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델은 세계 최고의 스타이고, 나 역시 그녀를 사랑해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당최 알 수 없었어요. 정말 속이 상했죠.”

 

데이먼을 포함한 블러 멤버들 또한 몸 둘 바를 몰랐다. 신이시여, 우리에게 대체 무슨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간만에 공식 석상에서 축하받는 자리였다. 블러는 좌중 앞에서 황제의 대관식에 찬물을 끼얹은 악당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블러에게 죄를 묻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그들 역시 촉박한 진행 일정이 만들어낸 피해자였으니까.

 

블러에겐 뭔가 꼬여도 단단히 꼬인 날이었다. 그날 그는 앙숙 노엘 갤러거와 마주쳤다. 신은 데이먼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여기가 외나무다리다! 과연 둘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카메라는 간만에 만난 두 숙적의 모습을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카메라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 아무리 봐도 화해의 제스처였다. 갑자기 연출한 장면이라기엔 두 사람의 표정이 너무 밝았다. 데이먼과 노엘은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는가 하면, 손가락으로 V를 만들어 보이기도 했다.

 

누구도 그 옛날의 난장판을 기억하는 것 같지 않았다. 드라마용이라도 해도 설득력이 떨어질 대단한 각본이었다. 둘 사이의 장벽은 너무도 쉽게 허물어졌다.

 

“그 시절 이후 우리가 이렇게 부드러운 사람이 되었다니 참 재미있지 않나요? 우리는 서로 화해했어요.” 데이먼은 이렇게 말했다.

 

그날의 해빙 무드가 일회성이 아니었다는 듯 데이먼과 노엘은 2013년 TCT 공연에서 <Tender>를 함께 열창하며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더없이 친해진 두 사람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속으로 한마디 했다. 역시 세상은 오래 살고 봐야 해. 

 

누가 달을 만들었는가? Who Built the Moon?

우아한 복귀

2015년 4월 27일. 블러의 여덟 번째 앨범《The Magic Whip》이 발매되었다. 데이먼, 그레이엄, 알렉스, 데이브. 1999년 《13》이후 16년 만에 처음으로 가동되는 멤버 구성이었다. 달콤한 거짓말 같았다. 재결합 공연 이후에도 여러 사람들의 추측은 이어졌으니. “가능하겠어?” “저러다 말지 않겠어?” 물음표가 이어졌다. 하지만 예술가는 오직 작품으로 말하는 법이다.

 

블러가 간만에 신보를 내놓자마자 호시탐탐 록 밴드의 사체를 물어뜯을 기회만을 엿보고 있던 호사가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최후의 심판은 오직 팬들과 평단의 몫이 될 것이다.

 

《The Magic Whip》은 기대 이상이었다. 현란한 전시회장이었다. 다양성의 집합소였다. 버릴 수 없는 힙스터 기질을 노출하면서도 옛 음악에 대한 존중을 버리지 않는 작품이었다.

 

《The Magic Whip》은 감각적인 앨범이었다. 구닥다리 같지 않았다. 10대 팬과 30대 팬 모두가 반길 수 있었다. 모든 밴드가 경력의 정점에 끌어오고 싶어 했을 보편적 호소력과 실험의 요소를 갖췄다. 엄밀히 말해 블러는 전성기에서 벗어난 밴드였다. 록 음악은 빙하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하지만 블러 멤버들은 자신이 얼음 속 화석 따위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오락실 사운드와 심오한 가사를 조합한 <Ice Cream Man>은 1989년 천안문 항쟁에 대한 데이먼의 뒤늦은 목격담이다. 이 곡은 《The Magic Whip》의 베스트다. 2015년 데이먼은 『빌보드』와의 인터뷰에서 이 곡을 이렇게 풀어서 설명했다. “아이스크림 맨은 사악해요. 그의 직업은 경찰관이죠. (그가 든) 채찍은 중국의 인민 통제를 가리켜요.”

 

블러가 가장 잘하는 팝 사운드가 마지막을 수놓는다. 싱얼롱이 저절로 나오는 <Ong Ong>, 건조한 기타 연주와 독백 같은 보컬로 감동의 순간을 조성하는 <Mirrorball>이 그 면면이다. 언제나 블러의 장기는 팝이었다.

 

브릿팝 시절, 미국 인디에 경도되었던 시절, 일렉트로닉 뮤직 시절까지 실험과 개혁이 쉼 없이 이어졌지만 그들은 늘 팝 음악을 소중하게 간직했고 상징으로 삼았다. 《The Magic Whip》이 팬들의 마음을 끄는 이유였다.

 

『피치포크』는 이 작품에 7점이라는 관대한 점수를 매기며 이렇게 총평했다. “블러의 영혼은 늘 장난기 어려 있었고, 듣는 이에게 동일시 및 즐거운 전복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안겼다. 그러한 것들은 시간의 흐름에도 부식되지 않고 다시 출현한다.”

 

즐거운 전복, 블러 음악에 대한 가장 적절한 평가였다. 더 이상 무대에서 방방 뛰어다니며 엠프에 몸을 날리지 않아도 블러는 블러였다.

 

다시 넘길 챕터를 위해

더 이상 오아시스라는 챕터는 존재할 수 없었다. 리엄은 비디 아이를 깨고 솔로로 데뷔했고, 노엘은 계속해서 새로 결성한 밴드의 페달을 밟아 나갔다.

 

하지만 갤러거 형제는 여전히 록 스타다. 2015년 리엄은 아일랜드의 한 펍에서 기네스에 잔득 취한 채 혼자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이 영상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삽시간에 퍼졌고, 팬들은 이 곡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결국 이 곡 <Bold>는 리엄의 솔로 앨범 《As You Were》(2017)에 들어갔다.

 

리엄의 솔로 앨범들은 비디 아이 시절보다 더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다. 확실히 전보다 좋은 곡을 많이 쓰고 있다. 리엄의 두 번째 솔로 앨범 《Why Me? Why Not.》(2019)을 들어보면 안다.

 

노엘도 뒤질세라 부지런히 앨범을 만들고 투어를 돌고 있다. 리엄이 곡이 로큰롤에 가깝다면 노엘의 곡은 샤이키델릭을 중심으로 회전하며 실험을 더하고 있다. 2017년 작품 《Who Built the Moon?》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오아시스 해산 이후 갤러거 형제는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리엄이 몇 번 형의 번호를 눌러봤지만 노엘은 그의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해체 후 흘러간 11년이란 시간은 오아시스의 그림을 지우기에 충분하다. 오아시스가 갈라선 이후로도 숱한 음악 흐름이 차트를 가르고 지나갔다. 유행은 몇 십 바퀴나 돌고 돌았다. 그 사이 다시 결합한 밴드도 있었지만, 그중엔 돈을 노리고 급하게 복귀한 팀들도 많았다.

 

2020년 현재 아직 오아시스의 컴백 소식은 없다. 복귀를 하더라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천하의 오아시스 아닌가. 무엇보다 섣부른 복귀를 점칠 수 없는 이유는 두 형제가 현재 각자의 위치에서 큰 아쉬움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단정하진 말기로 하자. 당장 합칠 이유가 없어 보이긴 하지만, 변수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생기기 마련이다. 다시는 안 볼 사람 같았던 데이비드 길모어와 로저 워터스가 2005년 라이브 에이트를 계기로 다시 만났듯, 리엄과 노엘도 미래의 그 어느 날 뜬금없는 장소에서 우리를 놀라게 해줄지도 모른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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