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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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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류・잡화

돈의 정석

인생의 격을 높이는 최소한의 교양
찰스 윌런 지음 |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0년 01월 | 552쪽 |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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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윌런 지음/김희정 옮김/부키/2020년 1월/552쪽/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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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집


■ 책 소개

 

베이비부머부터 90년생까지,

월급쟁이부터 사장까지 모두를 위한 ‘한 번은 돈 공부!’

 

이 책은 경제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저자가 돈의 본질, 유용성, 위력, 관리 및 운용 방법을 맛깔나고 실감 나게 알려 주는 돈 공부 기본서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설명과 흥미 만점이면서도 유익한 내용으로 가득한, 놀랍도록 다채롭고 기묘한 돈과 통화의 세계가 펼쳐진다. 저자는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이라도 누구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참신하고 직관적인 설명, 재미나고 적확한 사례로 유려하게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돈을 둘러싼 정곡을 찌르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바닷속에 가라앉은 돌이 어떻게 돈으로 계속 사용될까? 어째서 워런 버핏은 우리보다 돈이 더 적을 수도 있을까? 짐바브웨는 왜 그토록 많은 지폐를 찍어 휴지보다 못하게 만들었을까?

 

이 책에서 저자는 이러한 온갖 돈 이야기에 명쾌하게 답함으로써 금융 시스템의 작동 원리뿐 아니라 신용거래, 물가, 금리, 환율 등이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생생히 보여 준다. 그러면서 지갑 속 종이들과 은행 계좌 속 숫자들 뒤에 숨어 있는 별나고 흥미로운 세상의 비밀을 속 시원하게 밝혀낸다. 이 책은 우리가 개인, 사회, 국가, 전 지구 차원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올바른 돈 운용법’에 관한 최고의 입문서다.

 

■ 저자 찰스 윌런

저자 찰스 윌런은 현재 다트머스대학교 록펠러센터에서 공공정책 교수이자 선임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다트머스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공공업무 석사 학위, 시카고대학교에서 공공정책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이코노미스트> 특파원을 지냈으며, <시카고 트리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야후! 파이낸스> 등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시카고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에서 정책 프로세스에 관한 강의를 맡았으며, 학생들이 뽑은 ‘교양과목 올해의 교수’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5년에는 시카고대학교 최초로 ‘국제 정책 실습’ 과정을 개설해 학생들과 함께 직접 인도를 방문해 경제학자, 정치가, 교육자, 시민운동가 등 전문가들을 만나고 경제 개혁에 관해 연구했다. 그 후로도 브라질, 요르단, 이스라엘, 터키, 캄보디아, 르완다, 마다가스카르 등 여러 나라를 찾아가 연구했다.

 

경제 분야를 알기 쉽고 재미나게 설명한 ‘Naked’ 시리즈의 저자로 유명한데, 이 책 『돈의 정석(Naked Money)』을 비롯해 ‘800-CEO-READ’가 선정한 역대 최고의 경제경영서이자 장기 베스트셀러인 『벌거벗은 경제학(Naked Economics)』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인 『벌거벗은 통계학(Naked Statistics)』 외에 『지독하게 리얼하게 10.5(10 1/2 Things No Commencement Speaker Has Ever Said)』 등의 저서가 있다.

 

■ 역자 김희정

역자 김희정은 서울대 영문학과와 한국외국어대 동시통역대학원을 졸업했다. 가족과 함께 영국에 살면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진화의 배신』 『랩 걸』 『인간의 품격』 『어떻게 죽을 것인가』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이 있다.

 

■ 차례

들어가며 _ 돈을 둘러싼 경제 행위의 모든 것

 

1부 돈이 만드는 세상

1장 돈의 탄생

북한의 이상한 화폐 개혁│있던 돈을 휴지로 만드는 나라, 없던 돈을 만들어 내는 나라│돈은 신뢰를 기초로 해 ‘만들어진’ 것│사람들의 행동 방식이 돈의 가치를 결정한다│계산 단위, 가치 저장, 교환 수단으로서 돈│본질적인 가치가 전혀 없는 종이돈의 탄생│번영과 안정의 기회를 가져다준 명목화폐│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구매력을 지닌 통화

 

2장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너무 많은 돈도, 너무 적은 돈도 나라를 망하게 한다│결국 중요한 문제는 돈의 가치가 어느 정도냐는 것│돈이 많아져도 가격이 올라가면 무용지물│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통화의 문제다│할리우드 영화 흥행 성적의 허수│시장 경제 정보를 교란시키는 인플레이션│인플레이션에 감염된 모든 분야는 가치가 떨어진다│싸면 좋다고? 가격이 떨어지는 게 더 문제│경제 가속 페달을 무력화시키는 디플레이션│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아야 할 돈의 생태계

 

3장 물가의 과학, 정치학 그리고 심리학

가격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소비자물가지수의 과학│가격 변화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요소들│소비자물가지수 vs 소비자성향연계물가지수│실질 생계비 변화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 핵심│물가 변화를 완벽하게 측정하는 단일한 공식은 없다│향후 물가에 대한 사람들의 예상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디플레이션을 선호하는 사람, 인플레이션을 선호하는 사람│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정치적인 현상이다?│화폐 착각에 휘둘리는 돈의 심리학│약간의 인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이 전혀 없는 것보다 낫다

 

4장 신용대출과 금융 위기

금융 위기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패닉 사태│금융계의 다이너마이트, 신용대출│은행은 신용을 창출하고, 신용은 새로운 돈이다│음악이 흐르는 한 춤을 춰야 한다고 믿는 그들│파티가 끝나고 탐욕이 공포로 변하는 순간│유동성과 지급능력, 유동성부족과 지급불능│무고한 희생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신용거래와 관련된 몇 가지 핵심 개념들

 

5장 중앙은행의 업무와 역할

중앙은행의 슈퍼히어로, 인플레이션 파이터 맨│세계 수십억 인구의 경제적 운명을 좌우하는 그들│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기관│연방준비제도의 구조│중앙은행의 경제 정책 도구들│연방준비제도는 어떻게 통화 공급량을 조절할까│중앙은행의 최우선 목표는 통화 가치 유지│통화 정책과 관련된 일은 대부분 시차를 두고 벌어진다│경제의 제한 속도를 유지한다는 것│최종 대출자 역할과 모럴 해저드│금융 부문에 대한 규제 책임│연방준비제도의 이중 책무와 정치적 독립성

 

6장 환율과 세계 금융 시스템

한 통화를 다른 통화로 왜, 어떻게 바꾸는가│환율과 구매력 평가의 상관관계│환율과 교역재ㆍ비교역재 문제│통화 가치가 수출과 수입에 미치는 영향│강한 통화가 좋은가, 약한 통화가 좋은가│강한 통화가 강한 경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경쟁적 통화 평가절하의 속내│변동 환율제의 장점과 단점│금본위제가 문제가 되는 이유│정부가 환율을 방어해야 하는 페그제와 밴드제│환율에 대처하는 다양한 방법들│가장 좋은 환율 체계는 무엇인가│환율과 자본의 흐름은 효율적으로 조직되어 있는가

 

7장 금의 시대

처칠이 저지른 인생 최대의 실수│그들이 금본위제를 옹호하는 이유│화폐와 금융에 대한 몰이해에서 오는 금본위제 옹호│금이 21세기 경제 체제에 부적합한 화폐인 이유│금과 달러 중 어느 화폐가 더 예측 가능한 교환 단위인가│금의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금의 유혹에 빠지면 위험하다

 

2부 돈으로 굴러가는 세상

8장 미국 화폐의 역사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조가비 화폐│돈과 함께한 미국의 역사│최초의 종이화폐를 발행한 매사추세츠만 식민지 정부│독립전쟁을 둘러싼 화폐 전쟁│미합중국 제1은행과 제2은행│남북전쟁에서 북부의 승리를 뒷받침한 ‘그린백’ 화폐│금본위제 vs 금은복본위제│연방준비제도의 탄생│달러를 세계 준비 통화로 만든 브레턴우즈 체제│1970년대를 지배한 스태그플레이션 난제│1980년대의 대안정기와 2008년의 금융 위기

 

9장 1929년과 2008년

금융 위기의 시작을 알린 베어스턴스 파산│그래도 1930년대의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았다│대공황을 부추긴 연방준비제도의 실책│위기를 대서양 건너로 확산시킨 메커니즘│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던 금본위제 고수 정책│2008년, 주택담보대출이라는 뜨거운 감자│무분별한 대출을 부추긴 악당들│잘못된 인센티브의 연쇄 고리│모기지담보부증권, 그리고 환매조건부채권시장│경제적 손실을 악화시킨 부정적 순환 구조│연방준비제도가 취한 세 가지 주요 조치들│연방준비제도의 대응을 둘러싼 비판

 

10장 일본의 장기 침체

일본으로부터 배워야 할 명백한 교훈│일본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일본이 미국을 사들일 거라는 도취감에 사로잡혔을 때│좀비 기업의 탄생과 슬로모션 위기│일본이 경험한 ‘나쁜’ 디플레이션│그들이 인플레이션을 촉발하는 데 실패한 까닭│아베 신조가 쏘아 올린 화살들│일본의 잃어버린 수십 년에서 유추할 수 있는 사실들

 

11장 유로의 위기

결혼과 같은 흥분을 동반했던 행복한 시작│모든 나라가 같은 화폐를 사용하면 세상이 편해질까│자국만의 통화 정책을 운용하는 일의 중요성│최적통화지역 체크 리스트에 따른 유로존의 문제점│2008년, 위기에 빠진 유럽의 결혼 생활│구제금융으로 관계의 붕괴를 막을 수 있을까│대담한 전진이 될 것인가, 실패한 실험이 될 것인가

 

12장 미국과 중국의 통화 전쟁

중국이 오바마케어에 관심을 보인 까닭│두 나라의 불건전한 상호 의존 관계│가난한 나라가 부유한 나라에 돈을 빌려준다?│환율 조작국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금융 부문의 상호확증파괴 논리│미국과 중국이 서로의 비판에서 귀 기울여 할 것들

 

13장 화폐의 미래

야프 섬의 바위 화폐, 라이│생산 행위와 소비 행위의 기억으로서 돈│전자 황금, 비트코인의 탄생│비트코인 네트워크에 내재된 기술적인 의미│왜 사람들은 비트코인을 원하는가│의미 있는 계산 단위가 되지 못한다는 한계│가치 저장 수단으로서 전자화폐의 단점│불법 행위를 위한 교환 수단이 될 위험성│자본의 흐름을 더 빠르고, 쉽고, 저렴하게 변화시킬 가능성│미래의 화폐를 논의할 때 기억해야 할 쟁점들

 

14장 중앙은행과 통화 정책의 미래

금융 위기와 맞선 전쟁이 끝난 후│중앙은행과 관련해 꼭 기억해야 할 정책적 원칙들│2008년 위기를 통해 배운 새로운 교훈들│중앙은행과 통화 정책이 나아가야 할 길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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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윌런 지음/김희정 옮김/부키/2020년 1월/552쪽/18,000원

 

돈이 만드는 세상

돈의 탄생

사람들의 행동 방식이 돈의 가치를 결정한다

2000년대 초, 소말리아에서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법적 가치가 전혀 없는 돈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규모 거래에서 가장 선호된 돈은 소말리 실링으로, 법정 화폐가 아니었다-액수가 큰 거래에는 달러가 사용됐다. 오랜 내전 때문에 소말리아 중앙은행은 문을 닫았다. 과도 연방정부가 통화 정책을 책임지도록 되어 있었지만, 이 과도 정부의 영향력은 수도인 모가디슈 밖을 넘어서지 못했다. 당시 법적으로만 보면 소말리 실링은 모노폴리 게임에 쓰는 장난감 돈만큼이나 가치가 없었다. 시장에 유통되고 있던 지폐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정부가 20년 전에 발행한 것이었다. 『이코노미스트』지가 말했듯 “종이 지폐를 사용하는 것은 보통 그 지폐를 발행한 정부에 대한 신뢰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소말리아의 경우, 그런 정부는 수십 년 동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정부가 발행한-그냥 종잇조각에 불과한-화폐는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 통용됐다. 왜일까?

 

가장 간단한 답은 이거다. 사람들이 소말리 실링을 받았기 때문에 소말리 실링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 이유를 더 찾을 수 있다. 첫째, 소말리 실링은 소규모 거래의 수단으로 사용하기에 편했다. 미국의 수감자들이 작은 거래에서 물건에 값을 매기고 교환할 때 고등어 파우치를 사용하는 데 익숙해진 것처럼, 소말리아 사람들도 소말리 실링을 가지고 차와 빵을 사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예를 들어 모두가 작은 비누 한 장에 몇 실링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둘째, 소말리아에는 아주 강한 친족 관계가 존재한다. 정부가 없는 상태에서 이 친족 체제는 소말리 실링에 대한 신뢰를 형성해 주는 사회적 아교 역할을 했다. 이 네트워크에 속한 사람들은 같은 네트워크에 속한 다른 사람들이 소말리 실링을 받아들이리라는 것을 믿었다. 당시 『이코노미스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종이화폐는 사용자들이 그것과 실제 물건을 교환할 수 있다는 암묵적 동의를 하고 있어야 유통될 수 있다. 소말리아에서는 이 암묵적 동의가 특히 강하게 이루어져 있다. 이 체제를 교란하는 사람은 자신뿐 아니라 친족들 전체의 신뢰를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가짜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닐까? 찢어진 인도 루피는 진짜 돈이지만, 그것으로 차 한 잔도 살 수 없다. 소말리 실링은-그리고 위조 소말리 실링도-그것을 법정 화폐라고 선언할 정부가 없기 때문에 진짜 돈이 아니지만, 그것으로 차 한 잔을 사서 마실 수 있다. 이 부분에서 간단한 사실이 심오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어떤 것으로 쉽게, 그리고 예측 가능하게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다면 그것은 돈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돈이 아니다. 이 두 극단 사이에 중간 상태도 존재한다. 아프리카 전역의 환전소들은 헌 달러보다 새 달러에 더 나은 환율을 적용한다. 현직 미 재무부 장관이 서명한 100달러 지폐는 부시 행정부의 존 스노(John Snow)나 클린턴 행정부의 로버트 루빈(Robert Rubin)이 서명한 100달러 지폐보다 더 나은 환율을 적용받는다. 깨끗하고 빳빳한 지폐는 오래되고 더러운 지폐보다 더 나은 환율을 적용받는다. 100달러 지폐 한 장이 20달러 지폐 다섯 장보다 더 가치가 높다.

 

계산 단위, 가치 저장, 교환 수단으로서 돈

이제 한 발 뒤로 물러나 보자. 모든 화폐는-달러에서 고등어 파우치에 이르기까지- 세 가지 목적을 수행해야 한다. 첫째, 화폐는 '계산 단위'로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무언가의 가치를 생각할 때 특정 화폐 단위로 생각한다. 신입사원 면접에서 기업 측이 초봉은 한 달 에 소 여섯 마리, 오렌지 열한 상자라고 했다고 하자. 괜찮은 수준의 초봉인가? 그 말을 들은 순간에는 전혀 짐작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소와 오렌지를 달러로 환산해 보고 나서야 월급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계산 단위로서 화폐는-그것이 달러화든 엔화든 돌고래 이빨이든 간에-어떤 언어든 통역이 가능한 만국어 통역기 역할을 한다. 우리는 양털 스웨터가 당근 몇 개의 가치를 지니는지, 표시 가격이 평면 TV 27대 값인 토요타 코롤라가 경제학 입문서 3000권 값인 혼다 시빅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인지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된다. 모든 것을 달러로 전환해서 비교하면 되기 때문이다. 물리적 화폐가 사라진다 해도, 우리는 항상 거래 가격을 결정하는 계산 단위로서 화폐를 필요로 한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고 현금을 내는 대신 카드를 긁을 수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커피 한 잔의 가격을 달러와 센트 단위로 생각한다.

 

둘째, 화폐는 '가치 저장' 수단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판매 대금으로 받은 돈은 후에 무언가를 살 수 있는 구매력을 지닌다. 교도소 안에서 다른 수감자의 머리를 깎아 준 사람은 그 대가로 받은 고등어 파우치를 자기 감방 안에 쌓아 둘 수 있다. 당장은 필요한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무언가에 대한 대가로 달러를 받는 사람은 적어도 당분간은 그 화폐가 가치를 유지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쌀자루나 미국의 포에버 우표(Forever stamps, 미국 우체국이 존재하는 한 규격 봉투 크기의 우편을 미국 어느 곳에나 보내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우표)도 마찬가지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화폐로 사용된 물건들은 사과, 꽃, 생선 같은 것들보다는 썩거나 시들지 않는 소금, 담배, 동물 가죽 같은 것들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교도소에서 다른 수감자들의 머리를 깎아 주고 싱싱한 고등어를 대가로 받는다면 금방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잃게 될 것이다-아마 고등어가 상하는 속도만큼 고객 수도 빨리 줄어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화폐는 '교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 비교적 쉽게 거래 수단으로 쓰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종이화폐는 그런 의미에서 아주 편리하다. 100달러 지폐 뭉치는 지갑에 쏙 들어가는 데다 미국은 물론이고 미국 밖에서도 합법적으로든 불법적으로든 원하는 거의 모든 것과 교환할 수 있다. 금과 은을 비롯한 귀금속은 다양한 문화에서 교환 수단으로 사용됐다. 아프리카 전역에서는 선불로 구입한 휴대전화의 통화 시간이 화폐로 사용되기도 한다. 휴대전화 통화 시간은 다른 전화로 이전할 수도, 현금으로 바꿀 수도, 가게에서 지불 수단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휴대전화 통화 시간은 그 자체로 고유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지갑에 든 100달러짜리 지폐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화폐라는 것이 꼭 그 자체로 고유의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가치 있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화폐란 그저 교환을 용이하게 해줄 수만 있으면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물가의 과학, 정치학 그리고 심리학

소비자물가지수의 과학

소비자물가지수를 우리의 실생활과 밀접하고 정확한 지표로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미국 가정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상품들을 식별해 내는 일이다. 이런 면에서 노동통계국은 CIA와 비슷하다. 현장 요원들이 가공되지 않은 데이터를 보내면 본부에서는 그것을 분석해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노동통계국의 통계 전문가들은 표본으로 고른 가정들의 지출 데이터를 이용해서 전형적인 미국 가정의 소비 패턴을 가장 정확히 대변할 상품들을 선택한다. 현재 이 바스켓에는 200종이 넘는 재화와 서비스가 포함되어 있고, 이것들은 식음료, 주거, 의류, 여가 등 여덟 분야로 분류되어 있다.

 

소비자물가지수를 계산할 때 각 품목에는 바스켓 내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례한 가중치를 적용한다. 보통 가정에서 파르메산 치즈를 사는 것보다 닭고기를 사는 데 세 배 더 많은 돈을 쓴다면, 파르메산 치즈 가격보다 닭고기 가격 변화가 소비자물가지수에 세 배 더 큰 영향을 줄 것이다(크리스마스 물가지수에서는 배나무에 앉은 자고새의 가격에 비해 팔짝 뛰는 귀족의 가격에 10배의 가중치가 주어진다. <12일간의 크리스마스>에서 선물을 보내 준 사람이 팔짝 뛰는 귀족은 열 명을 보내지만, 배나무에 앉은 자고새는 한 마리만 보내기 때문이다).

 

그렇게 얻은 결과가 미국에서 가장 흔히 인용되는 인플레이션 수치인 '도시소비자물가지수(Consumer Price Index for All Urban Consumers, CPI-U)'다. 이 지수는 미국 인구의 88퍼센트에 달하는 사람들의 소비 성향을 반영해서 집계된다. 이와 관련된 지수로 인구의 32퍼센트를 차지하는 도시 임금노동자 및 사무직 종사자의 소비 성향을 반영한 '노동자소비자물가지수(CPI-W)'도 있다. 두 지수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여기에 시골 지역 소비자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시골에 사는 인구의 쇼핑 패턴은 도시 지역 인구가 구입하는 재화 바스켓과 현저하게 다르다. 여기에 더해 지역에 따른 소비 형태와 가격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 노동통계국은 이렇게 경고한다. "소비자물가지수를 생계비지수(Cost-of-living index)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지수는 제대로 작성된 생계비지수와 핵심적인 부분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이것은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니다. 인플레이션을 가능한 한 정확히 측정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계약을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들을 갱신할 때 물가의 변화를 반영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사회 복지 프로그램을 통해서 은퇴자들에게 일정 기간 동안 동일한 구매력을 보장해 주는 것이 목표라면, 동네 마트의 가격이 오르내리는 것에 따라 연금 지출 내역도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동네 마트를 들먹인 것은 의미 없이 해 본 소리가 아니다. 실생활을 반영하는 재화 바스켓을 사용해서 물가의 변화를 측정하고자 한다면, 다른 종류의 소비자들은 다른 종류의 재화를 소비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 정부는‘Older Americans Act of 1987’(정말 이런 이름을 붙였다)을 제정해 노동통계국으로 하여금 62세 이상 소비자의 소비 성향을 반영하는 '노인소비자물가지수(CPI-E)'를 실험적으로 측정하게끔 했다. 노인들은 영화 관람 티켓에서 비행기 탑승권까지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할 때 할인을 받는다. 반면 그들은 젊은이들보다 의료비 지출이 높다. 노동통계국에서 일하는 경제학자에게 물었지만, 노인들이 많이 하는 셔플보드 게임 장비가 소비자물가 지수나 노인소비자물가지수에 포함되어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1982년에서 2011년 사이 노인소비자물가지수는 연평균 3.1퍼센트 올라, 2.9퍼센트 오른 도시소비자물가지수를 상회했다. 그 기간 동안 건강 및 의료 관련 가격이 다른 재화와 서비스 가격에 비해 거의 두 배로 올랐기 때문이다.

 

실질 생계비 변화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 핵심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가 태어난 지 1년 후인 1995년, 미 상원은 저명한 경제학자들에게 노동통계국이 인플레이션을 측정하는 방법의 정확도를 평가하게끔 했다. 보스킨 위원회(Boskin Commission)라고 불린 이 위원회는 소비자물가지수가 생계비 변화를 매년 1.1퍼센트씩 과대평가했다고 결론지었다. 얼마 되지 않는 숫자처럼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위원회는 이렇게 상향 설정된 지수 때문에 추가로 지급된 액수는 복지, 의료, 방위 프로그램을 제외한 다른 어떤 프로그램에 대한 정부 지출보다 많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문제를 수정하지 않으면, 연방정부가 1996년에서 2008년 사이에 1조 달러의 빚을 추가로 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스킨 위원회는 고정 관념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어디서 어떻게 구매를 하는지에 관해 상당한 오판을 했다고 평가하고 그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위원회 보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소비자물가지수의 강점은 그 개념의 기초가 무척 단순하다는 데서 나온다. 일정 기간 동안 정해진(그러나 실생활을 잘 반영하는) 재화와 서비스 바스켓의 가격을 추적하는 개념 말이다.

 

그러나 소비자물가지수가 가진 약점 역시 같은 개념에서 나온다. ‘정해진 재화와 서비스 바스켓’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소비자들이 가격 변화와 새로운 선택지들에 반응하면서 점점 실생활을 반영하는 정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가격이 오르면 보통 세 가지 형태로 반응하는데, 소비자물가지수에는 그 세 패턴이 완전히 반영되지 못한다. 첫째, 소비자들은 같은 제품을 더 싸게 살 수 있는 곳을 찾는다(이 부분이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보스킨 위원회 보고서가 아웃렛과 대형 마트가 확산되던 때와 비슷한 시기에 나왔기 때문이다). 둘째, 소비자들은 값이 오른 상품을 대체할 다른 상품을 찾는다(사과를 바나나로 대체). 셋째, 소비자들은 값이 오른 상품과 같은 범주 안에 있는 다른 상품을 찾는다(부사 사과를 홍옥 사과로 대체). 이와 더불어 소비자물가지수는 품질 향상을 과소평가하고(특히 내구성과 신뢰도가 향상된 가전제품의 경우), 새로운 제품을 포함시키는 데 너무 느리다는 지적을 받았다.

 

화폐 착각에 휘둘리는 돈의 심리학

여기서 하나 더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돈은 심리적인 요소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냥 우리 모두가 돈을 많이 가지기를 원한다는 의미에서만은 아니다. 돈의 실제 가치 변화와 인플레이션을 구분하는 데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어린아이처럼 굴곤 한다. 세 살 난 어린아이가 5달러 지폐 한 장보다 1달러 지폐 다섯 장을 더 좋아하듯, 다 자란 성인들도 화폐의 진짜 가치보다 거기 쓰인 숫자에 더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는 듯하다. 간단한 문제 하나만 풀어 보자. 물가 변동이 전혀 없는 상태로 연봉 인상도 없는 것과 물가가 연간 5퍼센트 상승하면서 연봉이 5퍼센트 오르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수학적인 함정이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담은 두 가지 시나리오 중 어느 쪽이 일어나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경제학자들의 생각은 그렇다.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모든 숫자가 매년 동일하게 유지된다.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월급봉투가 두둑해지긴 하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구입하는 모든 물건도 그만큼 비싸진다.

 

인플레이션이 급여 인상분을 잠식해 버린다 하더라도 연봉이 오르는 걸 선호하는 것이 사람들의 성향이다. 그리고 우리는 설령 물가가 떨어져서 급여 하락분이 모두 상쇄된다 할지라도 연봉이 깎이는 건 극도로 싫어한다. 경제학자들은 이렇게(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가치보다 명목가치에 따라 사고하는 경향을 ‘화폐 착각(money illusion)’이라 부른다.

 

인간 심리는 복잡하다. 사람들이 물가가 변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저 모른 척하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이런 모순적인 행동이 끼치는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예를 들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노동자들은 물가가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3퍼센트 임금 삭감을 하자고 하면 받아들이지 않다가도, 인플레이션이 4퍼센트일 때 임금 인상을 1퍼센트만 하자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양쪽 다 실질적으로는 3퍼센트 임금 삭감이다). 이러한 현상은 그냥 신기한 심리적 착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노동 시장은 물가가 안정적이거나 떨어질 때보다 약간의 인플레이션이 있을 때 더 융통성이 생긴다는 뜻이 된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소비자들은 큰 결정을 내릴 때도 명목가격에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집을 가진 사람은 거래에서 발생하는 실제 손익과 무관하게, 자신이 애초에 지불했던 금액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집을 팔고 싶어 하지 않을 수 있다. 반면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집을 살 때 지불했던 것보다 ‘돈을 남기고’ 파는 거래는 더 쉽게 결정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뉴저지 쇼핑몰에서 진행된 여론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이 묘한 인간 심리를 추적한 엘다 샤퍼(Eldar Shafir), 피터 다이아몬드(Peter Diamond), 에이머스 트버스키(Amos Tversky)는 논문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화폐 착각은 제로 인플레이션일 때와 그 밖에 낮은 인플레이션일 때의 차이를 비교할 때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인일 수 있다." 

 

돈으로 굴러가는 세상

1929년과 2008년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던 금본위제 고수 정책

어떤 기준으로 보든 대공황은 정말 심각했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형용사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숫자로만 봐도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1931년과 1932년에 연달아 물가가 거의 10퍼센트씩 떨어졌고, 1933년에는 추가로 5퍼센트가 더 떨어졌다. 디플레이션은 농민들처럼 가격이 떨어지는 상품을 팔아서 이미 고정된 빚을 갚는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줬다. 1929년에서 1933년 사이에 경제 규모는 약 1분의 1이 줄어들었다(세계적으로는 15퍼센트가 축소되었다). 미국 내 실업률은 25퍼센트에 달했다. 1930년대에 망한 미국 은행은 대략 9000개였고, 1933년 한 해에만 4000개 은행이 문을 닫았다.

 

루스벨트 행정부가 금본위제를 폐지하는 것으로(달러의 가치가 크게 평가절하됐다) 디플레이션을 해결하고, 예금보험제를 도입해 금융 패닉을 방지하고 나서야 미국 경제는 겨우 회복세를 보였다. 벤 버냉키가 지적했듯이 “루스벨트가 매우 성공적으로 성취해 낸 두 가지 업적 덕분에 연방준비제도가 만들어 냈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해 악화시킨 문제가 상쇄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왜 그토록 무능력하게 굴었을까? 연방준비제도는 왜 환자를 죽이는 상황에 이르렀을까? 1930년대에 작황이 좋지 않고 가뭄이 들어 경제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대공황은 상당 부분 인간의 실수로 벌어진 일이었다. 바로 완벽한 정책 실패가 원인이었던 것이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연방준비제도의 수뇌부가 무능했다고 비난한다. 시스템은 구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숙했고 극도로 분권화되어 있었다.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는 당시 미국의 중앙은행을 ‘놀라울 정도로 무능한 기관’이라고 묘사했다. 연방준비제도는 12개 지역 준비은행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통화 정책을 실행하는 도구 또한 분권화되어 있었다. 이 구조로 인해 혼란, 대책 부족, 그리고 잦은 권력 투쟁이 야기됐다. 루스벨트 행정부는 결국 연방준비제도의 구조를 개편해서 워싱턴 DC에 있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 통화 정책에 관한 모든 권한을 일임했다.

 

그러나 모든 문제의 근원은 연방준비제도가 금본위제를 엄격히 고수했던 것이었다. 그 때문에 파산하는 은행들을 구하고 물가 하락에 대처하는 능력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연방준비제도는 어려움에 빠진 은행들에 대해 최종 대출자 역할을 하는 데 필요한 새 돈을 찍어 낼 수 없었다. 새로 찍어 내는 돈을 금으로 보증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가 더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극적으로 금리를 낮출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하면 금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겪는 다른 나라들도 이와 동일한 제한을 받았다. 미국에서, 그리고 전 세계에서 정책 입안자들은 금리를 높게 유지함으로써 금의 공급을 보호했다. 그러나 경제 회복을 꾀하기 위해서는 정반대 정책이 필요했다. 피터 테민은 『대공황의 교훈(Lessons from the Great Depression)』에서 이렇게 결론을 맺는다. “산업화된 경제를 금본위제에 묶어 놓은 것은 최악의 정책이었다.”

 

연방준비제도가 취한 세 가지 주요 조치들

연방준비제도가 2008년 금융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취한 조치들을 보면,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인해 무척 복잡해 보이기도 했고, 방향 전환과 규모 면에서 전례 없는 모습을 띠었지만, 본질적으로는 비교적 단순한 것들이었다. 연방준비제도는 (1930년대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근본적인 책임을 완수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1. 최종 대출자 역할을 해냄으로써 금융 시스템을 보호한다.

2. 통화 정책을 통해 쇠약해져 가는 경제를 다시 촉진하고 디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호한다.

3. 미래의 위기들을 방지하기 위해 규제 구조를 정비한다.

 

유동성 제공

금융 위기 중 중앙은행이 해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임무는 최종 대출자 역할이다. 월터 배젓이 처음 처방했듯이 중앙은행은 금융 패닉 때문에 위기에 빠진 건전한 기업에는 징벌적 금리를 적용하되 모든 건전한 담보에 대해서 후하게 대출해야 한다. 연방준비제도는 여러 형태로 이 임무를 수행했다. 2007년 12월을 시작으로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할인율(연방준비제도가 시중 은행에 빌려주는 돈에 대한 금리)을 4.75퍼센트에서 0.5퍼센트로 낮추고, 대출에 대한 상환 기간도 대폭 늘렸다. 목표 연방 기금금리는 거의 0퍼센트에 가깝게 낮춰졌다. 연방준비제도는 전 세계 다른 중앙은행들 중 자국 시중 은행들을 지지하기 위해 달러가 필요한 곳에도 자금을 융자해 주었다.

 

위기가 확산되면서 연방준비제도는 전통적인 시중 은행들 이외의 금융 기업들에도 유동 자금을 지원해 줄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 기업들이야말로 위기의 진원지였기 때문이다. 연방준비법 13조 3항에서는 '비정상적이고 위급한 상황(unusual and exigent circumstances)'일 경우 연방준비제도가 담보를 제공할 용의가 있는 기업이나 개인 누구에게나 대출해 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2009년에는 우리 할머니가 소장 가치가 높은 엘비스 프레슬리 기념 접시 한 세트를 들고 연방준비은행에 나타났어도-분명 비정상적 상황이었으므로-현금을 대출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우리 할머니의 예를 든 것은 농담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는 현실과 관련이 있기도 하다. 비은행 금융 기관 중 많은 수가 수집용 기념 접시보다 그다지 유동성이 높지 않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부의장이었던 도널드 콘(Donald Kohn)은 이 전략의 핵심이 "지불 능력이 있는 기관들이 보유한 비유동성 담보를 받고 대출을 해 준다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 그러한 기관들이 필요한 유동자금을 손에 넣을 수 있어서(할머니가 엘비스 프레슬리 접시로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는 것처럼), 헐값에 자산을 팔아넘기지(그렇게 하면 위기를 더 악화시킬 것이다) 않아도 된다. 연방준비제도는 MMF, 증권 딜러, 그리고 기타 ‘주요 비은행권 금융 시장 참여자들’에 대해 대출을 해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또한 연방준비제도는 재무부와 함께 학자금 대출, 자동차 대출, 신용카드 대출, 그리고 중소기업청이 보장하는 대출 등을 저당으로 하는 증권들을 담보 삼아 대출을 해 주는 메커니즘도 만들었다. 이런 예는 계속된다.

 

통화 정책을 통한 경제 촉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또 다른 메커니즘은 통화 정책을 사용해서 경제 활동을 촉진하고, (1930년대에 그랬던 것과 같이) 경기침체를 증폭시키는 부정적인 연쇄 반응이 일어나는 걸 방지하는 것이었다. 대출과 지출을 촉진하는 가장 전통적인 방법은 연방기금금리를 낮추는 것이다. 연방준비제도는 통화 공급을 증가시킴으로써 단기 금리를 낮추고, 기업 투자와 소비자 지출을 자극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 위기가 났을 때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단기 금리가 본질적으로 0퍼센트였으므로, 연방준비제도는 제로 바운드에서 정책 운용을 해야만 했다. 단기 명목금리를 0 미만으로 낮출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이 없었다.

 

해결책은 통화 정책을 사용해서 장기 금리를 낮추는 것이었다. 장기 금리는 여러 면에서 지출과 투자에 더 강한 효과를 낸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나 기업의 장기 대출 비용과 관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 금리를 낮추는 과정은 좀 더 복잡하다. 장기 금리는 단기 금리가 장기간에 걸쳐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다. 단기 금리가 지금은 낮다 해도 투자자들이 5년 후에는 높아질 거라고 우려하기 시작하면, 장리 금리가 높아지게 된다. 금리가 올해는 2퍼센트지만, 투자자들은 연방준비제도가 내년에 4퍼센트로 올릴 거라고 예상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2년 만기 채권의 금리가 3퍼센트로 책정될 것이다. 현재의 연평균 금리와 내년의 연간 금리 기대치를 반영한 수치다.

 

보통 연방준비제도는 다음 해의 금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없고, 29년 후의 금리는 더욱 그렇다. 29년 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누구일지 누가 알겠는가. 심지어 폭이 넓은 넥타이가 다시 유행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폭이 넓은 넥타이 문제가 아니라 장기 금리를 낮추는 문제) 연방준비제도는 두 가지 일을 했다. 첫째, 금리와 관련된 그들의 장래 계획에 대한 ‘미래 지침(forward guidance)’을 제공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다양한 기회를 통해 금리가 일정 기간 동안에(예를 들어 2010년 1/4분기까지), 혹은 경제가 특정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예를 들어 실업률이 6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질 때까지) 낮게 유지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는 채권 구입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 보세요. 현재 단기 금리가 낮은데, 내년에도 낮으리라는 걸 약속합니다. 그러니 2년 만기 채권을 살 때도 낮은 금리를 받아들여야 할 거예요.”

 

또 다른 접근 방법은 이보다 더 직접적이었다. 연방준비제도는 돈을 발행할 수 있는 권한을 이용해서 장기 채권을 사들였다. 이것이 바도 양적 완화의 목적이었다(그 뒤를 이은 2차 양적 완화, 3차 양적 완화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연방준비제도는 매번 양적 완화를 감행할 때마다 막대한 양의 장기 정부 채권을 사들였다. 수요를 높여서 금리를 낮추는 효과를 내기 위함이었다. 결국 이것도 수요와 공급의 문제다. 장기 채권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면 채권 발행자-이 경우는 미 재무부와 연방 기구들-가 낮은 금리의 채권을 발행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사실 엄청나게 법석을 떤 이 조치는 오래된 노래에 후렴구만 새로 붙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통화 정책에는 늘 정부 채권을 사고파는 과정이 포함된다. 그것이 공개 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낮추려고 할 때는 항상 돈을 새로 찍어 내서 채권들을 사들이곤 한다. 물론 이번에는 그 규모가 전례 없이 컸고 개입의 성격이 새롭긴 했지만, 그렇다고 무슨 사악한 요술을 부린 것은 아니었다. 벤 버냉키가 설명했듯 "이것은 통화 정책에 또 다른 이름을 붙인 것일 뿐이다. 단기 금리에 주의를 집중하는 대신 우리는 장기 금리에 신경을 쓰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금리를 낮춘다는 기본적인 논리에는 변함이 없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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